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젊은 세대는 상당수가 청소년기에 케이팝(K-POP)으로 표현되는 아이돌 댄스 음악을 접하다가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인디 음악을 찾아듣는 수순을 보인다. 기본적으로 음악의 범위가 넓지 않다. 이에 반해 그들의 부모세대인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4년 출생자)는 애호가든 문외한이든, 청년기에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음악들 속에서 살았다. 우선 그들은 대중문화예술이 지금처럼 폭넓은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라디오와 TV를 통해 음악을 듣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음악만은 상당한 청취력을 지닌 세대 특성을 드러낸다.
남진, 나훈아, 패티김, 최희준을 통해 트로트, 스탠더드 발라드 음악을 아는 것은 당연했고 중고교 시절에는 김민기, 송창식, 양희은, 김정호, 이장희의 포크 음악을 끼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영미의 팝송에도 밝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 롤링스톤스 등등 서구 팝스타에 열광한 그들을 역사는 가요 아닌 ‘팝 세대’로 규정한다. 딥퍼플, 레드제플린과 같은 강렬한 헤비메탈 팬들도 많았다. 놀라움은 여기부터다. 영미 팝만이 아니라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나폴리 민요와 칸초네, 포르투갈의 파두, 그리고 라틴 음악을 방송하는 프로들이 있어서 이쪽의 음악들도 팝송만큼이나 정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중년은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자크 브렐의 ‘떠나지 마세요(Ne me quitte pas)’, 나나 무스쿠리의 ‘사랑의 기쁨(Plasir d’amour)’ 그리고 ‘오 나의 태양(O sole mio)’,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Barco negro)’와 같은 노래에 익숙하다. 이용복의 ‘마음은 집시’, 박인희의 ‘방랑자’와 같은 곡은 모두 칸초네를 번안한 노래들이다. 그렇다고 임방울 명창의 판소리, 이은관의 배뱅이굿, 설과 추석이면 어김없이 출연한 판소리꾼 조상현의 소리를 모르지 않는다. 조상현의 판소리와 레드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을 동시에 안다는 것은 경이롭다.
미8군을 통해 서구음악이 무차별로 유입된 결과일 테지만 이렇듯 놀라운 정도로 장르의 팔레트가 형성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 정도라고 한다. 이 점에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장르 다양성’의 정점을 찍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돌 댄스와 인디에 국한된 젊은이들과는 달라도 한참이 다르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의 음악을 두고 ‘그게 그것’이라고 약간은 무시하는 데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광대한 장르의 음악이 가슴 속에 내재, 저장된 중년들이 굴곡진 세파에 시달리면서 예술 감성이 퇴색했다는 점에 있다. 어마어마하게 음악을 접했지만 20대 이후 생활전선으로 나오면서 그 음악들과 인연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국가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문화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임방울의 명창과 핑크플로이드의 프로그레시브 록을, 배호와 김광석을, 비틀스와 조용필을 동시에 아는 문화적 풍성함이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고 후대로 계승되지도 못했다.
우리나라 중년의 그 넓고 깊은 음악 감성을 회복하게 되면 다양성 부재에 시달리는 현재 대중음악이 갖가지 스타일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중년 문화의 부활’을 꾀하는 여러 형태의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한 문화예술 명예교사 ‘추억이 울리는 음악다방’ 프로그램을 하면서 놀라웠던 사실은 여기 참여한 중년들이 엘피(LP)로 듣는 저 옛날의 음악에, 송창식의 ‘밤눈’이었든 비지스의 로빈 깁이 부른 ‘세이브드 바이 더 벨(saved by the bell)’이었든, 너무너무 반가워하고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그 다채로운 예술 감성이 깊이 숨어있을 뿐이지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절감했다. 1956년생인 한 참여자는 스스로도 놀랐는지 작은 목소리로 “내가 아직 살아있네!”를 연발했다. 서둘러 이 보석과도 같은 기성세대의 음악 감수성을 끄집어내야 한다. 단순히 추억과 향수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젊은이들의 문화에 기를 펴지 못하는 그들이 문화적 주체로 나서서 다시금 적극적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삶의 질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행복감을 증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평론을 하면서 40대 중반까지는 자녀들에게 용돈을 제대로 주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음악을 늘 곁에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중년이고 베이비붐 세대의 한복판에 위치한 나이다. 조금 우스꽝스럽다고 할 고백이지만 술자리를 마치고 취해서 방에 들어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엘피(LP) 앨범들을 보면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그 음반들이 고맙고 황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음반진열대에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아마 남이 보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원활해지리라는 것이다. 자신들을 대중문화세대라고 여기는 지금의 젊음은 음악을 전혀 모르는(혹은 모르는 것 같은) 부모 특히 아버지들에게 답답함을 호소한다. “아버지와 이야기가 안 통합니다!” 앞서 길게 상기했듯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예술 감성을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두었거나 아니면 그것을 표류, 방치하고 있어서이지 실제로 우리의 중년은 문화 감성의 강자들이다. 이제는 그것을 스스로 일깨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음악을, 저 옛날의 레전드들을 말하고 노래하는 아버지를 아들은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세대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중년은 예술적으로 깨어나야 한다.
-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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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문화예술 명예교사.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사, 내외경제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91년부터 음악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현재 ‘배철수 음악캠프’(MBC라디오), ‘조영남 최유라의 라디오시대’(MBC라디오) 등 8개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제5회 다산대상 문화예술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음악 웹진 [이즘](www.izm.co.kr)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팝, 경제를 노래하다』(2014) 『가수를 말하다』(2012) 등이 있다.
이메일 jjinmoo@izm.co.kr
아ㅠㅠ 기사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 때의 세대가 그렇게 다양하게 음악적인 경험을 했던 것도 전혀 몰랐는데 신기하고 재미있네요. 전 다양한 음악을 체험해보고 싶은데 그런 걸 부모님세대에서 해주시면 즐겁게 들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