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대단한 예술(Great Arts for Everyone)’을 기대
필자는 지난 여름 보건복지가족부의 주관으로 해외조사연수단에 선발되어 영국의 문화예술교육을 조사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문화예술 분야 유수 기관을 방문하면서 도미니코라는 한 흥미로운 청소년을 만나게 되었고, 그 소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올해 16세인 도미니코는 부모님을 따라 이탈리아에서 런던으로 이민을 왔다.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땐 새로운 지역과 학교는 낯설기만 했고 세상에 흥미를 가질 것이 아무 것도 없어 학교 수업을 빼먹기 일쑤였으며 그 허전함을 약물과 술로 달래곤 했다. 그러던 와중, 1년 전 친구의 소개로 타이거 몽키의 ‘건강한 음주법’을 위한 영상제작에 참여하게 되며 도미니코는 공인된 자격증을 가지고 런던 전역의 문화예술교육 기관에서 활동하는 영상교육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는 ‘나와 같은 아이들이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의 일과는 놀라웠다. 예전 그의 일과가 친구들과 어울려 음주와 약물을 하고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면 지금 그의 일과는 모든 시간을 ‘자신의 꿈을 위해 쓰는데’ 아끼지 않았다. 오전 10시, 타이거 몽키에 가서 지역의 아이들이 노인들에 춤을 알려주고 과정을 영상 제작, 지역 내에서 상영하는 ‘티 댄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처음에 참여했던 ‘건강한 음주법’에 대한 프로그램과 다르게 이번 프로그램은 같은 지역의 어른들과 함께 해서 좋다며 프로그램이 끝나고 친구들과 어르신들이 사는 집에 초대받아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곤 한다고 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의 운동 효과뿐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야기를 주의를 기울여 듣게 되고 어른들은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야말로 제일 큰 장점이라고 했다. 오후에는 바로 뉴디렉션이 있는 뉴햄 지역 아동들과 함께 ‘올림픽 홍보 영상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보조 교사로 참여해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은 주로 흑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많고 부모가 일하는 낮 시간에는 이 기관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뉴햄은 런던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낙후된 지역이기에 경제적, 안전의 문제로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적은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주 화, 목요일에는 퓨전 옥스퍼드 커뮤니티 아츠 에이전시에서 자신이 성장한 지역의 환경 개선 계획을 세우고 그 후에 설치할 기념물 디자인 제작을 위한 프로그램 ‘브로즌 잉곳’에 참여한다고 했다.
지난 봄에는 지역 입구에 주민들이 쓴 시로 나무를 만드는 ‘글로우 트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사람들이 그 곳을 지나며 자신의 시를 자랑하느라 모두들 수다쟁이가 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라운드 하우스에서 애플사로부터 지원받은 영상 편집실을 자신이 관리한다며 한 달에 두 번 있는 운영회의에도 청소년 대표로 참석한다고 했다. 장비를 지원해준 애플사에서 다음 달에 있을 프로젝트에 인턴으로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는 그의 얼굴엔 자신의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소개한 도미니코는 우리가 영국에서 만난 모든 기관들의 실제 경험들을 합친 가상의 영국 청소년이다. 영국의 문화예술교육은 이처럼 건강한 청소년,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온 지역과 나라가 노력하고 있었고, 도미니코와 같은 성공사례는 실제로도 존재해 영국의 문화예술교육이 구조적으로 이루어져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으로 지역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 결과를 지역에 환원하는 구조를 가진 영국의 ‘모두를 위한 예술’은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역사적, 정책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창조적 인재를 키운다는 사회투자 성격의 정책을 바탕으로 1946년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1980년대 마거릿 대처는 실업 및 교육기회부족 문제에 당면한 청소년들을 사회적 약자로 생각하고 이 세대를 위한 정책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을 제안하였다. 또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욕구와 지역별 빈부격차 등의 문제 해결 욕구, 이를 예술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맞물려 각 지역센터와 같은 문화예술교육 기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양한 주체들과 각 기관들의 독립적 운영, 정부와 민간영역의 다양한 파트너십을 가진 영국의 문화예술교육은 자연스럽게 지역의 문제에 기여하는 만큼 지자체의 재정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영향력이 매우 크다. 프로그램은 특정인을 수혜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지역을 모두 아우르는 사업들이 많다.
라운드 하우스의 바바라는 ‘영국의 문화예술교육은 모두 커뮤니티 아트라는 개념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역량이 강화된 개인이 지역사회에서 제 기능을 하고 그 지역사회의 역동을 지속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타이거 몽키는 학교에서 배제된 청소년들이 필름 제작 등 예술을 활용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업이 있는데 이는 아츠 어워드에 지원해 그 활동을 인정받고 경찰과 연계해 지역사회 내 범죄율이 25%나 감소한 사례가 있다. 퓨전 옥스퍼드도 지역주민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지역사회 문제가 줄어들고 환경 개선, 자부심을 가지는 등 긍정적 효과를 보여 옥스퍼드시티 카운슬로부터 대부분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영국은 ‘모두를 위한 예술’을 위한 아동과 청소년의 역할을 크게 보고 실제 이들이 주체적으로 각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츠 카운슬은 ‘영국의 모든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참여자나 관객으로서 예술과 접촉, 창의적 인재로 성장하길 원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파인드 유어 탤런트’, ‘아츠 어워드’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담당자는 런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상적인 조사 결과를 하나 소개해 주었는데,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이 1년에 최소 3회 이상인 자가 3회 이하인 이와 비교했을 때,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문화예술 관련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츠카운슬은 이처럼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이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며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한층 강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한편, 라운드 하우스는 운영회의에 청소년 대표가 참여하고 기관 시설물 관리를 하는 등 역할을 부여, 주도적으로 기관의 운영에 청소년이 참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방문한 많은 기관들이 프로그램 시작 전 참여자를 대상으로 욕구조사는 기본, 청소년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평가까지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일방적, 수동적 참여자가 아닌 적극적 구성원으로서 효과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참여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필자의 경험은 2007년으로 되돌아간다. 2007년 학교 사회복지 현장에서 아이들과 학교폭력에 관한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축제에서 각자 역할을 맡아 기획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폭력’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하였고 어려운 주제와 달리 축제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이 사업에 참여한 아이들 중 반은 학급이나 또래관계에서 어려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더 이상 ‘예술’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미처 몰랐던 재능을 찾거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표현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강점을 더 부각,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찾는 등 개개인을 건강하게 하는 또 다른 목적에의 달성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에도 도미니코와 같이 다문화, 비행, 대인관계, 약물 등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아동, 청소년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영국의 문화예술교육에서 치유, 향유의 기운보다 강화, 창조의 기운이 더 많이 느껴지는 이유는 수혜대상이 수혜의 대상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예술 활동의 주도적 참여를 통해 향유→치유→창조, 그리고 지역사회로의 환원으로 이루어지는 선 순환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 대상과 지역의 특성 및 욕구를 신중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연계나 프로그램 기획을 하는 것도 영국이 가진 강점이라 하겠다.
영국에서 만난 뉴디렉션의 스티브는 “문화는 접착제이다. 오페라, 연극 등을 보는 것이 문화예술의 전부라고 말할 수 없다. 문화란 바로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수 많은 환경들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접착제와 같은 위대한 도구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타이거 몽키의 엠마는 “테이트모던(Tate Modern)이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등과 같이 유명 박물관, 미술관에서 접할 수 있는 작품들만 훌륭한 예술이 아니라 커뮤니티 아트로 생산되는 예술과 문화야 말로 대단한 예술행위(Great arts)이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모두가 단순히 문화예술에 접근, 향유하는 차원이 아닌 주도적 활동을 통해 창조해내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대단한 예술(Great Arts for Everyone)’이 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추진하는 사회문화예술교육은 올해부터 기존의 소외계층에서 일반인으로 수혜 대상을 확대하였다. 일반화되고 다각화된 각 세부 사업의 목적, 목표에 맞는 진행과 함께 참여자가 주도적으로 활동, 지역사회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환원구조를 갖춘다면 한국만의 ‘모두를 위한 예술’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비밀번호 확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