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편의시설을 넘어 상상을 자극하는 예술 공간으로

지역 유휴공간을 이용한 문화예술교육 공간 조성의 의의와 방향

지역 유휴공간 – 지역을 위한 새로운 공간의 창조
대도시든지 소규모 농촌이든지 어느 지역이나 유휴공간 발생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 공간은 공공시설물일 수도 있고 민간의 공간일 수도 있다. 유휴공간은 지역주민의 이주나 도심 환경의 변화, 기관의 이전, 공간 기능 전환 등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다. 유휴공간의 범주는 기능이나 기관 이전에 의해 운영이 중지된 폐시설부터 운영은 되지만 사실상 이용자가 거의 없는 저이용 공간까지 다양하다. 각 지역에서는 유휴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자 노력하여 왔으며, 특히 공공정책 분야마다 지역 복지시설, 청소년시설, 주민 이용 편의시설 등 주로 지역사회 서비스를 위한 시설로 재활용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역 유휴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 공간 조성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를 통해 지역 중심 문화예술에 대한 새롭고 도전적이며 창의적인 접근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였고, 현재 매우 의미 있는 사례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지역 유휴공간은 단순한 주민 편의시설이 아니라 지역의 환경을 문화적으로 바꾸고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지역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변화의 기점이자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예술적 감성과 상상으로 디자인된 공간은 예술 활동 콘텐츠 및 시설 자체의 변화만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물리적‧문화적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도심의 재생사업이나 지역 공간개발 사업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문화예술교육은 예술 창작과 향유를 통합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는데, 이를 위한 전문적인 공간은 교육 활동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폐시설인 김포가압장을 활용한 서서울예술교육센터 등 지자체 차원의 조성 사례가 있지만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18~2022)」은 유휴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 전문 공간 조성을 국가의 정책 사업으로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이 계획을 근거로 문화예술교육 전용 및 전문 공간인 ‘(가칭)꿈꾸는 예술터’ 조성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특히 수요자(학습자) 지향의 적극적인 프로그램 운영이 필수 요소인 교육 활동 특성상 문화예술교육 전문 공간은 개인과 지역 전체의 문화예술 역량 개발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팔복예술공장
2018년 유휴공간 활용 문화예술교육센터 지원사업((가칭)꿈꾸는 예술터) 선정
[사진 출처] https://www.facebook.com/palbokart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서 유휴공간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유휴공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비움’과 ‘채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비어있다는 것은 공간 자체가 물리적으로 비어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내용과 방법도 비어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만들고 재창조하여 채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문화예술 활동의 주체로서 학습자의 주도성과 창조성이 실현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시설물이든지 야외 공간이든지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비어있는 유휴공간은 학습자의 창작활동을 통해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된다는 점에서 공간 자체가 문화예술교육의 콘텐츠가 된다.
아울러 유휴공간은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스토리를 제공하는 역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어떠한 공간이든지 그 나름대로의 시작과 배경이 있었고 기능과 용도가 있었으며 사람들은 공간을 사용하면서 역사성을 만들어 놓았다. 학습자들은 공간의 스토리 속에서 공간과 이야기하고 공간의 이야기를 새로운 상상과 표현을 통해 창작하는 창의적 경험을 하게 된다. 유휴공간은 공간 자체는 물리적으로는 쉬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이야기를 통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창작되고 재탄생되는 콘텐츠 자체가 된다.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공간 만들기
문화예술교육 공간은 ‘공간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만든 사람이 아니라 쓸 사람이 주인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해야 공간이 살아난다. 공간의 이용 주체들은 일시적으로 활동하는 외부 강사나 수강생으로서의 학습자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용 주체들은 공간의 주체로서 조성의 필요성과 방향을 정하는 첫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주어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살아있는 교육이 된다. 교수-학습 과정은 체계성 기반의 합리주의 모형이 전부가 아니며 소통과 맥락, 관계 속에서 스스로 학습 경험을 만들어가는 구성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며 문화예술교육은 이 관점이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용 주체로서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교육 활동의 시작이다.
문화예술교육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예술 기능 강좌용 강의실과 같이 교실 공간에 예술 수업이 얹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위한 교육공간을 만드는 것이며 그 공간 자체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 공간이 되어야 한다. 유휴공간을 이용한다는 것은 공간의 역사성과 환경을 바탕으로 하지만 공간 자체가 재창조, 재탄생한 문화공간이자 교육공간이어야 한다. 이는 전시와 공연, 강의실이 연계된 복합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이용자들에게 예술적 상상과 창작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 교육적 경험을 만들어가는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은 공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청소년 문화예술교육 공간이라면 이 점은 더욱 중요한데 어른들의 제한된 생각을 바탕으로 선험적으로 미리 상상하여 만들어 준 공간은 기대와 다르게 상상 자체를 제한하는 비창의적 공간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 공간으로 유휴공간을 활용할 경우 빈 공간을 채우는 과정도 교육 활동의 콘텐츠이지만 그 채움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비우고 다시 만들어내는 가변성과 개방성도 중요하다. 가변성이란 같은 공간이라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과 고정된 구조라도 늘 새로운 공간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간은 이용 주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는 공간 자체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항상 만들어지는 작품일 때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 공간의 기본성격과 관련하여 예술적 상상의 공간으로 이용자의 주도성을 통해 가변적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정 시설물이 아니라 ‘플랫폼’을 지향해야 한다.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한 환경을 제공한다. 콘텐츠 창작자들은 누구나 이 플랫폼을 이용할 수 있고, 사람들은 이 플랫폼에서 서로 만나고 소통하며 교류하고 콘텐츠를 공유한다.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은 유휴공간 활용 시 제기되는 공공성의 확보에도 중요하다. 정책, 예산 등 정부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 중심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현안과 상황을 공유하는 ‘공론의 장’을 형성하고 시민참여형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할 때, 지역 유휴공간 활용의 공공적 가치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김혁진
김혁진
모든학교 체험학습연구소 연구위원
(전)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문화원 예술감독
(전)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khjyou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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