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목소리, 지상을 수놓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성악가 조수미 씨를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극찬했다. 카라얀의 표현처럼 그녀는 무대에 서는 순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졌으며, 그녀의 목소리는 전율이 느껴질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 콜로라투라의 대가인 그녀가 국제 무대에서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동평어린이•교문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부산의 밤을 아름다운 하모니로 수놓았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너무나 바쁜 일정을 쪼개 국내 무대에 섰다. 그것도 내로라하는 세계 정상급의 오케스트라가 아닌 아마추어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녀는 학생들과의 완벽한 호흡으로 여느 무대 못지않은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 음악을 향한 꿈과 열정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어떤 친구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음악을 전공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친구는 악기를 연주하는 내내 멋진 추억거리가 하나 생기는 거죠. 따로 ‘가르침’을 주지 않아도 유명 아티스트와 함께 무대에 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정말 대단한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조수미 씨 말은 사실 그대로였다.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무척 가슴설레 했고, 다른 어떤 때보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연습에 임했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으며 노래하는 사람과 오케스트라는 호흡이 같아야 좋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그 덕분에 공연 당일, 조수미 씨와 아이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아름다운 음악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수 있었다.

 

명예교사로 청소년에게 한 발 다가서다

 

조수미 씨는 2009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위촉한 문화예술분야 명예교사 직을 수락했다. 명예교사는 학교 문화예술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현장 체험 기회를 주고자 만든 교육 활동의 하나다. 바쁜 월드투어 일정 중에 명예교사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언젠가 지금처럼 왕성한 연주활동을 할 수 없는 때가 되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었어요. 명예교사를 통해서 좀 더 많은 청소년과 만날 수 있고, 그들에게 음악을 하면서 가질 수 있는 좋은 추억, 유명 아티스트와 함께 연주해보았다는 자긍심을 줄 수 있어서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녀가 무대를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테크닉이나 기교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꿈을 확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진정 그녀가 그들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미래의 아티스트인 청소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을 위해 조수미 씨는 2007년 유럽 각국 오페라 하우스에서 주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한국인 국제 콩쿠르 우승자들과 함께 가졌던 ‘조수미와 위너스’ 같은 공연을 좀 더 많이 기획해 볼 생각이다.

 

“음악가의 길은 너무나 외롭고 힘든 길이에요. 고된 자기와의 싸움이며 수많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피나는 노력과 연습을 해야 하는 어려운 길이죠. 하지만 앞서 걸어간 사람이 불을 밝혀 주면 뒤에 오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먼저 해외 무대로 나간 사람으로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힘든 과정들을 후배 연주자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다. 내년 보스턴 유니버시티 콩쿠르 심사위원직을 시작으로 한국 아티스트들이 세계 무대에 데뷔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 자신의 작은 노력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음악가들이 글로벌 무대에 설 수 있었으면 한다.

 

너무나 한국적인, 그래서 더 돋보이는 아티스트

 

조수미 씨는 낯선 나라에서 동양인이기에 겪었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들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긍정적인 성격으로 그러한 것들을 모두 이겨냈고,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말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동양인이 그들의 말로 그들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였을겁니다. 그런 것들에 일일이 상처받고 아파하면 국제 무대엔 설 수 없죠. 전 오히려 동양인이라는 핸디캡을 장점으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들을 흉내내는 대신 정말 나답게, 한국적으로 생활하면서 그 안에 음악을 녹여냈더니 독특하고 독보적인 음악적 색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녀는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한국을 상징하는 한국 홍보대사다. 그녀 스스로도 한국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상징성을 가지고자 드레스도 한국적인 문양을 넣어 디자인 한 것을 입는 등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조수미 씨와 함께 이번 무대에 선 바리톤 서정학 씨도 그녀의 ‘한국적’인 면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97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가 인연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10여 년 동안 관계를 이어오면서 항상 그녀는 자신의 역할 모델, 그 이상이었다고 했다.

 

“연주자는 자신의 인격을 소리에 담아 표현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수미 씨는 정말 완벽한 사람이죠. 지극히 한국적이고, 항상 타인을 배려하는 가슴 따뜻함이 그녀의 연주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멋진 연주자입니다. 그녀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저에게도 큰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아마 오늘 함께 한 청소년들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갖게 될 겁니다.”

 

음악을 즐기면서 사는 것, 그것이 ‘행복’

 

한국에서 음악을 전공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어느 나라나 예술가가 되는 것이 어려운 길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은 입시가 중심이 되어 더 척박하다. 사실 그녀는 꼭 음악을 전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열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에요. 거기에 재능이 더해져야 하는데 많은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역량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음악의 길을 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뒤돌아보면 힘든 길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은 정말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나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음악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삶일 거에요. “

 

학부모와 함께 일선 교사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아이들의 개성을 인정해 주고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도와주세요. 제게도 많은 선생님이 계시지만 전 유치원 때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그 분은 제가 노래를 할 수 있도록 항상 격려해주셨답니다. 따뜻하게 가까이서 도와주는, 힘이 되어 주는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말 한 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조수미 씨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학생들의 글에 답을 한다. 대부분 걱정이나 고민의 글들이지만 틀에 박힌 답변 대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해 답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힘듦을 얼마나 이해하고 다독여 줄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선택할 때도 신중하다.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진정한 ‘가르침’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가오는 2011년이면 조수미 씨가 국제 무대에 데뷔한 지 25주년이 된다. 25년을 한결같이 음악 속에서, 음악과 함께 해 온 그녀의 열정에 진심으로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기를, 그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이 주는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