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밀착된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감독, 장호준

인터뷰_박유신(명덕초등학교 교사) / 사진_박해욱
영화감독 장호준은 다큐멘터리과 단편영화<돌아갈 귀(歸)>의 감독인 동시에 <해보자! 영화 만들기>(문학과지성사, 2001)라는 아주 친절한 영화 만들기 입문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내게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장본인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내왔다.

7,8년 전 내가 문화예술백수들이 많이 모여있던 PC통신 모 동호회에서 그를 만났을 때도, 그는 놀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시나리오를 쓰고, 책도 쓰고 있었다. 그러나 한가했다. 그때 그는 이미 <낮은 목소리 > 1편과 2편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했고, 아직은 유명하지 않았던 밴드 델리스파이스의 앨범제작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을 찍어 감독으로서의 재능도 어느 정도 인정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호회에 모여있던 이들이 거의 그랬듯이, 예술에 대한 애정과 그에 못지 않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하여 20대의 후반기와 30대의 초반을 PC통신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부유하며 지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랬고, 늦은 밤 채팅을 하며 신세 한탄을 하거나 하면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공유하고는 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내가 취직을 하고,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주류사회에 편입을 하고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누그러트리고 있을 때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물론 그 동안 쓰고 있던 책이 출간이 되었고, 단편 영화를 한 편 더 찍었고(그는 2000년 단편영화 <돌아갈 귀>로 오버하우젠 국제 단편영화제 경쟁부문, 부산 국제영화제, 상파울로 국제단편영화제 등에 초청되었다), 이제는 단편이 아닌 상업영화 데뷔를 준비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그는 영화와 함께 30대를 천천히 걷고 있었고,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에게라면 해외영화제라던가 한류 상품이라던가 하는 영화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들 말고, 보다 삶과 밀착된 진솔한 영화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어색함을 무릅쓰고 인터뷰를 청하였다. 섬세한 미각을 자랑하기도 했던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최고로 커피 잘 끓이는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한국에서 영화감독 되기

옛날 작업들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주세요.
옛날 얘기를 하자면… 저는 처음에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1,2 편에서 조감독으로 출발했어요. 그 이후에는 델리스파이스의 다큐멘터리를 찍었죠. 이렇게 중견가수가 될 줄은 몰랐는데(하하)… 그 친구들이 좋았던 거는 각자 전공이 다르고 자기 길이 있었는데 PC 통신에서 모여 한번 팀을 짜 보자 의기투합을 하더니, 연습하고, 카피하고… 이러면서 취미활동으로 시작했던 점이에요. 그런데 메이저에 픽업이 된 거예요. 그래서 앨범을 만들자고 얘기가 나왔고, 녹음을 하고… 제가 그런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었지요. 그게 연출로서는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중간에 세게 딜레마가 왔어요. 영화를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를 때였죠. 그때가 스물 아홉 살 때인데, 먹고 사는 문제도 생각하게 되고, 우리 부모님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다 큰 아들 뒷바라지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영화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희망이 보이면 계속 하고 아니면 말자.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돌아갈 귀>를 작업하셨죠?
예. 그걸로 본의 아니게 유명한 영화제에도 초청되고 상도 타고 방송국의 독립영화 프로그램 등에 판권을 팔아서 돈도 좀 벌게 되었죠. 그래서 계속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한거죠.

영화를 준비하는 이들에겐 꽤 희망적인 얘기네요?
제 경우는 조금 특별한데요, 지금 대한민국에 단편영화를 준비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것은 일년에 많이 해도 100편도 안되거든요. 다 된 것만 보면 금방 나도 될 것 같은데 영화를 잘 만들고 못 만들고의 문제와는 다른 게 있어요. 저는 그 영화가 어떻게 소통되어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고요. 영화가 어떻게 소통되어야 할 지를 몰라서 그냥 들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또 장편의 경우는 일단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만드냐 마냐에 자본의 힘이 적용되지요.

제가 알기로는 <해보자! 영화 만들기>라는 책을 쓰기 시작하신 것이과 <돌아갈 귀> 작업의 중간 무렵이었거든요. 영화를 취미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굳이 평생의 길로 택하신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그 책을 쓰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그걸 직업으로 생각하기 위한 일환 같은 것이었어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마냥 즐겁진 않아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고 성과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 힘든 상황을 버텨내는 얘기를 웃으면서 하기도 하지만 사실 힘들어요. 외적인 문제는 참을 수 있어요. 근데 이게 재능의 문제로 가면,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래야 한다는 의지지, 그럴 수 밖에 없는 당위나 그래야만 하는 결과나 이런 게 아니거든요. 회사원은 한 달 일하면 한 달의 성과가 나오는데 예술은 아니에요. 반 고흐를 보세요.
저는 제 진로의 가장 민감한 시기에 영화에 대한 책을 썼고, 내가 할 수 있을까? 안되면 나는 안할꺼야 라고 굳게 결심을 했어요. 그 시기에 책을 쓰고, 영화를 찍었고. 사실 그 약발로 여태 버티고 있는 거죠.

감상자 입장에선 단편일 땐 자기 목소리 내고 예술적 성취가 높았던 감독들이, 장편으로 가면 쉽게 대중 취미에 영합해서 작품의 질이 좀 떨어진다고 할까, 이런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그런데도 굳이 장편영화를 하려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편이 아니라 상업영화라고 하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직업으로 삼고 있는데 계속해서 단편을 찍으면 돈을 벌 수는 없고 그럼 직업이 될 수는 없죠. 또 단편영화는 독립영화형태로도 만들 수 있지만,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들어가잖아요? 단편영화를 만들어도 요즘 3,000 만원 쉽게 들어가죠. 의외로 굉장히 저렴하게 찍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할 부분이 있거든요. 가령, 스탭들도 다들 정식으로 보수 받고 일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안다는 이유만으로 도와달라고 청해서 일하기도 해요. 하지만 전 그런 스탭들에게도 보수를 지불하고 싶거든요. 또 많은 관객들과도 만날 수 있잖아요. 단편영화도 영화제 등을 통해서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지만 그건 일종의 매니아 차원의 이야기고, 대중성을 확보한다는 건 꼭 타협한다고만은 볼 수 없어요. 거기에 상업영화, 장편영화의 매력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이 대중에 기반을 두고 있다보니. 어찌 보면 수준 높은 작품들이 설 자리를 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러한 한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정작용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영화라는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돈을 많이 벌어오면. 그 돈으로 문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영화들에게도 수혜가 가요. 사실예술성이 있는 영화라는 건 언제나 흥행스코어는 안 좋죠.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예술성 있는 영화들 안에서 만들어지는 방법들이 대중적인 영화들에 또 영향을 주기도 하죠.

새로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감독으로서, 본인은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고 싶으신지요?
제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그래서 사실 수많은 기회들을 접기도 했고. 어려움도 있어요. 제가 장담컨대 어떤 영화 지망생이라도 이 이야기는 들어봤을 거예요. 시나리오는 좋은데 현실성이 없다는 것. 좋게 거절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정말 그럴 수가 있거든요. 영화라는 건 최소한 수십억의 예산이 들어가고, 그 자본의 회수를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라고 한다면 대략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이건 좀 분리해야 하는 게 단순히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영화를 만든다는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거든요. 이제는 그래요. 영화를 만들고 싶다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제는 뒷받침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다 있어요. 근데 상업영화를 하고 싶다는 것은 또 달라요. 나를 알리고, 사람들을 계속 만나서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이런 작업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감독이나 시나리오 쓴 사람에게 영화가 달려있으니까. 자본가들이 이 사람이 잘 할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게끔 신뢰할 수 있는 경력을 만드는 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인 거예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면 꾸준히 시나리오를 써서 보여줘야 하고 연출을 하고 싶으면 끊임없이 연출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고, 연기를 하고 싶으면 처음부터 주인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런 것들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시간을 필요로 해요. 일상적으로 직업처럼 되는 것이 아니니까 논다고 표현하는 거죠.

영화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들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즘 영화이야기, 영화제나 개봉된 영화들과 대중의 취향에 대한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나는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해진다면 대중의 취향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따라서 예술성있는 작품들이 보다 많이 제작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 주제는 학교에서의 영화교육 이야기로 옮아갔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영화를 교과로서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영화가 어떻게 공교육이 될 수 있지요? 제 생각엔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과목이 있으면 다들 그것에 영향을 받아 훌륭한 감독이 되고 싶어한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책을 쓴 것도 삶 속에서 영화를 만들자는 거지 훌륭한 영화감독이 되자는 얘기는 아니었거든요.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이야기고 그릇이고 방법일 뿐이지 이 자체가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극 안에 무엇을 담고있는가가 중요한 거니까. 미술에 대한 얘기를 담아내면 미술 영화이고, 음악을 담아내면 음악 영화이고… 저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더 낫다는 거죠. 공교육에서 받아들일 때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감성이나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영화 감독이 되기 위해 해야 할 건 상상력과 통찰력을 기르는 일이지 용어를 외울 필요는 없어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면 정작 영화를 찍는 기술보다는 책을 많이 보고, 생각을 하고, 자기가 글도 써 보는 게 중요해요. 영화를 만들 때는 여러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데 열 사람에게 다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종이에 써서 주는 거라구요. 이 글에 내 생각을 옮겨 쓰기 위해서는 잘 써야 하잖아요. 저는 영화감독이란 종합선물세트를 구성하는 사람, 자기가 뭘 만든다기보다는 상품을 배치하고, 포장은 어떻게 하고 무슨 상품으로 구성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안에는 사진, 음악, 연극, 미술 등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들이 들어있으니 그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되겠지요. 영화를 가르치고 싶다면 국어에서 시나리오를 가르치고, 미술에서 미장센을 가르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하자 작업장에서 강의한 적이 있으시죠. 당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소문에 의하면 상당히 우울해 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던데요)
저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준비해갔는데 아이들은 굉장히 직접적인 얘기를 듣기를 원했던 거예요. 디지털이란 무엇인가? 왜 디지털인가? 하는 원론이나 철학 이야기를 준비해 갔는데, 애들은 말을 막고 ‘비디오 카메라로 영화 만드는 법’ 이런 실질적인걸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맥을 놓친 거죠. 너무 당황해서 결국엔 흐지부지 되어버렸죠.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생각한 것이 내가 생각한 것이랑 다를 수도 있는데 저는 교육자가 아니니까 그걸 제가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끌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두 번째는 아이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내가 어떻게 기어를 바꿔 나아가야 할지를 몰랐고요. 딱 얘기 주제가 바뀌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고 말았어요.

하자작업장 같은 경우는 공교육하고는 좀 다르지만 제 생각에 그 강의는 <해보자! 영화 만들기>의 연속선상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게 되기를 바랬고, 그런 공간에서 소통이 되기를 원했죠. 지금도 아쉬워요.

어떻게 생각하면 문화예술교육 강사풀제를 비롯해서 전문가들이 교육현장에 투입될 때의 실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네요. 그렇다고 교사들이 전문 분야에 대해 잘 모르면서 가르칠 수도 없죠.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우면 좋을까요?
첫째는 교대나 사대에서 영화에 대한 강의를 개설하는 방법이 있죠. 두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법은 알지만 가르치는 법은 모르는 사람들이 교수법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겠죠. 제가 생각하기엔 교사는 전문직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전문가 투입도 중요한데, 초중고등학교 때에는 내용보다는 가르치는 방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오히려 원론적인걸 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중고등학교 땐 재능 있는 아이들을 발견해내고, 재능을 키우는 방법을 알아내면 되는 거죠. 그 아이가 고2때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라는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술교육에 너무 치중하지 않았으면 해요. 영화는 쉽게 찍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삶 속에서 영화 만들기

그런 의미에서 <해보자! 영화 만들기>의 저자로서 삶 속에서 영화 만들기의 의미란 어떻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음악 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음악을 하는 것도 클래식을 하지 않으면 반사회적 행위였고 그림도 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면 인정을 못 받았죠. 유일하게 인정 받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였는데 자기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으니까 발산의 여지가 없고, 그러니까 우울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잖아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고, 쉬운 것 같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는데, 이젠 핸드폰이나 디카로도 쉽게 영화를 찍을 수가 있죠. 직업으로서의 영화는 아니더라도 학교 다닐 때 어떤 대상을 만들어서 자기영화를 찍어서 보여주는 행위는 그 사람 인생 속에서 참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극장에서 영화 관람하는 것도 소중한 행위가 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삶 속에서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모든 예술 자체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죠.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만드는 것을 자기 만족으로 만든다면 거기에는 룰이 없어요. 다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요. 가령,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식구들의 하루를 찍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랑 아빠랑 동생을 찍고, 찍을 때 머리 속에 ‘나는 우리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한 것에 맞춰서 편집을 해요. 편집을 하면서 늘 일상으로 보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가 있거든요. 그것은 다른 사람에

게 의미가 없을지언정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거든요. 10년, 20년이 지나서 이 안에 있던 사람들이 죽어도 여전히 그 작품 속에서는 영원하고, 그것 자체가 굉장한 즐거움인 것 같아요.

하지만 영화란 상영을 전제로 하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개인의 영상물을 공유하는 방법이 있나요?
인터넷에 올리면 되죠. 자기 홈페이지 만들어서 올리면 사람들이 와서 보잖아요. 조금만 잘만들면 인터넷에 유료 상영관에서 상영될 기회도 오고, 그로 인해서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가 있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어느 곳에든 왕도는 없어요.

장호준 감독이 <해보자! 영화 만들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사실 디지털 캠코더의 값은 매우 비쌌고, 아무나 감히 영화를 내 표현수단으로 삼아보자고 나설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의 책 이야기를 듣고, 당시에 나는 반신반의했다. 누구나 쉽게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 이제 영상물로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렇게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영화 만들기를 교과목으로 만들어 버리면,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과 용어들, 그리고 시험과 성적에 이제 막 현실화되기 시작한 즐거운 영화 만들기가 박제되어 버리지 않을까 장호준 감독은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영화 전공도 아닌 학생이 감히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힘든 시절에 그도 영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듯,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릇에 자유롭게 삶과 이야기를 담아내지 않을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호준 감독은 장편 영화 데뷔를 위해 요즘도 끊임없이 회의 중이다. 그리고 상업영화와는 무관하게, 나이 들어서까지 계속 관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함께 아이들과 영화작업을 해보고 싶지 않은가라는 나의 제안에 장호준 감독은 아이들이 무섭다며 웃으며 손을 내저었지만, 언제라도 초대하면 그가 함께 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박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