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학교축제 – 즐거운 문화예술의 현장
만년 꼴찌, 왕따, 말라깽이, 공부벌레, 학교에서 인기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어서 주목 받지 못하는 소년들이 친구들의 놀림 속에서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중발레를 하기로 한다. 일본 영화 <워터보이즈(야구치 시노부, 2001)>는 소년들이 수중발레를 한다는 엉뚱한 발상에서 시작한 영화지만, 단지 10대 소년들의 좌충우돌 미션 수행기인 것만은 아니다. 그 소년들이 위축된 자아와 순조롭지 못한 사회성을 변화시키는데 있어, 학교 축제가 매우 중요한 계기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교육과 학교 축제의 관계에 대해 참으로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중 고등학교들도 매년 빠짐없이 축제를 연다. 그러나 많은 학교에서 축제는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신선한 즐거움의 장인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번, 때가 되면 열리는 연중행사에 불과하다. 학교 축제는 마치 ‘소풍’처럼 공부에 시달린 심신을 회복하는 휴식시간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이겠지만, ‘할 줄도 모르는 수중발레를 하느라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그 시간에 국영수를 공부할 일이지’라며 타박 놓을 어른들은 그런 휴식을 알차게 이용해서 축제가 끝나면 더욱 불이 나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 의견을 달리하는 교사들이 늘어나면서 변신하는 학교 축제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의 한성여중이 그 한 예이다. 기획부터 진행까지 우리 손으로 – 서울 한성여중의 주체적 학습의 장 서울의 한성여중은 학예발표 형식의 축제의 틀을 바꿔서 기획부터 준비 전반의 과정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었다. 이 취지와 과정에 대해 최은서 교사는 이렇게 전한다. “축제는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것이어야 하는데 이전의 축제는 똑같은 일상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축제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재미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1년부터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축제 준비를 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전체 축제 주제에 대해 학생들이 회의를 하고 방송 컨셉이나 벽화 컨셉 등 모든 것들을 전체 주제에 맞춰서 잡아나갑니다. 여기서 교사들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적절히 배치해 주며 때로 황당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도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철회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교육의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교사의 손이 많이 갔지만 몇 해 경험이 쌓이다 보니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서 점차 학생들 스스로 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성여중 교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것도 축제에서 학생들이 주제를 잡아 그린 것이다. 이 과정은 축제의 틀을 변화시켜 온 그 동안의 과정을 응축하고 있다. “벽화를 그려보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반응이 적었습니다. 미술반 아이들도 별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엉터리라도 좋으니 아무 거나 아무나 그려보자고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미술반이 저희들이 해 볼게요, 라고 먼저 나섰고 이제는 축제가 아니어도 학교 안에 빈 공간이 생기면 벽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학교 축제의 기획과 준비 과정에서 학생들의 몫이 커진다는 것은 교사들의 교육적 역할이 줄어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은서 교사가 말하는 에피소드는 그것을 정확히 보여준다. “학급 단위로 진행하는 기획을 가져왔는데 많은 학급에서 카페 운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선생님들에게 호객 행위를 주로 한다거나 해서 그 모습이 바람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에는 명확한 주제를 가진 카페를 제외하고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카페에서 판매하는 품목도 제한하도록 했습니다.” 한번 해보게 하는 것은 그 후에 그것은 안 된다고 말할 때 스스로 이유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하는 것도 스스로 하고 안 되는 것도 스스로 안 된다고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최은서 교사는 한성여중의 축제와 문화예술교육의 관계를 주체성과 창조성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했다. “학생들이 지금까지는 어른들의 지시와 생각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행동해 왔다 하더라도 스스로 움직여서 만들어내는 융통성의 크기가 커지면 주체성이 생기고 창조성이 생깁니다. 그리고 문화예술이라는 창조 행위가 주는 근본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개인의 창조가 아니라 공동의 창조가 되었을 때 기쁨은 더 커집니다. 또한 학교 축제는 하루 이틀의 행사로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축제로 보아야 합니다. 그 과정은 학교의 자치 활동과 동아리 활동의 활성화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서 학교 축제의 활성화는 학교의 문화예술교육의 총체적인 활성화를 의미합니다.” 최은서 교사가 역설하듯 학교 축제는 재주 있는 몇몇 학생들의 정기적인 발표회가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의 총체적인 활성화를 반영할 수도, 유도할 수도 있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일상적인 활성화는 축제를 변화시키고 다시 일상을 변화시킨다. 축제가 아니어도 한성여중의 벽에 벽화가 늘어가듯이. 학교 담을 넘어 지역과 함께, 이벤트가 아닌 통합교과로서의 축제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는 전교생이 27명인 부론중학교가 있다. 이 작은 중학교는 올해 새로운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전교생이 ‘부론중학교 창작마당극공연예술단’을 만든다. 이 예술단은 5월 어버이날, 7월 남한강 풍류난장 굿, 10월 부론면민 쳬육대회, 11월 남한강 삼도면민 체육대회, 11월 부론면민 예술제, 11월 부론초등학교 학예발표회 등에서 공연하고 가능하다면 원주시와 강원도는 물론 전국 단위의 축제에도 참여해 본다. 10월에 있는 부론중학교 축제인 향목제를 지역주민들이 다 참여할 수 있는 지역축제로 만든다. 이것은, 물론 향목제는 일년에 한번이지만, 마치 일년 내내 축제를 하는 축제의 일상화 같다. 부론중학교의 이 놀라운 청사진은 전문 마당극예술단체인 ‘광대패 모두골’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부론중학교의 심영미 교사도 이벤트성인 축제에서 벗어나 교육적인 축제의 장을 열고자 고민했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광대패 모두골’과 연계해서 <歌(가).舞(무).樂(악).劇(극) 활용을 통한 문화예술 교과 및 장르 간 통합적 교수 학습 안>을 마련하여 전 학년을 대상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예술교육활동이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고 학습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년도에는 학교 특색교육으로 정착시키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축제가 학교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의 축제로 진화하는 것인데, 이것은 한성여중의 최은서 교사가 꿈꾸는 축제의 상과도 유사하다. 그는 ”옛날 동네 초등학교 운동회가 마을 잔치의 역할을 했듯이 지금도 도시에서 지역 주민이 함께 모이고 서로 알아갈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학교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학교 축제가 지역 공동체 속에서의 축제로 만들어지는 실험을 하고 싶습니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부론중학교는 대도시가 아니라 농촌의 작은 중학교여서인지 이미 그것을 실현해보고 있다. 부론중학교가 축제를 이벤트로 보지 않고 통합교과의 측면에서 보려고 하는 이런 시도는 ‘부론중학교 창작마당극공연예술단’을 만들어 냈다. 이 예술단은 국어과 내용에 나오는 국문학(향가나 전래문학 등)에서 소재(작년의 경우 ‘서동요’)를 선택하여 음악, 미술, 체육 등이 통합된 학습안을 바탕으로 창작 마당극 작품으로 각색하고 공연했다. 전교생 27명이 무대 위에서 마당극을 공연하고 모듬북 연주를 하는 것이다. 통합교과 운영에 대해 심영미 교사는 “처음에는 학생들도 힘들어하고 어려움이 많았으나, 창의적인 자기 표현력이 신장되고 교사와 학생들이 협동하여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교과의 교육적인 상승효과가 커졌으며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학습력에 만족하게 되었습니다.”고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부론중학교 창작마당극공연예술단’은 학교 밖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문화예술공연장도 그렇고 문화예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의 여건에서 대도시와 농촌지역의 불균형은 큰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심영미 교사도 이 부분에서 “열악한 문화예술교육 환경인 농촌 지역에서 학생들이 능동적인 체험활동을 통해 자기의 소질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다.”는 점을 큰 교육적 효과의 하나로 꼽았다. 어쩌면 대도시 학교들이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고 활성화시키려는 것과 비슷한 의도로, 부론중학교는 통합교과의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의 다양한 측면을 경험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론중학교 학생들에게 창작마당극 활동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와 친구들의 부모들, 그리고 이웃이며 교사들인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 문화일꾼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부론중학교 예술단의 일년 공연 일정이 달마다 빡빡한 것이다. 부론중학교의 사례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은 지역 문화예술단체의 역할이다. ‘광대패 모두골’은 부론중학교 교사들의 고민이 통합교과안으로 현실화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으면서도 다르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예술이 학교교육과 어떻게 결합하고 협력할 수 있는지를 춘천마임축제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다. 춘천마임축제는 1989년부터 18년 동안 춘천에서 개최되어 온 역사 깊은 지역 축제이며 마임하면 춘천이 떠오를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올해는 바로 얼마 전 5월 29일부터 6월 4일까지 전국의 연극,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가들이 모여 춘천의 밤을 축제의 열기로 달궜다. 마임이라고 할 때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마임 공연을 보면 이미 익숙한 여러 예술적 요소들을 발견하면서 친근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과 마임이라? 초등학생들은 마임을 본 적은 있을까? 마임이라는 말을 이해는 할까? 이 마임축제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 ‘놀이마임’은 작년부터 춘천시 근교의 초등학교들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다. 춘천시 문화예술교육사업단의 김지영씨는 그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역축제는 그 지역의 문화에 영향을 끼칩니다. 시민들과 함께 즐기고 어울리는 축제를 넘어서 지역문화에 적극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축제 측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마임)이 교육과정과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이를 통해 예술과 교육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계는 단기적으로는 학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통해 즐겁고 효과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마임에 대한 인식을 친근하게 함으로서 마임의 대중화에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학교들도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학교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지원과 참여를 한 곳도 있다고 한다. 취지에 대한 동의는 실행 과정의 시행착오를 능히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춘천의 당림초등학교의 경우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다시 참가했다. 놀이마임 프로그램은 재활용 박스와 신문지를 이용해 나만의 탈을 만들어 쓰고 움직임 워크샵을 하는 것이다. 마임의 움직임, 미술의 그리기 등 마임 외의 다른 장르와 함께 통합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작년의 경우 마임축제의 도깨비난장 중 “다같이 돌자 섬 한바퀴”라는 프로그램에 자신이 만든 탈을 가지고 참가하기도 했다. 초등학생들에게 국내외 유수의 마임축제 공연자들과 함께 퍼레이드를 해 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계기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져야 할까? 만일 학교에 마임 전문가를 초청해서 탈을 만들거나 마임 동작들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라면 어떨까? 김지영씨는 “학교에 마임 공연자를 초빙하게 되면, 공연이나 강연의 형식이 될 것이고 이는 일시적인 신선함 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임 축제의 교육사업 프로그램의 경우 예술이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새로운 교육을 가능하게 합니다. 공연자와 학생과의 공유지점이 커지고 교육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축제 측은 학생들의 참여로 더욱 풍요롭고 흥미로운 축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마임축제의 프로그램은 학교와 축제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적인 효과를 통해 발전적인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느냐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느냐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부론중학교와 마임축제의 두 사례에서 보듯이 학교 혹은 지역 문화단체의 요구가 있을 때 서로가 적극적으로 접근해나갈 방법을 모색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부론중학교의 경우처럼 학교 축제가 지역 축제로 확대되는 과정에 지역 전문예술패의 존재가 있었듯이 춘천마임축제의 교육 사업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협력이 있었다. 그리고 한성여중이 대도시에서도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중심지로 변신할 가능성도 바로 지역 주민들이 학교 축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많은 교사들이 모범생 출신이라 학교에서 축제를 즐겨보지 못해 축제의 즐거움을 잘 모른다는 모 교사의 말처럼 제대로 축제의 즐거움을 맛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학교 축제를 폄하하고 일회적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교 축제는 문화예술교육의 총체적인 활성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지역공동체의 문화예술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의 전문가들이 문화예술교육과 학교 교육의 상관관계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학교 안팎의 구분이 문제되지 않는,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 수 있다. 축제란 것이 원래 울타리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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