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로 여는 또 하나의 세상을 꿈꾸며 – 특수교사놀이연구회

김선희(특수교사 놀이연구회 교육연수부장, 연희초등학교 교사)

“오늘은 고양이와 쥐 놀이를 한다고 했지요. 손을 잡고 동그랗게 원을 만드세요. 자, 고양이는 누가 할까요? ”
너도나도 손을 든다. 서로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가 졌다. 고양이에 당첨되었다. 술래가 된 것이 뭐가 그리도 기쁜지 개선장군 저리가라 위풍당당하다.
“자, 그럼 쥐는 누가 할까요? 아, 참 어제 칠교놀이를 잘 했던 ○○이가 하기로 했지요”
오늘도 우리 반에서는 어떤 놀이를 할까, 누가 술래를 할까를 결정하느라 분주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놀이를 할 때만큼 아이들의 표정 속에 순수한 웃음이 묻어나는 경우도 참 드물다.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슴 시리도록 마음이 아프다. 뒤쳐진 학습을 따라가느라 각종 치료와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바빠 놀이도 맘놓고 즐길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놀이 현실도 안타깝다.

80년대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던 나에게는 길가의 아카시아 잎이나 토끼풀, 작은 돌멩이 하나조차도 더 없이 재미있는 소중한 놀잇감이었다. 지금 아이들처럼 학원 다닐 걱정, 숙제할 걱정이 없었던 그 시절 아이들은 시간만 나면 땅에 놀이판을 그려 놀기도 하고, 동네에 모여 술래잡기도 하고 공기놀이, 비석치기도 했다. 숨바꼭질하다 너무 꼭꼭 숨어버린 탓에 짚단 밑에서 잠이 들어버렸다가 해질 무렵 깨어나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돌이켜 보면 이런 놀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 나갔던 같다. 그런 내가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놀이’라는 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태동 – 모임을 시작하다
특수교사 놀이연구회는 1992년 놀이에 관심이 있는 교사 몇몇에 의해 ‘놀이사랑 특수교사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엔 일반 초등교사 놀이연구회와 함께 모임을 시작했으나 차차 일반 아동과는 조금 다른 장애 아동들의 특성에 맞는 놀이를 개발하고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93년 가을에 <놀기 1호>를 창간하면서 공식적인 특수교사 놀이연구회 모임을 시작하였다. 특수학급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주축이 되었지만 정신지체나 지체부자유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는 회원도 있다. 그 후 매월 놀이의 성과물이나 작은 에피소드 등을 놀기 회보에 싣게 되었고 현재 제 54호까지 발간한 상태다.

걸음마 – 도깨비 캠프를 시작하다
1993년 여름에는 ‘나, 너, 우리’ 라는 주제로 제1회 도깨비캠프를 열었다. 도깨비가 방망이를 흔들어 여러 가지 보물이나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내듯이 이 캠프가 일상생활에 지친 아이들에게 모험적이고 환상적인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깨비 캠프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제3회 캠프에서는 장애 아동뿐 아니라 비장애 아동을 놀이 구성원으로 포함한 최초의 통합 캠프를 열었으며, 그 이후부터 2004년의 제12회 캠프까지 통합놀이 캠프를 지속해 오고 있다. 도깨비 캠프는 놀이하는 아이들, 놀이교사, 특수교사(담임교사), 자원 활동가, 학부모 모두가 캠프를 준비하고 이끌어가는 주체로 참여한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동등한 놀이 구성원이 되고 전래놀이의 참맛을 알게 한다. 또한 참여하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된다.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대동놀이를 통해 ‘나, 너, 우리’라는 기본 정신이 실현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깨비 캠프는 놀이, 노래, 주제(이야기)가 있는 캠프이다. 매해 다른 주제가 설정되며 캠프에서 목적하는 바를 주제로 표현한다. 각 조의 이름을 비롯해 모든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이 주제에 부합되게 이루어진다.

아이들에게 모험적이고 환상적인 새로운 세상을 경험케 하는 도깨비 캠프

현실 직면 – 놀이 문화의 현실에 직면하다
딱지치기, 자치기 등은 지금의 기성세대가 코흘리개 시절에 친구들과 동네 골목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던 놀이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어린이들에게는 이러한 놀이보다 컴퓨터 게임이 더 익숙하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혹은 가족들과 모니터나 화면 앞에서 사시사철 전자파를 받으며 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아이들의 놀이문화 현실은 놀 시간도 놀 장소도 놀잇감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얼마 전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어 열풍을 일으켰던 말타기는 이제는 위험하기도 하고 면학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금지되기도 하였다.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이 처해있는 놀이 현실은 처참하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놀이의 참맛을 알게 해주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성장과 발전 – 계획적/조직적인 교육활동, 현장 연구를 지속하다
모든 교육은 계획적, 조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속에서의 문화예술교육 또한 그러하며, 그 속의 한 부분인 놀이도 마찬가지이다. 장애 아동의 교육을 담당하는 특수교사로서 ‘놀이’는 장애 아동에게 가르쳐야 할 또 다른 교수과목 중의 하나이다. 흔히들 뒤떨어지는 다른 학습을 따라잡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언제 놀이까지 가르치느냐’고 물어오곤 한다. 그렇지만, 놀이의 위력이 실로 대단함을 수년간 놀이를 가르치면서 몸소 느꼈다. 사회성이나 자발성이 부족한 아이들의 발달을 돕기도 하고, 발성은 안 되지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하려는 의지를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체득하거나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면 한낮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특수교사놀이연구회는 월 2-3회의 정기 모임을 통해 놀이의 기본 개념 및 특성, 놀이의 가치 및 제안점, 전래놀이와 아동의 여가 문화와의 관계, 놀이의 종류와 놀이 방법 등에 대해 이론적인 탐색을 실시한다. 또한, 회원들이 각자의 학교(특수학급, 특수학교) 및 학생들의 상황에 맞게 놀이를 적용해 보고, 전래놀이부와 같은 계발 활동 시간을 통하여 장애아동뿐 아니라 비장애 아동과 함께 재미있게 놀이에 참여하기 위해 통합된 상황에 따른 놀이 수정 방안을 연구하기도 한다. 이런 연구 성과를 기초로 이미 몇 차례의 특수교사를 위한 놀이 직무연수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교육의 어려움과 효과 – 재미를 느낄 때까지 가르치다
사실 놀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놀이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놀이 대상 선정, 놀이 규칙, 놀이의 즐거움 등을 총망라하는, 생각보다 아주 다양한 것들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활동이다. 비장애 아동들이야 스스로 자연스럽게 놀이 상황을 만들고 놀이에 참여하지만 자발성이 부족한 장애 아동들에게는 그것조차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 회원들도 ‘공부 가르치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장애 아동을 가르치다 보면 늘 그렇듯이 교육의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동이 놀이에 흥미를 가지고 어느 정도 놀이 방법과 규칙을 습득하여 놀이의 ‘왕재미’를 느낄 때까지, 또한 ‘놀자’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동에게 설레임과 긴장감을 갖게 하고 이겼을 때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기까지 이끌어주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장애 아동이 자발적으로 놀이를 시작할 수 있기까지 교사는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조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놀이를 쉬는 시간이나 남는 시간에만 해서는 그 효과를 거두기가 아주 힘들다. 필자가 있는 학교에서는 몇 년 전부터 전래놀이, 전래연극놀이, 칠교놀이(정사각형을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맞추는 놀이)를 교육과정 속에 포함하여 운영하고 있다. 놀이를 남는 시간에 한다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신발 숨기기 하자’, 라는 말을 듣게 되기까지, 쉬는 시간 레고 블록 보다 칠교놀이 책을 펴게 되기까지, ‘그만해요’ 하는 말보다 ‘놀이해요’라는 말을 듣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나를 믿고 따라주는 아이들이 있으니 참 행복하다.

‘쉬는 시간 웬일인지 ○○이가 레고 기차놀이를 하지 않고 색종이와 풀을 가져간다. 뭐 할 거냐고 물어도 실실 웃기만 한다. 어느새 칠교 책을 펼쳐든다. 지난번에 완성하지 못했던 크리스마스트리 칠교 그림을 완성하고는 당당하게 칠교 도장을 찍는다. 다 맞췄지? 잘했지? 를 계속 반복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앉는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왔더니 싸움 아닌 싸움이 벌어졌다. 한 녀석이 주사위를 제대로 안 던져서 이번 판은 무효란다. 주사위 산가지 놀이(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의 산가지를 가져오는 놀이. 산가지는 젓가락 모양의 짧은 댓개비)를 하다가 3이 나오면 끝나는데 한 녀석이 숫자 3을 위로 보이게 주사위를 꼭 잡고 살짝 내려놓은 모양이다. 제대로 굴려야지 하고 한마디 던지기는 했지만, 일부러 3이 나오게 어설피 던진 아이도, 지는 것이 분에 겨워 씩씩대는 아이도 너무 대견하다’

새로운 시도와 변화 – 전래놀이와 연극놀이가 만나다
올해 필자가 있는 학교에서는 작년에 이어 전래연극 놀이부를 운영하고 있다. ‘연극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비장애 아동 학부모님께서 명예교사로 활동하신다. 연극놀이와 전래놀이를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손도 잡지 않으려했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역할을 수정- 실제 대사를 할 수 없는 장애 아동에게 ‘나무나 벽’ 역할을 주기고 하고, 산가지 놀이에서는 ‘한꺼번에 두개의 산가지’를 가져가지 않으면 건드려도 허용해 주기 등의 규칙을 수정- 해 주면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서부터 뿌듯함이 밀려온다.

한걸음 도약 – 월드 도깨비 캠프를 준비하다
특수교사의 길을 걸어온 지도, 특수교사놀이연구회 모임을 시작한지도 벌써 8년째가 되었다. 그간의 연구 성과나 앞으로서의 발전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식적인 교과연구회로 승인받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놀이교육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동료 교사들을 보며 힘을 얻곤 한다.
올해 특수교사놀이연구회에서는 문화예술분야 교사자율연구모임 지원사업에 공모하였다. 지금까지 해왔던 다양한 연구를 기초로 보다 내실 있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지속적인 문헌 조사, 현장 실행연구를 통해 놀이의 이론 및 놀이 방법에 관한 연구, 개별화된 교수지원 방안 연구를 지속하여 초등학생의 정서 순화 및 정서 함양, 전통에 대한 이해 증진,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간의 통합 증진, 개별화된 교수 지원을 통한 장애 아동의 놀이 기술 습득 및 향상, 놀이 및 놀이 참여자의 다양성 확대 등의 연구 성과를 거두고자 한다. 또한, 회원들이 각 학교에서 체계적,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놀이들을 정리하여 <장애 아동과 함께하는 전래놀이 책자>를 만들 계획이다. 책을 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사진과 함께 놀이 방법을 설명하며, 좀 더 재미있게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놀이 수정 방법, 그리고 놀이 평가 체크리스트, 놀이 수업 지도안, 개별지도 프로그램인 놀이 IEP(individual education program) 등의 예시도 수록할 예정이다. 이 책이 장애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치고자 결심하였으나 제대로 설명된 책이 없어 포기했던 많은 특수교사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2012년에는 제20회 도깨비캠프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나라 뿐 아니라 각 나라의 아이들을 초정하여 ‘월드 도깨비캠프’를 실시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대표적인 놀이 문화도 접해 보고, 언어나 인종, 사는 곳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놀이를 찾아 놀아보면서 하나 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하여 이론적, 실제적으로 역량을 겸비한 능력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에 대해 믿는다.

놀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놀이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놀이의 즐거움과 참맛을 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광범위한 활동이다.

바램 – 놀이와 문화예술교육의 접점 찾기
얼마 전부터 문화예술교육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그 영역이 너무나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더욱이 인류의 삶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나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전문적인 공부를 한 적도 없다. 하지만 놀이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고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많은 전래놀이와 구전동요를 보면서 그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기에 문화예술교육을 논하면서 놀이를 빼놓을 수 없으며 놀이야말로 다른 어떤 문화보다도 그 영역과 대상에 있어 포괄적이면서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존재하게 해주고 이끌어주며 다음 세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놀이’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전부터 놀이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특수교사놀이연구회는 놀이가 우리와 아이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그래서 삶을 지탱해주는 밑거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를 계속해나가고자 한다. 아울러 문화예술교육이 한 때 유행하고 사라질 교육의 흐름이나 거창한 이론에 포장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전한다.

홈페이지:www.nolgi.org

김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