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아르떼 아카데미에서는 지역 유휴공간과 지역 자산을 매개하는 연수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도입해 진행했다. 또한, 지역 유휴공간을 문화예술교육 전문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정부의 정책 사업이 추진되면서, 지역 문화예술교육 공간 조성과 이에 따른 공간의 지속적인 운영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좌담에서는 지역의 장소성과 현장성을 매개로 한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세 명의 전문가와 함께 지역 현장 탐방형 연수 프로그램의 의의와 지역 중심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 등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 좌담 개요
- • 일 시 : 2018. 9. 21.(금) 오후 3시
- • 장 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회의실 R2
- • 참석자 : 소영식(스페이스모 건축사 사무소 소장), 윤현옥(aec비빗펌 대표), 임학순(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
현장에서 터득하는 ‘장소성’에 주목하는 이유
윤현옥 : 이번에 공공예술의 사회적인 가치와 의미에 관한 연수를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이하 ‘APAP’)를 중심으로 안양 지역에서 진행했다. APAP는 지자체가 지원하는 유일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성공한 사업이기는 하나 내부적으로는 안양 시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프로젝트에 관한 홍보나 교육도 절실하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 즉 시민교육은 늘 중요하다. APAP에는 한국의 긴 공공미술 역사 속에 다뤄진 모든 담론이 자리하고 있다. 초기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지역성’부터 형태가 거의 없는 커뮤니티 아트로 이어지면서 ‘지역민의 삶’이라는 맥락도 굉장히 중요하게 들어와 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연수를 제안받았을 때 안양이라는 지역의 ‘장소성’이 떠올랐다. APAP를 통해 공공미술의 역사와 흐름, 맥락, 변화, 문제 인식 등을 살피면서 안양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여러 현장을 포함해 효율적으로 1박 2일 답사 형태의 연수를 진행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 안양은 지역의 장소성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학습장이다.
소영식 : 이번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에서 답사한 곳은 전주 남부시장에 있는 고물자 골목인데, 여기에 전주시와 협의해 청년들과 3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운영할 계획을 짜고 있다. 그리고 서학동 예술마을의 경우, 현재 서른 명 정도의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에 모여들었는데 정부 지원이나 재원 하나 없이도 서학동을 매력적인 장소로 바꾸었다. 전주 한옥마을에 있던 작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때문에 자리를 옮겼다. 현재 전주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쇠퇴한 지역에 남아있는 하드웨어나 지역민과 연결이 끊긴 공간에 소프트웨어를 적용해서 공간을 새롭게 움직이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가로 경관 사업이 도시재생사업의 중심이다. 도시개발의 ‘엔진’이 늘 작동한다. 결국 이런 개발 방식이 지가를 올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반복하게 한다. 재생사업이 소프트웨어로 움직인다면 이런 상황을 저지할 수 있다고 본다.
윤현옥 : 고물자 골목에 매입하는 건물의 운영 조건은 어떠한가?
소영식 : 기존 위탁방식은 운영비를 포함한 위탁비를 받든가 임대를 골자로 하는 위탁 계약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이 조건을 새롭게 만들려고 한다. 공공의 성격 때문에 기존 위탁방식처럼 운영하면 오히려 공공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공공’이라는 이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을 해보고 싶다. 난제는 공공과의 관계, 공공의 영역이 지역의 어떤 카르텔(cartel)과 부딪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 조직과 연대해 ‘시민자산’을 형성해 신탁으로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물론 이건 결론이 아니라 현재 논의 지향점으로 가지고 가는 거다. 요지는 시민사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학순 : 시민자산이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윤현옥 : 이와 관련한 영국 사례가 유명한데 시민조직이 한 구역을 계속 사서 임대주택이나 원주민이 사는 환경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바텀업(bottom up) 방식이 작용하는 거다. 우리 정부나 기관은 정보를 빨리 수집해 정책으로 만들어서 시민을 이끄는 방식이라면, 영국이나 독일의 경우는 시민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뭔가를 한 다음에 정부를 설득해 이것을 하게끔 한다.
소영식 : 영국의 시민자산화는 정부가 도시재생사업을 지원하지 않는다. 폐허가 된 공간에 남은 시민들이 조례를 만들고 자기들이 매입할 공간에 투자해서 자본금 갖고 공간자산을 운용한다. 우리는 정부가 지원하면 부동산 개발 매커니즘이 먼저 움직인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재생사업이 시장에 나오면 이 매커니즘을 막아낼 수가 없다. 따라서 시민자산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보호하는 가림막이 필요하다. 자산 안전망이 필수적이다.
임학순 : 제가 진행한 연수 프로그램은 지역 자원을 엮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기획자 양성에 초점을 두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강의실에서 하는 건 한계가 분명해서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가령 기획을 하려면 지역사회를 손바닥 보듯 잘 알아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 특성을 알아야 소재와 콘셉트, 자원을 연결하고 파트너십을 맺을 수가 있다. 현장 탐방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도 들어야 했다. 즉, 현장의 장소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기획할 수가 있다. 또한, 현장을 대면하면 이 맥락을 공감각적으로,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번에 답사한 두 지역은 도시형과 농촌형으로 나눌 수 있다. 도시형은 연극 단체가 기존 찜질방을 공연장으로 바꿨는데 이곳을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어떻게 전환할지, 동네에 새로 만들어진 공간을 어떻게 하면 커뮤니티센터로 거점 역할을 하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농촌형은 지역 설화와 자연환경을 놓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하는 곳이었다. 연수생들은 그곳에서 현장 관계자와 만나 함께 논의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런 여건을 가진 곳에 어떤 기획이 가능할지 자기 장르에 대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진행하면서 아쉬움도 생겼다. 지역사회를 깊게 들여다보기엔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부족했고, 좀 더 다양한 분들이 모여 집단 컨설팅이 이뤄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에 처음 시도한 현장 탐방형 연수인데 공간이라는 자원과 소재를 나눠서 기획한다면 문화예술이 아닌 타 분야와도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의 유형들을 세분화하면 시리즈 기획도 가능할 것 같다.
‘지역 현장 탐방형’ 프로그램이 미치는 영향과 그 파급력
임학순 : 이번 연수에서 느낀 것은 참여자가 새로운 현장을 보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교류에 대한 욕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원래 연수 계획은 전남의 두 지역(곡성, 목포) 사례를 전남지역 참여자와 전국에서 온 참여자, 이렇게 두 그룹을 놓고 진행하려 했었는데 태풍이 오는 바람에 전국 참여자와의 연수는 취소되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와서 현장과 교류하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한편, 우리도 연수 진행을 위해 사전 탐방을 했지만, 지역을 총체적으로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그 지역에서 만나야 할 지역 예술가나 주민조직 관계자들까지 함께 만나 논의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프로그램 기획의 아이디어나 생각할 거리가 풍성해질 것 같다.
소영식 : 지역에서 현장 탐방형 연수를 한다면 자기 지역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을 선택하는 방식이었으면 한다. 각 지역의 장소를 정하고 일정 기간을 두고 선택하게 하면 이것을 실행하면서 지역사회와 참여자 간에 어떤 만남이나 교류, 나아가 일종의 연대가 이뤄질 수 있다.
임학순 : 사실 지역사회를 만나는 과정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이를테면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낯선 사람이 어느 지역에 들어가서 지역주민을 만나서 뭘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문화예술 기획자나 예술강사가 마을이나 지역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많았다. 막상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by-case)다. 미국에서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에 들어갈 때 활용하는 핸드북이 하나 있다. 예를 들면, 네가 먼저 얘기를 많이 하지 말고 많이 들어라, 진정성 있는 비공식적 소통을 해줘라, 어떤 일을 한번 하고 나면 작은 성과라도 공유해야 한다, 잘못한 것도 얘기해라, 말로만 하지 말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라고 하는 등등이다. 우리 현장에서도 지역사회와 어떻게 만나느냐가 큰 숙제라고 본다. 지역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나 기득권 사이에 문화예술교육이 들어가야 하는데 각각을 연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는 게 쉽지 않아 많은 기획자가 답답해하는 실정이다.
윤현옥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이 낯선 곳에 가서 기획자, 실무자 등 지역 인력들과 협업해서 일한다는 게 구조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또한, 굳이 교육진흥원이 움직여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지역 단위에서 지역 사람들이 자원을 잘 연결하면서 직접 기획해서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지역에는 그런 자원이 분명히 있고, 능력자도 있을 것이다. 지역분권 측면에서 봐도 협업 구조가 지역 중심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도 실패의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다.
임학순 : 어렵더라도 연수도 바텀업 방식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마을이나 지역사회 전문가와 중간 플랫폼을 만들거나 기획자가 지역사회 전문가, 이해관계자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등 연수에서도 다른 방식의 접근 모델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역분권의 흐름 속에서 가야 할 길
소영식 : 지역 기획자가 지역 활동가를 위한 교육을 하면 매력적일 것 같다. 나름대로 본인 지역의 내용은 서로 너무 잘 안다. 이런 분들에게 연수가 매력적인 점이 무엇일지 생각해봤다. 바로 지역 간 교류이다. 터미널 역할, 플랫폼이 필요하다. 연수를 통해 영감을 얻을지, 교류를 할지, 자기 실무에 관한 보완을 할지, 수요층의 필요성을 분명히 확인하고 그것을 중앙 또는 지역 단위로 할 것인지도 생각했으면 한다.
그런데 지역분권의 논리에서 교육진흥원이 가지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권한을 내려놓으면서 지역과 균형감 있게 나아가면서 문화예술교육 전반에 관한 논제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연수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역분권의 논리에서 교육진흥원이 가지고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권한을 내려놓으면서 지역과 균형감 있게 나아가면서 문화예술교육 전반에 관한 논제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연수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임학순 : 한편, 해당 지역의 현장 사례를 제공해준 단체들의 상황을 보면, 이들이 그간 사업에만 집중하다 보니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고 이것이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연수에서 자기 사례를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생기면서 스스로 연구도 하고, 찾아온 사람들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기 사례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현장의 단체가 또 하나의 문화예술교육 연수 거점이 되면 좋겠다. 단체 스스로가 연수를 준비하는 거다. 이때 교육진흥원 측에서 연구비나 연수 콘텐츠 개발비 등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윤현옥 : 그렇다. 지역 중심의 연수 준비과정에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필요하다. 교육진흥원에서 연수를 주관하더라도 지역에서 사전준비를 한다거나 워크숍을 하는 데 준비예산을 쓰면 지역의 중간 역할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지역과 연결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이 중간 단계를 연결하는 지역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소영식 : 공감한다. 단체들이 지원사업의 패턴에 길들어져 기획하고 실행하고 정산하면서 자신의 궤적에 관한 연구는 잘 안 한다. 할 시간도 없다. 연수 프로그램과 이런 방식으로 접목될 필요가 있다. 사실 교육진흥원 설립 초반에는 민간에서 벌어진 많은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사례가 이곳을 통해 알려졌다. 오늘날에도 교육진흥원이 터미널처럼 교류를 매개하고 경계를 넘어 움직이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윤현옥 : 이 지역에 이러한 자원이 있다는 제안을 받은 후 발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예산을 지원하고 운영도 맡기면 좋겠다. 현장의 자원과 인력들이 파트너쉽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플랫폼에 지원을 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지역자원, 인력,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슈에 따른 연구를 하고 운영하도록 하는 유연한 이동형 연구플랫폼으로 자문이나 컨설팅은 스스로 받을 수 있게 말이다. 단체든 개인이든 상관없이 이것을 제안할 수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 아니면 몇 개 단체가 팀을 꾸려 제안할 수도 있다. 요지는 지역에서 스스로 어느 정도 완성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전국의 예술강사, 기획자 등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하는 것이다.
소영식 : 연수 프로그램이 그렇게 운영되면 민간 사례도 많이 알려질 것이고 지역에도 기회가 될 것 같다.
임학순 :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이나 참여자의 주체성, 주제 다양성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다음 단계에서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소영식 : 이렇게 지역 간에 교류하게 되면 연수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의 기획 권한은 단체에 있으니 장소별, 대상별에 맞게 토크콘서트 또는 미션형 워크숍 등이 될 수도 있다.
사례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접근법 찾기
임학순 : 연수에서 진행자이자 교육강사로 참여했는데 참여자와 지역을 엮어주되 중간 논의를 할 때 큰 맥락에서 논점을 짚으면서 조정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이었다. 이 역할에 대해서도 여러 연계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고 본다.
윤현옥 : 저도 기획 과정에서 협의하다 보니 실제 코디네이터와 같은 중간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장교육이 대부분 얼마나 잘했고 성공했는지를 중점으로 다뤘다면 이번 연수에서는 APAP에 중간매개자로 참여한 코디네이터로부터 대형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넘어야할 많은 어려움과 행정절차, 거친 민원, 시민들의 공감 얻기 등과 같은 실제 이야기를 듣고, 시민, 예술가, 행정인력을 만나 실제 경험담과 뒷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관점으로 명과 암을 바라보도록 구성해 보았다. 공공미술을 단순하게 이해하기에 십상인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다양한 측면으로 살피는 게 필요하다. 겉핥기로 우수사례만을 보면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관점이나 기회는 안 생긴다.
소영식 : 장소적 특성이나 조건들이 다른데 어느 곳이나 다 벽화를 그린다. 사례 중심으로 얘기하다 보니 그러한 배경이나 맥락에 관한 사리판단을 할 수 없는 거다.
윤현옥 :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은 계몽이 아니라 담론이다. 즉, 담론이 일어나는 게 교육인 거다. ‘교육’이 들어가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과 사건이 충돌해 담론이 만들어지고 성찰하는 게 교육의 핵심이다.
임학순 : 현재 대부분의 문화예술교육은 프로그램형이다. 단체가 일정 기간에 일정 장소에 머물며 프로그램에 집중해 진행하다 보니 지역의 다양한 주체와 시민과 접촉할 수 있는 지대가 없다. 서로 축적도 안 되고, 교류도 안 된다. 그래서 프로그램형에서 리좀(Rhizome)형으로 전환할 때라고 본다. 그런 노력이 조금씩 보인다. 또 그래야만 기획자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주체의 다양성, 기반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소영식 : 지원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역에서 10년 동안 일을 잘한 단체가 있으면 그곳이 지역 거점화가 되어 더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할 수 있게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지역센터를 만들어 한 지역에 또 다른 거점을 만든다는 식의 맥락은 오히려 혼란스럽다. 어쨌든 교육진흥원이 지역 문화예술 지형을 놓고 이런 프레임을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지역 단위 사업을 지역센터로 이관한다면, 지역센터와 단체가 각각 어떤 권한과 역량을 가지게 할 것이냐를 생각해야 한다.
윤현옥 : 개인적으로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공공미술과 커뮤니티 아트가 문화예술교육과 상당히 겹쳐있기 때문에 이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6년 교육진흥원 사업을 마치고 보고서를 쓸 때 랩(LAB)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었다. 전에 기관 조사차 독일을 방문했는데 페츠베를린(Fezkindermuseum)이란 곳의 어린이박물관 기획팀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종류의 가족형태를 다양한 관점에서 구성한 기획이 흥미로워 과정을 물어보았는데 기획하는 사람만 기관에 소속되어 있고, 주제별로 여러 전문가와 기획회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기획에서 예산 집행까지 알아서 쓰도록 유연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교육진흥원에도 앞으로 이런 식의 랩과 플랫폼 운영이 절실할 텐데, 아무리 지역분권이라 해도 교육진흥원이 플랫폼 구축 영역에서 만큼은 면밀한 주도성을 가져야 한다.
소영식 : 플랫폼을 구축하면 계속 선순환하는 구조로 갈 수 있다.
윤현옥 : 그렇다. 고정형이 아니라 한시적이며 유동적이기 때문에 제안하는 사람에 따라 계속 바뀔 수 있다.
임학순 : 랩이 절실한 곳은 현장이다.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주제가 있기에 사람의 관심사에 따라 일정 기간 모이고 풀리는 랩인 동시에 협업의 플랫폼이면 좋겠다. 현장에서도 이에 대한 요구가 크다.
예고된 변화의 흐름을 짚다
소영식 : 노파심일 수 있겠지만, 랩을 운영할 때 기획자가 자발적인 실험을 하는 구조로 가야 하는데, 이것이 마치 하나의 교육연수나 커리큘럼처럼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현장의 실행자들이 반드시 함께 연구하고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보통 이런 내용을 실행계획으로 구조화할 때는 관리구조로 만든다. 랩은 플랫폼이어야 한다. 명확한 연구목표(주체) 하에 자발적인 실험도 할 수 있으며, 연구비에는 유동성을 부여하고, 공간은 공유되어한다. 검열받지 않고, 그것을 공유하고, 전시하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해나가야 한다.
임학순 : 아까 말한 오픈 콜은 상시로 시도할 수 있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현장에서는 이런 방식을 원한다.
윤현옥 : 앞으로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는 다음 단계의 담론을 찾아내서 소구하는 게 필요하다.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즉 4차 산업사회 이후 패러다임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소영식 : 강연자 중심의 교육보다는 현장 중심의 교육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현장에 깊게 들어가면 그 조건이 모두 각기 다르다. 우리가 모여서 각각의 이야기를 할 때, 그 조건이 어떻게 다르냐를 알게 된다.
윤현옥 : 지자체 컨설팅을 가보면 좋은 사례, 좋은 아이디어, 벤치마킹할 사례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카피(copy)가 만연한데 여기에 저작권이라는 개념이나 원안자나 기획자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존중하는 게 하나도 없다.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된다는 식이다. 사례 중심 교육을 하면 그 아래 다양한 복합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고 아름답게 포장해서 붙여놓고는 “왜 이렇게 안 되냐”고 한다.
임학순 : 공감한다. 지금까지 사례 공유나 사례 논의를 안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례 공유 워크숍을 하면 ‘나는 뭘 했다’만 있다. 심층적인 논의가 없다. 기존의 사례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깊이가 형성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이번 현장 탐방형의 연수 방식에 나름대로 의미를 둔다.
소영식 : 실패 사례도 보여주면 좋겠다. 연수 안에 교육진흥원의 실패한 정책을 다루는 담론도 필요하다. 이걸 바꾸면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
임학순 :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 얘기하는 게 교육진흥원의 기능과 인력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교육진흥원의 구조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업 관리 인력이 아니라 기획자나 연구자로 바뀌어 지역에 랩을 두고 여기는 중간을 연결하고, 현장에서 뭐가 부족한지 살피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지역 특성에 맞는 모델로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이 랩 모델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렇게 지역분권의 흐름과 현장의 다양한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현재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체계를 개편하는 것도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소영식
비비정 마을, 남원공설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 등 현장에서 공간과 문화기획자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현재 일상문화연구소 스페이스 모 소장과 전주시 마을조사단 ‘동심찾기’ 총괄 PM을 맡고 있다. 2018년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지역 문화에 공간 더하기>에 참여했다.
윤현옥
홍익대학교, 대학원과 독일 슈트가르트 주립조형예술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홍익대, 추계예대, 청주대, 충북대, 공주교대, 수리고등학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에서 강의한 바 있다. 현재는 공공예술, 문화예술교육전문단체 aec비빗펌의 대표이며, 생활문화, 공동체예술, 상권재생 등에 관한 연구와 컨설팅을 하며 꿈을 실현할 현장을 기다리고 있다. 2018년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지역사회, 기술, 교육 환경의 변화와 문화예술교육> <지역 속 공공예술, 공동체 예술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임학순
현재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비즈니스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18년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예술과 주민, 마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관계맺기>에 참여했다.
- [원문 링크]
- 2018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성과자료집
사진 _ 장영주(디블리스코리아)
- 정리 _ 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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