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적인, 너무나 위선적인: 김인규 교사 대법원 판결을 보면서

위선적인, 너무나 위선적인: 김인규 교사 대법원 판결을 보면서

글_전효관(전남대 교수,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소장)

최근 벌어진 ‘김인규 사태’는 문화예술교육의 미래를 참으로 암담하게 하는 일이다. 그간의 교사 김인규의 교육 활동은 국내 문화예술교육 논의의 발화점에서 그 근거가 되는 작업이기도 했다. 제도적인 어떤 장치와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그가 이미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해왔다는 것은 이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같은 선상에 있는 그의 작업이 “교사가 어떻게….”라는 식으로 논란거리가 된다는 것은 다시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김인규 교사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들의 소근거림을 들어주신 그분이 다른 세상 밖으로 내쳐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침 지난 9월 23일에는 ‘김인규 사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김인규 유죄판결 대응 토론회 – 김인규 교사 사태를 통해 본 문화적 권리와 교육 문화의 현실>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발제를 맡은 전효관 전남대 교수는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왜 교육적 텍스트인지, ‘청소년 보호’ 논리가 어떤 점에서 반인권적 요소를 품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진정 10대 문화에서 사회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를 제안했다. 웹진 땡땡은 독자들이 사태의 본질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바람처럼 김인규 교사가 계속 교사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관심과 동참을 구하기 위해, 전효관 교수의 발제문을 옮겨 싣는다. <편집부>

1. 다시 김인규 교사 문제를 접하면서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이 충분한 시간 동안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 관련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종료된 줄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발생했던 몇 년전 <전문가 소견서>라는 것을 썼고, 그 이야기를 다시 재론하게 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 사회가 정말 치열하게 사는 한 교사에 가하는 폭력이 이 정도에 이른다는 사실은 상상하기에도 매우 괴로운 일이다. 문화교육의 헌신적인 실천가로서, 자기 현장을 굳건히 지키는 미술교사로서, 나아가 예술 창작의 힘을 아이들과 나누는 예술가로서 김인규 교사가 이른바 ‘음란물’ 논쟁의 당사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절망을 느끼게 한다.

나는 이 토론회의 발제를 준비하면서 이전에 썼던 <전문가 소견서>를 약간 수정해서 발표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의 제도 권력은 한 인간의 예술적 표현물에 대해 결국은 수용할 수 없음을 다시 천명했고, 이 제도 권력을 문제삼지 않고서는 교육적, 예술적 실천이란 허용된 한계 내에서 연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심각하게 제기한다. 그래서 김인규 교사 공대위의 활동은 기꺼이 충돌을 감수하면서 예술적, 교육적 표현과 실천의 범위를 확장하는 활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문제의 소재는 무엇인가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제2조 제3호는 ‘청소년이용음란물’이라 함은 청소년이 등장하여 제2호 각목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청소년의 수치심을 야기시키는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 등을 노골적으로 노출하여 음란한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서, 필름・비디오・게임물 또는 컴퓨터 기타 통신매체를 통한 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동법 제 8조 제1항은 “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수입・수출한 자는 5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몇 개의 이미지가 “청소년의 수치심을 야기시키는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노골적으로 노출한 음란물”인가가 핵심적인 쟁점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논의된 것처럼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를 ‘음란물’이라고 보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홈페이지의 전체적인 맥락을 읽지 않고 ‘성기에 대한 묘사와 노출’을 문제삼는 문화적 감수성은 차치하더라도 김인규 교사에 대한 공격에서 드러나는 반교육적 시선들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교사라는 사회적 위치를 문제삼으면서 전개되는 “교육자가 어떻게 이런 그림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수 있나”라는 식의 논의는 교육자의 행위에 대한 편협하고 때에 따라서는 반교육적인 시선을 응축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에게 수치심을 야기시키는 표현물”이라는 식의 이해방식은 현실의 십대를 사회문화적 변동과정에서 추상하여 ‘무성적’ 존재로 이해하려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는 규제와 통제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청소년 문화에 대한 형사정책적 접근을 드러내는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어 법 자체의 유효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수치심’이라는 주관적 감정 상태에 근거하여 형사적 처벌을 시도하는 것은 작가의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이 법률에서 보호하려고 하는 청소년에 대한 관점에서도 청소년을 판단과 결정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반인권적인 논리를 내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 글에서는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 대한 법률적 적용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근거를 교육적 맥락과 청소년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검토한다.

3.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교육적인 텍스트이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를 보면 한 미술 교사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이미 현실의 청소년은 기성 세대의 이해를 뛰어넘어 있다. 아마도 미술 교과서의 틀에 박힌 논리로 미술 교육이 되지 않는 현실을 김인규 교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인규 교사에게 놓여진 선택은 ‘교육’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하지 않고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는 수많은 교사 중의 한 사람으로 남거나, 아니면 자신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주제로 텍스트를 만들어 교육하는 창의적인 교사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청소년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후자가 훌륭한 교육자가 선택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고,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바로 그런 점에서 자신의 선택에 충실한 텍스트인 것이다. 말하자면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임무와 사회적 위치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미술교사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곡해하지 않는 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아이들의 삶, 일상, 그리고 자신의 주변과 관계맺지 못하는 현행 교육에 대한 대안적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홈페이지를 통해 미술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상을 포함하는 세계와 소통하는 행위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특히 이 점은 그가 이미지마다 써놓은 간단한 글들에서 아주 잘 확인된다. 간단하면서도 영감을 주는 그의 글을 ‘포르노그래피’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것은 논의 수준 자체가 다른 것이다. 한 사람의 미술 작가이면서 교육자인 그는 자신이 일상 속에서 겪고 성찰해 온 주제들을 미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시도한다. 만일 교육자가 아이들과 소통하려는 의지 자체가 범법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교육 행위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이 텍스트 자체의 범법 여부에 대한 논란 자체가 우리 현실의 암담함을 드러내는 ‘상징’이며, 교육의 존재 근거를 근원적으로 부인하고 말살하는 명백한 상징적 폭력이다. 따라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사회적으로 비교육적인 텍스트라고 주장하는 것은 맥락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실제로는 매우 비교육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기’에 대한 노출 문제이다. 홈페이지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이 부분의 주제 의식은 ‘몸’에 대한 시선의 문제이다. 김인규 교사가 이 부분에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몸’에 대한 기존 관념들이고 이에 대한 미학적 비판 행위의 필요성이다. 김인규 교사를 고발하고 있는 논리에서 드러나는 것은 ‘몸’을 섹스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통념이다. 김인규 교사는 이 부분에서 명백하게 이러한 시선의 형성이 역사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관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이에 대해 비판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작 음란한 것은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이를 고발하고 탄핵하는 기존의 관념이다.

나는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그가 교육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몸’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몸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이려고 한다. 임신한 아내의 사진은 소비사회가 강제하는 미적 기준에 대해 반성할 것을 명백하게 한다.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미학적 차원을 떠나서도 ‘성’과 ‘육체’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가 교육 현장에서 마주하는 청소년의 성적 관념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이다. 사실 몸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기존의 사회적 관념은 몸을 성적 맥락에서 이해하면서 사회적 실천을 수행해가는 기존의 성의식과 성관념의 가정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이 가정은 ‘나체’란 성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공유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인규 교사의 작품은 이런 식의 사회적 관념에 대한 비판이면서 몸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소 극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미술 교육의 텍스트인 동시에 성교육의 텍스트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가 대체 어떤 점에서 청소년성보호를 위한 법률 취지에 위배되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4.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청소년 ‘보호’ 논리와도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청소년보호법 등의 법률 취지에 보면 모든 정보를 청소년들에게 유해한지 여부를 선별하여 여과할 수 있는 장치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필요성에 기대어 행해지는 문화에 대한 형사정책적 접근은 흔히 ‘건전한’ 청소년 문화 육성과 보호의 필요성을 전면적으로 제기한다. 하지만 이런 법률 취지는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음란성’, ‘유해성’ 등의 기준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법 취지와 관계가 있는 청소년 보호라는 논리는 여러 측면에서 진지한 검토를 요한다. 먼저 청소년 보호 논리의 현실적 타당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10대 문화가 몇 가지 사회적 소동을 일으켰던 사건 수준으로 과잉일반화되는 것은 사실도 아닐뿐더러 우리가 채택해야 할 입장으로서도 적절하지 않다. 미디어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특징지워지는 정보화와 전지구화의 과정은 10대 문화를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경계 내에 더 이상 존재하도록 하지 않는다. 청소년 관련 연구에 따르면, 10대 문화의 성장은 근대화/탈근대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 3세계의 특수성과 전통의 존재가 10대 문화의 성장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10대 문화의 자립화 경향성을 제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청소년을 가두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보고 경험하는 것들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어나가고 생산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청소년계에서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고 있다.

설사 청소년 보호 논리의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의 경우는 국가적, 법적 개입의 적정선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청소년 보호라는 사회적 명분과 문화 통제 사이에 발생하는 쟁점은 국가적, 법적 개입의 한계,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인권과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는 법철학의 문제일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적 질서 유지 기능의 적정성 문제이며, 그 방식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우회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쟁점을 넘어 입법 취지를 인정한다고 해도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음란물을 상업적 목적으로 생산하여 유통하는 사회적 역기능에 대한 처벌을 의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에 대한 사법적 논란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설사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의 사진이 특정인에게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하거나, 이에 대한 개인적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문제가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문제인가는 입법 취지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말하자면 김인규 교사의 문제는 교육 방식의 문제를 법률적으로 단죄하는 초법적인 맥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 특정한 교육방식에 대해, 혹은 개인의 표현 양식에 대해 찬반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 어떤 방식을 취한다고 해서 그 입장에 대해 법적 적용이 검토되는 것은 전체주의적 법 관념이 아니고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청소년 활동과 관계 있는 입장에서 이러한 논란 자체가 10대의 가능성을 사전적으로 봉쇄하는 문화적 검열과 통제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나타나는 ‘획일주의’ 앞에서 어떻게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의 사회적 가능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의무가 가능할지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5. 결론

나는 교육과 청소년 정책의 맥락에서 김인규 교사의 사건을 읽는다. 이 사건은 하나의 법률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좀더 의미를 확대하면 미래에 대한 사회적 설계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10대 문화의 일부에서 나타나는 ‘우려할 만한 징후’에서 형사정책적 접근을 택하느냐, 아니면 10대 문화에서 사회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나갈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교육적 측면에서 살핀 바와 같이 김인규 교사의 홈페이지는 ‘음란물’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김인규 교사에 대한 사법적 논란 자체가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생각한다. 김인규 교사의 작업들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정말 중요한 텍스트이며,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소모적 논란이 중지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지난 2001년 김인규 교사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자신과 임신한 부인의 나체 사진을 올리고, 이를 학교 홈페이지와 연결한 것에 대해 청소년 단체 및 학부모 단체들로부터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지만 지난 7월 대법원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음란성이 있다고 판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한 판결에 대해 하급 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김 교사에 대해 일부 유죄가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9월 23일 검찰이 1년을 구형했고, 선고공판은 10월 7일로 예정되어 있다. 금고형 이상으로 구형될 경우 교직은 자동 상실된다.

김인규교사 서명운동http://art.njoyschool.net
김인규사건 대법원판결 온라인저항전http://savekim.cyworld.com 

전효관|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