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내가 이렇게 예쁘구나” – 정심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안양소년원) 무용 교육 탐방

이른 아침 한 사무실, 출근하자마자 업무를 시작하기 전 성별, 나이, 직급을 불문한 모든 사원들이 월드컵 응원가에 맞춰 꼭짓점 댄스를 춘다. 이것은 무용일까, 체조일까, 혹은 치료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도심의 꼭짓점 댄스는 그저 졸음을 쫓는 것일 수도 있고 신나는 춤일 수도 있고 마음의 치유가 될 수도 있으며, 이들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전부 ‘몸의 움직임’이라는 점이다. 그저 졸음을 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침체조일 것이고, 전날 밤 클럽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색다른 공간에서의 춤일 것이고, 몸을 움직임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는 어떤 의학보다 훌륭한 치료법이 되었을 것이다. 몸을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종류이다.

올해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사회문화예술교육은 상대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집중하는 사업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 중 정책사업은 노인, 장애인, 군장병, 소년원, 교정시설 이렇게 다섯 범주의 대상으로 나뉘어 시행 중이며 그 일환으로 소년원학교에서 무용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 안산예술종합학교(소년원학교) 한 곳에서 시범적으로 했던 무용교육을 토대로 올해는 전국 8곳에서 확대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의 시행 결과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는 만큼 올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이 큰데, 8곳 중에서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심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안양소년원)를 찾아 무용 수업을 듣는 소년원학교의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는 무용 강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십대 소녀들과 무용을 연관시켜 볼 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중등학교에서의 무용 수업은, 기자의 경험으로 – 물론 전국의 중학생이 교복을 입고 다니던 오래 전 얘기이긴 하지만 – 부정적인 기억으로 가득하다. 체육 교과의 부수적인 부분으로 아무도 중요한 과목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무용실은 지하의 어둡고 지저분하고 음산한 공간이었으며, 입기 싫은 촌스런 전신 타이즈 무용복을 입혀 놓고 찬 바닥을 엉덩이로 쓸고 다니게 하는 귀찮은 무용 교사가 있었다. 아무도 즐겁지 않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한 마디로 무용 성적이 좋아봤자 등수나 입시와는 전혀 상관없었기 때문에 무용 수업은 매우 형식적인 시간에 불과했다. 학교 밖에서의 무용은 그저 춤이다. 잘 추는 아이는 신나서 더 많이 추고 못 추는 아이는 부끄러워 구경을 더 많이 하는, 잘 추는 사람은 즐겁고 못 추는 사람은 스트레스 받을 만한 춤이다. 춤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엄청나게 잘 추는 사람은 진로를 모색하기도 하겠으나, 춤이란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추거나 혹은 스트레스 쌓일까봐 피하게 되는 유흥의 일부이다. 그런데 사실 춤을 출 수 있을만한 공간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문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교육입시제도의 개선 필요성만큼이나 분명한 문제이다. 성인들을 위한 문화공간에 끼어서 놀다가는 쉽게 문제 청소년으로 몰리는데다가 공부는 안 하고 딴 짓 하는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몰래 춤을 춰야하기 일쑤다.

소년원은 학교의 형태로 운영된다. 정심학교의 경우, 정규 중학교 과정과 웹디자인, 메이크업아티스트 혹은 네일 아트 등의 직업능력개발훈련과정이 있으며 여러 가지 특별활동 프로그램으로 문화체육 활동을 겸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사회 적응의 토대를 마련하고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무용 교육은 정심학교의 정규 과정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과 자아 발견을 취지로 하여 토요일 오전에 두 시간씩 진행되고 있었다.

정심학교에서의 무용 수업은 상상 외로 모두의 만족감 속에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도 대 만족, 강사들도 대 만족, 소년원의 담당 교사도 만족스러워했다. 일치된 만족감이 오히려 의외라서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 깊게 들어야 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소년원학교의 학생들은 삐딱하지 않다. 무섭지도 않고 불량하지도 않다. 소년원은 처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교육을 받는 곳이며 학생들은 수업 등의 모든 학교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정심학교의 두 학생은 왜 무용 수업을 신청했느냐는 질문에 “새롭게 느껴져서 신청했다”고, 그리고 “여기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고 생각해서 신청했다”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특별히 무용이라는 매체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지만 억지로 하거나 형식적으로 임하는 소극적인 태도는 전혀 없었다. 이에 대하여 강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여기 학교의 학생들의 마음이 더 열려 있어요. 정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사실 성적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잖아요. 하지만 여기 학생들은 대개 새로운 경험에 기대가 큰 것 같아요 그래서 무용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빨라요.”
“일반인들도 무용에는 선입견을 갖고 대해요. 외국에서는 노인들이 춤을 춤으로써 관절염이나 치매를 예방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직접 춤을 추는 사회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여기 학생들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어요.”

무용 수업은 한국 무용과 현대 무용의 두 가지가 병행되며, 7월에 발표회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수업 내용을 구성하는 주요한 개념은 신체 인식, 자아 발견, 관계성, 협동성 등이다. 신체 인식을 통해 몸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원리와 동작을 익히면서 내면에 있는 창의력을 끄집어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동작을 통해 관계성과 협동성을 이끌어낸다. 여기에 음악이 수반되고 심성이 풀어지면서 열리게 된다. 내 몸의 움직임이 음악의 흐름과 어울리고 있다는 느낌은 기쁨과 자신감을 준다. 이런 것들은 무용이 개별적인 자아의 치유에 많이 활용되는 이유이다.

몸이 경직된 사람은 사고도 경직되어 있다고 한다.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만들어내는 동작은 접촉을 통해 타인을 인식하게 하고, 내가 일어서면 너는 앉고 내가 걸으면 너는 뛰는 동작을 함께 만들면서 생겨나는 관계성과 협동성이 다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크게 발견하도록 만든다. 이 과정을 듣기 위해학생들과 강사들을 따로따로 인터뷰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좌담 형식으로 구성해 보았다. (학생은 각각 ‘ㄱ’, ‘ㄴ’으로 표기함. 강사들은 황선화 선생님은 ‘황’으로, 길현정 선생님은 ‘길’로 표기함)

ㄱ: 처음에는 어색하고 창피했어요. 스트레칭을 하는데 잘 안 되고……
ㄴ: 정말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조금씩 몸이 달라지는 걸
      느 끼니까 재미가 붙었어요.
황: 나도 처음에는 어떻게 너희들을 대할까 당황스러웠는데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이젠 너희들이 눈을 맞추려고 내 눈을 따라오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너희들 표정이 
     달라지는 걸 대번에 느낄 수 있었어.
길: 스트레칭이 안 되는 걸 스트레스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너희들은 마음이 열려
      있는 것 같아. 음악에 맞춰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걸 느끼면 스트레스가 풀리잖아.
ㄱ: 그래서 수업 시간이 재밌었나 봐요. tv에서 본 동작도 내가 막 하고 있고,
      얘들아 나 좀 봐라, 하면서 자랑도 하고, 스트레스가 많이 풀렸어요. 어깨도 펴지고 
      자세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ㄴ: 즉흥무용 시간에 선생님이 시범 보여주시는 거 따라하고 선생님이 저희 손잡고 같이
      해주시고, 그러면서 선생님한테 친근감이 들었고 수업 시간이 편안해졌어요.
황: 맞아. 스킨쉽이란 그래서 중요한 거야. 몸이 음악을 느끼듯 상대방이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 중요하거든. 우리 수업의 중요한 점이 바로 관계성과 협동성을 인식하는 
     거란다. 그걸 알기에는 무용이 참 적합하지.
길: 춤을 추면서 가장 달라진 것이 뭐니?
ㄴ: 글세,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해져요.
ㄱ: 살도 빠지고 예뻐졌어요 하하. 스트레칭하면 혈액순환이 잘 된대서 밤에 혼자서도
      해요. 힘들게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는 것처럼 노력해서 춤을 춘다는 것이 좋아요.
길: 너희들은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는데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점점 더 달라지더구나. 
     우리 계획보다 2주나 더 진도가 빠르다.
황: 너희들도 얘기하듯 수업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너희 일상생활에서도 달라지는 게
      있다는 게 중요해. 몸을 움직이면서 마음이 열리고, 고민도 줄어들고 자신감이 생기지.
ㄱ: 이 수업을 다른 아이들도 다 경험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수업 같이 들은 20명은
      그 다음 단계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죠.
ㄴ: 담임 선생님이 우리 사진 찍어주시는데 나중에 그거 꺼내보면 “내가 이렇게 예뻤
      구나”  
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소년원학교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문화예술교육에서 배제되기 쉽다. 그러나 강사들이 밝힌 것처럼 문화예술을 통해 교육적 효과를 얻기에, 이를 테면 공교육기관의 학생들보다, 배제되고 소외된 경험이 오히려 문화적 체험에 적극적일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강사의 눈을 맞추고 싶어하며, 친구들과 스트레칭 연습을 같이 하며, 자기 몸이 달라지는 걸 자랑하며, 스스로 “내가 이렇게 예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아를 긍정적으로 발견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되는 체험은 이 학생들에게 큰 만족을 안겨주고 있다. 사춘기, 자신에게 골몰하기에도 바쁜 시절, 게다가 사회로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며 자기를 추스르기에도 벅찬 처지에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을 경험하게 했으면 좋겠다”라며 자신을 넘어선 방향으로 시선을 둘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학생들의 무조건적 만족감을 의심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못난 낙오자로 숨어 있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임을 분명하게 몸으로 깨달은 학생들은 앞으로도 자존감을 기반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심학교의 무용 교육이 이렇게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학교 측의 지원이 큰 몫을 하고 있었다. 학생 ㄱ양은 “교감선생님이 수업에 함께 들어오셔서 모든 걸 우리와 같이 하시기 때문에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 한다”고 말했다. 정심의 담당 선생님은 이에 “교감선생님이 이 수업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계시다”며, 원래 진흥원에서는 현대무용복을 지원해주었는데 교감선생님의 관심 덕분에 학교에서 한국무용복을 추가로 지원해주어서 학생들은 2벌의 무용복을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런 물질적인 지원 말고도 교감선생님은 수업의 세세한 부분까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학생들과 수업에 대해 대화를 자주 나누게 된다고 하는데, 이런 모습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무용 수업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보고서용과는 차이가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았다. 강사들도 정심학교뿐만 아니라 어떤 학교에서도 교장이나 교감 등 관리자들의 관심도가 수업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말한다.

올해는 8곳의 소년원학교에서 무용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데 각 학교의 상황은 다르다. 예를 들면 여학생들만의 정심학교가 있는가 하면 남학생들만 있거나,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있는 경우 등 다양한데, 강사들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상황에 따라 수업이 진행되는 분위기는 매우 딴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남학생들만 듣는 수업의 경우, 처음에 몸을 움직이려 들지 않아 마음을 열게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반면, 여학생들만 있는 정심학교는 2주 정도 진도가 빠른 만큼 앞서가는 시간을 보충할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무용 교육이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강사들을 충분히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사들 스스로 입을 모은다. 전문적이지 않은 강사들이 진행하면 필시 수업이 형식적이고 주입적인 면모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무용 강사들이 전문적인 강사 양성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학생들이 이후에 무용 공연의 잠재적인 관객이 된다는 기대 때문이다. 공연 무용이 활성화되도록 공연 무용가들을 양성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잠재 관객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은 사회 프로그램으로서 무용 교육은 ‘보는 춤’에서 ‘하는 춤’으로 전환을 가져오는 것인데, 그것이 다시 ‘보는 춤’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무용만이 아니라 어떤 매체를 통한 사회문화예술교육에서도 참고할 만한 지점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른 아침 한 사무실, 출근하자마자 업무를 시작하기 전 성별, 나이, 직급을 불문한 모든 사원들이 월드컵 응원가에 맞춰 꼭짓점 댄스를 춘다. 이것은 무용일까, 체조일까, 혹은 치료일까?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니 귀찮아도 해준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집단체조에 불과하겠고, 확연히 임상적 치료의 대상으로 분류되거나 스스로 치료의 필요가 있는 상태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심신의 치료 효과를 위한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겠고, 혹여 무용이란 무용수들의 예술 공연을 보는 것이다, 라는 고정 관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월드컵 시즌에 잠깐 하는 유행일 수도 있다. 그러면 정심학교에서 무용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그 춤은 어떤 의미가 될까? 어린 나이에 인생은 큰 굴곡을 경험해야 했던 소년원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이렇게 예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무용 수업의 기억은 앞으로 어떤 춤을 접하더라도 거리낌 없이 그 춤을 즐길 수 있게 할 것이며 몸을 움직여 얻을 수 있는 더 많은 것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