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이루는 자양, 문화예술교육

# 빈곤과 범죄의 상관관계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취재 중이던 얼 쇼리스(Earl Shorris, 미국 언론인)는 뉴욕의 한 교도소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돼 8년째 복역 중이던 비니스 워커라는 여죄수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당신은 왜 이 곳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다소 판에 박힌 질문을 던졌다. 여죄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시내 중심가의 잘 사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다소 의외인 대답을 건넸다. 얼 쇼리스가 “그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뭐냐?”고 묻자, “극장과 전람회, 연주회, 박물관 등을 가는 것 같은 것 말이에요. 저는 그런 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물론 부자라고 해서 모두 극장이나 전람회, 연주회장이나 박물관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곳에 가는 것을 시간낭비이자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부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여죄수의 눈에는 돈이 있어야만 그런 곳에 드나들 수 있고, 나아가 잘사는 사람들은 으레 그런 곳에 자주 가는 것처럼 보였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근사하게 차려 입고 콘서트홀을 찾거나 갤러리에 드나드는 이들을, 그녀는 거리를 떠돌며 적잖게 목격했을 테니 말이다. 그녀는 그런 이들에게 동경심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다가 그것이 또 하나의 차별이고, 상대적 박탈이라는 시기를, 급기야 분노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거리를 노숙인처럼 떠돌다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져든 자신의 처지를 개탄하며 나도 그들처럼 근사하게 살 수 있었다면 인생이 이 지경까지 엉망진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 여죄수 비니스 워커의 자기 진단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이 어떤 문화적 경험을 갖느냐에 따라 삶은 행로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미있는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을 한 사람의 삶은 때로 난관은 있을지언정 결코 포기하거나 뭉개지지 않는다. 비니스 워커 자신이 삶을 자포자기하듯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렇게 세상 속에 내쳐진 자신을 붙들어줄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금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언젠가 톨스토이가 쓴 글 중에 그런 물음을 달고 있는 것을 읽은 적이 있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오늘날에는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에서 추출된 자양(滋養)’으로 산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자양이 자존감을 키우고 자기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더 확장된 자아로서의 공동체의 생존을 뿌리로부터 견실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실제로 음악회를 찾고 전람회와 박물관을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존감, 즉 자기존중감을 갖게 된다는 심리적 연구결과도 심심치 않게 제시되곤 한다. 영국에는 역사적인 문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헤리티지스쿨’이란 것이 있다. 루이 기브스라는 헤리티지스쿨 책임자가 “어린 시절의 문화적 경험은 성인 이후 성취감과 자신감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아무런 차별 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철학”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일 것이다. 결국 사람은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을 통해 얻은 삶의 자양분으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격려하며 그것에 바탕해 부지불식 간에 지금 앞에 놓인 난관을 뚫고, 자신의 삶을 열고 펼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 언젠가 철강업을 하는 Y라는 분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 새로운 특수제철 기술을 들여와야 하는데 그 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기업에 아무리 사람을 보내서 얘기를 건네봐도 별반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본인이 직접 일본을 방문해 어렵게 그 일본기업의 회장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어려운 자리라 특수제철기술을 이전해 달라는 말은 입밖에 꺼내지도 못한 채 좌불안석이던 차에 식당에 걸린 일본목판화(浮世繪, 우키요에, 일본 풍속화)에 우연히 눈길이 가게 되었다. 식사를 하다 말고 목판화에 시선을 뺏긴 Y씨에게 잠자코 있던 일본기업의 회장이 어렵게 운을 떼며 한 마디를 건넸다. “우키요에에 관심이 많습니까?”하고. Y씨는 뜻밖의 물음에 적잖게 당황은 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키요에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름 알고 있던 우키요에에 관한 이야기를 서툰 일본말로 펼치기 시작했다. 다소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그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일본기업 회장은 점차 얼굴이 온화해졌고, 두 사람은 우키요에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나누게 되었다. 저녁식사 시간 내내 주고받은 이야기는 서로가 함께 경험한 우키요에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자리를 파할 무렵 일본기업의 회장은 별다른 요구나 이야기가 없었음에도 특수제철 기술의 이전을 흔쾌히 약속해 준 것이다. 고위임원과 실무진들이 그토록 뻔질나게 일본행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서 사정을 해도 꿈쩍 않던 일이 단박에 풀렸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두 CEO간의 공통된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의 만남이 순식간에 꽉 막힌 물꼬를 텄기 때문이었다.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조화롭게 응집된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까닭은 물론 단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에서 추출된 인생의 자양분은 저마다의 삶에서 때때로 봉착하는 난제를 풀어주는 절묘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야말로 한 인간이 성장하고 형성되어가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자양분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휴먼비잉(Human-being)이다. 지금도 형성중인 존재다. 그 형성중인 존재로서의 바탕은 그가 경험하는 문화적 요소와 그가 체험해 스스로에게 각인시켜내는 예술적 총체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그 사람에게 반영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의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이 곧 그 사람의 진면목이며 그의 인생의 넓이와 깊이, 폭과 심도를 결정한다.

 

# 결국, 삶은 저마다의 문화적 경험과 예술적 체험만큼 살아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필수항목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진홍

정진홍 _ 글
컨텐츠 크리에이터, GIST다산특훈교수,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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