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영삼(대신고 교사)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좋다, 그렇다 치자. 그러면 문화의 세기는 시간만 지나면 그냥 만들어 지는 것, 혹은 저절로 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면 문화의 세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삶을 바꾼다는 것이고 삶을 바꾼다는 것은 사회를 바꾼다는 것이니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바꾸거나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고 왜 바꾸어야 하고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문제의식, 철학, 내용, 방법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 준비되어야 할 것이 많다.
준비가 부족해서일까? 21세기 벽두에 힘차게 울렸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논의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아니 애초 상태로 원상복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까? 답답하다. 물론 모든 영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교육 영역에서만은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1. 현황
95년 이후 거의 10여년 만에 교육과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5년 내에 틀을 확정1)하고 2006년 교육 내용을 생산2)하고 2007년 검증을 거쳐 2008년부터 적용한다는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시되었다. 이번 개정은 주5일제 수업 실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부분적 변동만을 기대하는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정평가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전면적인 개편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개편에서 결정된 내용들은 2008년 부분 적용이 시작되어 적어도 2015년까지는 이어질 국가 교육의 기본 틀이 될 것이다. 아직 논의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문화예술교육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화예술교육을 현행 음악, 미술로 국한하더라도 진전된 논의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하물며 그동안 제기되었던 문화예술교육 관련 담론과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논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문화예술 교육 논의가 진전되고 있지 못한 몇 가지 이유들
학생, 청소년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근본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대부분의 학생,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입시위주 교육, 대학 서열체제, 학벌 사회가 문화예술교육을 짓누르고 있는 근본 모순임을 지적하는 문제제기가 부족했다. 이는 초창기 문화예술교육을 입시위주 교육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출했던 문제의식을 더욱 철저히 진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어떤 교육 담론도 우리 교육을 짓누르고 있는 근본 모순에 대한 과감한 도전 없이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 애초에 제기된 대로 문화예술교육 논의를 교육정상화 논의의 일환으로 전개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의 담론 논의가 더 심도 있고 광범위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이 전체적인 논의 열기를 식히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각 영역의 자리 확보를 위한 각개 약진에 매몰되었다.
근본 모순에 지배되는 학교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부분적으로 열린 제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영역별 경쟁이 이루어지면서, 문화예술교육 전반에 대한 청사진이나 기획 없이 자기 영역 확대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근본적으로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 병행 혹은 선행되지 않는 한 모든 시도가 일회성 혹은 이벤트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제도 교육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치열하게 논의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너무 성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하는 영역별 각개 약진이 이루어지면서 교육 현장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고민이 싹트게 하기 보다는 학교가 할 수 있는 선택에 하나를 더 보태는 정도에 머무른 것이 지금의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학생 청소년들과 호흡하지 못했다.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해서 제도권 교육학자, 관료, 교사들은 쉽게 관심을 갖지 못한다. 익숙함에 대한 관성과 함께 기존의 자기 존재 기반에 대한 일정한 부정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와 더 많이 대화하고 소통했어야 하나?
문화예술교육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라면 당연히 그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작동하는 시기를 살아갈 학생, 청소년들과 소통하고 대화했어야 했다. 담론의 추상성이 현실의 구체성을 획득하는 데 현실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과의 교감보다 더 적절한 방안이 있을 수 있을까?
학생 청소년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호흡한다는 것은 변화될 교육의 형태를 더욱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전시킨다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형태와 내용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 진전의 힘은 바로 학생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을 학생 청소년들의 입으로 말하게 하지 못한 것, 정말 뼈아픈 지점이다.
민ㆍ관 협력 체계 구축의 미숙함이 드러났다.
문화예술 교육 담론은 문화관광부로 대표되는 관과 시민사회단체들인 민이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가지고 있는 역량을 극대화시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도 쉽지 않은 쟁점이다. 그런데 관은 민의 역동성과 자발성을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함이 부족했고, 민은 관이 가진 행정 체계 운영의 일반적 관행에 대해 답답해했다. 문화예술 교육 담론을 주도해야할 양 주체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결속을 바탕으로 논의를 모아나가거나 확장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생하는 민ㆍ관 협력체계 구축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부 부처간 논의 수준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민ㆍ관뿐만 아니라 관ㆍ관 협력체계 역시 매우 미흡하다. 문화관광부의 소극적 의제 설정 자체도 문제지만 정부 부처간 협력 체계의 형식과 내용에서 그 발전 속도가 매우 더디다. 교육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과정 논의에서 문화관광부는 핵심적인 논의 주체로 참여해야한다. 개발 단계에서 심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내부자로 깊숙이 관여하는 전면적인 동반자 관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 문화예술 교육논의가 사회적 의제로 격상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3. 지혜를 모으자. 운동으로 풀어가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 상황에 대한 인식과 분석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제 인식이 정확하다면 해결 방안은 그 연장선상에 있게 마련이다. 이제 다시 문화예술교육 담론 논의를 시작하자. 국가차원의 교육과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본격적인 문화예술교육 담론 논의를 제기함으로써 사회적 쟁점을 만들고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민관 협력 체계를 굳건히 만들어내고 서로의 힘이 상승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 부처간 협력체계를 발전시켜 동반자적 관계에 이르게 하자. 그래서 국가 교육정책에 대한 문화관광부의 개입력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생 청소년들과 대화하고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자. 이것이 문화예술교육 패러다임 도입의 당위성을 넘어 실질적인 내용과 형식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제안된 내용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행정력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풀어가자는 것이다. 민의 역동성과 자발성, 생명력이 관의 안정적 행정 체계를 통해 발현될 수 있는 민관 협력의 운동을 통해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가자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입시위주 교육의 패러다임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이 운동의 동력이 될 것이다.
1)11월 29일 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개정 시안을 발표하는 공청회가 예정되어 있다.
2)영어, 수학 수준별 교재 개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