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 소수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말하다

정리_김소정(편집부)

일시: 2005년 10월 18일
장소: 유알아트
참석자: 김영현(유알아트 대표), 이경희(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 대표), 이광준(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 기획실장), 백현주(땡땡 편집부)

백현주: 오늘 좌담에서는 소수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중 김영현 선생님과 이경희 선생님께서는 현장에서 직접 소수자를 만나는 일을 해오셨고, 이광준 선생님께서는 작년부터 소수자 문화예술교육 관련 전시를 기획하면서 현장을 간접 경험하셨을 줄로 압니다. 독자들을 위해 각자 해 오신 그간의 관련 활동들을 간단히 소개해주십시오.

이경희: 사실 ”공부방”이라는 것이 ‘학습하는 공간’은 아니에요.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 소원이 뭐냐 하면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인데요. 단칸방에서 여럿이 살다보니까 자기만의 세계를 가질 만한 여건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이들만의 주체적인, 자발적인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시작한 게 공부방입니다. 그러니까 그 출발은 생존권 문제, 특히 주거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6-70년대에 빈민운동으로 출발한 것이 탁아운동으로, 다시 공부방까지 연장된 거예요. 그러다 가난이라는 것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의 변화는 자발적으로 일구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초기에 공부방이 ‘보호’와 ‘교육’의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지금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문화를 조직하도록 하는 것에 핵심을 두고 활동하고 있지요.

김영현: 7년 전부터 ‘당신도 예술가’라는 제목으로 지역,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예술교육을 해왔습니다. 체험을 통해 향유 계층을 확대시키고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죠. 그런데 누구든지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거리나 공원마저도 향유 계층이 한정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공부방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공부방에서 ‘작은 예술가’라는 제목으로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여러 작가들이 장르별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문화예술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검증해봐야겠지만, 선생님들 스스로가 변해가는 과정이 뜻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대상자뿐만 아니라 교육을 하고 있는 주체가 다양한 접근방식과 커리큘럼을 찾아내고 있거든요. 좋은 쪽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내년에는 공부방을 찾아다니지 않고, 교사를 위한 워크숍을 하려고 합니다. 교사 스스로가 자기 공부방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스스로가 매개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해주는 것이지요.
4년 전부터는 장애인을 위한 촉각그림책도 만들고 있습니다. 선천적 시각장애아들이 세상을 인식해가는 과정에서 소통할 수 있는 매개의 역할, 말하자면 교재로 쓸 수 있는 책입니다. 손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이광준 (시민네트워크 티팟 기획실장)

이광준: 이번에 광명에서 전시를 했는데, 유알아트에서 만든 점자 촉각그림책이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장애인이 아닌 이들도 만져보면서 색다른 경험이라고 재미있어 하더군요. 소수자를 위해 만들어지는 것들이 일반인에게도 유용한 교육매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노숙자 쉼터, 폭력피해여성 쉼터에서 일하시는 분도 이 책에 큰 관심을 보이셨어요. 소수자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를 보고 어떤 부분에서는 자기 문제를 느끼는 것 같아요.
2004년 <달그락 다른 목소리로> 전시에 이어 올해에는 지역을 재생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상공간 프로젝트>라는 소수자 문화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지역민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소수자라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사실 농촌은 변동의 주변부에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결국 아이들이 방치되는 문제로 이어지지요. 60가구 중에 30가구가 조손(祖孫)가정인데,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듣나요? 집에서도 그렇고, 학교도 수업만 끝나면 진공상태가 되지요.
그리고 소수자 문화예술교육은 국가지원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데 그 지원구조가 역으로 에너지를 떨어뜨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생산적이기보다는 행정적으로 되어가는 것이지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지원 구조
이경희: 이광준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자발적인 민간 활동의 영역이 제도화나 국가지원이라는 틀로 인해 좌절되거나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문화라는 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자본이 개입하면서 오히려 없어지거나 억지스러운 행사나 상품처럼 된다는 게 문제에요. 원래 가난한 지역에도 문화가 없었던 게 아니거든요. 45도 경사 진 달동네에서 공차고 노는 것도 문화였고 동네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서 노래자랑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일들을 일부러 기획해서 행사로 만들게 되었어요. 무슨 놀이마당이니 단오제니 하는 것들이죠. 그 뒤로는 다들 ‘문화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덕분에 원래 있던 문화마저도 죽어버리고 있어요.

김영현: 문화예술 영역에서 국가지원에 기댈 수 있는 조건은 한국사회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이 대중적으로 소통되기 전부터 만들어져 왔습니다. 때 되면 신청해서 사업해야 되는 문예진흥기금 같은 것들이 조직 유지의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하구요.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에 예산이 많이 몰리다보니까 원래는 이 영역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단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이 사업이 필요한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돈이 있는 쪽으로 몰려버리는 거지요. 국가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의해서 단체나 사업의 방향이 왔다 갔다 한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경희: 지원금을 받고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하면 폼이 나기는 해요. 재료비가 비싸서 또는 몰라서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이런 거 아니면 예술 교육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규정짓게 되는 점이 아쉬워요. 아이들이 이걸 통해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하는 것에 중심이 있었고 하면서 그냥 신나고 행복했는데, 프로젝트라는 틀에 맞춰가다 보니까 결과물, 보고서에 기대게 되더군요. 그게 자각되면서 서서히 지원을 꺼리게 되는 것 같아요.

김영현: 올해 유알아트에서는 ‘작은 예술가’ 프로젝트에서 받던 지원금을 일부러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 지원금 없이도 일이 굴러가더군요. 공부방에서 자체기금을 만들기도 했고요.
지금의 지원구조는 다양성을 죽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요.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그 구조 안에서만 지원할 수 있다고 하니까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다양한 문화가 획일화되는 것이지요. 다양하고 자발적인 부분들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지원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래 하려고 했던 사업 목적을 바꿔서 지원구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일도 생기게 되요. 물론 어느 정도의 틀은 필요하겠지만요.

백현주: 문화예술 진영에서는 지원구조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영현: 사실은 지원구조만 가지고 이야기 할 게 아니라, 단체나 개인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 스스로가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많은 단체들이, 가치와 개념이 채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돈 있으니까 한번 해볼까 하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어요. 정말 필요한 일인지 할 수 있는 것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지금처럼 가면 하청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스스로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힘도 약해질 테고요. 물론 현장이 열악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원구조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가 확실한 자기철학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얼마나 허약한 내용을 갖고 있을 것이며,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지원구조의 조건에 맞추는 게 아니라, 하고 있는 일들을 발굴하고 더 긴 호흡으로 가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안돼요. 지원을 하더라도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인적인 재생산을 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 그게 제가 꿈꾸는 지원구조랄까요.

이광준: 나라마다, 센터마다 지원구조는 많이 다릅니다. 유럽이나 브라질같은 경우에는 예산을 편성할 때 필요한 만큼, 그리고 프로젝트를 얼마만큼 준비했느냐에 따라서 지원금을 정하고 있습니다. 공적지원을 할 때 정산이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별로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이 되어 있어야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획예산처가 실권을 쥐고 있어서, 회계에 맞춰 사회를 재구조화하는 시스템이라고나 할까요. 문화예술교육 영역은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행정체계와 현실체계가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어야 효과적이고 실제적인가 하는 것을 연구할 수 있게 지원해 주어야죠. 문제는 문화예술교육의 정의가 안 되어 있다고 하면 학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정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하지 않고 있어요. 학자들에게만 기댈 수 없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거꾸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지원구조가 또 도움을 줄 필요가 있고요.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는 지원금을 진흥원에서 직접 주는 게 아니라 이미 형성되어 있는 주요 매개그룹을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나누어주면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원을 넘어 책임을 진다는 것

김영현 (유알아트 대표)
김영현: 저는 문화예술교육이 천년지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든 게 너무 빨라요. 평가하고 분석하고 사례를 만들고 모델을 개발하고 하는 과정이 너무 빠릅니다. 문화관광부에서 굉장히 여러 가지 연구사업을 하고 있는데 장애인, 이주여성 등등 연구사업의 마지막에는 ‘프로그램 모델 개발’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과연 지금 모델 개발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하고 나면 그것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죠. 지금 지원의 대부분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되고 있는데 단기간 프로젝트를 통해 뭔가를 개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과들이 왜곡되어 유포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 분야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이 그 왜곡된 성과들을 마치 전형인 것처럼 착각하거나, 자칫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개념을 잘못 정의해버릴 수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요. 그래서 제발 연구사업 할 때 ‘프로그램 모델 개발’이니 하는 말은 좀 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교정시설 연구위원으로서 프로그램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데, 원래 교정시설에 들어가서 교육하는 사람들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때는 종교 프로그램이 중심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혼란스러워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은 생겼는데, 그 가치와 의미와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예술교육의 한 영역이 마치 전체인 것처럼 왜곡되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현장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영역들이 들어올 수 있어야겠지요.

이경희: 이번에 사회문화예술교육 워크숍에 참석했는데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식을 보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대상도 선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획을 해놓고 진행을 못해서 결국 포기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어요. 재정지원이 된다고 하니까 기획은 했는데, 자기 사업이 아니었던 거지요.
원래부터 해오고는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못했거나, 상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행은 불가능했던 영역에 전문가를 끌어들이게 된 것은 국가지원을 통해 이룬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를 잘 이용해서 프로젝트를 체계화시킬 수 있을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지원구조 자체가 아니라 그에 놀아나는 우리 자신이 문제가 아닐까 해요.
사실 공부방은 돈이 없을 때부터 계속 해왔기 때문에, 있으면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어요. 남들이 와서 보면 너무 열악해서 불우하다고까지 표현할 정도였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일할 사람이 재생산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공부방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특히 요즘은 실무자들이 1년 반에서 2년을 넘기지 못하는 상태고요. 이런 상황에서 지원구조는 좀더 많은 사람들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지요.

백현주: 공부방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의 접목이 보기 좋은 결과물 만들기의 도구에 불과했나요,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계시는 중인지요.

이경희: 새로 보이는 가능성이 없었으면 안 했겠죠. 사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너무나 미약해서, 교육이라고 하면 학교, 성적, 학습 위주의 시스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방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체험하는 것을 부모들이나 지역사회가 못마땅해 하기도 했지요. 그러면 소외계층의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좋을까요. 학교에 가면 일단 공부를 잘 하거나 가진 것이 있어야 되는데, 이 아이들은 인정받을 방법이 없었어요. 지역이나 자기 친인척 중에 직업을 가진 경우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장래에 뭐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고요.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노래 한 자락을 배우고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고 자존감이 형성되는 과정을 너무 많이 경험하는 거예요. 치유에 이것만큼 좋은 매개체가 없을 거예요. 구구단 외우라면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들이,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면 생기가 돌아요. 삶의 계획을 짜게 되기도 하지요.

김영현: 이경희 선생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셨네요. ‘치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들 말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도 충분히 치유의 성과나 가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의 지원구조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뭐냐 하면,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예술영역에서 자기 가능성을 찾는 아이들을 책임져 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교생이 다섯 명인 섬마을 학교에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일이 있는데, 끝나고 나니까 아이들이 화가가 되고 싶어 하더군요. 그런데 참 갑갑했어요. 예술의 고부가가치성이라는 것 때문에 이제는 그런 계층에서 예술 영역으로 들어오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그냥 부모의 책임으로만 남겨둔다면 그들이 스스로 갖게 될 상대적 박탈감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었죠. 결국 강사들을 꾀어 그 아이들과 자매결연을 맺어주는 방법을 취했어요. 어떤 식으로든 후속사업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 생성된 문화와 교육에 대한 욕구를 계속 채워줄 수 있는 구조로 바뀌지 않으면 사탕 줬다 도로 뺏는 격이 됩니다. 지역에 있는 당사자들과 단체들이 계속해서 그 작업을 해나가야 합니다. 강제로라도 말입니다.

누가, 어떻게 사회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할 것인가
이경희: 사회문화예술교육 영역 전체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공부방에서 계속 요구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지원이에요. 사람만 해결되면, 사람에 대한 지원을 체계화시켜서 재생산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만 되면 다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부방 활동가들은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모든 과목 기초수업을 해야 하고 요리까지 잘 해야 되죠. 그런데 여러 가지 현실 조건 때문에 체력과 열정, 상상력은 바닥이 드러난 시점이에요. 저는 사회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일종의 전문가 시스템이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광준: 유알아트는 예술을 통해서 교육을 하는 창조적 매개자 그룹이고, 공부방은 미술, 음악, 과학, 회계 등 여러 전공을 가진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현장 매개자 그룹입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이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될 때까지 창조적 매개자와 현장 매개자를 다르게 지원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해요. 유알아트에서 하는 교사 워크숍이 있다고 하면 그 시스템을 지원해야 되는 거죠. 지금까지는 자격증 제도를 둬서 공부방 선생님들 연수를 해왔지만 사실은 그러면 대부분 안 가잖아요. 오히려 예술대학 나온 실업자가 더 가기 쉽죠. 그런데 이 분들이 예술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예술교육을 잘 모르거나 예술교육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문제를 생산할 수 있어서 곤란해요. 현장에 있는, 소수자를 이해할 애정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우선 지원해야겠죠.

김영현: 누가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인데, 잘못하면 예술가 집단이 전담해야 된다는 결론을 만들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사회 문화예술교육은 아주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예술가 집단은 학습된 교육방식에 의한 한정된 교육밖에 못합니다. 학습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때는 그만큼 다양한 방식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 다양한 방식이라는 것은 예술가 집단에서만 고민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술 교육에만 치중하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영역을 확장시키는 쪽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백현주: 문화예술교육의 인력 구성의 문제는 어느 한쪽으로 편협하게 몰아주어서도 안 되고, 또 그럴 수도 없다고 봅니다. 방금 교육대상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문화예술교육에서 ‘태도’의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이기도 하면서 매우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매개자가 ‘소수자’를 만나는 데에는 어떠한 태도가 필요하다가 보시는지요?

이경희: 동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수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스스로 조직할 수 있게 하려면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되고, 동화되는 훈련을 먼저 해야 하죠. 저도 처음에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교육받은 시스템에 맞춰서 생각하고, 억지로 아이들이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처음부터 자신을 뭔가를 주러 온 구세주로 생각하면 아이들로부터 거부당할 수밖에요. 사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떠나가죠. 아이들은 이 사람이 금방 떠날 사람인 걸 알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테스트를 하거나 괴롭히거나 해요. 그 순간을 견뎌야 아이들이 문을 열어주기 시작하는데, 많은 경우 자기를 싫어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못 견뎌서 떠나게 되죠.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상처, 불신이 많은 애들한테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갔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상처받고 오는 거예요. 자원교사 하러 온 사람들한테 저는 이렇게 말해요. 공부방에서 능력은 괴롭히는 아이들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느냐다. 그 기간을 버텨내고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뭘 할 것인지 다시 상상해라, 라고 말입니다.

김영현: 처음에 심리치료 교육을 받고 오라는 말을 들었어요. 애들한테 상처받지 않으려면 교육 받고 오라는 얘기였죠.

이경희(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 대표)

사실 위험한 것 중의 하나가 무조건 주려고 한다는 거예요. 안쓰럽다고 미리 규정해버리고 접근하니까 오히려 그게 폐해가 되는 거죠. 아이들을 무조건 받아야 하는 존재로 정의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이상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지요.
동화라는 개념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르니까 동화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요. 제 생각에는 조화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해요. 같지 않지만, 내가 나의 모습 그대로 어울리는 것. 서로 다른데도 똑같아지려는 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동화되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가짜라는 걸 다 알거든요.

이경희: 물론 소외계층 아이들은 결핍의 상황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 결핍된 부분을 무조건 채워주려고 하면 곤란해요. 자기 욕구를 자각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먼저예요. 우리가 하는 일은 가난한 지역에 들어가서 아이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촉진자 역할만 제대로 해도 큰일을 한 거지요.

‘소수자’라는 이름
백현주: ‘조화’라는 말이 같음과 다름을 적절히 드러낼 수 있는 말이라 공감이 가는군요. ‘소수자’라는 용어도 저는 좀 비슷한 뉘앙스로 다가오는데, 반면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많은 모양입니다. 이광준 선생님은 전시를 하면서 소수자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광준: 사실 소수자라는 말은 학술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지요. 주체성, 자발성을 강조한 말이긴 한데 말이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사회적 약자’, ‘사회적 배제’, ‘소외계층’ 같은 말들을 생각해봤어요. ‘다수인 소수’라고 바꿔서 써보기도 했는데 지금 딱히 바꿔 쓸 만한 용어로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고, 더 기발한 말이 떠오르기 전에는 소수자라는 말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말을 굳이 쓰는 이유는 소수자 문화예술교육이 사회문화예술교육 전반과는 구분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회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뭉뚱그려져 있는 말인데, 만약에 어린이 문화예술교육 센터를 만든다고 하면 이미 사교육에서 풍부한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가게 될 가능성이 더 크거든요.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가기 위해서는 이름 자체가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영현: 소수자라는 용어는 사실 작년부터 문제제기를 했던 부분입니다. ‘소외계층’보다는 훨씬 낫지만 여전히 약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 안에 포함되는 프로그램 대상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아주 다양한 계층과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인데, 차라리 가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아니면 소수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영역이 학습권과 향유권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까 ‘향유권 교육’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무튼 편을 가르거나 대상화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경희: 소수자라는 말에서 주체성, 자발성을 강조한다는 점은 좋네요. 제가 하는 일이 처음에는 빈민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당시 주민들을 보면 아주 드물지만 스스로 자신을 빈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빈민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장 크게 반대한 것은 정부였어요. 그래서 사실은 무소득에 가까운 사람들인데 ‘저소득층’이라고 했지요. 빈민이건 저소득층이건, 그 말이 가리키는 사람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어요.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용어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차라리 스스로를 빈민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영현: 그런데 그건 자기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규정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말이잖아요. 대상화 된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규정지어 접근하지 않지요.

이경희: 그래서 주체의 자발성과 자기기획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광준: 대상이 아니라 지역으로 바꿔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여러 문화예술교육의 영역을 ‘지역문화예술교육’이라는 개념으로 통합하는 거예요. 학교 문화예술교육이 안되는 게 학교 안과 밖의 경계를 깨뜨리지 못하기 때문이잖아요. 예술치료 프로그램도 주로 교도소나 정신병원처럼 블록화 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렇다면 지역 단위로 크게 묶어서 보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현: 지금 시범사업으로서 진행되는 것들 가운데 많은 경우가 대상을 규정하고 구분 짓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이 공연을 보고 싶어 하면 공연장에 가서 보게 해 줘야 되는데 시설에 모아놓고 하죠. 그게 더 쉬우니까요. 장애인들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자꾸만 떨어뜨려놓고 가로지르기, 구분짓기만 하고 있죠. 그런데 기가 막히는 것은 그런 사례들이 모델이 되고 있고 매스컴에도 좋은 사례로서 소개가 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경희: 어제 공부방 아이들이 초대를 받아서 공연을 하나 보러 갔어요. 그런데 월요일 여섯 시 공연이더라고요. 없는 공연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서 초대한 거죠. 일반 관객이 보는 시간에 섞여서 보면 좋을 텐데, 그건 불편하니까 공연이 없는 날 소외계층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초대해서 모아놓고 한꺼번에 보여주고, 생색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김영현: 섞여서 조화를 이루게 만들지 않으면 안돼요. 열의가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만한 힘을 갖도록 하려면 같이 호흡을 해야지, 따로 떨어뜨려놓고선 주체성을 갖도록 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여기 내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같이 있다는 사실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먼저예요. 그래야 힘들겠구나, 뭘 해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거구요.
학술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 전반에서 인식을 공유하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편견을 없애고 똑같은 권리자라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구분짓기를 하고 언어로 규정하는 일들이 편견을 정착시킬 위험성이 있어요. 자꾸 치료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다 보면 상대방을 대상화시켜서 환자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광준: 그 취지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치유와 치료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치료라는 말은 상업적 요구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치유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웰빙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죠. 사회에서 어떻게 그 말을 받아들이고 퍼뜨리느냐의 문제예요. 물론 소수자라는 말이 딱히 적절한 용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호명함으로써 주체성이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백현주: 김영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우려에는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를 비롯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소수자에 속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소수자’라는 말이 없었다면 그런 자각을 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이지요. 또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까 소수자 안에서의 연대랄까, 그런 것들에 대한 기대가 생겨요. 물론 그게 최선은 아니라는 게 중론인 듯하고, 그러니 용어의 문제는 향후 숙제로 남겨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마무리 발언을 한마디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광준: 향유자의 자기 동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소수자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일단 접근 프로그램이 있고, 그 다음엔 더 밀도 있게 들어가고 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의 층위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러면 적절한 위치에서 동기형성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하겠죠. 사실 자존감의 형성은 프로그램 몇 번 했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향유자의 자기 동기를 만드는 일은 프로그램으로만 할 수는 없어요. 목적성을 갖고,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영현: 교육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단계별 목표와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을 프로그램 대상자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자는 이게 문화예술교육인지 뭔지도 몰라요. 그냥 프로그램 하는구나 하는 정도죠. 단계별 교육목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목표에 대한 공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경희: 소수자로서 자기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훈련되어야 해요.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엄마만 있거나 아빠만 있거나 할머니 손에 키워지는 것은 불편하거나 속상한 일일 수는 있지만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그 사실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항의해야죠. 세상에 널린 편견이나 부적절한 대우와 스스로 싸워야지, 그 뒤에 숨거나 그것에 의해 보호받을 수는 없어요.

김영현: 최근에 대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유알아트에서 오기를 한 일 년 정도 기다렸대요. 그런데 담당하는 수녀님이 직접 배우시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강사가 돌아간 뒤에도 계속 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래서 아침부터 열심히 배우셨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더군요. 프로그램 대상자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권리의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작품을 만들어서 일부를 기증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렇게 베풀 줄 알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구요.

백현주: 아마도 소수자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예술교육 전반이 나아가려는 방향과 목적지를 찾는 데에 중요한 신호 체계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나눈 이야기들은 그런 맥락에서 현장이나 연구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