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도 교과서도 교사가 만든다고? – 전국미술교과모임

문:편집부/ 답:조중현(전국미술교과모임부회장, 개웅중학교 교사)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온 것이 역력한 상기된 표정으로 선생님들이 한명씩 등장한다. 오늘 오기로 한 인원을 확인하고 발표자가 곧 자신의 수업을 소개한다. 수업소개가 끝나면 다른 선생님들의 질문이 쇄도한다. 처음엔 조심스런 궁금함의 표현이었다가 어느새 격렬한 토론이 되고 가끔은 각자의 수업에 대한 진실게임이 된다. 그렇게 3시간, 4시간을 아니, 때로는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모임이 이어진다. 공부하는 미술교사! 어쩐지 낯선 ‘공부하는’과 ‘미술교사’의 조합은 ‘전국미술교과모임’(이하 전미교)의 대안교과서 연구 작업을 지켜보면서 이내 떨쳐버려야 할 편견이 돼버린다.

‘공부하는’과 ‘미술교사’의 조합이 어쩐지 낯설다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전국적인 미술교사들의 교과연구모임인 전미교는 개별 혹은 공동의 수업연구를 중심으로 활동해오다가 최근 미술교육을 시각문화교육으로 확장하는 대안적 미술교육과정과 교과서 연구개발 작업을 하고 있다. 전미교와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이하 문화연대)가 공동으로 개발한 시각문화교육 내용체계를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3개의 팀이 꾸려져 한달에 1~2차례씩 각자의 수업을 펼쳐놓고 수업비평을 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갖는다. 이를 추려서 다시 1년에 2~3차례 1박 2일의 대안교과서 회의도 한다. 여기에는 교사뿐만 아니라 문화연대 시각소위원회의 전문가 집단(미술평론가, 작가, 관련 활동가 등)이 결합하여 생각을 자극한다.

하나의 교안을 구성하기 위해 교사들은 혼자 여러 권의 책을 읽기도 하고 소모임을 이루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낸다. 하나의 교안을 환경이 다른 학교에서 순차적으로 적용하면서 일반적인 모델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작업 모두가 교사 스스로를 발전으로 이끄는 동시에 미술교육의 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과정이기에 교사들은 신이 나서 더 힘을 낸다. 전미교의 초기 멤버이면서 부회장인 조중현 선생님을 만나 전미교의 역사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안교과서 작업의 의의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시작, 그리고 최초의 학생 작품전을 열다
1986년에 시작했으니까 20년이 됐군요. 당시는 사회 각계각층의 억압되었던 욕구가 분출하던 시점으로, 교사들의 자발적 모임들이 결성되면서 교육운동의 맹아가 막 싹트는 때였지요. 미술계에서는 민중미술, 리얼리즘 미술이 활기를 띠고, 여기에 참여하고 있던 미술교사들을 중심으로 미술교육의 본질을 찾으려는 움직임들이 있었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10여 명의 미술교사들로 구성된 ‘미술교육연구회’가 결성되었지요. 삶과 유리된 학교 미술교육을 극복하고,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표현방식을 최대한 발현시키자는 취지였어요. 거기에 걸맞는 새로운 교수 학습 패러다임을 들고 대안을 모색하는 공부가 시작됐던 겁니다.
1987년엔 수업연구 성과를 모은 학생작품전을 열었어요. 인사동에 있던 화랑 ‘그림마당 민’에서 있었는데, 관객으로 온 일반인들과 젊은 화가들에게 기대 이상의 반향이 있었죠. 한 화가는 붓을 꺾겠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껏 진솔하게 자기 삶을 표현하지 못했던 작가들로서는 솔직한 아이들의 그림이 충격이었고, 또 자신의 작업이 부끄러웠던 거지요. 주머니 돈을 털어 두 번인가 더 전시회를 했는데, 매번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소통되는 의미 있는 작업이구나, 이게 얘기가 되는구나’ 확인하는 자리였지요. 입시에 치이고 기능중심 미술교육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였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이들도 놀랬고 선생님들도 크게 고무 되었지요.

뻗어나가기
시간이 지나면서 멤버들 중에는 교직을 그만두고 전직 작가가 되거나, 아예 본격 교육운동에 전념하면서 모임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1989년 교사 해직 사태로 전국에서 20여 명의 해직된 미술교사들이 모임에 결합하게 되고, 이듬해에 드디어 ‘전국미술교과모임’이란 이름으로 모임이 출범하게 됩니다. 회지 <신나는 미술시간>도 이 때 처음으로 발간했고, 같은 이름의 단행본도 발행해서 전국 서점을 통해 판매했어요.
우리의 연구와 활동은 당시 학교 미술교육의 전부였던 기능중심 조형교육의 일대 혁신을 꾀하여 “삶을 가꾸어 가는 미술교육”을 추구하는 일이었지요.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인 미술생산자이면서 소비자로서의 본래의 위치를 회복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고 삶과 교육, 예술과 일상을 통합하는 교육론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새로운 미술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메시지와 방법론을 전하고, 소모임을 꾸려 수업사례, 수업자료 등을 연구해왔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대안교육과정과 대안교과서 개발 작업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또 학문적으로도 설득력 있게 정리하는 과정이지요.
학습지도안, 교사일지, 교과활동 소개를 담은 회지가 현재 47호까지 발간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교사 직무연수, 자율연수 등 교사 재교육에도 힘써 왔지요. 현재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약 400명 정도 있고, 5~6년 전부터 전국 16개 시, 도 중 절반 정도의 지역에 지역 대표자들이 세워져 전국단위의 자생적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과연구에서 교육운동까지
전미교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여러 차례의 위기가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사람이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였지요. 그건 미술교육의 내용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성과를 축적하여 이어나갈 인자들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얘기고, 사회적 요청도 있고 교육의 내용 등 바꿔야 할 범주는 엄청나게 큰데 힘은 부족했다는 의미거든요. 모임의 선생님들로서는 부분적인 성과는 있지만 본질적인 변화나 발전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말하자면 교사로서의 자괴감이 상당했습니다. 그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지요.
예를 들어 만화 수업만 해도 그래요. 그런 수업을 보시면 교장, 교감 선생님들께서는 미술시간에 왜 만화냐고 합니다. 삶으로부터의 미술을 얘기하고 학생들의 관심까지 끌 수 있는 탁월한 매체라는 것을 학교에 이해시키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만화만이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 조금 색다른 수업 다 마찬가지죠. 수업 내용에 대한 교사 고유의 권한 대신 학교 관리자의 통제와 감시가 따르는 게 현실입니다. 예술이나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워낙 천박해서 학교에서도 미술교육을 강조하는 안목이 있는 관리자들을 만나는 행운은 여간해서 주어지지 않지요. 그러니 미술실기 활동에 필요한 재료, 도구 등 시설과 물리적 여건도 기준 이하입니다.
전미교가 순진하게 공부만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요. 하지만 막상 연구 성과를 학교 수업에 적용하려면 이런 현실의 구조와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면서 교육운동과 만나야만 했어요. 지금도 음미체 수업시수 축소 등 해결과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함께 하는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여건도 나아지고, 미술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자꾸 넓혀져 나가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은 미술교육의 변화를 일구려는 다양한 시도를 촉발하고 있다.

교사가 교육과정을 만든다는 것
교사모임에서 교육과정,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은 교사들이 교육의 진정한 주체로서 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이전에는 위에서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교로 내려 보내면, 그 내용이 뭔지 정확히 파악도 안하고 그냥 그걸 따라서 했지요. 하지만 교육과정, 교과서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발전이자 희망의 씨앗이죠.
또한 이 작업이 교육과정과 얽혀 있는 교육제도, 교사 양성 등의 문제를 포함하여 미술교육의 변화를 일구려는 다양한 시도를 촉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대안교과서를 만든다고 하니까 대학이나 관에 있는 분들도 관심을 표명하고 함께 만나는 자리도 종종 갖게 됩니다. 실제로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에 참여해온 학자들조차도 교사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업에 적용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나 장점이 발견되는지를 몰랐다가 현장의 교사들을 만나면서 명료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요. 이론 속에 갇혀있던 분들을 현실로 끌어들이고, 이론과 실제가 소통할 수 있는 계기로서도 교과서 작업이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건이 마련된 이유들, 변화들
첫째는 미술교육이 한계 상황에 도달하여 필연적으로 질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왔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미교가 이제는 전체를 조망하고 해결해갈 정도로 역량이 쌓였다는 점입니다. 셋째로 바깥에서 진보적 미술 지식인, 활동가가 결합했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7차 교육과정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들의 결합입니다. 7차에서 최초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대강화되었고, 미약하나마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쥐어진 점입니다. 장르 중심 교육내용에서 미술과 생활, 미적체험이 강조된다든지, 어느 정도 움치고 뛸 수 있는 여유랄까, 약간은 폭넓은 시도가 가능하게 된 점도 변화를 가능하게 한 이유라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예전에는 교사들의 고민으로 그쳤던 사안들이 요즈음엔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으로까지 확대되어 고민의 과정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총론적인 분석, 체계적인 연구가 안 되어있다는 점이고, 아울러 미술교육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인자들, 우리가 하는 것들을 받아들여 체계화시킬 학자들이 부족하다는 부분이고요.

대안교과서 작업은 각 지역의 교사들뿐만 아니라 미술이론가, 작가, 관련 활동가까지 결합하여 이루어진다.

교사들, 교과서를 만들며 고양되다
대안교과서 작업 이후, 교사들이 달라진 점은 적어도 교육과정이란 큰 틀 속에서 자기 수업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까지는 이런 수업이면 기능교육은 넘어서는 것이겠지, 아이들이 신나게 참여할 수 있겠지, 이런 정도의 차원에서 생각이 머물러 있었어요. 소재주의 차원의 활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 수업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한계가 있으며 다른 교사의 손에 쥐어지면 또 어떻게 재구성될지 아무도 자신이 없었지요. 그런데 대안교과서를 만들면서 내용체계를 연구하고 토론하고, 개념을 점검하고 수업에 적용해서 실험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미술교육과정의 지향 속에서 자기 수업을 진단하는 안목이 싹트고 있습니다. 교사의 역량에 일대 전환이지요.

충돌과 갈등의 힘
대안교과서 작업은 팀별 모임의 경우 10~20명, 전체 모임일 때는 50~60명이 자리에 함께 합니다. 각 지역의 교사들만이 아니라 미술이론가, 미술작가, 관련 활동가까지 결합하는 자리이지요. 개성이 다른 다수가 모여 거리낌 없이 용어와 개념, 목표와 의도 등 각 수업 사례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 자리이니 만큼 이야기가 오고가면 당연히 충돌이 발생합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그러한 충돌이 발휘하는 긍정적인 힘, 이를테면 창조적이고 도발적인 아이디어나 깊이 있고 정교한 내용의 생산 등을 믿고 있지만 어떤 분들은 그러한 과정과 내용을 힘들어하고 회의하면서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타인의 지적, 더구나 교사도 아닌 사람들의 요구나 지적을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아무도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고, 훈련이나 연습을 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 선생님들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활동하는 분들이라고 자부하지만, 학교라는 내부 습속에 의해서 고착화랄까 관료화 된 면도 있거든요. 스스로 이것을 깨나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길이 맞는지 회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면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다들 동의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문화연대에서 애정을 갖고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의 연대의식, 목표를 향한 공감이 그걸 더 가능하게 하는 부분도 있지요. 대안교과서 작업은 교과 내용뿐만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큰 배움을 얻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안교과서 작업은 가보지 않은 세계,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가보는 초유의 재미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더불어 하는 연구모임은 삶의 자세를 바꿔나가고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에 재미있고도 소중하다.

여럿이 함께 공부하는 축복
개인적으로는 관계하는 많은 모임이 있는데 전미교가 가장 재미있어요. 아이들 앞에 서면 항상 긴가민가하는 회의가 생기거든요. 교사들과 함께 문제를 검토하고 공부하면서 그런 혼동과 의문, 불편함이 자신감과 자유로움으로 바뀌게 되죠. 교사들에게 공부를 하게 만드는 자극의 첫째가 학생이고, 둘째가 교사로서의 양심이라면, 그 다음은 동료 교사들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몇몇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우 큰 변화가 없으나 주체가 많을 때는 주체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변하는데, 그게 재미있지요. 그건 어떤 면에서 주관적이고 작가 중심적 사고를 하였던 미술교사들이 삶의 자세를 바꿔나가고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자유로워지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사실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준비된 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서로 같은 소망을 가지고 기대어 함께 가자는 열정만이 있었지요. 조직도 일종의 생명체와 같아서 그런 마음들이 생장의 조건이 되고, 이제 다른 세계를 당당히 맞이할 만큼 그렇게 자라준 것은 커다란 축복이지요.

수요자가 곧 주체가 되는 교과서로 완성하기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향에 맞춰 계속 공부하고 활동하는 거지요. 대안교과서 관련해서는 올해 겨울 방학 정도에 초안이 나오면, 그것을 내년 1년 동안 검증하고 수정 보완해서 2007년 초에는 발간을 하려고 합니다. 아직 확실한 시점이 잡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과정 연구도 병행하게 되겠고요.
우리의 교육과정, 교과서 작업은 책의 출판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닙니다.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직접 참여하는 선생님들과 아닌 선생님들 사이에 단절이 생기고, 나머지 선생님들에게는 일방적으로 던져지는 교육과정, 교과서가 된다면 그건 우리의 의도와는 아주 달라지는 것이에요. 이제까지의 교과서들이 만들어지고 수용된 방식과도 크게 다르지 않고요. 교과서의 내용, 교육과정이 대상화되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교과서가 완성되기 이전에 지역모임이 더욱 활성화되어 거기서 스스로 내용과 방법을 채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교육과정과 내용을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는 주체의식을 갖게 하는 것, 수요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의도대로 실현될 수 있는 제도나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이렇게 되어야만 이 작업의 의미도 살아나고, 작업이 진정으로 완성되리라고 봅니다.
향후의 계획과 관련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고 싶어요. 인간의 삶 자체가 총체적인 것처럼 궁극적으로는 미술교과가 다른 교과들과 또 다른 교과 선생님들과 미술이란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학생들이 세상을 균형 있게 경험하고 바라보면서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