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걸음, 한 마당, 사물 만나기

나여훈|사당초등학교 교사

지난 웹진 땡땡에서는 ‘교사, 배움을 나누어 주기 위한 배움의 여정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교사교육에 대해서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호에 이어 문화예술교육 정책 사업 중 교원연수 시범사업을 들여다보면서 교사들이 원하는 교사연수의 모습을 찾아가봅니다.
지난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 동안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초중등 교사 대상 디자인 연수가 열렸습니다. 계간 디자인 교육 새야가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대학과 공동으로 개최한 이 연수의 마지막 날. ‘일상’과 ‘사물’이라는 연수의 주제를 교사들 스스로 모둠을 꾸려 체험해보는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내용과 소감을 한 열정적인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전해 들어봅니다.

– 디자인연수 넷째날 사물놀이디자인 워크숍에 참가하고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함께 엮인 초등 선생님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던 이 워크숍은 썰렁함과 어색함, 당황스러움으로 시작되었다. (사실 연수의 분위기는 중등교사들에게 맞춰진 듯했고, 덕분에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다소 소외되고 위축되어 있던 게 사실이었다.) 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어쨌든 우리에게 내던져진 새 사물 만나기의 바다에서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과정을 이끌어가게 되었다.

우산은 또 하나의 나이다 – 1단계 이해

우산! 너무나도 친밀한,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한 우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우산은 (   )이다’라는 명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당황스러웠다. 사실 우산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리 중요하게 느껴본 적도 없음을 서로가 서로의 눈빛에서 알아차리는 순간, 어떻게든 나와 우산과의 추억이라도, 어디서 듣거나 본 것이라도 끄집어내야한다는 생각으로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 추억 1.어렸을 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산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듯 방과 후 비가 쏟아지면 우산 들고 찾아와주시던 어머니가 기억이 나서 우산은 어머니이다.
  • 추억 4.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부지런히 접해서 챙겨 다녀야 하고, 혹시 버스나 지하철에서 두고 내린다거나 하면… 어떤 사람에게 우산은 강박적인 관념이다.
  • 추억 6.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우산이 있으나 내 우산은 하나뿐이며, 그것을 고르는 것도 순전히 나의 취향에 따르는 것이다. 그저 비만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패션의 한 코드로, 나를 표현하는 사물로 우산은 기능한다. 그러므로 우산은 또 하나의 나이다… 여러 가지 추억도 강박도 결국 나의 일부이므로…

그리고 우리는 우산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산은 ‘또 하나의 나’이다.

우산은 블랙홀이다 – 2단계 버림

이번엔 우산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이해과 관념들을 버리고 새로운 우산과 만나야한다. 도대체 우산에 대해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찾아내란 말인가! 그러나 사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또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한 사물에 대해서 연상되는 것과 비유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고 말하고, 또 그 의미를 공유하며 우리가 생활과 문화라는 틀에 가두어놓았던 그 사물을 새롭게 보는-그것을 해체라고 하는 것 같다-과정이므로 사실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1. 우산은 보물상자다.우산을 거꾸로 하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고, 그 안에는 분명 신기한 것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신기하고 재밌고, 또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
  • 2. 우산은 비행기이다.다분히 공상적인 이 연상은 메리포핀스에서 차용했다. 우산을 타고 어디든 이동하고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
  • 5. 우산은 사칙연산이다.나와 그를 함께 하도록 해주며(+), 내가 그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우산 밖과 우산 안으로 나누며(÷), 함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할 수도 있다.
  • 6. 우산은 블랙홀이다.우산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다-3단계 체험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각 테이블에 거대한 상자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우산들이, 어떻게 이런 것을 찾아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정성스럽게도 준비되어 있었다. 갖가지 모양의 우산을 이리 보고 저리 보게 하더니 이제 한 가지를 택하여 그것을 마구 분해하라고 한다. 물건을 망가뜨리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와서 멀쩡한 물건을 뜯어내고 관찰하라는 것은 여전히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과연 이것을 뜯어도 되는 것인지? 그러나 언제 그런 의심을 가졌냐는 듯 어느새 모두들 즐겁게 그것을 모조리 해부하고 있었다. 뜯어보고 해체하면 할수록 이 녀석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분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녀석의 부산물들을 모두 체크해야 했고, 심지어 과학적인 작용(그것의 역할, 그리고 전체와의 관계 맺음 등등)을 찾아내고 또 그것들이 우리의 오감에 주는 느낌이며 그것이 주는 감동까지 하나하나 모두 꼼꼼히 적어야 했다.
이 녀석은 마치 양파껍질과도 같았고, 베일에 싸인 신비한 여인과도 같았다. 단순한 생활의 편리의 산물로만 느껴지던 이 녀석은 그 안에 엄청난 것을 품고 있었고, 우리는 그 앞에 무척이나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자연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이것은 각각의 구성물들이 유기적이고 과학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엄청난 물건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사회’로 부르기로 했다.

허리를 조여서 터질 것 같은 물음표양의 우아한 치마와 가냘프고 유연한 거미의 다리 – 4단계 이야기

우리는 그 사물을 완전히 해체하고 관찰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단어들을 찾아내었다. 이제는 그 단어들을 가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차례다. 그 때 적어냈던 단어들은 너무 많았고, 사실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 사물을 이루는 물질들의 촉감, 연상되는 것들, 과학적인 작용들에 대한 단어들을 무수히 나열해나갔던 것으로만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 단어들이 하나하나 적힌 종이를 책상 위 가득 펼쳐놓고 낱말 게임하듯이 문장을 만들어갔다. 적어도 다섯 문장은 만들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나서 갈기갈기 부서져버린 잔해들, 무수한 단어들, 춤을 추듯 자유로운 문장들… 이것들을 가지고 우리는 다시 무엇인가 조형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다른 조에서는 조금 더 관념적이고 감각적인 작업을 하는 듯 했다. 우리는 그저 이제까지 우리가 찾아낸 것들을 표현하기로 했다.
우산대는 물음표가 되었고, 우산의 천은 치마가 되었다. 상자를 가지고 치마를 부풀리는 패티코트 역할을 하게 했으며, 우산살은 가냘프고 유연한 거미의 다리가 되었다. 우산 꼭지를 마감해준 천은 졸지에 물음표 양(孃)의 멋스러운 모자가 되었고, 종이컵에 그려진 귀여운 눈도 오려다 붙여주었다. 그리하여 ‘허리를 조여서 터질 것 같은 물음표양의 우아한 치마와 가냘프고 유연한 거미의 다리’가 완성되었다.

우산 또는 이것은 신비스러운 눈동자이다 – 5단계 통합

그렇다. 만약 이 과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허탈의 늪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고작 이런 조형물이나 만들자고 지금까지 그 짓(?)을 해왔던가 하고 말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정의들을 나열하고 조합하여 하나로 만들어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과정이기도 하다.

  • 1. 우산은 또 하나의 나이다.
  • 2. 우산은 블랙홀이다.
  • 3. 이것은 사회다.
  • 4. 이것은 허리를 조여서 터질 것 같은 물음표양의 우아한 치마와 가냘프고 유연한 거미의 다리이다.

이것들을 늘어놓고 나서 들여다보니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미지들을 단순하게 그려가면서 동질적인 것들을 묶어보았다. 어느 순간 그것은 아주 친숙한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것은 클로즈업된 눈동자였다. 다른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신비한 창. 그 안에 또 하나의 내가 있고, 블랙홀처럼 세상을 빨아들이고, 또한 과학적이고 유기적 신체의 신비가 멋지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바로 우산에서 발견해낸 또 하나의 세상에 그것이 있었다.
순간,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과 그 위의 우산(방사선 무늬의 것)은 마치 여인네의 치마처럼 뱅그르르 돌고, 그 주변의 많은 다양한 우산들도 돌고… 롱샷이 되면서 신비한 우주의 블랙홀 또는 수많은 별들로부터 빠르게 벗어나는 듯싶더니 그것이 내 눈이었다. 혹은 그 반대여도 좋을 것 같았다.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니 뱅그르르 도는 수많은 여인네들의 치마, 가까이 가보니 한 우산, 그 아래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눈동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갑자기 엄청난 이미지의 파생에 정신 못차리다가 이 것을 새로운 우산을 디자인하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새로운 사물을 만나다 – 6단계 공유

우리가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고 표현해낸 것인지 의구심을 가진 채 공유하는 시간이 왔다. 다른 팀들의 표현물을 보고 어떤 과정이 이루어져왔는지 궁금했다. 발표의 과정은 그래서 중요한 듯싶다. 또는 중간에 그런 표현물을 봤기 때문에 더 자극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이 시간을 함께 마무리하면서 우산은 더 이상 그 우산이 아니었다. 우산은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왔고, 나는 새로운 사물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러한 과정을 내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 짐작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본능적이고 순수하며, 훨씬 열정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하는 것보다 허접한 결과물이 나올지라도 그 과정을 제대로 이행해나간다면 나처럼 당황과 의구심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