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은 ‘생활의 발견’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 – 김찬호 한양대 교수
—강연정리_조성희(웹진땡땡 편집부)
공동체와 청소년 대안교육의 현장을 두루 오가며 의미 있는 저작들을 선보여온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김찬호 교수가 12월 16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문화교육의 방향 전환-과시에서 소통으로’ 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삶과 일상에 기반한 상상력을 복원하는 문화예술교육의 다채로운 사례들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김찬호 교수 먼저 여러분이 어떤 미적인 체험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외부의 특별한 영역을 생각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어떤 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갖게 했나를 생각해봅시다. 인간은 본능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지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열망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 같습니다. 예술교육의 과잉과 부작용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구조가 유지될 수는 없겠죠. 예술가들도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제 수업을 들었던 무용학과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자신들의 미래를 굉장히 우울하게 생각하고 있더군요. 졸업 후의 진로가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이죠. 저는 이제는 무용학과 등에서 전공자에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과 눈을 맞추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무용학과 교수들이 일반 학생들에게 감상법 등을 가르치면서 저변을 확대해야 하고요. 사실 우리도 학교를 다니면서 그렇게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예술에 대한 리터러시나 경험이 없어 공연장이나 전람회장에서 위축되기도 하죠. 우리가 문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소위 말하는 고급문화의 현장에서 문화를 전혀 향유하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술의 장벽을 걷어내는 것이 지금 필요한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삶의 보람을 만들어갈 수 있는 촉매재 문화와 예술을 경제와 관련 지어 생각해 봅시다. 지금까지 고도성장의 길을 걸어오던 우리 사회가 IMF 이후 저성장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죠. 경제는 꾸준하게 성장 중이지만 고용창출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죠. 일자리가 없으니 토목 사업만 계속해서 벌이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부가가치 생산 방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서는 안 될 겁니다.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고 그것이 하나의 경제적인 가치로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영역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나 고용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술의 가치가 부각됩니다. 또, 생활의 면에서 보자면, 그 효과가 중요해집니다. 우리는 이제 점점 노동하지 않는 시간이 많아지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연금이나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노후의 긴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생산에 집중하고 완전고용이 거의 이루어졌던 시대, 먹고 살기 바빴던 때에는 문화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변했지요. 경제는 어려워졌지만 문화의 시대는 도래했습니다. 대기업에 고용된 디자이너의 숫자들을 봐도 문화의 영역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었고 그런 점에 많이 주목을 하고 있지요. 문화적인 생산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이는 고용 문제에도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을 겁니다. 예술과 대중 사이 대학에서조차 전인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계와 서열에 후학들을 묶어놓는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또, ‘순수와 대중문화’ 라는 이분법으로 예술의 경계를 그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는 전공학생들에게 그 능력을 어떤 식으로든 펼치게 해주어야 하고, 다른 활동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활동이며 기반이 약한 편이죠. 예술은 생활 곳곳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것에서 가치를 살릴 수 있는데 이것을 순수라는 이름으로 무대나 갤러리라는 영역에 묶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문화예술 인력들이 어떻게 하면 삶의 여러 현장에서 결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예술은 창조와 상상력이잖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자기창조성을 개발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보다 매력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문화예술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문화’교육이라고 말은 하지만 한국에서는 교육 자체가 반문화적입니다. 교사 문화가 경직되어 있고 교무실의 위계서열이 너무나 분명하다 보니 항상 눈치를 보거나, 스스로를 열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아요. 교사 스스로가 즐길 수 있어야만 교실이 문화공간이 되는데 말이지요. 교사 안에서 기쁨이 우러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학교가 어디보다도 표현이 억압된 곳이고, 교사가 누구보다도 경직되어 있어요. 항상 윗사람으로 있다 보니까 편안한 몸짓이 나올 수가 없지요. 예술은 멈춰 서서 다시 한번 보게 하는 것 한국 사람들은 자존심이 잘 상하는데, 그건 자존감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자기와의 대화가 없어서 그렇고. 특히 남자들이 그래요. 나이 들어서 직장 그만두면 초라해지지요. 돈이 있고 없고에 상관없이 생활 자체가 궁핍해집니다. 내면의 의미자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거예요. 학생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끊임없이 문자메시지를 날리죠. 휴대폰 없으면 불안해하고. 이렇게 소통을 많이 하는 나라가 또 없습니다. 휴대폰 통화시간이 세계 최고라고 하니까요. 그런데도 끊임없이 외로워하잖아요. 접속을 해야만 존재하는 시대라고나 할까요. 왜 그렇게 소통에 대해 의존적인가를 생각해보면, 넉넉히 자기와 대화할 공간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빈 소통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다지는 쪽으로 시간을 쏟으면 소통이 훨씬 즐거워질 텐데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는 학생들이 쓴 글에서 더 절실하게 나타나는데, 끊임없이 모임을 만들고 만나고 해도 비어있는 자기 모습을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어요. 그 비어있는 자신을 다시 채우려면 시간을 들여야 되고 연마를 해야 되는데 해본 적이 없으니까 힘들지요. 그게 비극인 것 같아요. 엄청난 돈을 들여도 그걸 채워주지 못하니까요. 예술특목 중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다가 아이들이 굉장히 삭막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모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돈을 투자했고, 아이들이 갈 길은 정해져 있으니까 거기에 모든 걸 걸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지요. 몇 천만 원짜리 악기를 사줬는데 제대로 안 하면 가만히 놔두겠어요? 특히 음악은 20대 이전에 두각을 나타내지 않으면 그 뒤로는 힘들다더군요. 그러니까 어린 나이부터 가파른 경쟁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피아노 학원 선생님 하면서도 그걸 예술행위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대에 서지 못하는 대신 하는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지요.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소년은 아버지의 강요로 권투를 하는데, 아버지 몰래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기로 하고 선생님과 아이가 처음 대화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 발레 선생님이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오라고 하거든요. 그 소년의 삶, 사연,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야 소년을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참 부러웠어요. 만약에 한국에서, 피아노 학원에서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음악에 대한 느낌을 주고받고 할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요. 가르치는 사람이나 부모, 학생 모두 예술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함께 하도록 교육이라는 코드가 없다는 건 예술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열은 아주 높은데 교육적인 유전자가 없는 경우가 많이 보이거든요.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박물관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을 봤어요. 아이는 박물관에서 본 걸 안내책자에서 다시 찾아보고 있는데, 부모는 아이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군요. 소통의 코드가 너무 없으니까요. 새로 연 국립박물관에 갔더니 군인들 한 중대가 떼거지로 왔더군요. 발상은 좋은데 태도가 안 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여러분이 하시는 일은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관리화되는 측면이 있지요.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고. 그런데 ‘내가 하는 일 중에서 몇 퍼센트는 하기 싫지만 즐겁게 받아들이고, 20 퍼센트 정도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식으로 스스로 정하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으면 엄청난 생산성이 나올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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