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뮤지션 피터의 별난 이력서

재즈뮤지션 피터의 별난 이력서

글_고민정(아르떼 덴마크 통신원)

피터 쉐바드 씨의 소사(小史)

“하이 하이(hi hi: 전형적인 덴마크 인사)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피터입니다. 저를 소개하게 되어서 반가워요. 제 직업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우선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재즈 뮤지션입니다. 제가 참여한 콘서트와 음반은 다수 있지만, www.hot-dogs.dk 사이트에서 음악을 들어보실 수 있어요. 하지만 콘서트뿐만 아니라 저는 덴마크에 있는 각종 학교에 초청을 받아서 학생들과 함께 음악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별난 이력을 자랑하는 피터 쉐바드 씨


저는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했고 운 좋게도 졸업하자마자 지역 도서관에서 일을 했는데, 일을 못 구했더라면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고향인 에스붜그(Esjberg) 시의 도서관, 오르후스(Arhus, 주: 덴마크 제 2의 도시)의 코무운 도서관 등을 거쳐서 오르후스 코무운 도서관의 어린이 도서관에서 1979년에서 1986년까지 장기간 일을 했습니다.

1985년에 제게 직업상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지역 도서관은 소외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 추진하려 했습니다. 당시는 요즘처럼 쉽게 다양한 희귀 영화 필름 등을 도서관 밖으로 대여해서 보는 시대가 아니라서, 저는 어린이를 위한, 특히 성장기 갈등을 겪는 어린이들을 위해 재미있는 즐길 거리를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달리는 기차 한 칸, 한 칸을 재미있게 어린이들이 특별한 체험을 하게 만들면 어떨까 해서 스토리텔링 기차 등 별의별 재미있는 상상을 했습니다. 이런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도서관의 일상을 벗어나 뭔가를 새로 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이에 평소에 즐기던 음악 연주의 특기를 살려 노디스크 콘서버토리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으로 하여 음악교사 교육을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받았습니다.

1992년에 올보그 스포츠 스콜르(Aaalborg Sportsskole)에서 음악교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리듬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연주하면서 다양한 코러스를 가미한 실험적인 작업을 아이들과 해보았지요. <퍼포먼스>, <무대공포증>, <너는 최고> 등의 제목을 붙인 프로그램이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서 발표하기를 꺼리는 어린이, 학생들이 연주를 통해서 재미있는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현재는 프리랜서 뮤지션으로, 강사로, 어린이들을 위한 순회공연 스토리 텔러로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장르를 넘나들면서 제 영역을 연구하는 한편, 올보그 스포츠 스콜르에는 파트타임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을 통하여 가장 큰 경험은 무엇보다도 젊은 시절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고 아이들 입장에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고민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통, 지역 문화 디스크의 치료법을 찾아서

흥이 절로 나는 학교음악 프로젝트


피터 쉐바드 씨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교에서는 칭찬이 자자하다. 열정이 있고, 아이들과 함께 한 경험 때문에 아이들이 그를 잘 따른다는 것이다. 피터 쉐바드 씨처럼 학교 및 공공 단체와 연계하여 문화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덴마크에는 적지 않다. 개인 뿐 아니라 극단, 밴드, 음악, 미술 단체, 미디어 프로젝트 등 단체에서도 학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은 학교뿐만 아니라 박물관, 도서관, 심지어는 놀이공원이나 각종 페스티벌에서 활동을 한다. 올해 코펜하겐의 티볼리 놀이공원에서‘어린이들을 위한 재즈’로 인기를 끌었던 줸즈(Djanzz)밴드도 박물관, 학교 등에서 공연을 해왔다. 이들은 0-3세, 3-6세, 0-2학년, 3-6학년, 6-10학년, 가족콘서트 등 연령대별 세부 타겟을 정해서 레퍼토리를 준비하는 등 알차고 경쟁력 있는 전략으로 학교 등 각종 단체와 협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덴마크에서 예술가들과 학교와의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예술가들이 어떻게 학교와 연결되고, 예술가와 일선 교사들의 협력관계며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의 주체는 어느 부서이고, 이들의 비전은 어떨까. 이 점에 대해서 듣기 위해서 필자는 코펜하겐 암트 교육 센터에서 교육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에바 캄스카드(Eva Kambskard) 씨를 만났다. “협력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덴마크의 학교 체제와 행정 조직을 살펴보고, 학교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행정 조직은 현재 13개의 암트(Amt), 그리고 암트 산하에 271개의 코무운 (Kommune)으로 이루어져 있다(주: 이 행정조직은 이미 개편작업에 들어가 덴마크 전체가 5개의 코무운으로 축소될 예정). 암트마다 교육 센터가 설립되어 있는데, 이 교육 센터에서는 교사들을 위한 교수법, 정보 및 교육 자료, 자재를 연구하고 교사들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각종 도서들은 개가식으로 대여하고, 접근성이 좋아서 각 지역의 교사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방문한다고 한다. 특히 학교 단위로는 감히 구입할 수 없는 비싼 교육자재의 대여 프로그램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다. 이는 덴마크가 인구 5백만 명인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덴마크만의 특징이라고 캄스카드 씨는 전한다. “예를 들면 달걀이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가 닭이 되는 과정을 모형으로 만든 과학 시간용 세트가 인기폭발이랍니다.”

코펜하겐 암트 교육 컨설턴트인 캄스카드와 페다고어 옌슨

유기적인 연계로 풍성해지는 문화예술교육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비교할 수 있는 그룬드 스콜르(Grundskole, 일종의 보통 초등학교)는 지역자치 코무운에 속해서 코무운으로부터 운영보조금을 받는다. 음악, 미술, 스포츠 스콜르 등의 취미 학교도 코무운 소속이며, 코무운의 자치 결정에 교육부가 직접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등학교부터 대학교육은 교육부가 관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코무운이 교육부의 포괄적인 방침을 벗어나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즉 정치적으로 예속되어 있다. 일례로 덴마크에는 사립학교 설립이 자유화되어 이슬람학교, 독일 학교, 국제학교 등 특수사립학교가 존재하는데, 이들은 규제를 하지 않는 대신 보조금을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운영할 예산이 있는 경우, 문화예술인은 학교에 직접 지원을 하기도 하고, 또 자체 계획을 가지고 코무운의 문화분과로 지원을 할 수도 있다. 또 캄스카드씨가 일하고 있는 암트 교육 센터로 연락을 해도 된다. 캄스카드 씨는 덴마크 지역 사회 안의 학교 교사들에게 이 교육센터가 마치 사교의 장소이기도 해서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입소문이 나서 학교로 초청되기가 쉽다고 귀뜸한다. “대부분의 학교에 문화예술 특활담당 프로젝트 코디네이터가 있어서 어떻게 학교 수업과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연결시킬지, 어떤 예술인과 협력할지를 연구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학교의 교사들이 팀 프로젝트 식으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과목 간에 협력 교류가 아주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참신한 프로젝트를 들고 예술가가 협력을 하자하면 반가워합니다. 일선 선생님들과 단기 프로젝트로 들어오는 예술가들의 처우가 비슷하고 힘이 비슷하단 뜻입니다.”
물론 덴마크 교육이 꼭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언뜻 보면 넘쳐나는 창조력에 아이들은 풍요롭고 다양하게 미래를 꿈꿀 것 같지만, 모 신문 기사에 의하면 요즘 어린이들의 최고 선망 직업은 현재의 경기 호황, 저금리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부동산 중개사’가 대세다. 부모들 시각이 알게 모르게 반영되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고 교육부가 통일 지침을 강화해서 교육 내용을 통제하고 개혁한다는 정책을 최근에 발표하였다. “어느 시대나 역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약간 풀렸다 싶으면, 엄격하게 하자는 여론이 일고, 또 너무 엄격하게 억압시킨다 싶으면 그 반대로 자유롭게 하자는 여론이 생기고…”

줸즈 밴드의 박물관, 학교 공연


캄스카드 씨는 덴마크에 한국 입양아들이 많이 있는데, 이 아이들에게 모국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알려서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을 또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한 번 시도해 보라고 필자에게 권유하기도 했다. 순간 내 기억은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은 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미술관의 인근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애타고 뜻대로 잘 안되고 눈물만 머금었던 때를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현실을 모르고 뭘 해보려고 했던 것, 부실한 콘텐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일선 선생님과 다소 초라한 ‘외부 강사’ 간의 힘 관계, 학교와 미술관 사이에 잘 소통되지 않는 간극 등… 열거하다보면 제대로 되지 않은 점들이 드러나서 아직도 속이 상한다.
덴마크 사례가 꼭 정답이란 법도 없고 제도는 그 나라/지역의 상황과 문화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유연한 학교, 예술가 협력 사례들이 많이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러나 어쨌든, 덴마크에선 예술가 수당, 각종 다양한 프로젝트, 기업 파트너, 학교와의 교류 등 예술가들이 대체로 먹고 살만 하고 존경도 받으면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협조 주신 분들
www.hot-dogs.dkPeter Sø vad 씨
www.djanzz.dkDjanzz 밴드
www.ackbh.dkAmtscentret for Undervisning, Københavns Amt, Eva Kambskard 씨

고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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