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찾아가는 박물관 교실에서 만져보는 유물, 숙대박물관 청소년 교육센터

학교로 찾아가는 박물관 교실에서 만져보는 유물, 숙대박물관 청소년 교육센터

홍경아(숙명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청소년 교육센터를 열다

1971년 종합박물관으로 설립된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이하 숙대 박물관)은 특별히 여성생활사의 연구와 전시에 주력해왔다. 현재는 정영양자수박물관을 비롯하여 조각가 문신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문신미술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청파갤러리 등의 시설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 공간들은 대학 내의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일반인에게도 열린 문화공간으로서 전시와 공연, 세미나, 전문서적과 영상자료 등을 만날 수 있는 문화예술 체험의 장이기도 하다. 숙대 박물관은 1995년부터 ‘청소년 교육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해 2005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공교육 프로그램을 공동개발하고 있으며 용산구의 박물관 문화 벨트 계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 교육센터를 구상하게 된 것은 1994년 박물관을 특성화키기 위해 해외의 박물관들의 사례를 조사하는 작업을 하면서부터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영국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일본의 국립도쿄박물관 등에서 참고가 될만한 사례들과 자료들을 찾았다. 특히 퐁피두 센터의 어린이 아틀리에와 어린이 프로그램인 ‘라르또 (L”Artot)’는 놀이를 통해 교육적인 경험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미술교육에 관계된 사람들의 만남과 연구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점에서 청소년 교육센터의 체계와 기틀 마련을 위한 가이드를 제시했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과 국립도쿄박물관의 어린이 감상용 교재 또한 심도 있는 연구 성과와 고민을 담고 있어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되었다. 이런 조사 과정에서 놀라웠던 것은 해외 박물관 미술관들이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에 오랜 전통과 성과를 갖고 있으며, 풍부한 예산을 문화예술교육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우리나라의 작품을 가지고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외국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할 수는 있으나 그것들은 그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연구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거나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참여하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세 가지 원칙

청소년 교육센터의 설립취지는 ‘문화와 마주보며’, ‘함께 참여하며’, ‘싹트는 박물관’이다.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거나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청소년 교육센터를 운영하면서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교육의 원칙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아이들에게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질문하며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각 프로그램들은 시선의 흐름에 따라 호기심을 하나하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예술이 깊숙이 들어와 그것에 익숙해진다.

두 번째 원칙은 활동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활동적인 교육이 놀이가 되고, 그것이 유물과 작품을 발견하는 방법이 된다면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학문적인 설명이나 기술적인 방법이 아닌 자연스러운 체험과 정서를 바탕으로 한 예술교육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세 번째는 연계교육의 모색이다. 관심의 대상을 찾아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것이 아이들 각각의 개성과 어우러져 창의적인 표현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생활 태도로 길러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 연계한 교육이 필수적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이 박물관의 자화상

박물관은 먼지 나는 옛날 창고가 아니라
창조적인 영감을 주는 곳이다.

1995년 숙대 박물관이 청소년교육을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생겼다.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양적인 팽창과 함께 거의 모든 곳에서 비슷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각의 박물관 미술관에는 그곳 소장품만의 특성이 있고 이에 따라 어린이 교육 역시 특색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부분이 미흡한 느낌이다. 선택과 경험의 기회를 넓힐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의지가 아쉽다.

지난 10여 년간 숙대 박물관 청소년 교육센터에서 개발한 프로그램들은 우리의 소장 유물과 작품의 특색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예컨대, 풍부한 자수컬렉션을 바탕으로 고안했던‘나만의 흉배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은 흉배에 표현된 전통문양에 대한 이해를 돕고 아이들 각자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상징물을 만들어 새로운 문양의 의미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현재 전시중인 <디자인을 위한 영감> 전의 경우 비비안 탐(Vivienne Tam), 리처드 사하(Richard Saja) 등의 현대 복식디자이너들의 고전 모티브 활용에 대한 실례를 영상을 통해 교육하고 있다.

나름의 특색을 살리는 박물관 미술관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대상의 연령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 과거와 현대의 만남과 같은 시공을 초월한 교육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박물관이 먼지가 나는 옛날 창고가 아니라 현대인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주는 이미지의 원천이자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보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실을 바꾸는 시간여행

현재 우리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학교 교육과 연계한 박물관 교육이다. 교실이 박물관이 되고 박물관이 놀이터가 되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이를 위한 연구와 사례 조사 끝에 다수의 전통유물과 자수컬렉션을 갖고 있는 우리 박물관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참고 프로그램을 찾았다. 미국 뉴어크 박물관(The Newark Museum)의 아웃리치 프로그램(Outreach Program)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 교사를 위한 체계적이고 철저한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15,000점 이상의 대여유물이 16종류의 컬렉션으로 준비되어 교실을 찾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형태의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개발해 2000년 부천문화재단과 함께 부천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해 시범운영을 해보았다. 박물관 소장품으로 꾸려진 대여유물상자를 만들어 교육담당학예사가 직접 학교로 찾아가는 형태였다.

부천은 시 차원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많고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지만 기존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영화나 음악(부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시립교향악단 등)에 비해서 박물관, 미술관 부분에서는 다소 취약했다. 찾아가는 형태의 박물관 교육은 이러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한편, 박물관의 미래 관객들에게 문화의 동반자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일깨워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박물관과 지역의 연계를 위한 적극적인 모색을 시도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들을 수 있었다.

대여유물이 들어있는 ‘교실을 바꾸는 시간여행’

이 프로그램은 이후 ‘교실을 바꾸는 시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비되었다. ‘전통공예와 예술’, ‘현대미술 맛들이기’두 가지 테마를 잡았고, 대여유물이 들어있는 ‘시간여행 상자’를 이용해 교육용 유물, 소장품을 직접 만져보고 토론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인솔자(각 기관, 학교 등)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미디어 자료 및 교육 지도안도 함께 준비했다. ‘전통공예와 예술’은 무엇에 썼던 물건일까, 아름다운 우리문양 등의 9가지 주제로, ‘현대미술 맛들이기’는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전시 만들기 등 4가지의 주제로 총 13개의 상자를 마련했다. 무엇보다도 시간여행상자는 박물관 진열장 밖에서도 유물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용이하게 제공했고 학생들로 하여금 박물관에 찾아가고 싶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박물관을 놀이터로 삼는다면

하지만 교실을 바꾸는 시간여행은 그 후로 교실로 여행하지 못했다. 예산이 문제였다. 학교의 교비로 운영하는 사립대학 박물관의 예산으로는 우리나라의 교실을 도저히 바꿀 수 없었다. 고군분투하며 의욕적으로 시작한 아웃리치 프로그램이었기에 절망감이 컸다. 부천지역 시범운영을 하며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고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많은 곳에서 활용되려면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고 사업을 꾸려야 할 것이다. 훗날 교실을 바꾸는 시간여행이 꼭 다시 시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는 이때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공교육 연계프로그램을 공동개발하고 있다.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비롯해 교사를 위한 사전교육 상자를 제작하고 방과 후 교실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위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지역의 문화기관과 학교가 동반자가 되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의 교육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학생들 또한 지속적인 관람자로서 박물관을 형성하는 일부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끝으로,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박물관과 미술관에서의 문화예술교육만큼은 교육이나 학습이라는 말로 아이들을 미리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정보를 주려고, 체험케 하려고 욕심내는 교육자가 아니라, 박물관의 중요한 관람자에게 도움을 주는 도우미로 또 미래를 위한 파트너로 ‘함께 놀기’를 했으면 좋겠다.

홈페이지http://museum.sookmyung.ac.kr

홍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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