새로 길이 나서 이제는 청주에서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괴산하면 겹겹의 산과 계곡, 대학찰옥수수와 고추, 유기농과 귀촌 정도를 떠올리게 되는 시쳇말로 ‘걍 시골’이다. 그 괴산 시골 마을에 ‘문화학교 숲’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거점을 발굴하고 사업역량을 키우는 거점사업을 시작한 2019년, 청주와 괴산 등을 오가며 매달 정기적으로 단체들을 만나고 지역의 거점에 대한 역할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때 서류에서만 보았던 문화학교 숲의 다른 면을 보게 되면서 이 사람들이 사는 법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 해의 사업이 마무리되는 12월 문화학교 숲을 찾았다.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_두근두근 영화공작소>
도시 청년 농촌 정착기
문화학교 숲은 문화예술교육 단체인 ‘어린이문화 사과’ 출신 세 명의 청년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어린이문화 사과는 2000년대 중반 공동체에 뿌리내리며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실천하기 위해 괴산의 한 폐교에 ‘신기학교’를 열고 교육, 문화, 농사를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가꾸며 농촌공동체 회복을 위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친 공동체이다.
“예전에 도시의 단체에서 일했는데 말처럼 쉽지 않았어요. 스스로 책임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렇게 살지 못하잖아요. 삶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던 때 직접 땀을 흘리며 스스로 무엇을 이루어나가는 이곳 생활이 좋았어요. 땀 흘리는 노동에 진한 감동을 느꼈어요. 같이 모여 ‘이거 한번 해보자’ 하면 무조건 했었어요. 그게 좋아서 이곳에 내려오게 되었지요.”
– 이애란 문화학교 숲 대표
교실 세 칸에 직접 땅을 파고 아궁이와 구들장을 놓으며 손수 거처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나무하고 불을 지피고 밥하며 텃밭을 가꾸는 하루하루의 노동, 캠프와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만났던 시간이 자신을 키웠다고 이애란 대표는 말한다.
“처음 왔을 때는 주위를 둘러볼 줄도 모르고, 제 생각에만 치우쳐있었어요. 온 지 1~2년 정도 되었을 때 삶의 이야기를 엮어 자서전을 만들겠다고 동네 어르신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수업 계획표를 나누어 드렸는데, 처음에 기분 좋게 오셨던 분들이 언짢아하시며 가시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그분들 대부분이 글을 모르셨던 거죠. 지역에 내려와 살면서도 동네 어르신들이 글을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예요. 지역을 몰랐던 것이지요.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한글 수업을 하게 되고 어르신들 댁에 품앗이도 가게 되었어요.”
2013년 함께했던 활동가들과 헤어지고 괴산에 남기로 한 세 명의 청년들이 마을 한가운데로 공간을 옮기며 어르신들과 만나고 지역 농업 활동을 하며 사람들과 많이 관계하며 문화학교 숲을 시작했다. 지역에 산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울려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과 고민의 시간을 한참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지역 사람, 우리 마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전래놀이 워크숍>
서로를 보살피고, 살리고, 해결하며
먹고사는 것, 자연, 이웃 등 생활의 모든 것이 배움이라 생각하기에 문화학교 숲의 활동은 일과 놀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어린이가 손수 가꾸는 보글보글 농장 이야기>와 <신나는 요리교실>은 아이들이 텃밭을 가꾸고 수확해서 요리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림책으로 만들며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이다. 텃밭에서 나지 않는 재료들은 직접 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고 필요한 만큼 얻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는 경험을 넘어 보살피고, 살리며, 스스로 해결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전래놀이를 통해 즐겁게 뛰노는 <가슴 펴고 어깨 걸고>, <뚝딱뚝딱 놀잇감 만들기>, 자기 이야기와 생각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사진 속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여 멀티슬라이드 영상을 제작하여 공연하는 <사진 속에 숨은 이야기>, <그림책 만들기>, 일상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 소품, 무대를 손수 만들어 공연하는 <창작연극 만들기>와 <창작인형극 만들기>, 청소년 아이들과 <라디오드라마 만들기>,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_두근두근 영화공작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각각이 아니라 서로 이어지고 참여자들에 의해 확장되고 재구성된다.
“2013년부터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지원 없이 유아,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놀이수업을 했어요. 이 과정을 지켜보던 부모님, 이웃, 지역 곳곳에서 놀이수업 요구가 이어졌지요. 활동 교사가 부족해서 ‘전래놀이 마을교사 양성과정’을 열었고, 우리의 배움을 ‘놀이 올림픽’으로 열어 괴산 어린이들과 나눴어요. 첫해로 끝나지 않고 4년 동안 ‘전래놀이 워크숍’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과 함께 괴산 놀이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배우며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지역 사람들과 함께 모이게 되고 같이 놀고 밥 먹고 하면서 빠르게 친해졌어요. 무엇보다 문화학교 숲이 먼저 나누고 마음을 활짝 여니 더 많은 분들이 지역에서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함께 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어요. 수업 요청이 들어오면 저희 인력만으로 할 수 없으니 수업 참관이나 보조교사로 활동할 수 있게 했고 나중에는 그분들에게 수업의 권한을 나누어 주고 학교 수업과 연결해주기도 했어요.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또 괴산교육청 행복교육지구 사업과 맞물리면서 계속 지역의 예술가, 교사, 활동가들과 연결되고 있어요”
괴산두레학교와의 인연은 괴산에 처음 내려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글을 배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와 이야기로 담아내는 과정을 수년간 해오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올해 10주년 기념으로 만든 할머니들의 그림책 자서전은 눈물 나도록 곱고 예쁘다. 이렇게 만든 이야기는 할머니들이 유치원에 가서 다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할머니 활동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그림책 자서전>
같이 놀 판을 열고 마당을 내어 주기
누구나 새롭고 대안적인 것을 찾고 싶지만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시대에 문화학교 숲은 ‘자연과 농촌의 가치’ ‘공동체 감수성’ ‘삶의 태도’ 같은 무겁고 답답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먹고 살고 노는 것과 같이 소소하고 촌스러운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마을 사람들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을 찾아내 판을 만든다. 문화학교 숲은 농촌이 농산물만 생산하는 곳이 아닌 삶의 중요한 가치를 생산해 내는 곳이라 믿는다. 지역의 문화유적인 홍범식 고가(충북 민속문화재 제14호)에서 매달 셋째 주 ‘홍범식 고가에서 열리는 신나는 이야기 여행’을 진행하며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만들기도 하고 아이들과 주민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만든다. 전통문화자산과 이야기를 발견해내어 농촌 문화와 문화재를 현대적 의미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한편, 청년들을 모아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일을 도모한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인턴십을 제공하며 그들의 진로와 고민을 들어준다. 고향을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와 자신이 배운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방법을 고민할 때, 십수 년 전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가 청년이 되어 돌아와 활동가를 꿈꿀 때 함께 고민하고 활동할 수 있는 마당을 내어 주기도 한다.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 이전에 활동가로서 자신부터 바로 서는 사람이고 싶기에 나와 우리, 나와 아이들, 사람들과의 관계와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을 만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한다는 이애란 대표. 때로 계속되는 사람들과의 관심 가짐이나 얽히고설키는 일이 고단하지 않는지 물었다.
“그냥 성격인 것 같아요. 물론 지칠 때도 있지만 같이 모여서 생각하고 이야기했던 일을 땀 흘리고 몸을 움직여 만들어나가는 것이 좋아요. 문화학교 숲에서 함께 생각하고 상상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신기하고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힘이 되죠. 그렇게 같이 고민하고 같이 시도하여 일을 만들고 성취와 보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좌) <놀이터> (우) <놀이 올림픽>
몇 주 전 발목 통증으로 병원에 갔더니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인 니트(NEAT, non-exercise activity thermogenesis, 비운동성 활동 열 생성)를 늘리라고 했다. 고강도 운동이 오히려 스트레스와 피로를 유발할 수 있으니 일상적인 움직임을 보다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문화학교 숲이 해온 일들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화려하지도 ‘핫’하지도 않은, 과하지 않게 소소하고 소박한 움직임. 문화학교 숲이 꾸준히 자신들의 역할을 의식하며 능동적으로 만들어 온 활동-지역에 관심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며, 먹고 사는 것과 노는 것을, 이야기하며, 얽히기-이 좋은 에너지를 생성하고 지역을 건강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리라. 큰일(?) 하는데 정신이 팔려 오히려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움직임을 소홀히 하여 감각과 의식이 둔해져 버린 나를 돌아보며 내일부터 의식적으로 소소한 니트를 시작해보리라 마음먹는다.
사진제공 _ 문화학교 숲
최상진
정지현
충북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총괄했다. 문화예술단체들과 현장에서 실험하고 거점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현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노는 법을 배우고 있다.
mrsvirag@cbf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