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를 고려하지 않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에 수요자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르떼 365]는 단지 ‘고객’의 소리를 듣고 반영하기 위함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성장을 이끌기 위한 질문 중 하나로 ‘수요자’를 짚어보고자 한다. 수요자를 중심에 둔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전문가 좌담뿐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한 참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자리도 마련했다.
[기획 포커스]수요자 중심 | ① 전문가 좌담청소년 좌담청년 좌담 유아 학부모 좌담
아이가 그림을 곧잘 그린다. 부모 눈에는 제법 소질 있어 보인다. 미술학원을 보내야 하나, 생각하다 보니 미술대학 진학에까지 고민이 이르렀다. 아이의 숨은 재능을 부모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큰 나무가 될 싹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런 관심을 어떤 방식으로 확장시켜야 하고 어떻게 잠재된 가능성을 발굴해 내야 할 것인가. AI(인공지능)가 상용화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수라는데, 인생이 그렇듯 초보 엄마 초보 아빠는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이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김소리, 권기원, 노수진, 조상인
자기소개를 해 달라.
김소리 : 극단 북새통 문화예술교육팀장이다. 10살 된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시기에 맞춰 강원도 홍천으로 귀촌했다. 둘째는 6살이고, 지난해 4월에 태어나 2살인 셋째는 마을에서 키워주는 셈이기도 하다.
권기원 : 서울발레시어터에서 근무하던 중 아이가 태어나서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육아를 맡아 현재 7살 아들을 키우는 게 주업인 전업주부이다. 어린이집 보내면서부터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공연기획을 예술교육으로 옮겨 동네에서 놀이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공급자 겸 수요자이다. 문화기획사 아트앤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노수진 : 부평구문화재단 기획조정팀에 근무하고 있다. 5살 아들을 둔 100% 수요자로 평일에는 회사 다니며 독박 육아하고 남편과는 주말부부인 상황이다. 평소 문화예술 분야를 좋아해서 문화재단 일을 하고 있음에도 아이가 경험하는 문화예술교육은 내가 즐기는 한도 내에서 이뤄지는 듯하다.
유아에게 문화예술교육이란 무엇일까?
김소리 : 우선 ‘문화예술’이라고 인식하고 접근하는 그 경계가 무척 한정적이다. 아이들이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학교에서 배우는 음악·미술도 마찬가지지만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다. 그런 학원도 문화예술교육의 하나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학원 보낸다고 생각하면 별것 없다 여겨진다. 홍천에서 뜻 맞는 동네 분들과 마을 교육공동체를 만들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하나둘씩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학원도 아니고 거창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아니지만 아이들이 할 기회를 만든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를 할 기회, 놀이 문화의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권기원 : 내 아이의 가장 충실한 놀이 친구는 ‘아빠’인 상황에서 유아이기에 예술교육이라기보다는 놀이가 더 강조돼 있다. 지난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보던 아이가 우연찮게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야구를 하고 싶어 해 날씨 좋을 때는 하루 몇 시간씩 야구를 했고, 야구에 몰입하던 아이가 한글을 배우려는 욕구가 생겼고 야구로 인해 연산을 하게 됐다. 내가 깨우친 핵심은 ‘아이의 호기심이 어디로 가느냐’였다. 아이의 호기심의 근본을 알고 그 호기심을 실마리로 풀어주는 게 문화예술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수진 : 아이가 7개월 되던 때부터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어 어린이집에서 하는 문화예술교육이 거의 전부다. 체육교육이나 오르프 음악 활동, 미술 등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좋아할 뿐 아니라 중요하다는 점도 알게 됐다. 어린이집에서 활동 교구를 집으로 보내주는데 아이와 함께 체험해 본 후로 아이가 어떤 분야에 관심 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를 알게 됐다. 엄마 입장에서 창의력 계발보다도 같이 놀아주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기도 했다. 주말에 개별적으로 경험해 본 고비용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만족도가 결코 높은 것만은 아니기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지에서 이뤄지는 문화예술 교육이 중요하다고 실질적으로 생각한 계기이기도 했다.
권기원, 노수진, 김소리
유아기에 좋은 문화예술교육을 받는 게 왜 어려운 걸까?
김소리 :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프로그램은 가격 기준이 있기 때문에 질 좋고 비싼 교육 프로그램은 불가능하다. 원장 선생님 혹은 선생님이 문화예술교육을 받았고 그 의미에 비중을 두는 경우는 극소수이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 기관의 문화예술교육은 그저 시스템 일부가 되고 만다. 아이가 중심이고, 아이가 출발 지점인데 수요자 입장에서 본 문화예술교육의 한계는 프로그램화되고 프로그램 중심이라는 점이다.
권기원 : 그렇다. 이른바 ‘도매금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어떤 작품을 노출할 것인지가 충분히 고려되어 있지 않아 안 좋거나 위험할 수 있다. 주입식이고 수월성 위주로 운영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지점에 대한 철학과 방식을 바꿀 방법이 없다면 탈출, 즉 개별적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동육아, 자연육아 등의 대안적인 방식은 부모가 맡아야 할 역할이 너무 크고 어린이집에 맡겨 놓으면 ‘공산품적 상황’에 놓이는 게 문제다.
수요자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문화예술교육이 제공되기를 바라는가?
김소리 : 세 아이가 다 다르다. 우선 첫째만 보더라도 더 어렸을 적에는 노래와 춤을 잘했는데 커갈수록 미술에 관심을 보이는 식으로 변화한다. 엄마들은 아이가 조금만 뭔가를 보여줘도 ‘우리 아이가 소질 있나’ 생각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는데 실제로는 관심과 재능 분야라는 것이 계속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예술적 장르가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에 도달했다. 스스로 “꿈이 많다”고 하는 아이를 위해 오히려 교육 프로그램보다도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지지하고 조력하고 함께 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와 함께 ‘즉흥 춤 페스티벌’에 참여 해 본 후, 부모로서 조금 더 욕심을 내보고 싶은 것의 윤곽이 잡혔다. 아이들과 어른,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함께 하는 즉흥춤 워크숍이 5회가량 진행됐는데 큰아이는 무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반면 둘째는 훨씬 자유롭게 즉흥 상황을 받아들였다. ‘서까래 마림바’처럼 주변에 있는 것을 갖고 즉흥 연주를 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삶과 주변 환경에 기반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다. 마치 시골에 대한 로망으로 귀촌을 택한 후 ‘밤에 별 보기’ 같은 별것 아닌 일상이 문화예술적으로 우리 가족을 확장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권기원 : (우리 동네) 성북구는 차별화된 구 행정의 일환으로 ‘아이들 친화도시’를 지향하고 부모들 대상으로 놀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일종의 놀이환경 조사를 겸해 참여해 봤다. 활동용 키트를 만들었고 어린이 교육 전문 미술관(헬로우뮤지움) 같은 환경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게 한 것이었으나 솔직히 대치동 학원처럼 느껴졌다. 지역 내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모색한다면 공연예술센터가 예술교육센터로 더 확장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침 우리 동네는 북서울예술교육센터가 2021년 개관할 예정이다. 물론 예술교육센터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문화예술센터가 작가 중심, 이벤트 위주였던 것에서 벗어나 지역 내 필요한 형태로 존재한다면 적극적으로 찾아가겠다. 공연장 중심의 환경이 아닌 예술교육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 좋을 것 같다.
노수진 : 다행히도 실제 그런 움직임이 있다. 극장이라는 하드웨어가 지역과 만나 커뮤니티 아트를 전개하기도 한다. 그런 활동을 위한, 더 전문화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에 동의하고 그걸 받쳐줄 수 있는 구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지역 백화점과 문화센터는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지만 그곳의 프로그램을 모두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화예술교육은 아이가 하나의 사람으로 커가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일례로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많이 들려줘서인지 말이 좀 더 빠르고 적극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더라. 문화 예술교육을 통해 창의력 증진 같은 고차원적인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지금의 성장 과정과 범위 안에서 자기표현능력이 향상되었으면, 조금 더 나아간다면 주변에서 쉽게 보이는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아기의 문화예술교육,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김소리 : 학교 문화예술교육이나 사회 문화예술교육은 있으나 유아 문화예술교육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 학교에 들어간 후라면 제도적 틀에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아기는 감각이 열리는, 꽃과 같은 시기다. 유아는 최고의 예술가이며 최고의 예술 감상자이다. 아이들이 별도로 훈련을 하든 하지 않든 중요한 시기임에도 유아에 관련된 문화예술교육은 제도적으로 마련된 것이 부족하고, 수요자에게도 정보가 없다. 사실상 문화예술교육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러다 보니 잣대도 없고 프로그램 양도 부족하고 질도 떨어진다.
권기원 : 내가 41살에 (직장을 그만둘 정도로) 새로운 호기심과 대상을 찾는 게 가능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문화예술기획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뿐 아니라 예비 부모를 위한 문화예술교육도 필요하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을 자연스럽게 해 주기 때문이다. 무용은 동작이 보여주는 메시지를 읽는 것이지만 아이의 동작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아이의 호기심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원천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문화예술교육의 시작이다.
김소리 : 커뮤니케이션과 학습 얘기를 하셨는데 유아기 때의 상상 놀이가 가장 뛰어나다. 그 순간이 빛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문화예술교육이다. 이미 그 아이들은 연극배우이며 화가이고 건축가이자 스포츠 선수이기에 그걸 인정하고 존중하고 북돋아 주는 기반이 요구된다. ‘엄마와 함께 그림책 몸으로 읽기’ 같은 것을 해보면 아이들은 몸이 열려있고 상상력 넘치는 대화를 펼쳐간다. 교육이 필요한 것은 엄마이고 아이들의 상상력과 감각을 지지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열린 귀가 필요하다.
아이가 소중한 만큼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다.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은 성취감을 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공감 능력을 통해 소통 능력으로 확대되며, 나아가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감각을 깨우고 생각을 키우는 유아기의 문화예술교육은 흡수력 좋은, 성장하기 좋은 토양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런 땅에서 자라난 새싹들이 튼튼한 나무로 자라고 울창한 숲을 이룰 테니 말이다.
사진_이재범(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조상인
조상인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같은 학교 대학원 미술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부터 서울경제신문 문화레저부에서 미술과 문화재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있으며 늦게 결혼해 낳은 두 아이가 4살, 6살인 터라 유아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다. 남편과 함께 그림책을 만드는 게 꿈이다.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