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 푸른 싹의 다짐

<여는 글>상춘곡, 푸른 싹의 다짐


바야흐로 봄이 왔습니다. 짐짓 어느 시인의 말을 빌어보자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온다는 그 봄입니다. 난데없이 봄 타령을 시작하려니, 사계절이야말로 인간이 처음으로 가지게 된 추상적 개념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저 아득한 먼 날 인류가 처음으로 대지에 씨앗을 흩뿌리던 그 순간부터, 아마 인간에게 봄은 “시작”을 뜻하는 추상명사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소식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리면서 나날이 들려오던 승전보가 그것입니다. “한국 야구 세계4강 진입”보다,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야구 이야기에 상기되는 사람들 모습을 구경하는 일이 더욱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하던 어느 한낮에 밥집에 들어가서는, 테이블마다 야구 이야기로 넘쳐나는 광경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스포츠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함께 울고 웃게 만들 그 무엇을, 우리는 별로 가지지 못한 것일까요?

지난 3월 5일에 막을 내린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 전을 떠올려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마침 마지막 날 찾아갔던 미술관에는, 그림을 제대로 ‘구경’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인파에 찌푸려진 인상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분출구를 찾기 힘들었던 어떤 욕구들이 이런 대규모 전시회장으로 모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남다른 감상에 젖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스포츠가 독점해온 자리를, 이제 미술과 음악, 연극과 무용, 문학과 영화가 조금씩 나누어가지면 어떨까요. 열광할 그 무엇을 다채롭게 가진 사회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상상과 고민이 우리만의 것은 아닐 터입니다. 3월 6일부터 9일까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문화와 예술과 교육을 함께 묶어 상상하고 고민해온 세계 각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6 유네스코 예술교육 세계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번호 웹진은 이 <세계대회> 참관기를 기획특집으로 싣습니다. 각기 다른 시선과 관점에서 기록한 세편의 참관기를 들여다보면서, 저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열린 국제행사와 우리 사회의 상상과 고민을 연결시킬 ‘정보’와 ‘안목’을 함께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생각난 김에 다시 시 한수 읊어볼까요. “비탈진 공터 언덕 위 푸른 풀이 덮이고 그 아래 웅덩이 옆 미루나무 세 그루 갈라진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았다 때로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가보다”고, 또 어느 시인은 말합니다. 늙은 나무의 밑동에도 푸른 싹이 돋는 봄인데, 늙은 나무도 젊고 싶은 봄인데, 웹진에도 푸른 싹이 아니 돋을 리 없습니다. 누구라도 젊고 싶은 봄이니까요.

웹진이 새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이 절정에 달하는 다음 달이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뵈려고 합니다. 그동안 웹진 기사가 조금 딱딱하고 어려웠다고 느끼셨다면, 진지하고 정성스러우려 했던 마음까지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호부터 웹진을 새로 맡게 된 편집부에서는, 그 진지함과 정성을 고스란히 이어가면서도 조금 더 친근하고 조금 더 상호적이며 조금 더 현장과 밀착된 기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개편준비호 격인 이번 3월호에서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새 단장은 <아르떼진>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선보이게 될 다음 달을 기약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새봄 새 시작에 마음이 설렙니다. 더불어, 지금 읊조리는 상춘곡이 이 봄으로 그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일 년 열두 달 푸른 싹 그득한 웹진이 되리라 다짐해봅니다.

글 l 조은주 (편집장,echo10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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