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4회 국제 티칭아티스트 컨퍼런스(ITAC4)가 열린 뉴욕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 관계자와 카네기홀의 ‘자장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2019년 3월, 교육진흥원을 통해 한국형 ‘자장가 프로젝트’를 기획 중인 예술가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비록 화상회의를 통한 만남이었지만, 어린아이를 둔 가족들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또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생하게 의견을 나눴다. 지금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티칭아티스트 그룹 중 하나인 한국 예술가들과 앞으로 계속 교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렌다. 올해 교육진흥원이 유아 문화예술교육에 초점을 맞춰 지원하고 있다니, 이 또한 좋은 인연인가 싶기도 하다. 자장가 프로젝트를 할 만한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다.
뉴욕 시내 한 병원의 작은 방에서 태어난 ‘자장가 프로젝트’는 이제 국제적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다. 2011년, 나는 카네기홀의 지원을 받아 브롱크스(Bronx)에 위치한 자코비 병원에서 작곡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워크숍은 12주에 걸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만성 HIV 감염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십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만나 곡을 만들었다. 먼저 참가자들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은지 논의하고,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썼다. 이렇게 쓰인 이야기는 가사가 되었고, 티칭아티스트이자 뮤지션들로 구성된 우리 그룹의 도움을 받아 십대들이 곡을 썼다. 노래가 완성된 후에는 병원에서 진행된 한낮의 콘서트에 공연을 올렸다. 이 콘서트는 워크숍에 참가한 아이들과 그들이 만든 노래를 진정으로 기리고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콘서트가 끝나자 병원 모성보건과에 근무 중인 사회복지사와 간호사가 우리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비슷한 작업을 십대 임산부들과 함께 진행할 수 있을지 우리에게 물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십대 임산부들은 종종 아기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노래를 만드는 것이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내 평생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작곡을 시작한 이래 나는 줄곧 자장가에 관해 공부하고 또 곡 만들기를 즐겼다. 음악을 맡았던 여러 편의 연극에도 자장가를 만들어 넣었고, 콘서트를 위해 만든 자장가도 여럿이었다. 친구들이 아기를 낳으면 자장가를 선물했는데, 특히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넣은 ‘맞춤형’ 자장가를 즐겨 만들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좋습니다”라고 답하며 이렇게 제안했다. “작곡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자장가로 하는 게 어떨까요?”
이것으로 병원 직원과 바로 합의를 이뤘고, 웨일음악원(Weill Music Institute)의 디렉터인 사라 존슨(Sarah Johnson)의 도움을 받아 자장가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병원 산부인과에 있는 작은 방에서 십대인 엄마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엄마들은 수줍음이 많았고 또 약간은 어리둥절해 보였다. 사전에 아무리 많은 설명을 해준들 참가자들이 스스로 자장가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준비시킬 수는 없었고, 이는 프로젝트 참여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주에 걸쳐 우리는 네 곡의 자장가를 만들어냈고, 곧 전문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십대 엄마들은 자신의 말과 곡조가 노래로 재탄생한 것을 듣고 감격했으며, 공연이 끝난 후에는 모두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어낸 특별한 경험, 성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우리의 첫 번째 자장가 협업이 이루어졌고, 지금껏 계속 이어오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자장가 프로젝트는 15개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각 지역에서는 자장가 창작이 관습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25개 이상의 파트너가 생겼으며, 이들은 각자 고유의 구조와 특성을 지키며 자신들만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매년 늦봄, 우리는 뉴욕에 모여 한 해 동안 만든 자장가 중 가장 기억에 남고 감동적인 곡을 연주하고,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시도하고 있는 유망한 실천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형 자장가 프로젝트가 가진 엄청난 기회가 있다. 우리는 카네기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특별한 형태의 실천 사례를 개발했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파트너들이 자신의 커뮤니티나 교육 목적에 맞게 카네기홀 작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정, 변경한 것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오스틴 클래식 기타 소사이어티(Austin Classic Guitar Society)의 경우, 프로그램을 일 년 이상으로 확장하여 엄마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자장가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는 카네기홀 자장가 프로젝트에는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들의 작업에서 배우는 점이 정말 많다. 알래스카주 이글리버에 위치한 하이랜드 마운틴 교도소(Hiland Mountain Correctional Facility)에서는 직원과 예술가들이 수감된 어머니들을 위해 아름다운 자장가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도 뉴욕에서 교정시설에 수감된 어머니들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알래스카 예술가들의 작업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다.
이 파트너들(뿐만 아니라 그밖에 더 많은 이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어떻게 하면 자장가를 통해 우리의 목적에도 부합하고 또 우리와 함께 작업하는 어린아이의 가정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과연, 한국형 자장가 프로젝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에서 어린아이를 둔 가정이 직면한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는데 자장가는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고, 또 교육진흥원과 같은 기관 및 단체들이 자장가 창작을 위해 혁신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지원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한 답은 없다. 모든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는, 정해진 해법은 없다. 리서치와 실험, 연습을 통해 한국형 자장가 작업에 맞는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일단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할지 논의가 시작되면 미래에 대한 예상과 상상도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 티칭아티스트의 저력을 가늠하건대, 교육진흥원이 가진 네트워크라면 이를 활용해 전국에서 자장가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날이 올 거라 희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경우는 현재 자장가 프로젝트를 전국 곳곳에서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는 “매개자”를 찾지 못한 실정이다. 이 일이 한국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 우리뿐만 아니라 자장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모든 파트너에게도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자장가 프로젝트가 전국적 프로그램으로 발전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꼭 그래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개별 프로젝트에 담긴 우수한 작업 역시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티칭아티스트 육성이나 국가적 차원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예술교육을 중시하는 점에서 이미 선도적이다. 2020년 제5회 국제 티칭아티스트 콘퍼런스 개최만 보아도 한국의 국제적 리더십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이 자장가 프로젝트에 어떻게 기여할지, 무척 기대된다.
  • 카네기홀 자장가 프로젝트 소개 영상 (한글자막)
토마스 캐버니스(Thomas Cabaniss)
토마스 캐버니스(Thomas Cabaniss)
작곡가이자 카네기홀 자장가 프로젝트 선임 티칭아티스트. 오페라, 연극, 무용, 영화 극작가로 활동했으며, 줄리어드 스쿨(The Juilliard School)과 카네기홀 웨일 뮤직 인스티튜트(Weill Music Institute at Carnegie Hall)의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뉴욕 필하모닉(New York Philharmonic)에서 교육감독,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Philadelphia Orchestra)의 음악 아니마퇴르(Music Animateur)를 역임했다. 카네기홀의 초기 자장가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다양한 카네기홀 신규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cabanisst@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