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재 도처에서 급진적인 사회·정치 성향이 대두되고 있는 위태로운 세상을 지켜보아야 하는 힘겨운 시대에 살고 있다. 1970년대 이래로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쏟아 부었던 노력이 이제는 요원해 보이는 가운데, 구세대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에 실망감과 좌절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칠레 산티에고 라운드 테이블(Santiago de Chile round table)1(1973) 문서를 보면 1970년대부터 박물관은 새로운 활동, 제안 및 태도를 추구하면서 사회적 상황에 견주어 박물관 자체의 역할과 직무에 대해 고심해야만 했다. 이 문서에서 박물관은 필요한 사회적 변혁에 동참하면서 자체 컬렉션, 공간, 전문 인력 및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 의미 있는 방향으로 사회를 교육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개인의 자율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과정은 “박물관을 사원에서 광장으로 변화시키자”라는 문구로 어느 정도 재개될 수 있다. 이는 ‘필수적 박물관(Integral Museum)’이라 명명된 새로운 개념에서 출발하여 경제적 불평등, 사회 개발, 생태학과 도시 개발학적 구상 및 교육의 책임을 문화를 통해 다룰 수 있다고 가정한다. 실로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박물관을 사원에서 광장으로”
정치적 사회적 개발 관점에서 그때와 매우 유사한 상황에 직면한 지금, 박물관은 위 문서에 언급된 기대와 비전을 충족하고 있을까? 나는 브라질의 박물관 종사자로서, 그리고 국제박물관협회(ICOM)의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위한 국제위원회(ICOM-CECA, The Committee for Education and Cultural Action of the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회장으로서 이 질문에 대답해 보고자 한다. 나는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면서 전 세계의 박물관들이 전시와 교육 분야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나는 휴즈 드 바린-보한(Hughes de Varine-Bohan)이 그의 저서 『박물관과 사회적 개발: 임계적 균형(Museums and social development: a critical balance)』2 을 통해 제시한 내용과 의견을 같이하는데, 에코 뮤지엄이 세계 곳곳에 등장하며 지역사회와 문화를 연계하고 있지만, 전통적 개념의 박물관 중 사회와 좀 더 연계되는 방향으로 그 구성을 변화시킨 곳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변화를 실행한 박물관은 주로 자체 교육 부서를 통해 그 변화를 이끌었다.
박물관이 자연스러운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명백하고 상식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전문 인력들의 특수성과 연구원, 관리위원 및 큐레이터 간의 복잡한 담론으로 인해 그들의 관심 사항(및 전시 가치)과 방문객들의 관심 사항 간에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주요 박물관의 월텍스트(wall text)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일반 관람객들이 월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사전, 미술사 강의, 과학 강의, 정치·경제·시사에 관한 광범위한 역사적 배경과 지식이 필요할 것이며, 이는 박물관과 일반 대중 간의 간격이 얼마나 크게 벌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1972년 출간된 문서에서 이미 박물관 전문 인력들은 좀 더 대중을 포용하는 쪽으로 박물관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변화를 크게 감지할 수 없다.
최근 식민주의, 가부장제도, 인종 차별 등 모든 종류의 차별과 같은 ‘역사적 해악’에 항거하며 자체 컬렉션을 리뷰하는 전시와 카탈로그를 진행하는 박물관들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환영할 만하지만, 박물관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경직된 조직 서열주의가 남아있다. 많은 박물관은 여전히 오브제(컬렉션, 컨셉 및 연구)와 연관된 전문 인력들로 상부 조직을 구성하고 있고 일반 대중과 소통하는 인력들을 조직의 가장 하단에 두고 있다. 박물관이 외부로부터 ‘비식민지화’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식민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일반 대중이나 타 박물관 전문 인력들과 동떨어진 연구원 및 큐레이터들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박물관이 사회와 실제로 연계되지 않는다면 박물관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이미지가 넘쳐나고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생산하는 소셜미디어가 끊이지 않으며 한 번의 클릭으로 언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21세기에 우리 사회는 비판적 사고 역량을 개발시킬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현시대에 문화와 교육은 단순히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다.
왜 박물관에서 교육이 필요한가
박물관 교육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은 대개 기관의 담론을 일반 대중에게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같은 역할은 박물관 교육의 역할 중 가장 사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소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석하는 것은 대중에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며 일반 대중은 어쩌면 정보 전달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박물관 교육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브라질의 전문가 그룹은 박물관 교육을 위한 국가 정책(National Policies for Museum Education, PNEM)을 개발했다. 이와 함께 후속 출판물을 통해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관련 용어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박물관 교육에 대한 우리의 역할에 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박물관 교육은 과학, 기억 및 문화적 유산을 인류의 생산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며 동시에 개인이 오브제(object), 지식 및 활동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이해와 관행을 생산하고 이를 긴밀히 연계하도록 돕는다. 박물관 교육은 또한 자체적 구조와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기획 단계에서 설정한 목표에 따라 박물관 외부의 현실과 연계된다. 박물관 교육 활동은 근본적으로 대화를 근간으로 하며, 박물관의 전통을 인정하고 평가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문화적 그룹의 구성과 정당성을 반영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물관 교육은 개인의 일반적 교육을 담당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 교육은 오브제나 컬렉션에 중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박물관의 자산과 전문 인력과 상호 작용하는 박물관 방문 경험을 통해 개인의 주제를 형성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방문자 계발’ 혹은 ‘관람객 교육’ 보다는 박물관 교육은 사회적 변혁의 관점을 바탕으로 개인의 풍부한 비판적 교육, 개인의 해방 및 사회적 의식 제고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3
만약 박물관이 사람과 사회로 관심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 기관은 미래가 없다. 상품과 소비에 집중하며 오브제와 이미지가 일상의 삶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사회에서 박물관은 미학적 개념에 대한 감상을 넘어 전통, 대화, 윤리, 관용 등에 대한 존경과 분석, 안목, 비판적 사고와 같은 능력과 지식을 함양시킬 의무가 있고, 이는 박물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론가 마크 오닐(Mark O’Neill)4 은 “포함과 배제의 과정은 자기 강화적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장애물을 허물고자 노력하지 않는 조직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중립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박물관은 이 같은 장애물을 적극적으로 허물고 비판적인 시민을 양성해야 할 의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어쩌면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일 것이다.
끝으로 어린이, 성인, 장애인, 노년층 및 기타 관람객들에게 더욱 풍부한 (예술) 경험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까? 무의미한 정보 제공 대신 사람들의 말에 집중하라. 박물관 종사자이자 교육자로서 우리는 정보 제공과 지식 함양이 동의어라는 오래된 믿음을 기반으로 정식으로 가르치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정보 제공과 지식 함양은 동의어가 아니다. 조지 하인(George Hein)5은 의미 있는 지식을 함양하기 위해서 구성주의 박물관은 학습자가 자신만의 지식을 구성할 수 있고 필요한 모든 지식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백한 사실 같아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박물관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폐쇄된 세계에 갇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박물관 종사자들은 학습은 곧 지식의 전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작품의 기법이나 정확한 작품의 제작 일자를 아는 것이 어떤 유의미한 관련성을 가질 수 있을까. 예술작품 앞에서 이 사람은 해당 오브제 혹은 이미지와 자신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연계되어 있는지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예술과 일상의 삶을 누구보다 잘 연결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교육자는 방문객이 더 깊이 있는 의미를 개발하고 개인과 집단을 연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물관은 예술, 역사, 고고학, 과학 등에 관한 지식 생산을 넘어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어떻게 모두에게 더 나은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즉, ‘세상에 존재함’에 대한 지식을 함양해야 한다.
[참고문헌]1. 칠레 산티아고 라운드 테이블 –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서 박물관의 역할, 라틴아메리카 박물관 소사이어티, 1973.
2. 브루노, 마리아 크리스티나 올리베이라, 네비스, 카티아 레지나 펠리피니(공저). 사회 변화와 발전의 동인으로서의 박물관: 박물관학적 제안과 생각들. 상 크리스토바오: Xingó의 고고학 박물관(São Cristóvão: Museum of Archeology of Xingó), 2008. pp.11-20.
3. https://www.museus.gov.br/wp-content/uploads/2018/06/Caderno-da-PNEM.pdf
4. O’NEILL, Mark, “The good enough visitor.” In: Sandell, Richard (ed.) Museums, society, inequality, London & NY: Routledge, 2002.
5. HEIN, George. The constructivist Museum. In: Hein, George. Learning in the Museum. London: Routledge, 1998.
밀라 치오바토(Mila Milene Chiovatto)
밀라 치오바토(Mila Milene Chiovatto)
국제박물관협회(ICOM)의 교육 및 문화 활동을 위한 국제위원회(ICOM-CECA) 회장이자 2002년부터 브라질 상파울로 미나코테카미술관에서 교육 분야 디렉터를 맡고 있다. 브라질 마켄지대학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으며, 상파울루대학 커뮤니케이션아트스쿨에서 예술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아르만도 알바스 펜티아토재단(FAAP) 커뮤니케이션스쿨에서 미술사 교수로 근무했으며,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예술교육연구소(Instituto Arte na Escola)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미국박물관협회 회원이며, 예술교육 자문, 교육학 관련 저서를 집필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국립민속박물관이 협력하여 진행한 ‘2018 제 50차 해외전문가 초청워크숍’에서 ‘박물관과 예술, 새로운 지식과 능력을 위한 파트너’를 주제로 강연 및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