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세상 속으로-인권과 생태, 역사라는 화두로 여행하며 배우는 ’여행학교’ 사례

우주|(사)생명평화 마중물 사무국장

(아르떼 주) 여행학교는 (사)생명평화 마중물 산하 새만금 생태학교 ‘시선’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권과 생태, 역사를 주제로 여행하며 배우는 학교이다. 2004년 1월 첫 번째 여행학교 ‘인권 찾아 삼천리’를 시작으로 11월 네 번째 여행을 마쳤다. 생태학교 ‘시선’은 새만금 갯벌살리기 삼보일배를 했던 문규현 신부를 비롯하여 뜻을 모은 사람들이 (사)생명평화 마중물을 만들면서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생명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면서 만든 학교이다. 현재는 주말 학교, 여름 겨울 방학 생태 캠프, 여행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홈페이지http://www.yespeace.or.kr)

11월이 시작되는 첫 날. 부산, 여수, 지리산, 함양, 안양, 분당, 고양 등지에서 ‘땡땡이 여행학교’를 함께 하려는 아이들이 광화문에 몰려들었다. 1주일동안 쓸 침낭 등의 개인 짐을 짊어지고, 학교를 1주일간 땡땡이친다는 기쁨과 낯모를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다는 1주일에 대한 기대를 함께 가지고.

벌써 4번째 진행된 일명 ‘땡땡이 학교’인 ‘청소년 여행학교’의 이번 주제는 ‘평화유랑단과 함께하는 여행학교-풍덩! 세상 속으로’이다. 2004년 1월 겨울방학 중에 11박 12일로 시작한 청소년 여행학교는 인권과 생태, 역사를 주제로 가능한 아는 사람들을 통해 얻어 자고, 때로는 얻어먹으며 각 지역을 떠돌아다닌다. 1월의 여행학교는 ‘인권 찾아 삼천리’라는 주제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을 돌아다녔고, 5월의 여행학교는 ‘유채꽃 붉게 물이 들고’ 라는 주제로 제주 4.3 항쟁지역과 제주의 생태에 대해 배웠으며, 8월의 여행학교는 ‘여름-강원도의 힘!’이라는 주제로 강원도 폐광촌지역과 태백산 미군폭격장부지 주변의 환경과 삶을 돌아보았다.

때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왜 하필 ‘여행학교’냐고. 여행학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우리는 아이들이 1년 내내 같은 교실, 같은 책상에 종일 앉아서 몇몇의 선생님들에게서 ‘교육’받아 습득하게 된 것들과 우리의 삶과 역사와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주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365일 책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습득하는 지식보다 몇일간 자신이 직접 찾아가보고 만나보고 이야기해보고 느끼고 알게 되는 것들이 아이들의 삶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여행학교에는 ‘현장성’이 있다. 사람과 만나고, 자연과 만나고, 찾아가는 지역에 담겨있는 역사와 만난다. 지금 우리를 있게 한 그 과거와 현재와 소통하며 미래의 우리를 꿈꾸게 한다. 또한 우리의 여행은 ‘삶에 대한 가벼움’이라는 작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가방 하나에 여행기간 동안에 먹어야 될 것, 입어야 될 것. 자야 될 것을 짊어지고 다닌다. 처음에는 며칠 동안 갈아입을 옷들과 먹을거리들을 욕심껏 잔뜩 지니게 되지만, 갈수록 가져온 ‘자기 것들’이 ‘짐’이 되어 감을 안다. 씻는 것도, 입는 것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별거 아니라는 것, 우리 삶의 기본인 ‘의식주’가 아주 단순한 것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정착’되어 있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무겁게 ‘의식주’에 관한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는지 ‘여행’을 통한 잠깐의 삶에서 느낀다. 여행은 ‘더불어 삶’을 배우게 한다. 싫든 좋든 함께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에서 각자가 어떻게 사람들과 자연과 세상의 구조와 소통해야하는지를 배운다. 내가 조금 이기적이 되면 그것이 누구에게 되돌아가는지, 내가 조금만 넉넉해지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여행학교’에는 우리만의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여행학교에는 선생님과 배우는 학생들이 없다. 다만 큰 아이들과 작은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여행학교에서는 뭔가를 가르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큰 아이들의 사전 모임 때도 각 여행학교의 주제에 대한 교육은 하지 않는다. 단지, 작은 아이들과 어떻게 잘 소통할 것인지, 일정동안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더 잘 놀지에 대해 고민한다. 주제에 대한 지식습득은 오히려 큰아이들에게 작은 아이들을 ‘가르치고자’하는 습성을 더 크게 만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학교 큰아이들과 작은 아이들은 각기 ‘별칭’을 지어서 서로를 부른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없고, 존댓말도 거의 없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어린 아이들이 큰아이들을 버르장머리 없이 대하는 듯 들리기도 한다.(^^) 작은 아이들에게 ‘존댓말’과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벽’이거나 ‘부담’이다. 반말과 별칭으로 서로를 부르다보면 작은 아이들은 어느새 자기의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듯이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로서의 눈높이를 고집하려 한다. 그 안에는 ‘가르침’이라는 이름의 교육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설명하고 나누는 것 밖에는.

여행학교 동안 제일 큰일은 ‘밥 해먹는 일’이다. 그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이 밥하고 같이 설거지하고 같이 정리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접시 공양’이다. 개인 접시에 자기가 먹을 만큼만 음식을 덜어서 먹는데, 접시에 담긴 음식은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참 다행인 것은 여행을 다니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행학교 진행 과정 중에서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정해진 프로그램은 의논을 통해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는 같이 토론해서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중간에 생긴 문제들에 대해서는 늘 토론을 한다. 첫 여행학교 때는 ‘술 먹고 싶다’는 몇몇 아이들의 의견 때문에 2박 3일간 기나긴 토론을 한 경우도 있다. 먹을 거냐 말거냐, 다 먹을 거냐, 먹고 싶은 사람만 먹을 거냐, 어떻게 먹을 거냐, 언제 먹을 거냐 등.

11월 ‘풍덩! 세상 속으로’ 라는 주제로 진행된 ‘평화유랑단과 함께 하는 여행학교’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에는 ‘세상 속의 반전 평화를 영상과 문화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3번의 여행학교를 진행하면서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 것들은 ‘작은 아이들의 수동적 태도’와 ‘큰 아이들의 가르치고 통제하려는 태도’였다. 자유로운 소통의 관계를 위해서 서로를 친구처럼 부르고, 큰 아이들의 가르침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찾아가는 지역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했지만, 우리 모두에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습득되어진 ‘앉아서 배우고 쉽게 통제하며 가르치려는’ 교육의 못된 습관들이 남아있는 것을 내내 확인하곤 했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에는 ‘작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만드는 여행학교에 대한 영상과 ‘작은 아이들의 몸으로’ 말하는 반전 평화에 대한 몸짓, 노래 등을 우리들의 소통방식으로 삼아보았다. 그렇게 ‘영상과 문화로 소통하는 여행학교’가 시작 되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학교의 영상 만들기를 위해 ‘영상미디어 센터’에서 기꺼이 영상과 편집에 필요한 장비를 후원해주셨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그랬던가? 영상에 대한 사전 준비도 공부도 없이 저질렀던 일들을 ‘영상 미디어 센터’에서 주어 담아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_^)

11월 1일, 첫날. 광화문->경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에 여행학교에 참가하는 작은 아이들 12명, 큰 아이들 6명이 모여들었다. 몇 번씩 여행학교에 참가해서 익숙한 아이들과 처음 떠나는 여행학교라 쑥스럽고 어색한 아이들이 함께 모여 그 오묘한 부조화를 즐겨가며 첫 도착지 경주로 떠났다. 경주까지 긴 시간, 아이들은 영상교육을 담당한 ‘카메라아이’로부터 캠코더 사용법을 익히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의 어색함을 덜어갔다.

경주 ‘마음공부터-도리’라는 곳에 우리 여행의 첫 짐을 풀고, 여행학교에서 만나게 될 ‘평화유랑단’에 대한 이야기와 영상,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좀 더 서로에게 깊어지는 시간, 자기소개를 하면서 ‘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아는 평화를 어른들이 모르는 까닭은 ‘재기’때문이 아닐까? 계산을 하고 따지고 들다보면 평화는 깨지는 것이다. 그 진지하고 깊은 아이들의 평화에 대한 소리를 이 세상의 어른들 모두가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음표 ♡ 평화는 싸우지 않는다.
멀대 ♡ 평화는 사랑이다. 서로 이해하면 되기 때문에…
해리포터 ♡ 평화는 세상을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곰털 ♡ 평화는 행복이다. 행복할 땐 싸우지 않으니까!
오백원 ♡ 평화는 잔잔하다. 평화는 고요하니까!
가위손 ♡ 평화는 싸우지 않는 것!
로렌조 ♡ 평화는 생명이다. 말이 더 필요 없다.
빨대 ♡ 평화는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왕녀 ♡ 평화는 행복이다.
공주님 ♡ 평화는 천국이다.
미르 ♡ 평화가 계속되면 이 세상은 천국이다. 천국보다 더 좋을지도…
호러 ♡ 평화는 전쟁의 반대
바보 ♡ 평화는 누구나 원하는 데 누구나 쉽게 갖지 못하는 것!
서이 ♡ 평화는 한가로움
우주 ♡ 평화는 다 같이 배부른 것!
누리 ♡ 평화는 모든 생명이 고루고루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내가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평화가 되자.
카메라 아이♡ 평화= 군인도 집에 가고 싶다.
나루 ♡ 평화는 밥이다.

이틀 후에 만나기로 된 평화 유랑단을 만나기 전, 사전공부 차 영상교육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모두들 눈빛이 반짝이며 ‘카메라아이’가 알려준 대로 캠코더로 몇 컷을 찍어보고 환호한다.

11월 2일, 둘째 날. 경주

아침부터 영상교육이 시작되었다. 학교 방송반 부장이라고 자랑하는 ‘물음표’는 벌써 카메라아이와 ‘사장님’, ‘부장님’하며 장난을 친다. 경주 불국사와 쾌릉을 보러가서도 아이들은 영상을 찍는다. 경주 박물관에서 문화재 안내 도우미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성의껏 아이들에게 설명하려 했으나, 아이들은 영상 찍는 일에 빠져서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거기다 쾌릉의 넓은 잔디밭을 보자 아이들은 뛰어다니느라 정신없다. 이럴 때 큰 아이들은 안내 도우미 선생님께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을 작은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도리’ 선생님로 부터 ‘마음에 행복한 주문, 기쁜 주문을 외우자’라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잘 키우고, 평화를 잘 키우려면 자신의 마음에 행복한 주문을 외우는 것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하고 기쁜 주문을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주문 외우기’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 보인다.

영상편집을 할 수 있게 준비된 노트북 4대 주위로 몰려 앉아, 조금 복잡해보이면 금세 한 눈 팔고 딴 짓 하는 몇 명의 개구쟁이들도 함께 영상편집을 본격적으로 배워본다.

11월 3일, 셋째 날. 천성산

아침에도 영상교육을 한차례 하고나니 아이들이 조금 지치는 모양이다.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은 자꾸만 땡땡이 치는게 늘어나고, 중학교 1,2학년 아이들은 그래도 여전히 진지하다.

경주 도리를 떠나 지율스님의 단식으로 유명해져버린 ‘천성산’으로 갔다. 천성산을 오르면서 아이들은 사람들 인터뷰를 할 모양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천성산에 왜 왔느냐, 천성산에 터널을 뚫는다는 걸 알고 있느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등 천연덕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인터뷰하는 아이들도 있고, 쑥쓰러움에 남 인터뷰하고 있을 때 가서 몰래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 아이들도 있다. 내원사 스님과 인터뷰하려다가 거절당하기도 하고, 천성산 터널 뚫는 것에 찬성하신다는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논쟁하는 아이들도 있고, 캠코더는 끄고 딴 데 가서 노느라 정신없는 아이들도 있고.

천성산에서 내려와 지율스님이 다시 단식하고 계시는 부산시청 앞으로 갔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율스님 단식지지 문화제’에서 노래와 인사말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부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 건지, 누가 인사말을 할 것인지 논의 끝에 ‘미르’가 자원해서 인사말을 하기로 했다. 노래는 ‘아름다운 세상’을 ‘해리포터’의 리코더와 ‘미르’의 오카리나 연주에 맞추어 부르기로 했다. 여자와 남자의 음높이가 달라서 노래 연습이 쉽지 않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만나기로 약속한 평화유랑단과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허둥지둥 무대에 올라갔다. ‘저희는 평화유랑단과 함께 여행학교를 하며 반전평화에 대해 공부하러 온 학생들입니다’라는 미르의 깜찍한 인사말 뒤에 이어진 노래는 제각기 딴 소리로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노래를 마치고 문화제가 진행되는 중간에 아이들은 지율스님과 김재복 수사님, 평화유랑단의 보리, 그리고 거기 참가한 사람들에게 인터뷰하기에 바쁘다. 물론 노는 아이들도 있다.

부산 우리의 숙소인 ‘그루터기’에서 아이들이 나누어 자고 모처럼 큰 아이들이 모여서 여행학교의 운영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상에 대해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그냥 놀이처럼 즐기게 했으면 좋겠고, 영상교육은 편집보다는 아이들이 찍은 것을 서로 같이 보면서 의견을 나누게 하는 형태로 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영상을 놀이로! 그리고, 작은 아이들 중에 초등학생들과 중학생, 남자와 여자, 그리고 처음 온 아이들과 여러 번 참여한 아이들 간의 거리감이 아직도 존재하는 거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내일 밤에는 작은 아이들만의 전체모임을 갖는 시간을 만들어주자고 얘기했다. 그냥 아무 것도 의도하지 말고, 무엇을 하던지 상관하지 말고, 시간도 정하지 말고 자기들끼리 실컷 놀 수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보자는 얘기.

11월 4일, 넷째 날. 평화유랑단과의 만남

드디어, 아이들이 학수고대하던 평화유랑단과 인사를 나눈 날. 문정현 신부님과 평화유랑단 식구들(공작부인, 보리, 해밀, 팔공, 고철, 나무, 밥, 반지)과 인사를 하고 신부님의 이라크 이야기, 주한미군 이야기, 평화에 대한 이야기, 평화유랑단이 유랑을 하게 된 이야기, 요즘 진행되고 있는 전범민중재판운동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진지하게 듣는 아이들, 영상 찍으며 듣는 아이들, 가끔 조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후 밀양으로 가서 ‘반전평화’ 문화행사를 해야 하는 평화유랑단의 일정에 따라 함께 밀양으로 향했다. 몇몇 아이들은 밀양으로 가는 도중 여러 가지 구호가 담긴 피켓을 만들기도 했다.

문화행사에서 아이들이 노래와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평화유랑단의 요청으로 다시 노래연습이 시작되었다. 어제보다는 잘 해보자는 이야기와 함께 이야기는 곰털과 빨대가 하기로 했고, 다시 해리포터와 미르의 반주에 맞춰 노래연습이 시작되었다. 어제보다는 좀 더 자신있게 부르는 것 같았다. 밀양 시내 맥도널드 앞에서 평화유랑단의 꽃마차를 세우고 문화행사가 시작되었다. 공연 마지막에 평화유랑단과 함께 ‘앗살람 알라이쿰’을 부르며 아이들의 여행의 신명은 더해만갔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 작은 아이들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과자와 쥬스를 먹으며 뭐가 신나는지 큰 방 하나를 차지하고 온 집이 울릴 정도로 시끌벅적하다. 몇시에 잠이 들었는지 큰아이들은 잘 모른다.

11월 5일, 다섯째 날. 다시 경주로

오늘은 평화유랑단 일정에 맞추어 다시 경주로 가는 날이다. 아침을 먹고 평화유랑단의 보리와 고철과 함께 노래를 배우는 시간을 마련했다. ‘앗살람 알라이쿰’, ‘아름다운 세상’ 등을 부르는데 ‘앗살람 알라이쿰’의 후렴 ‘전쟁을 반대해’ ‘평화를 사랑해’를 부르거나, ‘얼굴 찌뿌리지 말아요’를 몸짓과 함께 할 때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들이다. 역시나 그 사이사이에 영상으로 모습을 기록하는 아이들도 있다. 노래 배우고 난 후에는 아이들과 모둠별로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에 대한 말을 만들어 자기의 피켓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나에게 평화가 무엇인지’ 다시 아이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몇 시간 후, 아이들의 아름다운 피켓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의 언어와 정말 다르다.

경주에서 감포 쪽으로 우리가 묵을 숙소 ‘우리문화학교’라는 폐교에 도착했다. 장승과 가마실이 있는 작은 운동장과 1층짜리 학교 건물이 작은 분교였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오자마자 축구한다고 야단들이다. 지는 팀이 저녁 밥 하기라고 한다. 여자아이들이고 남자아이들이고 큰아이들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축구에 끼어들었다. 축구에서 진 팀의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난 후,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고 난 아이들은 졸린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은 영상교육이 있는 날. 그동안 찍었던 것들을 보면서 각 팀별로 영상 편집에 들어갔다. 중간 중간 빠르게 영상편집을 한 ‘곰물대파’가 완성한 영상을 보았다. 제목은 ‘도롱뇽을 살리자’ 10여분짜리를 잘도 만들었다. 그걸 보자 아이들은 경쟁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일정이 더해갈 수록 영상에 관심을 잃던 몇몇 아이들도 영상 편집을 하겠다고 나선다. 카메라아이는 영상편집을 열심히 해서 내일 다시 보자고 한다. 그렇게 영상편집을 하는 동안 다른 일정이 있던 평화유랑단이 돌아오고, 우리문화학교, 대구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극단 분들이 오셨다. 운동장 주변에서 삼겹살 숯불구이 파티가 벌어졌다. 한밤의 파티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몇몇 아이들은 돌아가는 막걸리에 한 모금씩 마시기도 한다.

11월 6일, 여섯째 날. 평화유랑단과 함께하는 마지막 날.

오후 2시부터 첨성대 앞에서 ‘생명평화나눔’ 잔치 마당이 벌어졌다. 경주에 있는 여러 단체들과 주민들이 모이고, 평화유랑단과 다른 출연진들이 공연을 갖는 날이다. 아침부터 햇살 좋은 운동장에 빙 둘러앉아 평화유랑단 보리와 고철과 함께 ‘앗 살람 알라이쿰’과 ‘아름다운 세상’을 불러댄다. 보리가 락커처럼 큰 소리로 부르라고 하는 말에 아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에 바쁘다. 앗살람 알라이쿰을 미르와 해리포터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동안 문정현 신부님과 공작부인이 깡통과 나무를 들고 주변을 돌면서 노래에 맞추어 난타를 한다. 거기에 더 신명이 난 아이들의 노래에는 행복과 웃음이 묻어난다.
아! 이 자체가 평화가 아닌가!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만든 피켓을 들고 첨성대에 도착했다. 너른 잔디밭에 평화유랑단 차가 무대를 차렸다. 주변에는 어디서 오셨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신다. 오늘의 인사말은 왕녀가 하기로 하고, 아이들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점점 일취월장하는 아이들. 이제는 제법 능숙하다. 미르와 해리포터의 반주도, 아이들의 노래도, 왕녀의 인사말도. 그렇게 공연을 끝낸 후 아쉽지만 평화유랑단과 그 자리에서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아쉬움을 남긴 단체사진 한 장과 함께.

숙소로 돌아와, 마지막 영상 편집을 시작했다. 처음과 달리 아이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꼼짝도 안하고 앉아서 편집에 몰두한다. 며칠 전만 같아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좀이 쑤셔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장난치고 했을 아이들이 자신들의 최종 작품에 대해 열의를 다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것도 거의 ‘자발적’으로. 밤 11시가 넘어서 4팀의 작품이 다 완성이 되었다. ‘곰물대파’의 작품, ‘공주파’의 작품, ‘가위손과 로렌조’의 작품, ‘오백원과 해리포터’의 작품. 아이들의 작품을 상영하며 모두들 신기한 선물을 받듯이 좋아했다. 우리가 함께 1주일을 보내면서 만들어낸 우리들의 이야기들.

11월 7일.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에 본격적인 영상편집과 상영회를 위한 후속일정을 잡았다. 11월 20일-21일, 서울에서 만나서 그동안 찍어놓은 긴 영상물을 새롭게 다시 편집해보고, 상영해보기위한 시간이다.

이렇게 또 한편의 여행학교가 끝을 향해 간다.

누군가는 여행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얻기 바라느냐고 묻는다. 여행학교에 정답은 없다. 우리는 정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함께 하는 동안 자신의 그릇만큼, 자신이 쏟는 마음만큼, 자신의 시선만큼 자기 스스로의 답을 얻어갈 것이라 믿는다. 자기의 정답을 찾아갈 것이기에, 아이들이 여행학교 기간 동안 훌쩍 커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그것이 늘 아이들과 함께 다시 길 위에 서는 이유이다.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다만 안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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