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_박유신(명덕초등학교 교사), 사진 _박해욱
“개를 무척 좋아해요. 내 꿈 중에 하나가 삽살개, 진돗개, 풍산개 그리고 똥개를 한번에 키우는 건데 같이 있으면 재미있거든요. 자기들끼리의 프로그램이 생기니까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자리잡은 백창우의 작업실은 과연 개와 관련된 물건들로 가득했다. 개에 관련된 책, 인형과 사진, 그야말로 ‘개’ 투성이다. 나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삽살개, 진돗개 같은 순종은 물론이거니와 허스키, 말티즈, 코커스패니얼 같은 외국산도, 동네 똥개도 더불어 키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다. 바로 백창우가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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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이창희 시, 백창우 곡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이 노래처럼 ‘예쁘지 않은 사람은 없고, 예쁘지 않은 개도 없다’고 생각하는 백창우는 그래서 사소한 마음들, 작은 이야기들도 아름다운 노래로 담아낸다. 그는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의 동시에 노래를 붙이며 전래 동요를 채집하고 음반으로 옮겨 왔다. 또 이문구나 이원수 같은 시인들의 잊혀질 뻔한 아름다운 동시를 찾아 노래로 만들어왔다. 다르지만 같은 그의 노래를 들으면 타임머신을 타게 된다. 어린시절 수영을 하다가 쉬를 해서 강이 나 때문에 더러워질까 가슴 졸였던, 딱지가 넘어가면 마치 내가 넘어가는 것 같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남루하고 감추고 싶은 추억들까지,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느낌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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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 따먹기
-강원식 시, 백창우 곡
딱지 따먹기 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
그에게 노래는 무엇일까. 음악이란 또 무엇일까. 어린이 노래모임인 ‘굴렁쇠 아이들’을 만들어 공연도 하고, 어린이 전문 음반사인 ‘삽살개’도 냈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시 쓰고 노래 만드는 사람인 백창우를 만나 그의 삶과 노래, 교육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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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노래를 만드는 이유는…
첫 번째는… 내 마음이 환해져요. 아이들 노래를 만들면 내 마음이 착해지고 마음 속 어린 날들이 살아나요. 그래서 지금 어린이들, 어린 시절을 겪고 어른이 된 사람들과 함께 이런 정서를 나누고 싶었어요. 어떤 어른도 아이 노래를 부를 때 악한 표정을 짓지 안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동요를 부르면서 자기의 어린시절, 착했던 시절을 생각하거든요.
저는 동요를 아이들의 노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른도 부를 수 있고 또 불러야 하는 노래라고 생각해요. 우리 역사에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른들도 아이들 노래를 함께 불렀어요. 예를 들면 나뭇잎 배, 반달, 이런 것들이 다 어른 아이 함께 부르는 노래였지요.전래동요나 자장가, 놀이노래가 다 그렇죠. 어른들이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게 어린이 문화인데, 지금은 애들이 노래를 하면 어른이 못알아 듣고, 어른이 노래를 하면 애들이 못 알아듣고, 이런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80대년 초부터 지금까지 한 20여 년 동안 동요작업을 해오면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음반을 낼 때나 공연을 할 때도 항상 동요를 섞어왔어요. 그러니까 이 작업은 잃어버렸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살려내는 일이에요. 전 노래가 소통의 끈,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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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삶과 놀이와 노래, 그리도 정서적인 균형들에 대하여
저는 아이들이 노래를 통해서라도 재미있거나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그런 감성들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어요. 요새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너무 보호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밝음에 대한 경험을 주로 해요. 우리 어렸을 때처럼 없음, 가난함, 슬픔 이런 것에 대한 경험을 하지 못하죠. 정서적 균형이 무너졌어요. 슬픈 정서, 어두운 정서, 외로운 정서, 그런 것들에 대한 경험도 해야 하는데 말이죠.
술래잡기를 보세요. 그건 일종의 모험놀이거든요. 아이들이 다 숨어버렸다, 이제 외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혼자 해결해나가야 하죠. 무서운 곳도 찾아야 하고. 그 노는 순서로 보면 얼마나 스릴있고 재미있는 일이에요. 이런 경험이 아이들의 정서의 폭을 얼마나 깊게, 넓게 만들어주는지… 마음이 자란다는 거는 수만 개의 별들이 마음 안에 들어와 자기 빛깔을 내는 일이거든요.
교과서의 거세된 시와 노래들
교과서만 해도 그래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엔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 너무 슬픈 이야기는 실릴 수가 없었어요. 혹시 윤석중의 <짝짜꿍> 원래 시를 보셨나요? 그걸 보면, 그렇게 밝은 노래가 아니에요. 거기에는 공장 다니는 언니가 나오고, “우리 엄마가 웃는다/우리 아빠가 웃는다”는 구절은 원래 “울든 언니가 웃는다/눈물 씻으며 웃는다”였지요. 최근에 교과서에 이오덕 시, 김영동 작곡의 <개구리 소리>라는 노래가 실렸는데, 그것도 보니까 슬픈 구절은 다 잘려나갔더군요.
우리 동시의 양대 산맥은 윤석중과 이원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윤석중의 작품이 교과서 곳곳에 나오는데 비해 이원수의 것은 거의 없지요. 윤석중의 시가 상대적으로 밝은 것,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것이 많다면, 이원수의 시는 절망적이고, 어둡고 외로운 게 더 많아서죠. 그래서 어린이와 이런 시, 노래들이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요. 그러다가 그런 시 노래가 좋다는 것을 아는 어른들이 이오덕 선생님을 필두로 해서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 살아있는 거지요.
노래를 붙일 시를 선택하는 기준
그때 그때 다르지만, 노래와 만나면 좋을 것을 선택하죠. 상투적이거나 관념적인 것들은 가능하면 빼는 편이고요. 사실 아이들은 시를 재미없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시가 원래 재미없는 게 아니거든요. 그랬다면 벌써 시가 없어졌겠죠. 재미란 코미디 프로같은 것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흔들거나 울릴 수 있는 무엇이 되기도 해요. 아이들도 다 알죠. 나는 이원수의 동시에 노래를 가장 많이 붙여왔는데, 이 시들은 제 마음을 흔들어요. 이분은 시를 억지로 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현대에는 시인이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닌데, 예전 시인들에 비해서 더 어려워지고, 덜 생생해지고, 틀이 생기고, 자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어렵게 쓰려고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노래성을 잃어버렸다는 거지요. 이문구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한달쯤 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요.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고, 노래가 있는데, 이야기는 거짓말이지만 노래는 참말이라고 하셨죠. 그리고 노래가 될 수 없는 시는 가짜라는 거예요. 모든 시가 노래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 속의 노래성에 대해 말씀하신 거죠.
창작동요제가 아닌 노래잔치
음악은 자유로운 거고 공식이 없는 건데, 창작동요제의 음악은 그렇지가 않아요. 다 어떤 공식을 정해놓고 만든 노래이니, 교과서 노래와 창작동요제 노래는 한 지붕 두 형제와 같아요. 창작동요제가 생긴 이후에 전국의 모든 동요제가 다 똑같아졌죠. 여기 나오는 어린이들의 옷하며 화장, 몸짓, 말 한마디까지 이미 다 짜여져 있어요. 그건 살아있는 문화가 아니고, 이걸 하게 되면 아이들은 자기가 없어져요. 그 아이는 형태적 주인공일 뿐 내용적으로 진정한 자기 문화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창작동요제가 아니라 노래축제나 노래잔치 같은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과가 아니라 아이들끼리 모여서 노래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야 해요.
어린이 발성법에 대하여
제 기억에 의하면 50년대 말에 어린이 발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어요. 전통적인 우리 노래는 육성에 기본을 둔 방식이고 서양의 방식은 두성을 사용한 방식이에요. 어른 성악의 어린이 버전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이 방식을 받아들이자는 쪽이 있었고, 다른 한쪽은 육성을 이용한 전통방식을 고수하자는 것이었는데 전자가 이기게 되었죠. 그게 바로 리틀엔젤스나 선명회로 이어지는 발성법이에요. 그래서 모든 어린이 합창은 그렇게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가게 된 것이고 육성을 주류로 하는 발성법은 밀려났지요. ‘굴렁쇠 아이들’이 현재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 ‘굴렁쇠아이들’ 중에 마당쇠 같은 목소리의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다른 어떤 합창단엔 못 들어갈 거예요.
그런데 한 학급에, 아니 한 학교에서 음악가가 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모두가 받는 교육에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내기 방식으로 돌아가야 해요. 노래의 주인은 아이이고, 아이가 즐거워야 해요. 그러려면 자기 목소리로 불러야죠. 그러니까 아이를 놓고 노래를 잘하냐 못하냐를 저울질 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거예요. 얘는 이런 느낌 재는 이런 느낌인 것이지 얘가 쟤보다 상대적으로 잘하고 못하는 게 아닌 겁니다. 제가 창작동요제를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노래를 무슨 점수를 매깁니까?
머리가 아닌 마음을 위한 교육
음악교육은 머리로, 공부로 만나지 말고 노는 것으로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교과서에 충실하고자 하죠. 그런데 교과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을 좀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본보기로 만든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에요. 세상의 모든 음악은 교과서 안에 담을 수가 없고, 또 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거죠. 음악에는 정답이 없는데, 마치 교과서 때문에 음악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때로는 불량교사도 나와서, 가슴으로 만나는 한 장면을 남기는 게 중요하고, 어떻게 아이의 상상력을 더 건드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야죠. 노래를 이야기와 함께 가르쳐 보세요. 아이들에게는 그게 인생의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거든요.
어떻게 재미있게 노래를 가르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가수 중에 <고향의 봄>을 한번도 시원하게 못 불러봤다는 가수가 있어요. 악보 그대로 불렀다가는 사장조로 저음인 사람들은 절대 못 부르죠. 그래서 나는 이런 방법을 제시해요. 키가 맞는 어린이들끼리 그룹을 지어서 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거예요. 노래에 반드시 악보나 반주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선생님들은 악보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지만 악보는 그냥 ‘보기’일 뿐이에요. 아이들은 노래를 소리를 듣고 배우지요. 선생님이 노래를 완벽히 알면 반주를 포기해도 되죠. 첫음만 누르거나 박수를 쳐도 되고, 북을 쳐도 기타를 쳐도 되죠. 옛날엔 노래 하나 가지고 하루 온종일 부르고 놀았어요. 또 한두 시간 일상 속의 대화를 노래로 부르는 숙제를 내 준다든지, 사물의 소리를 듣고 음 찾아보기, 간단한 노래의 노랫말을 바꾸어 부르기 등등 손쉽게 아이들과 노래를 배울 수 있는 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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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노래
작년에 지리산 자락의 분교 몇 군데를 찾아 갔었는데, 아이들 제 노래를 다 알고 있더군요. 내가 만들었다고 하니까 다들 안 믿는 이 아이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 인터넷을 통해서였어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뭔가 좋은 것들을 소통하는 것들이 가능해진 거죠. 그 안에 나쁜 것이 많이 있어서 문제지 문명 속에서 좋은 것을 만나는 방법은 자꾸 생각해야 해요.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는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이원수 음반 같은 건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나갔어요. 그 까닭이 뭔가 하면, 좋다고 느낀 어른들이 그것을 퍼트리고 있는 거예요. 70년대에 독재 시절에 배운 것 중에 하나가 마이크로미디어 운동이에요. 탈춤이 그랬고. 노래가 그랬죠. 대학에서 공장에서 50명 100명이 모인 곳에서 어떤 문화의 흐름들이 생겨났잖아요. 마이크로미디어 운동은 매스미디어에 기대지 않고 몸에서 몸으로 전달하는 운동이죠. 이것이 저는 90년대 말, 2000년대 들어서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인 거지죠. 한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몇 백 명의 어린이를 만나는 것과 같고, 한 명의 어머니를 만나는 건 몇 십 명의 어머니를 만나는 것과 같아요. 혁명이란 더 좋은 것으로의 변화를 꿈꾸는 것인데 보통 한사람 한사람의 바램과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동요운동도 열 사람만 이 노래가 좋다고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열 사람은 넘었으니까 이미 성공한 셈이지요. 하하.
요즈음 주로 하는 일들
제가 한 3년쯤 하다가 끝내지 못한 일이 있어요. ‘노래 속에서 본 시, 시 속에서 본 노래’ 이런 제목으로 윤동주부터 안도현에 이르기까지 60인의 시인들 시에서 노래가 되면 좋을 것들을 골라서 노래로 만들고 있어요. 그걸 음반과 책 2권에 담는 작업이 지금 마무리 단계에 있지요. 이건 청소년과 교사를 위한, 문학과 노래의 보조교재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우리에게는 교육을 만나기 이전의 아주 어린 아이들을 위한 노래가 전혀 없는데, 말놀이를 통해서 우리말의 맛을 느끼고 말의 개념을 익히고 말의 쓰임새를 알게 되는 음반을 만드는 게 또 하나의 일입니다. 또 올해는 미루고 미뤘던 동시집도 하나 끝내야 하고, 백창우 개인음반 3집, 그리고 굴렁쇠랑 하는 음반은 계속 진행되는 작업이지요.
꿈들, 꼭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하여
있어요! 하나는 개 키우는 거지만, 보다 사회성이 있는 꿈을 이야기하자면 어린이를 위한 음악박물관을 만드는 거예요. 단지 지난 걸 가져다 놓는 전시 공간이 아니라 악기를 가지고 놀아보고 연주도 들어보고, 또 주말엔 가족과 함께 하는 라이브 콘서트를 할 수 있는 박물관이죠. 바깥은 숲이고 안에는 어린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몇 번을 와도 질리지 않고 가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을 중심으로 한 놀이터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음반사를 만들었을 때 우리나라에 어떻게 어린이 음반사 하나 없나 화가 나서 구멍가게처럼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다들 안하니까 내가 해야죠.(웃음)
이날 나눈 그 많은 이야기들은 끊이지 않는 그의 시와 노래, 아이들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달고, 길었다. 그것을 다 지면에 옮기지는 못하는 게 아쉽기만 하다. 교사인 나로서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노래 교육을 강조하며, 교사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이들 수백 명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한 얘기가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그는 단순히 서정적이고, 여백이 있는 아름다운 노래 시인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을 직접 실천하는 활동가였고, 웅변가였다. 그의 노래들이 ‘날마다 아침이면 눈을 뜨는 나팔꽃처럼’ 어린이들의 마음에, 어른들의 마음에 예쁘게 피어날 날을 꿈꾼다.
** 백창우 인터넷 소굴 개밥그릇(www.100dog.co.kr)에 들어가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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