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문화재단 시범사업 현장 둘, 생활 속에 진주를 만드는 수업

글_ 조성희(본지 편집부), 사진_ 박해욱

겨우내 어깨를 움츠린 채 종종걸음 쳤던 기억을 저 멀리로 보내고 가로수마다 물오르는 소리가 한창인 봄날. 부천의 일신중학교를 찾아갔다. 이 곳에서는 부천문화재단의 학교 안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교실 풍경 셋
학교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부천문화재단의 이나영 연구관과 함께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을 찾았다. 제일 먼저 들어간 시각예술 수업은 지난 시간에 작업했던 마블링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여는 중이었다. 2명의 강사가 진행하는 이 수업에선 내 주변과 생활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미술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다. 작업할 때의 감정과 기분이 어떠했고, 왜 이런 색채를 사용했는지 발표하는 시간. 보라색으로 마블링한 종이를 든 남학생은 “전 지난번 이 마블링 작업을 할 때 기분이 별로였어요. 그래서 보라색으로 그걸 나타낸 거예요.”라고 제작의 변을 설파했다. 다른 여학생은 “전 기분이 정말 좋았거든요. 화사한 노란색이 떠올랐는데, 아마 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라고 이야기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주저하는 기색 없이 자유롭게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무용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체육관에선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매트에 누워 스트레칭이 한창이었다. 우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강사의 질문에 몸으로 대답하는 연습을 한다. 자신의 몸 언어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사물, 이미지,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진지하게 임한다. 이어서 모둠별로 계절을 표현하는 짧은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로 하고 5분간 안무를 짜도록 했다. 아이들은 어느 계절을 표현할지 정하고 몸으로 낙엽 표현하랴, 눈송이 표현하랴 이리저리 몸을 틀어대느라 바쁘다. “다정스럽게 지나가는 연인을 보고 쓸쓸해하는 선생님(무용강사)을 표현해서 가을이라는 걸 나타내면 어때?”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살짝 엿듣다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멀리서부터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오던 문화기획반에 들어서니 오늘은 간이 벼룩시장과 경매가 열리는 날이란다. 각자가 가져온 물건을 사고팔며 흥겨운 축제를 벌인다고 한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쪽엔 푸짐한 먹거리와 마실거리도 마련되어 있다. 친구가 여행을 다녀와 선물한 작은 배지, 따분한 시간을 해결해줄 판타지소설, 손때 묻은 곰인형 등 가지각색의 사연을 담은 물건들이 좌판에 나왔다. 드디어 개시! 모둠마다 장사꾼 역할을 하는 학생들은 파티용 모자를 쓰고 입을 열심히 놀리며 팔 물건들을 신나게 홍보한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간판을 꾸민 모둠도 있다. 여기저기 좌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생들은 떠들썩한 만남을 갖는다. 문화기획반은 이렇게 일상을 축제처럼, 생활을 파티처럼 만드는 다양한 과정을 경험하는 수업이다. 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문화예술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몸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을 배우는 무용수업

교사와 강사, 파트너가 되다
‘창의적 재량활동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수업들에는 일신중학교 2학년 320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매월 두 번째와 네 번째 화요일 5,6교시에 이뤄지고 재단에서 파견하는 전문 강사들이 진행한다. 학교 측에서는 올해부터 꾸려진 문화예술교육부 소속 교사들이 이 시간을 담당한다. 2학년 담임교사들로 구성된 문화예술교육부는 원활한 수업진행을 위해 강사와 학생들을 연계해주는 역할, 준비물, 강의실 준비, 각종 기자재 문제 그리고 강사 대기실관리와 수업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이미 겨울방학 동안에 재단이 주최한 자리에서 강사들과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각 학교 교사들이 만나 사업내용, 목표, 교육방향,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강사들은 추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좀 더 수월하게 매달릴 수 있었고 교사들은 새로운 교수법을 타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매달 한번씩 교사와 강사들 간의 간담회를 통해 수업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보완점과 요구사항들을 전하면서 적극적인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날도 수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짧은 만남의 시간을 마련했기에 그 자리에서 학교 측 담당자인 송일영 교사와 문화기획반 임지선 강사에게 수업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을 물어봤다.

간이벼룩 시장이 한창인 문화기획 수업

일신중학교 연구부장 송일영 교사에게 듣다

이 수업에 대한 학교 교사들의 반응과 평가는 어떠한지요?
저희 학교 교사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에요. 우선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활동을 제시하고 유익하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요즘처럼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서 11시에나 집에 오는 학생들에게 문화예술과 관련된 활동과 수업은 생활 속에서 진주를 만드는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이 수업을 통해 교사들은 자신의 교과수업을 많이 돌이켜보고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수업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며 그 방법 면에서 많은 것들을 얻었다는 이야기들도 나오고요. 교사동아리 활동(연구모임) 등을 통해 새롭게 익히고 눈뜨게 되는 여러 가지가 있거든요. 물론 교과수업에의 적용은 각 선생님들의 몫이겠지요.
하지만 2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든 기자재의 지원을 받아 운영이 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보면서 우리 교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시기도 합니다. 일반수업에선 그런 조건들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우니까요. 그런 환경에서 수업해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요.

또, 교사의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선은 이 수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2학년 담임선생님과 창의적 재량활동 담당 선생님들의 역할이 많이 중요하거든요. 가령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을 경우에는 수업이 온전히 실시되기가 어렵잖아요. 작은 부분이라도 그러한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교사들이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해요. 이를 각 교과 수업으로 응용할 수 있는 적극성도 따라야 할 테고요.

이 수업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창의성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창의성 뿐 아니라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익히는 기회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학생들이 문화예술을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삶 속에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모두가 기대하는바 일겁니다. 향후의 계획은 현재 이 창의적 재량활동수업을 문화예술교육 관련 방향으로 계속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현재는 부천문화재단에서 실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본교 교사의 몫이 될 테니까요. 창의적 재량활동이 현재 교육과정에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고 교사가 바톤을 이어받아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교사 동아리 모임 등을 통해 연극, 영화 관련 수업을 활성화시키는 작업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과 고민이 있으시다면?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에게 항상 문화예술적인 활동이 너무 없다는 생각만을 하면서 그 해결방법이나 문제의식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을 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을 학교 밖에서만 해야 하는 것 혹은 교사의 몫이 아닌 것으로 여겨온 것은 아닌가 반성도 했지요. 학교 학생을 위한 더 좋은 일이라면 교사가 앞장섰어야 되는데 말입니다. 고민이 있다면,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이 너무 어렵다는 거죠. 우선은 기자재문제나 수업의 정원입니다. 40명(격주로 20명씩)이 되는 현실에서는 발표며, 토의 등 어려운 점이 많거든요. 또한 현재 한 반의 학생이 수업을 2주에 한번 듣는 꼴인데, 2주에 한번은 수업의 효과성 측면에서도 많이 떨어질 수 있죠. 또한, 준비물 등의 문제로 난감한 경우도 많고요. 학생들이 우리들의 기대만큼 철저히 준비를 해오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준비했다 나눠주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긴 한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더 큰 것까지 바란다면 앞으로는 다른 학교 밖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행인 점은 우리 부천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청소년을 위한 지원도 많고 활용 가능한 문화예술공연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든 홍보용 간판

문화기획수업 임지선 강사에게 듣다

문화기획(생활파티만들기) 수업의 내용과 특징을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요? 또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인지요?
문화기획수업은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 발표하는 발상수업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에만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어,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을 어려워 하죠. 그래서 ‘파티’ 라는 소재를 빌어서 타인과의 의사소통, 자신의 생각 자유롭게 말하기, 표현, 발표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경험해 봅니다. 여기서 ‘파티’라는 것은 흔히들 생각하는 파티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건데요. 우선은 ‘파티라는 것이 특별한 사람, 특별한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의 파티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겠죠. 간이 벼룩시장, 한 접시 파티 등의 수업 내용을 통해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수업의 목표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삶에 좀더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 있는 계기가 조금이나마 생긴다면 이 수업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된 것이고요.

이전에도 다른 형태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부천문화재단의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는 수업과 이전의 수업이 다른 점이 있을까요?
전에 하자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하자센터와 학교는 조금 다르지만, 학교교육 특성상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발성이라는 측면이 다소 부족한 것을 자주 느끼고 있습니다. 강사가 가르쳐주어야만 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참으로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는지요?
기획이라는 수업자체가 생각이나 토론이 주가 되는 정적인 수업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부분이 좀 덜한 편인데요, 프로그램의 효과적인 전달방법이 가장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수업에 배정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는 없다보니 3지망까지 선택을 하게 했어요. 온전한 자율적 선택으로 수업을 들었다고 보기 어렵죠. 그러다보니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거나 하는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도 생기더라고요. 이 아이들도 수업에 끌어들여서 같이 가려고 이런저런 방안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주 간격으로 수업이 진행되다보니 아이들도 준비물을 잊고 안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학교 측의 준비물 공지가 가끔씩 늦어져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요. 공간이나 시설, 기자재가 잘 갖춰져 있긴 하지만 프로그램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이번 수업에 대해 기대하시는 바가 있다면요?
우선은 이 수업을 통해 공교육과 학교 밖 문화예술 전문가들의 결합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 모색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교육과 문화예술이 결합하여 학생들의 창의성을 개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방향과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삶을 적극적이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실천이기에 더욱 반갑다.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질 그 무엇
현장에서 만나본 교사들은 이 수업들로 대단하고 획기적인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아이들의 삶을 적극적이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실천들을 반가워하고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위한 좋은 일이라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겠다는 의지도 느껴졌다.
아주 잠깐씩 수업을 본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학생들의 천진한 웃음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문득 내가 봤던 그 수업들이 아이들의 삶에 얼마나 많은 흔적들을 남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움과 얼마 되지 않은 잗다란 기쁨으로 수놓인, 인생이라는 긴긴 시간을 인내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인생을 인내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의 원천은 어린 몸과 마음에 깊숙이 아로새겨진 그 무엇이다.”(서경식, <소년의 눈물>) 어느 산문의 이 구절처럼 오늘의 수업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무엇인가를 아로새겨준 그런 것이 되었을까 궁금하다.

조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