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최근 몇 년간 영국과 호주를 비롯한 여러나라에서는 예술이 운동만큼이나 건강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정부 주도로 예술활동을 보건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정책적인 지원책을 펼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좁게는 질병 치료의 수단으로서 약물처럼 예술을 처방받는 것에서부터, 넓게는 정신적·신체적 건강의 조화로운 안녕을 뜻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서의 ‘웰빙(well-being)’을 도모하는 것에까지 이르는 예술의 새로운 활약상을 살펴보자.
의사에게 약 대신 예술을 처방받다
영국 정부의 ‘사회적 처방’프로그램
영국 정부는 광범위한 질병 치료 및 정서적 지원을 위해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의사들이 직접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사회적 활동 중 교육, 스포츠와 함께 예술활동이 중요한 항목으로 꼽힌다. 사회적 처방은 주로 지역사회 단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술활동은 현재 국립보건원과 예술위원회의 협력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며 2023년까지 영국 전역에 확대될 예정이다.
영국 하원의원들이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영국 학교에서의 예술수업 감소를 막기 위해 정부에 권고하는 조치사항 중 하나로 문화부와 보건복지부가 협력하여 사회적 처방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영국 내에서도 지속적인 확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는 2020년 2월에 영국 예술위원회의 지원으로 영국 리즈대학교에 개관 예정인 ‘문화적가치센터(Center for Cultural Value)’는 주요 활동주제 중 하나로 ‘문화예술과 웰빙’을 꼽고 있으며,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문화예술이 실질적으로 끼치는 영향 및 사회적 처방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영국 의회가 2017년 발표한 「창조적 건강: 건강과 웰빙을 위한 예술」 보고서
[이미지 출처] 문화건강&웰빙연합회 www.culturehealthandwellbeing.org.uk
미술관에서 만나는 예술치료
캐나다 몬트리올미술관
캐나다 몬트리올미술관(Montreal Museum of Fine Arts)은 ‘예술과 건강’을 미술관의 미래 방향성으로 규정하며, 2017년도부터 미술치료사를 상근직원으로 고용, 연간 1,200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몬트리올미술관은 ‘예술과 건강’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별도로 구성하고, 과학자와 건강, 예술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운영한 최초의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미셸 드 라 셰넬리에 교육 및 예술치료 국제 아틀리에(The Michel de la Chenelière International Atelier for Education and Art Therapy)’는 보건 및 학술단체와 협력하여 정신건강 문제, 혹은 학습이나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구체적인 프로젝트로는 난독증·청각장애를 가진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 섭식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해 정교하게 고안된 정기적 창작 프로그램, 자살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는 미술 워크숍, 이민자 성인을 위한 워크숍,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연극 워크숍, 정신건강 장애를 가진 성인을 위한 워크숍 등 다양한 대상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와의 연구로 특수하게 고안된 깊이 있는 프로그램을 다채로이 보유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별로 대학교의 정신건강 전문가, 미술치료사, 박물관 교육자들이 협업하여 참가자들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캐나다의 경우 영국과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몬트리올에 기반을 둔 의료협회(Médecins Francophones du Canada)는 박물관과 연계하여 회원들이 한화 2만원 상당의 박물관 방문 처방전을 50개까지 제공할 수 있게 하는 1년간의 시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예술활동을 중심으로 ‘사회적 처방’이 확산되는 추세이다.
  • [이미지 출처] 몬트리올미술관 홈페이지 www.mbam.qc.ca
뉴질랜드, ‘창조적 웰빙 동맹’ 발족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4월, 예술을 통해 건강과 웰빙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국적 네트워크인 ‘창조적 웰빙 아오테아로아(Te Ora Auaha – Creative Wellbeing Alliance Aotearoa)’를 발족했다. 예술가, 연구자, 정책입안자 및 예술단체, 교육단체, 건강단체, 지역사회 단체 등의 연합으로 결성된 단체의 구성원들은 예술과 창의성이 정신건강, 사회통합, 노령화, 사회문화적 불평등과 같은 중요한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에 의견을 모으고, 모든 뉴질랜드인이 예술과 문화체험에 접근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연맹을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프랑스 문화부의 ‘문화건강’ 개념 기반의 보고서
프랑스 문화부는 지난 6월 정신분석가 소피 마리노풀로스(Sophie Marinopoulos)에 의뢰 보고서인 「문화건강을 위한 국가전략 – 출생에서부터 3년 동안의 아동의 문화예술적 각성을 부모와의 관계에서 촉진하기」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소개했다. 이 보고서는 0~3세 영유아의 문화적 건강을 위한 국가전략을 세울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보고서에서는 ‘문화적 영양실조(malnutrition culturelle)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는 아이들의 손에 전화기나 태블릿을 쥐어줌으로써 야기되는 부모 및 사회와의 단절에 대한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아이들이 영양적으로는 상태가 좋으나, 관계적, 문화적 측면에서는 빈곤함을 지적하며 어린이 발달에 ‘문화적 건강(santé culturelle)’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특히 문화적 건강을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문화정책을 위한 66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하였다. 현재 보고서 검토 단계로 머지않아 “예술과 건강”에 관한 구체적인 정책이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프랑스 문화부 홈페이지 www.culture.gouv.fr
이 밖에도, 호주의 경우 10년 전 일찌감치 ‘호주예술건강센터(Australian Centre for Arts and Health)’를 설립하고 영국의 국립예술·건강·웰빙연맹(National Alliance for Arts, Health and Wellbeing), 유럽연합(EU)의 롱리브아츠(Long Live Arts), 미국의 국립예술건강협회와 국립창조적나이듬센터(National Organisation for Arts Health, National Center for Creative Aging), 캐나다의 예술건강네트워크(Arts Health Network Canada) 등 각국의 관련기관을 네트워킹하고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한 인식이 확산되어 정책적 지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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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
미학을 공부하고, 문화예술분야 공공기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eheeky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