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뫼비우스(Eberhard Mobius)의

     에버하르트 뫼비우스(Eberhard Mobius)의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

글_임재춘(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 교육기획팀 전문위원)
에버하르트 뫼비우스(Eberhard Mobius)의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 (보리, 2000)
소년의 아름다운 꿈

유럽의 남서쪽 끝자락에 있는 나라 에스파냐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은 꿈을 꾸었다. 아홉 살 때 본 영화에서처럼 소년은 꿈꾸었던 대로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 속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소년들의 마을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아이들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거리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당시 에스파냐는 1936년부터 3년간 지속되어 온 인민전선정부에 대한 군부와 우익세력간의 내전이 대자본, 지주, 교회를 기반으로 하는 프랑코 체제의 승리로 종결되면서 그의 독재가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에스파냐의 노동자 계급은 의식주를 비롯해 교육, 문화예술 등 물리적 생존의 조건과 충만한 삶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모든 기회에서 배제되었다.
에스파냐의 사회적・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신부와 함께 동네의 고물을 주워 팔며 생활비를 마련하는 열다섯 명의 소년들은 스스로의 삶터를 마련하기 위해 모였다. 넝마(Trapo), 종이(papel), 병(botellas), 소년들(mucha-chos)의 약자로 “Tra-Pa-Bo-chos”라는 글자가 쓰인 현수막을 건 수레를 끌고 마을을 다니면서 어린이 공화국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몽상가 사제의 부모님 집을 거처로 삼았다. 주민총회와 같은 모임은 근처 교도소의 큰 공간을 활용해 열곤 했다.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둬두기만 할 줄 알았던 교도소에 아이들이 드나들며 마을의 공간으로, 또는 교육 공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공간 개념을 보여주게 된다. 마을은 소년들의 공화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소년들이 만든 나라에 대해 궁금해 했다. 소년들은 하키, 서커스, 민속공연 등 자신들의 장기를 개발하여 어린이 공화국의 재정을 벌어들이고 몇 년 후에는 ‘벤포스타’라는 이름을 가진 낡은 포도 농장을 매입하여 본격적인 어린이 공화국을 세울 터전으로 삼게 된다.

노동자의 나라 벤포스타

노동은 벤포스타의 모든 경제활동의 원인과 결과, 순환이 이뤄지도록 하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공화국 안에서만 통용되는 화폐가 있고 경제활동은 모두 이 화폐로 교환된다. 필요한 물품을 사고, 밥을 먹는 일, 그리고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까지 그야말로 사람 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은 아이들이 정한 벤포스타만의 교환 체계 하에서 이뤄진다. 결국 벤포스타에서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 없으므로 공화국에 살고 있는 모두는 일을 해야만 한다. 벤포스타의 주민이 점차 늘면서(2000년에는 2,000여명의 주민이 살았다) 공동의 의제와 같은 논의사항 뿐만 아니라 조정을 통해 합의해야 할 분쟁도 점차 늘어 벤포스타의 소년 주민들은 최소의 법도 제정하여 자치의 보편적 규칙으로 삼았다. 돈키호테의 나라 에스파냐의 문화적인 특징이겠지만 희생, 정직, 친절, 사랑, 명예 등 윤리적인 내용을 명시한 벤포스타의 법을 아이들 스스로 공동체 생활을 위한 자연스러운 이치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 이상이다. 교사의 지도편달과 부모의 감시를 피해서 하지 말라는 것만 하는, 어른들이 늘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말이다.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다양한 사람, 사회와 상황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복잡성을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벤포스타는 정상적인 한 인간이 일생 또는 소년 시절을 살아가면서 경험해야 할 삶의 과정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열과 논쟁, 그리고 선택의 순간마다 아이들은 더불어 사는 삶의 원칙을 체화하며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가 있지만 벤포스타는 실로 그 자체가 학교라 할 수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은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힘과 살아가는 방법론으로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다. 공동체적 삶을 터득하고 실천하는 곳이 바로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이다.

몽상하는 신부 실바 멘데스

어릴 적 꿈처럼 열다섯 명의 소년들을 이끌고 실현 가능한 이상으로서의 벤포스타를 현실에 내놓은 이가 바로 헤수스 실바 멘데스 신부다. 실바는 변화의 방향과 변화에의 의무를 강조해온 벤포스타의 철학적 기준이 되어왔다. 1972년 벤포스타를 방문한 에버하르트 뫼비우스(책의 저자)가 묘사한 실바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정책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 중 하나인 ‘매개자’의 모범적인 모습을 실바 신부를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 유명한 교육자이거나 학자도 아닌 그저 꿈과 열정을 가진 젊은 사제였던 그는 불합리한 정치적 상황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실천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 중 온전한 삶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조용한 혁명의 주체로 아이들이 유일함을 인식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만든 나라 벤포스타만의 창의적인 운영시스템이 개발된 것은 이런 그의 일관된 철학 하에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에버하르트는 그래서 실바 신부가 진정한 혁명가임을 이야기한다. 꿈을 꾸는 행위에서 시작된 그의 공상이 실존하는 벤포스타를 만들 수 있었던, 인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변혁의 실제라고. 그리고 나는 올해 초 우연히 접했던 글에서 실바가 해온 혁명의 동력을 이해할 단초를 발견했다.

미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착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내가 겪어온 경험으로, 내가 맺은 관계로 내가 열망하는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지식, 경험, 관계들보다 앞서서 나를 이끌고, 나를 격려하고, 나를 긴장하게 하는 것이 있다. 나를 떨리게, 흔들리게, 감격하게, 절실하게 하는 것이 따로 있다. 그게, ‘사랑’이다. 연애할 때 느끼는 “아, 견딜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견디지 못하는 사랑이 나의 지식과 경험과 관계를 이끌고, 전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나의 지식을 재편하고, 나의 경험을 반성하고, 나의 관계를 자각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이 혁명의 처음이 바로 ‘미.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친다는 것을 나는 존경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

-권혁수,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 소식지창간호 중


그래서 흔히 열정을 가진 ‘미친’ 사람들의 존재 유무는 이상적인 것을 보다 현실에 가깝게 하느냐의 기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벤포스타

경기도 안성의 산자락에 아이들의 나라를 실천하고 있는 아힘나 운동본부가 있다.‘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아힘나)’운동은 1950년대의 에스파냐의 사회적 상황에서의 소외와는 당연히 다르다. 그러나 경제적 효율이 최상의 사회적 선이 되어 버린 자본주의의 일천함을 추종하는 현실은 에스파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힘나 운동은 아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돕고,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공존과 관용의 가치를 몸에 익히며 상생의 문화를 생활 속에서 실천해나가는 평화운동이다. 실바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자주성과 진취적인 역동성, 그리고 자발성을 믿고 다양한 교육방법론을 개발하여 실천하고 있다.
아힘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 전체를 기반으로 공동체를 꿈꾸는 도시가 있다. 인구 35만의 작지 않은 도시 광명시가 그렇다. 광명시 평생학습원이 2년여의 연구와 준비 과정을 통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지역통화 프로그램‘그루’는 사람과 사람이 교류할 수 있도록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다. ‘그루’를 활용해 각자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 서비스, 시간과 같은 서로의 자원을 교환하며 이러한 나눔의 실천을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해 공동체를 꾸려가고자 한다.

현실은 꿈보다 아름답다

벤포스타의 이야기는 어쩌면 꿈과 몽상에 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구태의연한 나의 상상력은 이 기록의 놀라운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라는 궁색한 질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물론 이 책에서 몽상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벤포스타가 철저하게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 공화국 안에서만, 그들의 꿈을 자족하면서 벤포스타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과 대안적인 현실 정치・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벤포스타의 주민들은 벤포스타의 국경을 부지런히 넘나들고 있다.
교육에서 문화예술과의 접점을 새롭게 만들거나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고 실현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인지 조차도 도식화되어 너무도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곤 한다. 그 결과는 대상과 상황을 단순화하기 일쑤고 기존에 있는 정책의 틀에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에 들게 한다. 벤포스타와 실바 신부의 무엇이 우리 가슴에 남아야 할지, 문화예술교육의 영역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실천할 점은 무엇인지 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은 기실 분절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공상을 생산하기 위한 예술 활동이어야만 할 것이다. 비단 향유자의 문제가 아닌 기획자, 교육자의 위치에 있는 매개자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담아본다. 실현은 몽상하는 실천가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 실바 신부가 벤포스타를 통해 지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임재춘|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