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국악을 전공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글쎄~’ 내가 생각해도 의아할 때가 많다. 대학교 국악과에 입학하고 나서야 국악 전문 중등학교 과정이 있는 줄 알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동창들이 국립국악원이나 관현악단에 취직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국악 하는 사람으로서의 현실’을 눈치 챈 그야말로 ‘국악 문외’의 사람인 내가 정말 ‘어쩌다’ 국악을 하게 된 것일까.
우연한 ‘첫 만남’이 이끈 인연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처음 만난 국악은 ‘쑥대머리’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친구들과 문화원 같은 델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누군가 ‘쑥대머리 귀신형용~’ 이런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뭐가 뭔지 분별할 겨를 없이 단 한 번의 수업으로 끝난 짧은 만남이었다. 그 후 진학한 고등학교 음악 연습실 한쪽에서 가야금을 보았다. 어쩐지 눈길이 쏠렸다. 그러던 차에 마침 새로 부임해 온 음악선생님이 의욕적으로 가야금 반을 만들겠다며 ‘국악 해 본 사람’을 모집하셨다. 당시 합창반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뭘 해 봤냐고 물으시길래 ‘쑥대머리를 해봤다’고 당당히 대답했다. 이렇게 ‘쑥대머리’가 빌미가 되어 우연히 시작된 가야금은 곧 ‘내 전공 악기’가 되어 나를 국악의 길로 이끌었다. 비록 실기 능력이 뒤쳐져 대학을 졸업한 후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고 국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고 지금은 연주단의 예술감독을 겸하며 학계와 공연계를 오고가고 있지만, 한국인의 오랜 음악문화의 전통을 미래에 실어 나르는 나의 ‘국악’을 소중히 여기며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 노력하는 중이다.
수년전부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명예교사’로서 숙명가야금연주단과 함께 많은 분들을 만나고 있다. 가야금을 포함한 ‘국악’이 오늘날 일상에서 멀어진 탓에 해설을 곁들인 가야금 연주회가 어떤 분들에게는 국악과의 첫 만남 일수도 있고, 어쩌면 평생에 단 한번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관객들을 만날 때마나 이런 국악과의 ‘첫 만남’이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도 갖게 되었고, 자연히 그 방법론에 대해서도 궁리가 많다.
누구에게나, 손닿는 곳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눈 돌리면 보이는 곳에 ‘국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공연이든, 음악 수업이든, 악기박물관이든, 국악을 소개하는 책이든, 국악을 담아낸 앱(App) 프로그램이든 손을 뻗으면 만만하게 손에 잡히는 국악이 도처에 널려있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그것이 국악인지 뭔지 모르고 만나도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의 국악을 만났을 때 ‘내가 아는 것 같은데~’라고 인식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국악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서 멀어진 국악에 ‘일상성’을 불어넣자면 더 많은 ‘국악’이 곳곳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 스치듯 경험한 국악이 반드시 ‘미래의 국악’으로 꽃피어나기를 바래서만은 아니다. 국악의 전통에는 한국인의 음악정서가 응축되어 있다. 수천 년 동안 한국인들의 희로애락을 담아온 음악 전통의 경험은 우리의 말과 글, 정신과 역사를 체험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그래서 ‘국악’을 여러 예술장르의 하나로 한정하여 인식하거나, 서양음악, 혹은 대중음악의 상대적 개념으로만 받아들여질 때 많은 한계를 느낀다. 독립적인 한 예술 장르인 동시에 한국인의 예술 저변으로 자리 잡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문화예술교육 대상으로서의 ‘국악’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교육프로그램들이 설계되어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모든 문화예술교육의 기초 공통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국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발레리나도 나오고, 민요를 부를 줄 아는 재즈 뮤지션도 나오고, 전문 직종을 가진 아마추어 국악동호인 모임들도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늦여름, 뉴욕에서 온 이스라엘 출신 재즈 음악가의 공연을 보며 ‘우리 음악가들도 저랬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이 있다. 재즈 공연 중간 중간 이스라엘 전통 민요를 정말 ‘전통스럽게’ 불렀다. 청중들이 민요에 호응하자 급기야 후렴구를 따라하게 하더니 본인은 앞소리를 멋지게 메기며 언제 ‘재즈’를 불렀나 싶게 완전히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즈는 뉴요커처럼, 민요는 이스라엘 전문 음악가처럼, 마치 이중언어 하듯이 자연스러웠다. 그 음악가가 성장기에 경험한 예술교육에 대해 들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민요는 누구나 배우는 공통 교육의 성과였다. 미래의 전통을 만드는 예술교육은 이런 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뭐가 뭔지 모르고’ 국악을 시작해 40여년 남짓 국악을 열심히 공부하고, 국악을 세상에 퍼 나르는데 힘쓰고 있는 나의 요즘 생각이다.
- 송혜진
- 서울대 음악대학 국악과 및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 및 박사.
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이자 숙명가야금연주단 예술감독. 학계 및 공연계에서 우리 음악이 오늘과 미래의 삶에 의미 있는 유산으로 숨 쉴 수 있는 데 관심을 두고 국악의 외연을 넓히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메일 dals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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