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죽었다’라는 선언이나 ‘대학은 죽었다’라는 주장이 익숙함을 넘어 진부한 시대가 되었다. 이제 대학은 폐교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고, 대학교수는 수많은 직업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과거 대학교수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예언자 역할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더 이상 대학이나 지식인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플랫폼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유튜브(YouTube)’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들과 외식할 때 천방지축 날뛰던 아이를 얌전하게 하는 것도 유튜브이고, 초등학생들의 미래 직업 선호 상위권에 ‘유튜브 크리에이터(YouTube Creator)’가 올라 있다. 그것은 단순히 영상물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영상을 제작하여 업로드하고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는 새로운 플랫폼의 문제이다. 지식의 생산과 창조, 전달과 확산 등 모든 과정이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단순화하자면, 유튜브는 지식인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 일반과 비교할 때 굉장히 왜곡된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권력의 상당 부분이 이미 대중 혹은 시민에게 주어져 있다면 지역사회에서는 대중이나 시민이 좀처럼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국가와 사회의 문제를 다뤄온 시민사회 영역이 지역사회라는 풀뿌리에 충분하게 정착하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적어도 지역의 변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고민하는 이들은 이 문제를 붙잡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지식(인)의 문제와 지역사회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것은 결국 마을 혹은 동네에서 지식 혹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대학 시간강사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시간강사 문제는 그동안 한국 지식사회에 축적된 문제의 결과이다. 지식(인) 생산과 관련하여 1980년대 이후 다양한 학술 운동과 대안연구공동체, 민간연구소 등 대안적 지식 운동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그러한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인 형태로만 존재한다. 수많은 지식 연구자들이 배출되었지만 실제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적절한 역할과 공간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한 쪽의 책임은 아니지만, 지역사회의 왜곡된 구조도 한몫했다. 지금까지 지역사회에서는 특정 단체나 개인만을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대표함으로써 호명해왔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에 관하여 좀 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이 창출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양한 정체성의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의 일상과 고민을 나누면서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펼쳐내고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지식 연구자의 참여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단 그러한 것이 가능하려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학습조직과 연구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학습조직은 지금까지 존재하는 생활문화동호회나 독서동아리 등 취향 공동체와는 다른 동네지식(학습/연구) 커뮤니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관찰과 연구에서 출발한다. 일상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문화(예술), 여가, 교육, 복지, 경제, 나아가 정치의 영역 등 구체적인 지점까지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새로운 지식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현재 지역 기반의 학습 모델은 평생학습과 독서동아리, 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센터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것들은 주민들의 필요와 요구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시설과 행정 편의에 따른 구분에 맞춘 것에 불과하다. 새로운 지식공동체는 자신들의 삶을 나누고 새로운 대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삶을 구성하기 위한 요소들을 발굴하고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이상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사회에서 불필요한 잉여 인간이며, 나아가 더 이상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드러날 수 없는 그림자로 살아간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거나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 이처럼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맡겨두면 경제적 빈곤을 넘어 문화적 빈곤과 지식의 빈곤은 점차 강화될 것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소외와 배제는 더 심화될 것이다. 모든 것이 유용성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평가되는 사회에서 쓸모를 갖지 못한 이들의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일상 공간에서 각각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공동체로서의 삶을 구성하는 데 역할을 수행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동네 지식인’이라고 하자. 만약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여전히 좌절하고 있는 지식 연구자들이 있다면, 기꺼이 지역으로, 마을로, 동네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동네 지식인’이 동네 도서관과 동네 카페에서 철학과 인문학, 경제학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구체적인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대안을 찾아간다면 지역사회에, 마을공동체에 어떤 모습이 펼쳐질 것인지 상상해보자.
지식 연구자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넘쳐나는데, 전통적 의미에서 일했던 대학과 연구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새로운 연구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곳이 바로 지역이자 동네이다. 도서관과 카페, 동네 책방, 복합 문화공간, 극장, 식당, 갤러리 등 일할 수 있는 곳은 차고 넘친다. 시간강사들이 ‘동네 지식인’이 되고, 지역의 다양한 공간들이 지식연구학습공간으로 활용된다면 어떨까? 그리고 정부와 광역단체, 자치단체와 공공도서관, 문화재단 등 공공기관에서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장을 확보해줘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존재가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식과 학습의 공동체에서 해야 할 일이고, ‘동네 지식인’은 그 공동체를 꾸리거나 돕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곧 리터러시(문자 해독력)를 향상시키고 공동체와 민주주의, 문화예술(교육)등 다양한 영역을 발달시킴으로써 일상 공간에서 ‘삶의 리터러시’를 확장하는 것이다.
사진 제공 _ 성북문화재단
- 권경우
- 대학원 시절 한국의 지식사회와 학문 후속세대에 대한 관심으로 [모색]이라는 무크지를 발행했으며,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을 바탕으로 문화비평과 문화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현재는 성북문화재단에서 지역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데 역할을 보태고 있다.
nomad7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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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문화재단에서 일하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앞에서도 유투브나 새로운 플랫폼을 언급하면서 지역에 천착해서 논리가 전개되는지 이해가 안됨. 서울에서 30분만 나가도 국내에서 가장 좋은 인프라와 지식인과 첨단 유행을 만날 수 있는데 누가 지역에 머무르려고 할까? 이런 방식의 접근으로는 지역에서 고민하는 것들은 이류만 양산할 뿐이다.
아무리 바깥 세상이 화려에도 결국 우리동네 우리집이 편한법, 글로벌 유튜브가 활개를 치더라도 결국 사이버 가상의 세상! 그냥 시청자들에겐 즐기고 웃음꺼리 세상이지요.
내가 실제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머무른 지역이라 봅니다.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공간, 그 지역이 안전하고 편안해야 되지 않을까요? 당신이 머무는 지역은 안녕한가요? 함께 고민해봐야 되고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지역의 환경,생활 여건은 우리의 행복한 삶 추구에 가장 기본이며 기초적인 환경이라 봅니다. 그래서 지역을 고민하는 이유이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한 계층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아때 집앞 골목에서 놀다가
초중고등항생은 교실과 운동장에서 놉니다.
대학생은 캠퍼스에서 놀고요.
직장인은 어디서 놀까요?
이곳 저곳을 다니며 놉니다.
그동안 속해왔던 공동체가 직장에서는 경험되지 않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힙한 감각에 심취하지만,
더이상 공동체는 없습니다.
오늘 아침 동네 길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얼굴에
어색하게 눈길을 돌립니다.
매일 그 어색함을 지웁니다.
지우는데 어색함은 왜 반복되는걸까요?
지역은 예외없이 발을 디딘 삶의 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