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생각하고, 성장하자!’ – 거창 지역의 연극 수업 탐방

이번 <현장에 가다> 코너에서는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가 주관하고 사업을 펼치는 학교-지역사회연계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참관하였다.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는 현재 거창 군내의 9개 초, 중등학교에 6명의 상근강사 및 3명의 보조강사를 파견하여, 재량ㆍ 특별 활동시간을 통해 ‘학교 안’ 문화예술교육으로 연극수업 및 영어 연극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으로는 여름 연극교실과 함께, 공연관람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기사를 통해, 거창지역 연극교실의 생생한 교육현장을 목격하시길 바란다. (이 취재는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의 교육팀장이자 파견 강사인 서정상씨가 안내해 주었다.)
참고로,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는 학교문화예술교육뿐 아니라, 매년 여름에 열리는 <거창국제연극제>, 매년 겨울에 열리는 <겨울연극제 (거창 어린이 및 청소년 연극제)>, 거창 지역의 사회문화예술교육 사업 등의 주관단체이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녀석인데, 대한이라는 학생이 있었어요.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친구들하고 어울리지도 않았고, 항상 외톨이였어요. 또래 아이들보다는 지적인 성장이 미진한 편이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위 왕따 였죠. 수업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저로서도 조금 난감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대한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림을 통해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겁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대한이를 보던 다른 학생들도 놀라고, 대한이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에 놀라는 것 같았어요. 뭐랄까, 몰랐던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그건 교사로서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전하더군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거창 군내의 한 초등학교로 이동하던 차안에서 연극 교사 서정상씨와 필자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두서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우대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연극 자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술의 한 분야로서의 연극과 교육의 수단으로서의 연극은 조금 다른 면이 있어요. 연극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인 부분들을 끌어내어 학생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갖게 만드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연극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연극을 배우고 만드는 과정 속에서 많은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어요. 몸짓으로, 말로, 표정으로, 노래로 그리고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대한이도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구요. 그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적극성을 발휘하는 시간이 됩니다. 완성된 연극 ‘한 편’은 그 시간의 결과일 뿐이죠.”


아이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편한 자세로 듣고 있다. 수업시간 내내 그들을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오후 한 시쯤, 거창군에서 제법 규모가 큰 거창초등학교에 들어섰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 2, 3층의 낮은 학교 건물, 나무로 촘촘히 메워진 복도와 실내화 가방을 움켜쥐고 걸어가는 학생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은 정겹고 따뜻해졌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어디선가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웃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은 아이들이 연극 수업을 받고 있는 1층의 한 교실이었다. 창문을 통해 살짝 안을 들여다보니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매트가 깔려있는 텅 빈 교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몰래 교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들어가는 순간, 아이들이 몸을 돌리더니 안녕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나에게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정상씨에게 하는 인사였다.

아이들은 담당 강사와 함께 ‘놀고’ 있었는데, 그것은 <곰 사냥꾼 놀이>라는 게임이었다. 한 아이가 곰 흉내를 내면서 쿵쿵 걸어 다닌다. 아이들은 도망을 다니다가 곰이 다가오면 죽은 척을 한다. 그럼, 곰은 그 사람 앞에서 ‘표정으로 웃긴다거나’, ‘익살스런 행동을 한다거나’, 혹은 ‘겁을 주는 행동이나 소리를 내서’, 누워서 죽은 척 하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동성 친구들에게는 가서 껴안는다거나 간지러움을 태운다거나 하는 반칙행위까지 해가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성 친구들에게는 잘 다가가지도 않고 몸을 건드리지도 않는다. 쑥스러운가 보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는 있었다.

“맞고 일어날래, 그냥 일어날래?”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보이던 경희라는 여자아이는 바닥에 누워있는 석용이에게 이 한 마디를 던진 후,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석용이는 뭐가 좋은지 씨익 웃더니 기꺼이 일어나 곰에게 ‘사냥’ 된다. 곰에게 사냥된 아이는 또 다른 곰이 되어 ‘사람들’을 쫓아다닌다. 마치 뱀파이어들 같다.

15분쯤 그 놀이를 하던 아이들에게 담당 강사는 이제 고양이와 쥐게임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랬더니 아이들에게 탄성이 터지면서 눈빛이 더 반짝반짝 빛난다. 서로서로 고양이를 하겠다고 안달이 난 것이다. 지정된 고양이가 강시처럼 폴짝 폴짝 뛰면서 아이들을 쫓고, 쥐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 널찍한 교실 안을 쉴 새 없이 도망 다닌다. 교실안의 함성과 비명이 높아질수록 얼굴에 가득 피어나는 웃는 얼굴도 더 밝아진다.

한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왜 서로 고양이를 하려고 하니?”
“재밌잖아요. 애들 잡는 게 얼마나 스릴 있는데요?”
“좋아하는 여자애 일부러 쫓아다니려고 그러지?”
“어?” (어떻게 알지? 하는, 멈춰진 5학년 남자아이의 놀란, 순진한 얼굴.)

그런데, 아이들은 한참 즐겁게 뛰어놀고 있는 동안, 구석의 탁상 뒤에 혼자 앉아있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학진이었는데, 담당 교사의 말로는 다른 아이들과 전혀 어울리지를 못한다고 했다. 오는 길에 들었던 대한이 얘기가 떠올려지기도 했고, 또 그 아이와 얘기도 하고 싶어져서 탁상 뒤로 다가갔다.

“왜 학진이는 여기에 있어? 같이 놀지 그래?” 하고 권유하는 나의 말에, 학진이는 그저 지겹다는 듯 멍하게 나를 바라볼 뿐이다. 이것저것 말을 걸어봤는데, 역시 묵묵부답. 난 이내 포기하고 다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학진이가 불쑥 묻는다.

“선생님 몇 살이예요?”

나이를 대답해 주었더니, 또 다시 불쑥 묻는 말, “내가 욕해도 나 때리지 않을 거예요?”

이상한 말이었다. 그러지 않겠다고 했더니, 대뜸 손가락 욕을 한다. 한 쪽 손으로 반은 가리면서. 피식 웃었더니, 이번에는 한 손으로 가리지 않고 가운데 손가락을 내민다. 난 그저 멍하게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 진짜 안 때리네? 이상하다…” 학진이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서정상씨와 담당교사가 있는 교실 뒤편으로 간다. 거기서도 그 아이는 계속 같은 것을 물어보았다.

몇 살이예요? 내가 욕해도 때리지 않을 거예요? – 내가 너를 왜 때리니? – 정말 욕해도 안 때려요? – 응. 안 때린다니까. – 우아, 신기하다. 집에서는 맨날 때리는데…

학진이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거나 하는 것은 일차적이고 감상적인 반응이겠지만, 그 아이의 미래가 정말 걱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어린 소년이 다른 아이들처럼 해맑게 자랄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간 사람은 누굴까. 왠지 모를 화가 마음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학기 초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말도 하잖아요. 그 땐 아예 말도 안했거든요.” 이 수업을 담당한 박재우 강사는 말했다. “1학기엔 주로 이렇게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자기표현 방법을 키우는 시간으로 활용하지만, 2학기 땐 연극을 하나 정해서 그걸 준비하고 학기 말엔 공연도 해요. 지금은 학진이가 전혀 같이 어울리려고 하지 않지만, 2학기의 연극에서는 꼭 중요한 역 하나를 맡겨서 같이 연극을 했으면 해요. 학진이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요?”

담당 강사의 말을 들으니 정말, 학진이의 태도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보였다. 그 아이는 누군가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먼저 다가서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열성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계시던 박재우 강사.


거창 초등학교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의 거리를 가면, 네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마을이 나온다. 신원면이라는 곳인데, 한국전쟁 때 약 800여명의 양민들이 빨치산으로 몰려 학살당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곳에 있는 신원초등학교로 가는 길에 박재우 강사가 했던 말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같이 논다는 개념으로 해요. 가르치려고 하면, 아이들이 신기할 정도로 금방 지루해 하거든요. 아이들은 놀다가 알아서 배우지 않을까요? 연극은 ‘play’인데 그 노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의 표현 방식을 알아내고 적극성을 배워가죠. 그런 자기표현에 대한 적극성이 궁극적으로는 언어 표현의 발달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연극 교육은 많은 교육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재밌게 놀수록 교육적인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연극 교육의 장점이죠.”

그의 말처럼 초등학교 연극 수업은 크게, 1학기 때의 ‘놀이 과정’, (이 놀이과정은 행위나 동작, 언어적 표현, 도구나 그림을 활용한 표현 놀이를 말한다.) 2학기 때의 ‘연극 만들기 과정’을 커리큘럼으로 가지고 있다. 즉, 1학기 때는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는 방법을 놀이를 통해서 키워나가고, 2학기 때는 주어진 대본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변형하면서 하나의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도 초, 중, 고교에 따라 과정이 조금씩 다른데, 초등 과정일수록 놀이에 치중되어 있다면, 고등 과정에는 창작극을 만들어내는 수준으로 단계가 높아진다.

신원초교에 도착했을 때는, 시골 학교라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거창초교와는 다른 느낌이 풍겨오고 있었다. 연극 수업을 하는 교실에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이 바닥에 열을 지어 앉아서 무대 위의 두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랄까, 교실 안에서 마구 뛰어놀던 아이들에 비해 조금 소극적이고 덜 활발한 느낌이었다.

그 시간에는 일종의 상황극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이었다. 한 아이가 의자에 앉아있다. 그리고 다른 아이가 앉아있는 아이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기 위한 행동이나 말을 취한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가 일어나면 상황극이 성공적으로 종료되는 방식이었다.

그 시간을 담당한 박종희 강사는 모든 아이들이 한 번씩 나와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아까 먹은 아이스크림 뱉어내야 돼!”


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는 아이들. 지도하고 있는 박종희 강사.


한 아이가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힘겹게 걸어오더니 말했다.
“이봐, 젊은이, 이 할아범이 힘들어서 그러는데 의자 좀 내줘.”

한 아이는 다가가서 말한다. “나, 사장인데, 너 일어나!” 그랬더니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가 재치 있게 되받아친다. “월급이나 제대로 주세요!” 사장 역을 했던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내뱉는 흉내를 낸다.

또, 수업시간 내내 적극적이던 상희가 쑥스러워하며 ‘난 못하겠어요.’를 연발하던 미란이를 데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 앞에 섰다. 
우리 아이(미란)가 다리를 다쳐서 그러니 자리 좀 양보해 주세요. 애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어요.” 앉아있는 아이가 말한다. “저는요, 63빌딩에서 떨어졌어요.”

아이의 말에 폭소가 쏟아진다. 그 다음은 이런 식이었다.
얘는요, 백두산에서 떨어졌어요. – 저는요, 한라산에서 떨어져서 백두산까지 굴러가서 63빌딩에서 다시 떨어졌어요. – 얘는요, 에베레스트에서 떨어진 다음 한라산과 63빌딩을 거쳐 백두산으로…

앉아있던 남자애가 귀찮아서 일어나 “그냥 앉으세요.” 라고 말하고, 폭소가 다시 터진다.

누군가 재치 있는 말을 하고 성공할 때마다, 아이들은 금새 밝은 분위기로 변하고 활발해졌다. 나와 함께 수업을 지켜보던 서정상씨가 말하기를, 시골학교와 시내중심가에 있는 학교 학생들의 차이는 눈에 보일만큼 격차가 있다고 했다. 가령 시내의 아이들은 학교생활 외에 학원이나 사교육을 통해 예술교육에 대한 안목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지만, 시골의 학생들은 그런 기회가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다 소극적이고 수줍음을 잘 탄다는 것이다. 발표력이나 표현력에 있어서 도시 아이들보다는 수동적이고, 단순하다는 것인데 그 만큼 더 순수함이 남아있다고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 학교의 교사들이 보다 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간절히 느낀다고 한다.

신원초교의 아이들은 거창초교의 아이들과는 달리, 내가 가지고 갔던 노트북과 사진기자가 가지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에도 관심을 보인다. 아무래도 그런 기계 자체가 신기해 보였나 보다.


아이들은 <별주부전>을 읽기 위해 조로 나뉘었다. 지문에 나타난 동작과 표정을 잘 표현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아이들은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일렬로 앉았다. 그리고는 전 시간에 받아둔 <별주부전> 대본을 꺼낸다.

강사는 조별로 한 번씩 대사를 번갈아가며 읽도록 시켰다. 그리고 지문에 나와 있는 표정이나 동작, 대사의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수줍고 소극적인 몇 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아이들이 지시에 잘 따른다. 아이들은 각자 얼굴을 찡그리거나 화를 내거나 빈정거리거나 웃으면서 대사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열심이었다.

그 시간을 담당한 박종희 강사에 의하면, 시골의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소극적이기 때문에 개인 발표보다는 모듬별 활동을 지향한다고 한다. 혼자 무대 앞에 나가서 해야 할 때는 잘 따르지 않지만, 조별로 할 때는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까 하는 것이 가장 어렵죠. 아이들은 연극적인 개념에 대해서는 금방 지루해하기 때문에 같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상황을 던져주고 그 상황에 대해서 궁금해 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대처하거나 표현하도록 그룹을 만들어 논의하게 만들죠. 흥미를 느끼면, 금방 따라와요.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이 수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수업이 될 거예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 했지만, 두 학교의 공통적인 방법이 있다면,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주는 것, 그 장을 통해서 자신이 느끼는 바를 말로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 그것이 이 연극 수업의 공통적인 방법론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꿈과 사고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을 말할 때의 대답은 획일적이었다. 의사, 과학자, 법관, 아니면 사장 같은 것이었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는 조금 다양하고 엉뚱한 대답도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하고, 의미 있는 가치가 많다는 것을 그들이 예술교육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린 보다 재미있고 성숙한 사회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두 학교의 수업을 참관한 후, 서정상씨의 제의로 신원초교에서 가까이에 있는 ‘거창 학살 유적지’를 가보았다. 대략, 6.25 전쟁 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언론을 통해 접했던 나는, 전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빨치산으로 몰려 학살당한 800여 양민의 대부분이 14세 미만의 아이들과 노인 부녀자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랐다. 서정상씨의 말에 의하면,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의 이종일 위원장이 역사적인 측면의 교육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고등학교나 사회문화예술 분야의 활동에서는 거창 지역의 아픈 역사를 다룬 창작극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귀뜸 한다. 그곳을 다녀오니, 신원초교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당시 살아남은 자들과 연관되어 있는 가족들이란 생각에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신원초교에서 단체의 본부 건물로 되돌아오는 길은 약 1시간가량을 달려야 했다. 오는 길에 나는 서정상씨에게 궁금했던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그가 말하길, 연극교사로서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조금씩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인성을 발견하게 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교사라는 역할 때문에 아이들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조용히 말하였다.

그 날 만나보았던 세 명의 강사들은 모두 교육학을 이수한 정규 교사들이 아니다. 그들은 연극에 평생을 바친 현장의 연극인이자, 학교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통해 새롭게 생겨난 예술 강사들이다. 현장에서의 연극일과 강사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 듯 했지만, 그들은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거창연극제 육성진흥회> 학교문화예술교육 교육팀장 서정상씨


기억에 남았던 그의 말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이 말 속에는 현재 한국의 학교문화예술교육의 현주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시범 사업이 실시된 지 이제 2년이고, 지원법도 제정된 지 이제 반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거잖아요?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일선의 교사들은 사실 어려움이 많죠. 교육의 기준과 방법을 스스로 창조해야 하고, 예술교육에 대한 마인드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아직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하죠. 예술 교육은 아이들에게 주입식의 학교 교육을 떠나서 인성을 길러주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확산되어 나가야 합니다. 더불어 정부의 지원과 교사에 대한 처우도 함께 향상 되어 나가야겠죠.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