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있는 교실 속으로 고고! – 제주연극교사모임 ‘책상밀락’

정용문(제주연극교사모임 회원, 제주중학교 교사)

2001년 2월, 교사를 위한 연극연수에 참여했던 제주지역 교사들이 모여 만든 ‘책상밀락’은 연극연수를 받으면서 느낀 즐거움과 행복감을 딱딱하고 닫혀있는 교실 속에 펼치고, 그 즐거움과 행복감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시작됐다.

책상을 밀어내고 즐겁게 놀자
모임의 이름인 ‘책상밀락’은 ‘책상 + 밀(다) + 락’이 모여서 이뤄진 말이다. ‘책상’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실을 말하고, ‘밀(다)’는 책상을 밀어낸 공간, 또는 책상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놀이를 한다는 의미이다. ‘락’은 ‘즐겁다’라는 한자 ‘樂’을 뜻하기도 하고, 제주어로 놀이를 할 때 ‘함께 하자’라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즉, 책상을 밀어낸 교실, 그 넓어진 공간에서 아이들의 생기발랄한 몸짓과 활짝 웃는 모습을 꿈꾸며 그것으로 즐거운 학교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우리의 취지와 지역성을 같이 살릴 수 있는 이름이다. 연극으로 즐겁고 신나는 교실, 살아있는 교실을 꿈꾸며 책상밀락은 두 가지의 기본 방향을 정하고 출발했다.
첫째, 교육 현장에서 연극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을 실천하는 방안으로 다양한 연극놀이 및 즉흥극을 개발, 교과에 적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발표력 및 창의성을 높이고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데 뜻을 두었다.
둘째, 연극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다. 연극을 관람하고 학생들에게 연극을 지도하는 것 뿐 아니라, 직접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스스로 연극의 즐거움을 느끼자는 것이다. 매월 둘째, 넷째 주 월요일 2회의 정기모임을 진행하며, 이론서 강독, 연극 놀이, 즉흥극 등을 중심으로 교과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그것을 교육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즐거운 수업, 즐거운 교실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학교에서 연극반 동아리를 조직하고 지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함으로써 연극의 활성화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들, 동료교사들 그리고 학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정기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시로 연극을 만들다
대개 중학교 남학생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시 읽기를 싫어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를 극으로 만들어봄으로써 시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목적을 두고, ‘시(詩)를 이용한 극 만들기’ 수업을 진행해봤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하느냐, 어렵다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본 수업을 하기 전에 연극놀이를 통해 마음 열기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우선 아이들에게 정지 장면을 이용한 간단한 동작들을 직접 몸으로 움직이면서 시범을 보였다. 아이들은 깔깔 웃기도 하고, 호기심으로 쳐다보다가 몇 가지 동작이 끝나자 처음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하려고 하지 않다가 다른 친구들의 열광에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몇 장면이 진행되면서 처음의 어색함이 다소 사라졌다. 깔깔 웃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려 애를 쓰고, 자기 방법을 찾기 위해 서서히 질문을 하며 진지한 장면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난 뒤, 본 수업에 들어갔다.
극을 공연하는 날. 아이들은 컴컴한 교실 뒤쪽에 오밀조밀 앉아 있다. 음악이 켜지고, 교실 천장에는 OHP 불빛과 함께 인쇄된 시가 비춰진다. 시 낭송이 끝나면, 음악이 꺼지는 동시에 형광등 조명이 켜진다. 조명이 켜진 앞쪽이 무대가 된다. 무대에서는 낭송한 시를 이용한 극이 펼쳐진다. 무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고 낄낄거리기도 하지만 공감하는 박수도 잊지 않는다. 이러한 형식으로 모두 6편의 시를 감상하고 나면 아이들은 시와 연극의 친구가 된다. 아이들에게 시간과 공간과 방법을 마련해 주면, 한 편의 시를 감동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발견! 연극의 힘
극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평가다. 관객인 아이들에게 평가지를 나눠주고 수위를 차지한 세 팀을 뽑아 상품을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수업 시작부터 지금까지 느낀점을 쓰게 했다. 이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제법 할 말이 많다. 계획에도 없는 주연상을 뽑자, 다시 공연을 하자, 몇 조 공연을 다시 하게 해 달라, 다른 학급 공연도 보자 등등…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와, 이거구나’라는 행복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리고 몇 가지 기쁨을 더 느낄 수 있었다. 평상시에 말이 없고 친구들과 친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아이들에게 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연극을 통하여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체득하는 장면이며, 연극이 갖고 있는 소리없는 힘이라 여겨진다. 또한 시의 내용에 어울리는 음악이나 소품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학생들의 기발함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을 끌어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확인했다.

연극을 통해 즐겁고 신나는 교실을 꿈꾸자는 취지로 책상밀락에서는 교사를 위한 연극연수를 마련하고 있다.

연수를 통해 나누는 것들
이처럼 교과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주도내 선생님들과 함께 모색하기 위해 책상밀락은 제주교사를 위한 연극연수를 주관하고 있으며, 이는 책상밀락의 중요한 활동이기도 하다. 지난 2001년 8월, 충남 부여에서 열린 전국연극연수에 참가했던 무법의 동침자(김윤자, 이인구, 최영희, 정용문, 강희정) 5명이 주축이 되어 ‘하자’는 의지 하나만으로 이듬해 1월에 ‘교사를 위한 연극연수’를 마련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 연수를 통해 우리의 의지만큼이나 뜨거운 갈채와 함께 모임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고, 우리와 함께 할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후로 매해 1월 중에 연수를 실시하여 제주도내 초?중?고 선생님들이 교육연극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많은 교사들이 교육연극에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제주라는 지역적인 한계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각종 연극연수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책상밀락에서 마련하는 연수가 더욱 의미있는 일로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전국교사연극연수(여름, 겨울) 및 워크숍에 참가하여 각 도의 지역단위 교사연극모임과 연계하면서 교육연극에 대한 고민과 자료를 공유하기도 한다. 매년 1~2회에 걸쳐 강사를 초빙해 자체 워크숍을 실시하는 등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인천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백인식 선생님(책상밀락의 창립부터 꾸준한 관심과 아낌없는 조언으로 힘을 실어주고 계신 분)이 맡아준 연극놀이와 즉흥극, 연극반 운영, 교육연극의 동향에 대한 강의를 비롯해, 부산 ‘조명이 있는 교실’의 강병용 선생님과 함께 한 대본공동창작과정 워크숍, 연극의 다양한 기법들을 소개함으로써 지금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진의 강의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연극원 교수들이 제시한 내용 가운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아기 장수 우투리>라는 설화 작품에 적용하는 방법을 소개한 것이 있어서, 다른 문학 작품도 이런 방법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힘을 얻게 되었다.

선생님, 우리 연극해요
책상밀락은 교사들이 체득한 것들을 직접 연극으로 공연함으로써 즐거움을 맛보자는 기본 취지를 살리면서 학교의 현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바람직한 학교 문화를 창조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격년제로 정기 공연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기 공연 2회를 비롯해 모두 4회의 공연을 하였다. 2003년 2월 <그 학교>, <대박이의 꿈> 두 편을 무대에 올린 제1회 정기 공연을 시작으로, <개(開) 꿈>이라는 작품을 선보인 2004년 12월의 제2회 정기공연 등을 통해 아이들과 동료교사들, 그리고 학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공연을 하면서 지켜본 선생님들의 열정은 감동받기에 충분했다. 학교일이 끝난 저녁에 연습을 하곤 했는데, 연습을 하다보면 피곤한 기색들은 간 데 없고 어느 순간에 모두가 자기 역할에 빠져있었다. 그러기에 공연이 가능했던 것이리라.
나 역시 공연을 통해 새로운 이름(?)과 즐거움을 얻었다. <개 꿈>을 공연할 때, ‘철수’(중학교 3학년 학생) 역을 맡았었는데 지금도 그 연극을 본 분들이 이름 대신에 ‘철수 선생님’이라 부른다. 대체 몇 살이냐는 질문도 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자아도취에 빠진다. 이처럼 연극은 사람들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며, 젊게 살아가는 즐거움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연극 놀이를 한다든가 즉흥극 또는 짧은 극을 할 때, 처음에는 “어떻게 해요”하며 볼멘소리를 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곧잘 따라한다.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 우리 연극해요”하며 신나한다는 여러 선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연극의 다양한 기법들에 대한 강의와 워크숍 등을 통해 교사의 전문성을 도모하고 교과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궁리한다.

숙제들, 그리고 계획들
모임을 하다보면 물론 어려움도 많다. 개인적으로 힘든 것들은 믿음으로 또는 행복함으로 해결되지만, 학교에, 교실에 연극을 도입하고 한 편의 연극을 공연할 때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재정적 지원이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모이는 모임 장소는 여기저기 찾으면 가능하지만 공연을 위한 연습 공간, 연수나 워크숍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공간이 있지만 그 비용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우리 같은 모임에서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섣불리 계획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전문 인력을 초청하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것들은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환경이 열악할수록 더 많은 관심과 인적, 물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상밀락의 계획은 소박하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매월 2회의 정기 모임에서 연극 놀이와 즉흥극을 중심으로 교과에 적용할 수 있는 자료를 개발하고, 매년 2회의 자체 워크숍을 실시할 것이다. 전국연수 및 워크숍에 참가하여 회원들의 전문성을 살리는 일도 있다. 또한 격년제로 정기공연을 실시하고, 정기공연이 없는 해에는 참교육실천발표 제주대회 때 짧은 극 공연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매해 제주지역 교사를 위한 제주교사연극연수를 실시하여 도내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계속적으로 추진해나가려 한다.

들꽃같은 열정으로 채워간다
<교육과 연극>이란 책에 책상밀락을 소개하면서 다소곳하게 피어있는 쑥부쟁이를 비롯한 오름(峰) 줄기 줄기에 피어있는 들꽃들로 비유한 적이 있었다. “거창하지 않아서 좋다. 들꽃 같은 다소곳함, 그러나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뜨거움이 다소곳하게 찾아왔다.”
책상밀락은 이렇게 시작했다. 다소곳하지만 뜨거움으로. 책상밀락은 작다. 그러나 그 속에 숨어있는 열정은 크다. 그리고 그 열정을 쏟아내는 선생님들은 너무나 행복하다.

홈페이지:jejutheater.njoyschool.net

정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