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교육연구소 시범사업 현장 – 구상과 실현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

김희영(아르떼 부산지역 통신원)

기사를 열며

어려운 인터뷰였다. 미술을 전공했고 예술행정 분야에 종사하는 필자가 장르 교육 중심의 소규모 프로그램 운영 현장을 취재하는 데에는 나름의 시각을 갖고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해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획취재는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 ‘강사풀제’, ‘창의적 재량활동’ 등 문화예술교육 관련 여러 사업에 대한 이해와 입장이 없이 그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내용이었고, 사업의 실제 구현 현장이 아닌 연구소 테이블에 모여 얘기를 전해 듣노라니 더욱 그러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내내 ‘이 시범사업을 제대로 다룰 자신이 없다. 인터뷰를 기사화하기 어려울 것 같다’ 라는 고민을 하다, 결국 편집부의 종용에 따라 이튿날 다시 부산대학교 교육연구소(이하 부산대 교육연구소)를 방문했다. 박응희 시범사업팀장을 만나 40분 간의 추가질문을, 그리고 이후 총괄 책임자인 이병준 교수에게 몇 가지 답을 구하며 그림을 마저 그려갔다.

<부산 문화예술교육의 실태조사>에서부터 <박물관 교육프로그램 개발>, ‘구’ 단위의 <문화예술교육사업 컨설팅>에서 <문화예술교육 기획 전문가 양성과정>에 이르기까지, 사업 총괄자인 이병준 교수의 언급처럼 ‘도시 단위의 문화예술교육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는 이 사업에 대한 중간 평가와 전망은 정책전문가의 몫으로 넘겨야 할 것이다. 다만 낯선 곳에 들어선 아이가 길을 묻듯 ‘부산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을 더듬는 몇 가지 질문과 그 답변을 싣는 것으로 기획취재를 대신하겠다.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문화예술교육진흥원 공식 웹사이트(www.iarte.or.kr)를 통해 밝히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이란 ‘2004년에 여주(농촌지역), 평창(산촌지역), 부천(중소도시지역), 부산(대도시지역) 등 4개 지역을 중심으로 처음 시작된 학교-지역사회 연계 사업’으로, ‘지역별 특성에 따라 수요자를 중심으로 한 참여형, 체험형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공교육 체계에서의 문화예술교육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역의 문화예술기관, 단체 및 예술인과 각급 학교간의 연계협력을 통하여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모델을 개발’하고 ‘학생들의 문화 감수성과 창의력을 향상’시키며, ‘지방자치체와 교육청, 학교와 문화예술기관, 단체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문장으로나마 얼른 다가오는 단어들은 ‘학교-지역사회 연계’요, ‘공교육 체계에서 문화예술교육 모델’이란 좀 어렵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부산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이란

문화관광부는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의 주요 선정기준으로 ‘주관단체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추진 경험 및 역량과 컨소시엄의 구성(관련기관, 단체, 시설 등의 참여)’을 내걸고 있다. 이러한 선정기준에 걸맞게 부산대 교육연구소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10여 개 사업실적(해운대 문화재 탐방 프로그램, 부산지역 인적자원개발정책연구, 해운대 평생학습도시 장기발전 계획 수립 연구 등)을 통해 사업역량이 검증된 바 있고, 10여 개 지역기관과 4개 학교의 협업 아래 기초연구, 프로그램 개발, 컨설팅, 네트워크, 매개자 교육 및 연수의 5개 방향에 따라 10여 개 단위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 사업에 관한 한편의 시선들

취재장소인 부산대학교로 가는 전철 안에서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3월 아르떼 통신원에 응모하면서 문화관광부 산하 ‘문화예술교육과’의 신설을 알게 되고는 ‘문화’, ‘예술’, ‘교육’이란 거대 함의들이 결합된 그 명칭에 잠시 어지러웠던 일, 다니던 국민학교가 ‘주5일제 시범학교’로 선정되었던 80년대 초반, 주중 하루는 늘 현장 학습이지만 소풍 때마다 방문하던 ‘왕릉’을 빼고는 마땅히 갈 만한 지역문화시설이 없어 근처 하천에서 쓰레기만 줍던 일 등등…

다시 오늘의 숙제로 돌아와 30장이 넘는 이 사업의 기본계획서를 전철 안에서 마저 넘겨보던 막막함에, 몇 군데 전화를 걸어보니 ‘부산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에 관한 한편의 마뜩찮은 시선이 있다는 것도 전해 들었다. ‘특정 예술 장르의 전문가들과 비교해볼 때, 문화예술 컨텐츠의 생산력과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교육계의 연구진이, 지원이 열악한 문화예술계의 파이를 가져가고 있는 건 아니냐’ 는 볼멘소리가 있었고, ‘구현되기엔 너무나 크고 막막한 계획’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여러 단위사업의 실현에 관하여

인터뷰는 우선 “모두 다 해낼 수 있나요?”라는 사업규모와 범주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부산대 교육연구소 측은 “이 예산으로는 다 못합니다.”라는 규모 대비 지원 부족을 토로했다.

본 프로젝트가 구상되어 시행되기까지의 전후 맥락은 이 사업의 쟁점들을 담고 있는데 이를 정리해보면,

첫째, 2003년 한 해만도 총 10여 개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구현을 통해 사업주체인 부산대 교육연구소는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 교육, 운영의 노하우를 축적한 상태이며, 둘째, 그 다음 단계로 부산이라는 도시단위의 사업을 적용하기 위한 구조를 갖추는 것이 ‘부산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의 목표라는 점,

셋째, 이를 위해선 여태의 성과가 거쳐온 컨텐츠 외에 부산시내에서 수요가 발생하는 어느 분야의 교육프로그램이라도 개발과 운영이 가능한 매뉴얼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

넷째, 프로그램 개발을 통한 전문가와 해당기관의 협업 경험을 통해, 컨텐츠 생산자에겐 이것을 개발하려는 사업주체를 이어 주고, 개발이 필요한 기관엔 해당분야의 전문가와 운영인력을 소개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이 다루는 넓은 범주에 관하여

10여 개 전후의 단위사업 안에는 <초등학생용 복천박물관 교육프로그램>이 있고, <부산시 중구 문화예술교육 컨설팅 사업>이 있으며, <문화예술교육 기획전문가 양성과정>이 있다. ‘지역 문화예술교육 컨설팅’과 ‘박물관 교육프로그램’ 간의 먼 거리에 대한 사업 총괄자의 답변을 정리해보면,

학생들의 문화 감수성과 창의력 향상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첫째, 하나의 특정 장르에 관해, 해당 전공자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까지 책임지는 보통의 문화예술교육 관련 단일사업의 1회적 실행을 넘어서, 같은 프로그램을 다른 집단에 적용하거나, 한 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한 결과를 다음해 재시행 시기에 보완 조정하여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에 본 사업은 와 있으며,

둘째, 이렇게 축적된 개발과 운영의 방법을 매뉴얼화하여 다른 컨텐츠를 가진 어느 사업주체건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문화예술교육 기획 전문가 양성과정>에 관한 서울의 사례를 들면, 이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 전공과정이 개설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가나아트센터 등의 사립미술관과 언론사 부설 문화센터가 단기과정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교육기회가 열려 있고 배출인력의 포화상태로 취업란에 이른 시점이다. 그러나 부산의 경우 상기한 교육과정이 개설된 사례도 드물 뿐 더러 이러한 교육과정을 조직할 역량과 관심을 가진 기관도 찾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토양 아래에서 일단 부산대 교육연구소가 교육기회의 물고를 튼다는 것만으로도 주목할 발걸음으로 판단된다.

컨텐츠의 생산과 프로그램 개발의 분리에 관하여

영상예술 분야에서 매체 기반의 예술가들은 예술전공자가 전문 공학지식을 따로 수학하거나(한국의 공성훈, 일본의 토시오 이와이 등), 영상예술에 관심을 둔 공학도가 예술가로 변신(짐 캠벨)하는 두 양상 중 하나를 띠는 게 일반적이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협업이 보편화 되지 못하고, 컨텐츠와 그것의 개발이 단일 주체 안에서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획자가 컨텐츠와 그것의 구현을 위한 툴을 모두 생산하고 운영할 줄 알아야만 근본 의도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운영방법을 매뉴얼화하여 다른 컨텐츠를 가진 어느 사업주체건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할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는 부산대 교육연구소의 전략은 상당히 도전적으로 보인다. 모든 분야, 특히 문화 예술의 범주 안에 묶일 수 있는 각 분야들은 제각각 동일선상에서 비교되기 어려운 특성들을 가지며, 이를 무시할 경우 해당 분야의 핵심을 빼 놓고 주변부만 건드리게 되는 경우 또한 종종 발견되곤 한다. 컨텐츠 생산자들이 어떠한 내용물을 품고 있건 사전에 만들어 둔 범용의 툴을 이용해 프로그램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형식을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시도가 과연 문화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환영 받는 쓸만한 툴이 될 수 있을지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계에 기폭제로

‘미디어_시티 서울2000’은 서울시가 100억의 총사업비로 2000년에 개최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로, 투여한 예산과 에너지에 걸맞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서울이 ‘미디어 아트’로 도시의 정체성을 옷입히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행정부시장이던 강홍빈씨는 “서울은 단일한 테마로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짓기엔 너무나 많은 문화적 사건과 레이어를 지닌 곳이다.”란 지적을 한 바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문화적 사건과 토양이 빈곤한 지방도시들이 행정적 총력과 비중있는 예산을 실어 단일 문화 행사를 도시문화의 기폭제로 삼는-광주비엔날레가 그러하고 부산영화제가 그러하다-사례는 또 다른 모습을 낳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지자체가 부산 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에 쏟는 재정적 지원과 이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 그리고 단위사업 주체의 역량에서 확장하여 ‘센터’로서 그 역할을 돋움하려는 부산대 교육연구소의 당찬 걸음, 이렇게 삼자의 조화가 지역사회의 문화예술교육계에 일으킬 바람을 기대해본다.

취재협조 :
이병준(사업 총괄), 박응희(시범사업 팀장), 류성효(네트워크 사업 담당)
김미화(초등과정 교육프로그램 계발담당/정관초등학교 교사)
강양숙(중등과정 교육프로그램 계발담당/금사중학교 교무부장)

김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