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중앙대학교 강사)
탄생, 가르치는 사물
1793년 개관한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최초의 근대 박물관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대중을 위한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그 후, 1930년대 영국에서는 박물관과 학교가 연계하면서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제작하여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박물관의 교육자료는 관람객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계몽적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오브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과 전문가적인 해설들, 빽빽하게 자리 잡은 글들을 통해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끌어들이기 전략
그러나 일반 대중, 특히 어린이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지루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고답적이고 딱딱한 박물관에서 대중을 위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에듀테인먼트의 장으로 변신을 꾀하면서 이제 박물관들은 어린이를 위한 해설서를 따로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됐다. 어른보다 박물관에 올 기회가 조금 더 많고, 어렸을 때부터 박물관을 찾는 재미를 붙여야 커서도 박물관의 이용자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다.
관람객과 박물관 사이에서
어쨌든 교육자료가 배부되면서 대중의 관람은 좀더 용이해졌다. 카탈로그 한번 보고, 작품 한번 보고, 카탈로그에 있는 작품명과 레이블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해보고… 관람객은 주어진 교육자료와 전시공간에 보이는 오브제에 대한 해설이 일치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어느새, 작품을 보기 전에 교육자료를 먼저 읽는 사람도 생겨나고, 점점 자료 속 해설과 전시물과의 일치여부만 확인하던 사람들도 줄었다. 교육자료의 실질적인 힘이 발휘되었기 때문일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같이 해보고, 이러한 과정에서 교육자료가 만들어졌다. ‘당신이 방문하신 전시회는 OOOO라는 의미입니다’, ‘이 오브제의 이름은 OOO입니다’와 같이 오브제가 왜 여기에 있고, 또 과거에는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면서 관람객이 당황하여 오브제를 외면하지 않도록, 해석한 것을 전달한다.
도슨트가 특정 시간대에만 가능하고, 관람을 수동적으로 유도하는 것에 비해서 교육자료는 관람객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유도한다. 주어진 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관람객이 자유롭게 작품을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는 순전히 이용자의 몫이다. 교육자료를 활용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관람하게 되고, 작품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도 꾸며갈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나?
교육자료는 전시관람을 하는 관람객뿐 아니라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문자, 또 사이버, 가상공간의 웹 사이트에 방문하는 이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다.
교육자료의 종류는 크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것과 오프라인 형태로 나뉜다. 전자는 인터넷 상의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교육자료이고, 후자로는 가장 흔히 사용되는 활동지 카탈로그, 리플렛 등의 시각적 인쇄매체와 비디오, DVD, CD 등의 복합 시청각 매체가 있다.
일반적인 강의형식 교육의 부교재가 아닌, 전시를 감상하고 입체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자료의 대상은 주로 어린이 혹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었다. 최근 그 연령이 높아져 청소년에 이르기도 한다. 또한 대상에 따라 교육자료를 다르게 기획하기도 한다.
그럼 이제 각양각색의 교육자료, 박물관의 이야기꾼을 만나보자. 각 박물관에서 전시를 통해 풀어놓은 나름의 해석들을 잘 엮어 전달할 수 있도록 시도한 9가지의 꾸러미(방식)를 일별해보기로 한다.
① “엄마, 아빠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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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미술관 어린이 교육자료<점점발전소 Power Station> 관람 보조교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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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먼저, 최근 늘고 있는 가족단위의 방문객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일반적으로 교육자료는 “오리엔테이션 – 작품(오브제)감상 – 창의적 표현활동”이라는 흐름으로 구성된다. 특히 ‘조용히 걸어다니기’, ‘만지지 않기’ 등으로 명시한 관람예절은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되기 전 오리엔테이션으로 필수적인 내용인데, 어린이를 동반한 성인이 당황해 하지 않도록 이렇게 간단히 관람예절을 제시하고 있다. 부모와 어린이가 서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함께 관람해 나갈 수 있도록 신경 쓴 점도 인상적이다.
② 어린이는 만화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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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박물관 체험교실 교육자료<우리가 만드는 옛 서울, 한양> 박물관체험교실 활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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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과거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박물관 해석에 지루해하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나 설명들 때문이다. 이 때는 부분적으로 어린이의 시각에 맞추어 재미있는 표현기술이 자주 사용된다. 특히 애니메이션, 만화는 누구에게나 즐거운 경험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과거 한양의 지도 위에 당시의 생활상을 적절히 배치한 한 컷 만화로 한양이야기를 담았다. 한양으로 시간여행을 끝낸 뒤, 다시 한번 만화로 된 미로 찾기. 역시 만화는 어린이를 위한 제일의 소통 수단이다.
③ 미술관은 19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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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미술관 청소년 조형 아카데미 교육자료<미술관 쉼표 19세 이상 관람가> 활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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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미술관의 <미술관 쉼표 19세 이상 관람가>는 향후 인생의 커다란 항해를 위해 잠시 휴식시기에 이른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다. 활동지에는 김종영, 노주환, 김종구 작가가 대상 학생들처럼 19세였을 때 고민하였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인생을 각각의 프레임으로 은유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는 작업은 서로 다른 과목을 학습의 맥락에서 효과적으로 연결한 통합교과학습의 경우이다.
④ 사물에 관심 갖기, 단어로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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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어린이 청소년 교육자료<기계가 만든 물건의 아름다움 발견하기> 워크숍 활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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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전시라도 관람객의 수준에 따라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 이러한 측면을 배려하여 활동지를 대상별로 다르게 기획한 예이다.. 초등학생용은 전시 물건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에, 청소년용은 전시와 소통하는 것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특히 오브제에 대한 시각적인 감상을 여러 단어에서 골라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느낌을 구체화시키고, 다른 것과 섬세하게 비교, 분석하면서 비평적인 능력을 형성할 수 있게 했다.
⑤ 어디 한번 찾아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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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미술관 <정지와 움직임 > 감상활동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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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의 임무 중 하나는 관람객이 스스로 전시장을 둘러보며 자기 주도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서울올림픽미술관의 감상활동카드는 한 권으로 묶이지 않고 낱장의 카드로 제시함으로써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장소를 선택하여 활용하도록 구성되었다. 각각의 카드 앞면에 제시된 전시실과 실마리는 자율적으로 작품을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뒷면에는 해당 작품과 관련된 활동 및 그 의미를 확장한 일반적인 감상법이 제시되어 있다.
⑥ 선생님, 우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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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우리옷 바로 알기> 3-4학년 교사용 지침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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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의 경우는 학교 관련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구체적으로 전시와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한 ‘선생님을 위한 길잡이’를 제공하고 있다. 전시와 접목될 수 있는 부분을 연구, 같은 전시주제라도 1-2, 3-4, 5-6학년으로 나누어 제작하였고, 박물관 학습과 유기적으로 연관될 사전 사후 학습내용까지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별도의 사이트를 두어 학습에 필요한 사진자료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⑦ 아바타는 나의 분신
<박물관 종합정보안내> 홈페이지http://www.emuseum.go.kr/cyberhall.do
사이버상의 박물관 웹 사이트에서 상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무궁무진하다. 3차원 동영상으로 표현되는 가상전시는 마치 실제로 시장 안을 걸어다니면서 관람하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아바타를 선택하여 자신이 원하는 가상의 관람자를 내세워 전시장을 관람하게 되는데, 아바타의 눈높이나 동작의 움직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 향후 유비쿼터스환경이 실현되고, 정보의 표현기술이 더욱 향상된다면 박물관 체험이나 박물관 교육에 있어서 큰 변혁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다.
⑧ 이리로 저리로 오브제를 돌리도!
홈페이지http://www.moca.go.kr/Modern/modern1/search/body_03_1.html
소장품 DB의 검색은 오브제에 대한 보다 지적인 정보를 원할 때 이용이 가능하다. 오브제의 이름이나 크기, 재질, 제작년도 등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가 제시된다.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맥락화된 정보를 따라가다 보면 관련된 자료를 통해 심화 학습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여기서 연결되는 가상의 3차원 입체영상으로 제시된 오브제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기능은 실제 전시장에서는 할 수 없는 오브제 조작의 아쉬움을 충족시켜주고도 남는다.
⑨ ‘네 눈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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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민속박물관 시각장애인용 관람 가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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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특성을 지닌 박물관 전시에 있어 시각장애인은 항상 대상에서 제외되곤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용 교육자료는 그 제작비용 등의 이유로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에서 시각장애인용 관람가이드로 제작된 이 자료는 전국의 시각장애인 관련 도서관에 모두 배포되었다고 한다. 약시를 위한 크고 굵은 글씨와 짧은 문장, 맹인을 위한 점자와 돋을새김으로 표현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9가지 사례들로 우리나라 박물관 미술관 교육자료들의 다양한 특색들을 집약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시도와 내용들이 앞으로의 가능성과 도전을 위한 좋은 참조가 되길 바란다.
※ 자료를 제공해주신 박물관 미술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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