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그림, 그림 속의 마음
“그림책은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책이다.” 그래서일까? 다양한 어린이 책을 보고자 찾았던 <서울 국제 도서전>의 어린이 홀에서는 대형 출판사들의 유아 교육 교재 홍보가 요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학부모들의 발길은 여지없이 그곳으로 향하고, 즉석에서 회원 가입 신청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도서전에는 그림책들이 많이 있었지만, 한글, 과학, 영어를 가르치기 위한 그림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림책이 한글 혹은 다른 무엇을 습득하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는 광경을 보며 ‘학습 교재가 넘쳐나는 지금, 그림책마저 아이들에게 학습교재로 인식되어도 되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림책은 놀이도구이자 감성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에서 그림책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 ‘작가와 함께 읽는 그림책’ 강좌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마음속의 그림, 그림속의 마음” 지난 6월 8일 <우리교육>에서는 “작가와 함께 읽는 그림책” 강좌가 열렸다. 그날 강좌는 권윤덕 작가의 “마음속의 그림, 그림속의 마음”이었다. 권윤덕 작가는 강의를 통해 마음속의 그림이 어떻게 책의 그림으로 나오는지, 그러한 그림을 통해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자 하는지를 이야기하였다. 특히 작가의 입장에서 습작노트와 슬라이드 사진을 통해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갔다. 권윤덕 작가는 <씹지 않고 꿀꺽 벌레는 정말 안 씹어>(이하 벌레책), <시리 동동, 거미동동>,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만희네 집> 등에서 마음 속에 있는 그림을 책으로 옮겨 글이 아닌 그림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왔다. 그림책들에는 작가가 아이들과 게임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숨겨놓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권윤덕 작가는 이 게임을 ‘숨기찾기’놀이라고 부른다. 숨기찾기 놀이란 그림 속의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책을 보는 동안 숨기찾기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비밀을 풀기 위해 연상작용을 하며 작가와 소통을 하게 된다. <거미동동 시리동동>를 보면 아이들은 처음에 등장하는 삼각형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여기게 되는데, 그 삼각형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그림을 따라가다가 그림책 끝에서 답을 얻게 된다. 삼각형이 그림책 속의 비밀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손에 들고 있던 감자는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이 바위 위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 그림 속의 비밀을 풀어가며 그림과 이야기를 이해하게 된다. 어떤 아이는 <만희네 집>에 있는 그림에서 ‘왜 하나의 방만 문이 닫혀 있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그 아이는 여러 차례 그 그림책을 보면서 작가조차 잊고 있었던 “숨기”를 찾아낸 것이다. 이 날 강좌는 여러 가지 예를 통해 “숨기”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게 진행되며 그림책이 지니고 있는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왼쪽그림을 보면 방 하나만 문이 닫혀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에는 “숨기”가 가득하다. (‘만희네 집’, 권윤덕 글/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아이가 그림책을 만지고 놀면서 느끼게 하자. 강좌가 끝난 후 권윤덕 작가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아르떼권윤덕 작가님께서 강의를 통해 작가의 입장에서 만드는 과정을 위주로 설명을 하셨는데, 수용자인 아이들이 어떤 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나요? 권윤덕숨기 찾기, 게임과 같은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를 읽도록 하는 것이죠. 영화에서 ‘근친’을 표현하더라도 ‘올드보이’처럼 표현할 수 있고, 감독과 작가에 따라서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잖아요? 추리로 접근할 수도, 신파적인 것으로 접근할 수도 있는 것이죠. 여러 가지 코드가 있는데, 그 코드란 작가가 관객한테 전달하는 방식이죠. 문학작품 같은 경우에는 그게 예술적인 형식이잖아요. 글의 구성이나 글의 맛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 스토리에 빠져들고 감동을 얻게 되는 거죠. 그림책에서 말하는 것도 똑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것을 <벌레책>에서처럼 자기의 본성을 잃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가는 한 인간을 게임이나 놀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벌레로 표현한거죠. 아르떼요즘 유아교육 열풍과 더불어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히며 한글을 가르치려하고, 끊임없이 스토리를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강요하기도 하는데요, 그림책이 이런 식의 교육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권윤덕그런 방법이 제일 안 좋은 것 같아요. 가령 어떤 사람은 옛날 집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면 <만희네 집>을 보라는 소리도 한대요, 내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교재로 쓰이고 있는 거죠.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라기보다는 문학, 예술 그 안에 미술, 시각적인 것, 전통, 사상이 그 안에 총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것인데, 거기서 하나의 학습적 요소만 꺼낼 수는 없는 거에요. 그 전체를 아이들이 느껴야 하는 거지요. 책을 가지고 딱딱한 책표지와 안의 면지를 넘기면서 종이를 만지는 감각, 그 종이에서 나는 냄새, 책의 크기를 만지면서 느끼는 것도 소중한 경험인데, 그것이 오로지 학습을 위해 쓰인다면 아이들은 더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아이가 그 공간 안에 빠질 수 있게 읽어만 주는 거에요.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그 안에서 놀게만 해주면 돼요. 그러면 아이가 책을 다 보고 나서 엄마와 얘기를 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먼저 말을 걸어올 거에요. 그게 가장 좋은 책 읽는 방법이죠. <옷책>(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같은 경우에는 겉표지를 넘기면, 사이 면지에 악세사리라는 악세사리는 모두 그려져 있거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그 부분이에요. 거기 있는 핀만 봐도 아이가 하루 종일 즐거워할 수 있도록 그려놓은 거거든요. 사실 뒤에 있는 거 안 봐도 돼요. 첫 장 넘겨서 핀만 봐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나는 이 핀이 제일 좋은데 잃어버리고…” 이런 식으로 말이죠. 아이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부모나 교사들은 아이들이 책을 느끼게만 해주면 되는 거죠. <만희네 집>같은 경우는 전통과 현대 중간에 있다보니까 그 연결 고리로서 이야기하기가 좋아요. 아이가 그것을 계속 읽다가 엄마에게 물어올 수 있는 것,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아르떼그림책은 아이들이 제일 처음 접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 그림책이 지닌 문화예술교육적인 면은 무엇이 있을까요? 권윤덕아이가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하나가 그림책인 거죠. 그림책에는 작가들이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아이가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경험하는 거에요. 가령 요새 ‘까궁’놀이를 보면 처음에 동물이 나오다가 마지막에는 사람이 나오거든요. 사람과 동물과 이런 것을 통해서 놀이를 지닌 즐거움도 간접경험을 하는 거죠. 또 엄마와 하는 까꿍놀이를 책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는 거죠. ‘노란우산’ 같은 경우에는 우산이 지닌 색감이 갖고 있는 조화스러움, 색감의 아름다움, 공간의 구성들을 자기도 모르게 그 책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거죠. 또 엄마가 옆에서 끊임없이 읽어주면서 아이가 언어라는 것을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그 개념들을 알아갈 수 있죠. 또 거기에 쓰여진 문장들이 잘 다듬어져있고, 시적이기도 한 문학적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좋은 문장, 감성이 풍부한 문장을 익힐 수도 있는 거죠. ‘시리동동 거미동동’ (권윤덕 글/그림, 창작과 비평사 펴냄) 안에는 어떤 ‘숨기’가 있을까? 시리동동 거미동동으로 시작되는 제주도의 꼬리따기 노래를 시와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끊임없는 상상력을 요하는 그림들은 함축적 의미를 표현하는 ‘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아르떼그렇다면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그림책만이 지니는 장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권윤덕그림책에는 ‘건너뛰기’가 있다는 거죠. 우리가 전시장에서 보는 그림은 대부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리고 만화책은 연속적인 그림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잖아요. 그런데 그림책은 한 장과 그 다음 장을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연결을 해야 한다는 거죠. ‘건너뛰기’를 통해 중간과 중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상하게 되는 거죠. 이러한 상상하는 즐거움이 그림책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제가 끊임없이 ‘숨겨놓기’를 해 놓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죠. 작가의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진 유쾌한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는 너무 의도된 “교육적인 것”만을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이제는 체험자의 오감으로 체득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아이가 그림책을 통해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더라도, 촉감을 통해 느끼고, 냄새로 느끼고, 책과 함께 놀고, 상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가 그림책을 통해 작가와 대화하면서 문화를 읽고, 관계를 체득하게 된다. 그림책으로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즐거움을 얻고 있는지, 아이가 그림책과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자. 그리고 아이가 그림책을 들고 말을 걸어올 때 대화할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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