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 속의 각별한 사연들과 만나는 사람 – 방송진행자 신동엽

평범한 삶 속의 각별한 사연들과 만나는 사람 – 방송진행자 신동엽


장마가 개인 칠월의 어느 오후, 경기도 금촌의 한 아파트 입구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일곱 살 예진이와 여섯 살 종헌이, 연년생 남매의 집 앞.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의 촬영현장에서 문득 예진이와 종헌이가 사는 아파트의 풍경을 둘러보니 참 평범하고 별다를 것 없는, 친숙하고 가까운 이웃동네의 모습이다. 산만하고 공격적인 성향의 아이들이나 유달리 내향적이고 관계를 기피하는 아이들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의 촬영현장에 서있자니, 그 아이들과 가족들의 경험과 이야기들이 모두 그 친숙한 아파트의 풍경처럼 실은 아주 평범하고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진이와 종헌이네 식구 이야기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이 제작지원 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사례들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지고 있다. 일 년 넘게 방영되어 왔던 이 프로그램에서, 이제 시청자들은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낯설고도 익숙한 단어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지금까지 그러했듯 귀가 솔깃하도록 재미나면서도 코끝 찡하게 전해줄 사람은 개그맨 신동엽씨.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비슷한 삶들을 방송을 경유해 만날 때, 그 만남을 항상 어색하지 않게 주선해온 사람이다. 자폐 소년이든, 휠체어를 탄 청년이든, 무기력한 중년의 곤궁한 삶이든, 그를 통해 만나면 왠지 비슷비슷한 사람살이 같고, 먼 남 얘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삶들

방송진행자로서의 그는, 사연은 많아도 유별나지는 않은 삶들에 유달리 밀착해있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그가 맡아온 예능프로그램들 중에는, 연예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얘기들이 유독 많은 것 같기도 하다.“제가 특별히 무슨 의식이 있어서 그런 프로그램만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예능의 역할은 아주 다양해요. 시청자에게 박장대소를 선사하는 프로그램들은 반드시 존재해야죠. 또, 미소를 짓게 만드는 프로그램들도 필요하구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진한 감동을 선사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해요. 그런데 사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아요. 가수는 무리가 있고, 연기하시는 분들도 무리가 있어요. 개그맨 MC들이 그런 일을 하는 적임자죠. 저희는 교양프로그램과는 달리 사람들이 일단 많이 보게 해서, 재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선사하게 하면서, 그러면서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걸 중요시하니까요.”

‘그냥 예능프로그램’이라기에는 사회적인 영향이나 의미를 갖는 프로그램들을 참 많이 해온 것 같다고 인사를 겸해 말문을 여니, 조금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도 어딘지 진지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가 답한다. 대단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능의 역할이 다양한 게 아니겠느냐고. 그 말은 마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원래 다양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가끔은 무작정 박장대소도 하면서, 또 가끔은 훈훈하게 웃기도 하면서, 그리고 또 이따금은 형형색색 사람살이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웃고 울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면서.

예능의 역할이란 게 이렇게 다양하니 예능프로그램의 진행자인 개그맨 MC는 그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그러다보니 이런 유의 프로그램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지금까지 해왔던 프로그램들도 그랬구요. 개그맨 MC로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에 너무 의미 있는 프로그램만 계속 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콩트나 개그프로그램만 하는 것도 별로인 것 같아요.”

촬영현장에서 만난 그는, 타고 온 차에서 대본을 들고 내리자마자 카메라 앞에 서더니, 곧장 큐 사인이 떨어지자 아무런 주저함의 새도 없이 바로 신이 들린 사람처럼 예의 그 너스레를 시작했다. 그리고 컷 소리가 나자 곧 차분한 태도로 돌변한다. 예진이네 식구가 가족여행을 떠난 빈집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그렇게 몇 장면을 찍었다. 경탄을 자아내는 광경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니, 방금 그렇게 요란하던 설레발은 자취를 감추고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며 예진이네 식구에 대한 몇몇 당부를 남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지게 되는 애착이야 대다수의 진행자들에게 공통된 것이겠지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대해 그가 갖는 애착은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다.“저에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쳐왔고, 끼치고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이 프로 시작할 때쯤에 ‘얼마 후면 결혼을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하다 보니, 왜 이런 문제들이 생겨날까, 부모의 문제일까 아이들의 문제일까, 그런 질문이나 고민을 참 많이 하고 그랬죠. 왜냐면 몇 년 후면 저의 문제기도 하니까요. 결혼을 앞둔 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훌륭한, 돈 내고도 할 수 없는 공부였죠.”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일 년여의 시간동안 그는 다양한 유형의 아이들과 가족들을 만났다. 그 만남에서 그 자신이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에 대해, 지난 5월 결혼한 지금의 와이프와 그는 결혼 전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경험하게 될 문제들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주변의 여러 지인들이 겪는 상황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몇 년 후면 스스로가 아이를 가진 아버지가 된다는 생각에 유독 더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가지고 방송에 참여한 그는, 어렵지 않게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이들 바깥에서 생겨나는 문제들

“이 프로그램에서 만난 전문가 분들 중에는, 아이들이 겪게 되는 문제들에서 부모의 역할이 차지하는 게 80%, 아이 스스로의 선천적인 기질이 20%라고까지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생각하는 시청자 분들도 계시구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99%, 거의 100%가 부모의 문제예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는, 어마어마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던 아이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비교적 단기간에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없고, 결혼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결혼을 해서는 아이를 낳아 방치하고… 예전에는 그렇게 부모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아이들을 방치해두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잘 키운다고 키웠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이더라구요. 잘 해준다고 신경 쓰고, 다른 집보다 더 잘하려고 그러는데 그게 문제인 거예요.”

이런 저런 연유로 방치되어 자라난 아이들만이 아니라, 잘 키운다고 키웠던 가정의 아이들이 비슷비슷한 문제들을 겪게 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보면 유별난 것 같기도 하고 문제를 가진 아이들인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보면 주변에서 언젠가 본 적 있는, 떼 많이 쓰거나 낯 많이 가리는 아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감히 말씀드리지만, 문제 아동은 없어요. 문제 부모만 있어요.”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일 것. 부모의 역할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할 테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유별난 문제 사례들을 보는 것으로 오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진흥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지원 한다는 사실은, 여러 면에서 궁금증을 자아낼 만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염려되는 부분은, 문화예술교육이 ‘문제행동’을 소거하기 위한 일종의 처방전이나 솔루션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거란 점이다. “문제 아동은 없어요,”라는 그의 말도 비슷하게 이어진다.“문제는 딱 하나. 부모님들이요, 행복하기 위해서 많이 투자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부모 스스로가 바뀌어나가면서요.”

아이들의 부모, 그들이 속한 가족, 더 넓게는 그 가족이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들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배어난다. 그러므로 문제 아동에 대한 치료법을 제공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부모와 가족과 사회가 함께 변화하려는 긍정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아이들을 키우는 방법은 교과서에서 배우지도 않고, 배울 수도 없잖아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나마 경험 있는 사람들에게 귀동냥으로 배우는 거죠. 그만큼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가 답한다.“일단 아이랑 대화를 굉장히 많이 나누어야 돼요. 못 알아들을 때도, 끊임없이 계속해서요. 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죠. 시간을 많이 갖고, 얘기를 많이 나누고. 그렇게 해서 마음이 서로 교감이 되면 되지 않을까요. 모든 게 관계에서 비롯되는 건데, 어렸을 때의 관계, 엄마아빠와 아이들의 관계란 게 그만큼 중요할 것 같아요.”

교과서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

대화, 관계, 교감.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키워드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어쩌면 그 말들은 참 상식적인 것들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가 말한 대로 아이 기르는 일을 교과서에서는 가르치지 않듯이, 살면서 참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부분들에 사람들은 미숙한 것이다. 대화하고 교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그 관계들이 서로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할 터인데, 우리 사회의 교과서들은 그것을 잘 가르치고 있을까.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단어를 이제 언론을 통해서나 지면을 통해서나 접하기는 하지만, 그 말 자체가, 그냥 단순히 흘려들을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육에 있어서 문화와 예술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문화와 예술에 대한 부모들의 이해가 조금만 있다면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도 수월한 측면이 있고, 그 효과도 말로 할 수 없이 클 것 같은데, 일단 엄마 아빠들이 전반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이와 어른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그 표현들이 소통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교감하는 관계들을 만들어내도록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 문화와 예술은 그런 점에서 교육의 효과를 거둔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은 ‘대화’, ‘관계’, ‘교감’, 이런 말들처럼 상식의 어느 한켠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그리하여 그 역시 이렇게 말한다.“사실 문화예술이라고 하면 거창하게들 얘기하지만, 우리 사회 분위기 자체가 문화예술을 교육과 접목시킨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게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생활하는 것과 아주 밀접하게 있는 거잖아요.”

문화예술교육이란 게 사실 그렇게 멀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의 말미에 그가, 그런 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많이 일조를 하겠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교육진흥원도 더 노력해달라고 당부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송과 인터뷰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일종의 정답 같은 인터뷰 멘트들이기도 하겠으나, 그의 멘트가 남기는 여운은 좀 남다르다.

“아무리 의미가 있고 반드시 삶의 지침이 될 만한 내용이 방송이 되더라도, 보지 않으면 효과가 적잖아요. 예능프로그램에서 의미를 찾고 영향을 주고 하는 유의 코너나 방송을 하는 데 있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작정 진지하게 하면 아이들이나 시청자들이 보지를 않아요. 적절히 재미있게 해서 일단은 보게 만들고, 그러고 나서 좀 중요한 부분들을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단은 TV로 끌어 모으고, 그 다음에, 앉힌 다음에, 의미 있는 부분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연 많은 집들의 삶들이 공간의 변화를 통해 달라지고, 휴전선 남북의 아이들이 가상의 대결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국경 넘어 입양되는 아이들이 맡겨져 길러지는 이야기들을,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안방과 거실에 앉아서 그를 통해 보고 들었다. 뭐랄까, 사회적 의미를 담은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버무려서 평범한 사람들의 집안으로 배달해주는 데, 그는 참 탁월한 재능을 가진 듯하다. 그래서인가,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과 문화예술교육의 접목이라는 이 이례적인 시도에서, 진행자의 자리에 그가 서있는 일이 왠지 참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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