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천윤희(광주비엔날레 교육정보축제팀)
|
간노 히토시의 <행복을 디자인하는 인간관계> |
|
행복하게 사는 것, 평범한 나의 꿈
어렸을 땐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고등학교 때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오직 꿈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IMF와 취업대란을 겪으면서 내가 가야할 길을 고민했고, 내 의지에 따른 첫 번째 선택으로 예술경영 공부를 시작했다. 선택은 책임감을 요구했고, 공부하는 내내 나의 꿈은 나의 선택에 반대한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도록 성공하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학업을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마치는 것, 세계를 향한 첫 발언으로서 논문을 완성하는 것, 문화예술 현장에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시공간을 만드는 매개자가 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곧 번듯한 직장에 내 이름을 걸고 일하는 것 등을 의미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항상 새롭게 나타나는 목표를 잡기 위해 무섭도록 돌진했다.
|
하지만 ‘타인을 위한 삶’을 선택하겠다며 여러 가지 일에 몰입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도, 나를 존재하게 하고 사랑의 에너지를 나누어주던 모든 ‘관계들’도 잃어갔다. 그토록 바라던, 이제까지 생의 존재 이유였던 바로 그 현장에서 왠지 모를 깊은 외로움과 단절감, 허무감, 상실감에 시달렸고 그런 나 자신을 인식할 때쯤엔 이미 황폐한 모습으로 사막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친구들과 지인들이 내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 – 진정 내 꿈이 무엇이냐는- 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미처 발견치 못한 사실을 하나 둘 깨달았다. 내 꿈은 평범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것인가. 이제까지 원했던 것을 모두 가졌다 생각했는데, 왜 모두 잃어버린 느낌일까.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랬다. 나는 타인들을 생각한다면서 정작 나 자신은 행복하지도, 행복해지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주변의 모든 풍경에 막을 치고 오직 내 눈앞, 발끝만 보면서 넓은 세상을 보았다고 자랑하는 형국이었다.
자아 찾기의 확장
문화적 삶 찾기. 이것은 ‘문화예술’에 비전을 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개인적 화두였다. 이 거대한 언어의 속내가 결국은 개인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과정임을 어렵게 알게 되면서 나는 ‘진정한 자아 찾기’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내 안으로의 침잠과 몰입보다는 오히려 땅에 발붙인 현실의 다양한 관계 속에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가면서 다시 한번 내적 혼란을 맞고 있을 때에 나의 멘토(나의 선배이자 동료이며 친구다)가 말했다. “이제 개인적 차원의 자아 찾기에서 확장된 차원으로 나아가야지.” 탐욕스레 여러 권의 책을 쌓아두고 읽으면서도 또 새로운 책을 주문하는 내게 “읽은 책들이 결실을 보아야 할 텐데 글을 써보는 게 어떤가? 이런 기회가 있는데 그간의 고민들로 기획해보는 건 어떤가?” 라며 끊임없이 기회를 주셨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미니 홈피 운영법과 블로그 활용법, 디지털 카메라 사용법 등-을 섬세히 가르쳐주셨고, 또한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실천해 볼 수 있도록 많은 그룹들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기획하고 글을 쓰면서, 한계에 부딪히는 국면마다 내게 보내오는 이메일이나 한 장의 메모, 짧지만 강한 조언들은 ‘확장됨’의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팀을 꾸려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맡게 되었을 때는 리더십에 대한 인식과 ‘긍정적 영향력’의 가치를 일깨워준 글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사실상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일하는 현장에서 부딪히는 사안들과 사람들 속에서 깨지고 고민하고 다시 도전하고 성취감을 맛보았다. 협업을 통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 속에서 개인 차원의 그것과는 또 다른 충만한 기쁨과 만족감을 맛보게 되었고, 나는 이제 스스로 그것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최근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면서 나의 멘토가 나를 훈련시킨 전 과정이야말로 ‘문화예술교육’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젠 나 역시, 나 이후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간노 히토시의 <행복을 디자인하는 인간관계>는 ‘문화예술교육이 결국은 창조적 관계 맺기를 통한 자기 성장이며, 그것이 곧 문화적 삶’이라는 맥락의 관심들이 확장되어가는 중에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결국 창조적 관계 맺기의 문제
최근 문화예술교육 매개자 모임을 통해 만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가 공통된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예술교육도 문화 기획과 같은 ‘기획’과 ‘실행’ 이라는 형식적 틀의 공통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타의 문화예술 기획이 생산자 중심의 전문적인 기획 실행인 반면 문화예술교육은 본질적으로 처음과 끝이 모두 관계 지향적인 과정인지라 그 안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전방위적이고 유연성 있는 매개가 요구된다. 즉 지속성 있는 관계의 진전과 함께 배움의 속도가 궤를 같이 하며 사회적 참여과정을 통해 성찰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의 안내자이자 보조자로서 매개자는 대상의 성장 층위에 따라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한다. 많은 매개자들은 프로그램의 성공과 실패라는 판단 역시, 단순히 참여자의 숫자가 많았다거나, 행사의 세팅이 시각적으로 잘 되었다거나 하는 차원을 넘어, 그러한 곳에 다다르기까지의 ‘관계’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았던 점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프로그램 안의 여러 관계들(기획자-참여강사, 참여강사-보조강사, 보조강사-교육참여자 등)과 프로그램 밖의 다양한 관계들(학교-문화기관, 문화기관-관할행정기관, 교육청-학교, 교사-장, 학부모-교사 등)에 놓여있는 기획자는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묘한 추상성과 왜소해 보이는 과정의 지난함에 좌절하고 과연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매개자의 어려움은 똑같은 과정은 하나도 없다는 데에 기인하기도 한다. 매뉴얼을 그대로 보고 열 사람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해도 그 과정과 결과는 전혀 다르다. 한 프로그램에서 다섯 개의 모둠을 동시에 진행해도 그 안의 흐름은 각기 다르다. 이때 기획자는 그야말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기획자의 맘처럼 완벽한 공통의 그림을 갖고 같은 열정과 소명감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삶에 대한 인식의 폭도 다르다.
그렇다면 매개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만난 어떤 매개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리더십을 고민한다 했고 비전의 엔지니어링, 즉 ‘비저니어링(Visioneering)’을 고민한다는 이도 있었다. 혹은 창조적 동반자관계(Creative Partnership)에 대한 사회 전체의 새로운 학습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내적 확신을 토대로 긍정적으로 모든 상황과 문제를 풀어내고자 하는 태도, 관계 지향적 태도 그 자체가 아닐까?
삶의 맛을 깊게 하기 위한 통로
<행복을 디자인하는 인간관계-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내 친구에게 권하는 책>이라는 원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은 저자의 삶의 경험담 속에서 ‘관계’의 문제를 쉽고 간결한 문체로 솔직 담백하게 전한다. 청소년들에게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는 점은 일깨워주고 이를 위해 사회학과 심리학, 교육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고의 문을 열어준다.
이 책의 주요 테마는 ‘삶의 맛을 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자기 자신과 주변세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에 있다. 저자는 삶의 깊은 맛은 즐거움만을 추구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즐기는 것과 즐거운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저자의 답은 단순하다.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노력하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노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헌신 내지는 자기다움을 찾는 일’로 해석한다. 자신의 삶과 진지하게 마주 대하고, 삶의 맛을 보다 깊고 정성스럽게 느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는 자신에 대한 진정함을 키우고 거기서 타자와 사회로 이어지는 통로를 자기 스스로 발견해내는 형태로 구체화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 전체를 저자는 ‘노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타자와 사회에 대한 열린 통로가 자기 내부에 만들어진다면, 다음으로 그 통로를 거꾸로 올라가 타자와 사회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재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혼자만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어떠한 형태로든 사회에 공헌하는 이타적인 활동으로 발전하게 되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 나름의 삶의 깊은 맛을 발견해가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상대에게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나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타자에게 열어가는 것을 포기하지도 말자고 한다. 자신의 가능성 앞에 벽처럼 막아서고 있는 사회에 대해 어떻게든 기죽지 말고 조금씩 힘을 길러 그것을 뛰어넘는 태도야말로 행복을 디자인하는 가장 필요한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소년을 향해 쓴 저자의 목소리가 문화예술교육의 길을 가고 있는 또 한 명의 매개자인 나에게 솔깃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나 역시 문화예술교육과 삶의 성장통을 앓고 있는 청소년이기 때문일까?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