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_박유신(명덕초등학교 교사)
– 너무 많은 주어진 이름, 너무 부족한 주어야 할 이름
– 너무 많은 주어진 상품, 너무 부족한 주어야 할 상품
이름 없는 것들의 이름 만들기, 상품화 되지 않은 것들의 상품 만들기.
홍대 앞 395번지에 둥지를 튼, 이름도 없고 가게도 없는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미술대학 동기생들. 그들은 사회로 나가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막상 취직해서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려고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을 대면하게 된다. 그들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클라이언트들의 요구와 충돌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요구들을 가볍게 무시할 만큼 조형언어가 성숙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들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온다. 꽉 짜여진 삶, 꽉 짜여진 제품들에 의해 우리들의 삶이 짜깁기 되는 것은 아닐까? 상품과 이름은 넘치지만 정말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연과의 관계, 공간과 시간을 디자인할 수 있는 매개체를 디자인하기로 한다. 그들의 홈페이지에는 제품이 아닌 여러 가지 개념과 도면, 매뉴얼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디자인 작업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올해 초 세상에 내보인 작업물 이야기로 만남을 시작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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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작업장에 모인 노네임노숍의 멤버들 김종범,이신혜,이혜연,전지향,박경옥,김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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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드뤼아데스>는 일종의 작업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인가요?
그동안 저희는 자연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매번 과제를 진행해봤는데 인간이 자연과 조화된다는 것 말고는 별로 재미도 없고 설득력이 없더군요. 제 3세계에서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럽에서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인 것 같고, 어쩌면 그것은 잘 사는 사람들의 고급 취향으로서의 자연인 것 같았어요. 그러던 차에 환경 책자에 실린 이윤기 선생님의 에세이를 읽게 됐는데, 자연은 그 자신이 하나하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인격체이고,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였지요. 자연보호라는 이상한 틀이 없이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 근방에 엄청나게 큰 삼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딱 잘라버린 사건이 있었어요. 옮겨심기에는 운반비도, 인건비도 안 나오니까 그냥 베어버리는 것이 값이 쌌던 거죠. 그때는 가로수 가지치기도 많이 했을 때라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지요.
<하마드뤼아데스>의 키트는 조각칼과 나뭇가지와 나무상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매뉴얼도 꼼꼼하게 적혀있는 것이 인상적인데요.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희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만들어진다는 전제 하에 그 키트를 제작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용자들이 생명을 부여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서 일부러 겹겹이 포장디자인을 좀 과하게 하기도 했어요. 키트를 만드는 중간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감동을 받았거든요. 일본에 전해진 조선의 막사발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기자가 막사발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하니 내온 상자에서 막사발이 열 몇 겹의 상자로 포장이 되어 있더라고요. 거기에서 공들여서 꺼내는 걸 보고 저런 의식을 통해 차를 마시게 되면 차 마시는 행위에 보다 의미부여가 되겠다 싶더군요. 형식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할까요? <하마드뤼아데스> 키트를 사용할 때, 패키지를 다루는 행위 자체에서 메시지가 어떠한 층위로 전달된 것인가를 생각하고 사용자가 상자 안에서 층층이 메시지를 시간차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에 신경을 썼어요.
워크숍 과정도 <하마드뤼아데스> 작업에서는 의미가 큰 것 같았는데요.
워크숍할 때는 워크숍을 위한 정리를 다시 했어요. 나뭇가지를 개별적으로 잘 바라볼 수 있도록 세팅을 하고, 개념과 나무에 대한 설명, 만드는 법을 설명을 하는 과정을 가졌어요. 저희가 물건을 만들어서 보여주면 오히려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어서 최대한 안 만들고, 소스들만 제공을 했죠.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참여한 분들이 재미있게 활동을 해 주셔서 의외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나오더라고요.
노네임 노숍의 홈페이지에서는 실제로 워크숍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하마드뤼아데스> 키트를 활용해 만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주위에서 하찮게 버려지는 나뭇가지들이 키트를 통해서 새로이 의미를 부여받은 결과물들을 보면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또 워크숍을 위해 이들이 얼마나 공들여 대상들을 세팅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패키지나 작업재료 세팅은 중요한 디자인 언어였다. 이들의 매개자적 디자인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발휘하고 대상과 교감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하마드뤼아데스>나 별자리 워크숍 등의 예를 보면 노네임 노숍의 디자인들은 문화적인 관심이 돋보입니다.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려고 해요. 그리고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별자리라는 것도 천문학적 관점이 아니라 문화적인 면을 보거든요. 별자리는 인생의 감성체계나 사람들의 살이, 1년이라는 순환시기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지요. 그런 숨겨진 개념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달력을 만든다면 숫자를 예쁘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시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디자인이 되겠지요.
<이면공작 시나리오>는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출발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작업장을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라 살다보니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혀서 1년 정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이 공간에 살게 되면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면공작 시나리오>가 생겨났어요. 작은 공간을 여럿이 쓰려다 보니 대안을 구상하게 되었고, 또 저희가 있는 홍대 앞 395번지 상가공간들이 헐린다 만다 얘기가 많아서, 살았던 사람들이나 사는 사람들을 모아서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온 생각들이에요. 실제로, 이 공간들이 헐리고 여기가 전부 술집으로 바뀔 수도 있다면 그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거든요. <이면공작 시나리오>에 의하면, 작업실은 갤러리로, 숍으로, 까페나 이벤트 및 워크숍 공간으로, 또 공동 작업장이나 생활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의사소통의 기능을 가질 수도 있고, 시간과 공간을 잘 디자인한다면 방세도 절약하고 수익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원래 시나리오의 컨셉은 작업실 오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시는 <이면공작 시나리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이면공작 시나리오>의 내용이 소통하자는 것이라면 형식에 있어서는 최대한 정보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에 전시를 하면서 개념화시키고 정보상품화 시키려는 것이에요. 또 전시를 기회로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전시보단 우리가 얘기했던 것들의 실제를 현실적으로 적용해 보고 보완, 정리하고 실천할 단계인 것 같아요. 저희는 실제로 제품을 완성하고 일정표를 보완해서 작업장을 오픈하는 게 목표인데 아직 시나리오가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질 필요도 있고, 사적공간을 개방하는 것에 대한 작가들의 거부도 있고 해서 쉽지만은 않아요.
작업실 공간이 <이면공작 시나리오> 자체인 것 같습니다.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해주세요.
우선, 이곳은 저희가 이사를 간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곳을 사용할 수 있도록 분리, 조립, 해체가 가능합니다. 두 번째는 작업장 하나로 침대로도 사용하고 수작업대로 사용하기도 해요. 한 부스마다 할당된 공간과 역할들이 있어요. 낮에는 작업을 하고 오후엔 개방한다고 가정하면, 뚜껑을 열어서 박스가 될 때 각각의 부스에서 작업을 할 수가 있습니다. 까페나 갤러리로 쓸 때에는, 이 부스들을 연결하거나 눕혀서 활용할 수 있고, 회의할 때는 회의 보드로도 사용합니다. 섬세하게 쓸 수가 있어요.
스스로 세상을 디자인하도록 도와주는 노네임노숍의 키트들
노네임 노숍의 작업들은 매뉴얼을 통해서 자본가로부터 독립을 하고, 직접 소비자와 직거래 형태를 취한 것 같은데요?
아이디어 자체가 상품이 된다면 자본을 들이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만들 수가 있어요. 완성품이 아니더라도 아이디어를 패키지로 만들면 누구나 만들 수가 있죠. 이것은 일종의 정보상품화에요. 네덜란드의 드룩디자인 작품 중에 서랍장을 묶어놓은 것이 있는데, 저희는 그걸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에 돌아다니는 걸 묶어서 쓰자는 개념일 뿐인데 상품이 돼서 비싸게 팔리잖아요. 이런 개념을 제품으로 팔지 않고 오픈을 시켰다면 재미있는 것이 더 많이 나왔을 텐데…
저희는 개념을 패키지로 판매해서 사람들이 더 업그레이드 시켰으면 해요. 반드시 이 모양일 필요도 없고, 필요한 사람들이 관리를 해서 더 정교하게 쓰임을 만들고 발전을 시키고,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요. 필요한 사람들에게 파는 것 보다는 개념을 디자인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디자인해서 발전시키면 좋지 않나요? 정보상품화라는 게 그래서 필요하지 않은가 싶어요.
그들이 보여준 <이면공작 시나리오>의 도면을 살펴보니, 도면 한 장만 있으면 누구나 값싼 재료로 노네임 노숍의 작업실을 재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보다 큰 공간의 작업실을 위한 것 그리고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하기 위한 일정표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고민이라면 이것들이 보다 정교해져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완벽한 시나리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완성하기 위한 조형언어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역시 그들의 몫이었다. 노네임 노숍이 보여주는 디자이너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디자이너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고 있었다.
노네임 노숍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가요?
김종범 : 디자인이란, 그냥. 솔직해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진짜.
이혜연 : 내가 어떤 것에 이끌리는 것에 발길 가는대로, 느끼는 대로, 와 닿는 대로 해 온 것 같아요. 즉흥적이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하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
김건태 : 디자이너는 조형언어가 섬세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조형언어라는 것이 메시지의 본질을 전달할 수 있을 만큼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게 쉽지가 않아요.
박경옥 : 디자인한 것에 대해 책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소한 것이라도 만들었을 때 이건 왜 했는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노네임 노숍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가 디자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서의 디자인 수업에도 그 원인이 있을 텐데요, 학교에서의 디자인 수업에 대한 제안이 있으시다면요?
저희 선배(전의 디자이너 이상훈)가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고 오셨는데, 그 학교의 학과는 인간과 사회, 정체성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이런 것들을 고민한 디자이너와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이라는 틀 안에서 고민한 디자이너는 전혀 달라요. 인간이나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대해 고민을 한다면 그 결과물은 시각물일 수도 있고 제품일 수도 있는데 저희는 제품을 만든다 라고 하는 한계 안에서 고민을 하잖아요. 작곡가 윤이상의 포스터를 디자인한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현대음악가니까 구성주의니 뭐니 이런 식으로 가다가 나중에 느낀 바가 있어서 윤이상의 음악을 심취해서 들어보았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고,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디자인이 나왔어요. 그 컨셉에 심취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젊은 디자이너들과의 대화였지만, 대화를 통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화려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보다는 스스로 세상을 디자인하도록 도와주는 그들의 디자인 키트는 한없이 친절하고 사려 깊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교육현장에서의 디자인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무조건 예쁘게, 쓰임새 좋게 만을 강조해 왔던 것은 아닌가? 디자인 수업이란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과 이를 둘러싼 사회와 자연을 관찰하고, 생각하여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디자인하도록 도와주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네임 노숍의 키트들은 교육현장을 새로이 디자인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겠구나 생각해 보았다.
노네임노숍 홈페이지 (www.nonamenosh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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