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디지털 창의학습 프로그램

화상 통화를 통해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화상 회의 시스템(video conferencing)을 활용하여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지역의 학교(K-8, 유치원-8학년)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사가 비디오를 통해 교육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인터넷 강의 정도를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아이들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 마당부터 백 스테이지까지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주저하지 않고 화면 건너 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선생님 저 앞에 있는 것은 뭐에요?’ 극장 안에서 공연 배우가 진행하는 드라마 워크숍에도 참여한다. 배우는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을 하나하나 살피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맨 뒤에 앉는 머리 긴 여학생, 질문이 있는 것 같은데 말해보겠니?’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2012년부터 디지털 창의학습 프로그램(Digital Creative Learning Program)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14일, 2014 문화예술교육 국제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아동·가족 및 창의학습 부서장 브리짓 반 로이벤(Bridgette van Leuven, Head of Children, Family and Creative Learning)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브리짓 반 로이벤

 

Q.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이하 ‘오페라하우스’)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호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명소다. 이 곳의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 궁금하다. 아동·가족 및 창의학습 부서에서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사실 얼마 전 부서명이 교육 및 청소년 부서(Education and Young People)에서 아동·가족 그리고 창의학습 부서(Children, Family and Creative Learning)으로 바뀌었다. 단순한 이름의 변화라기 보다는 기존에 우리가 실천하고자 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조금 더 명확히 전달하는 과정 가운데 일어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교육’ 보다는 예술적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작업, 즉 ‘창의학습’ 이 오페라하우스가 예술기관으로서 하고 있는 활동과 더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5년 전부터 음악, 시각예술 외에 무용, 연극, 멀티미디어를 학교 정규교육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논의가 호주에서 진행되고 있다. 문제해결능력, 창의력이 다음 세대에게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역량으로 주목 받고 있고, 이러한 역량을 키우는데 있어 예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여전히 교육에 대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관점이 존재하지만 변화의 요구가 절실하다. 교사들 또한 이러한 창의적 학습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문화기관들이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차원을 너머 학교와 지역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리는 ‘창의학습’의 미래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교장, 교사, 학생,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고 문화, 예술, 창의학습이 종합적으로 연결되어 전 교육과정에서 효과가 있는 교육활동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Q.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는가?

 

오페라하우스의 주요 콘텐츠인 공연과 연계된 프로그램은 물론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예술을 활용한 창의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오페라하우스에 직접 와서 참여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곳을 방문할 수 없는 호주 전역의 학생과 교사,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화상 회의 시스템(video conferencing)을 활용한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오페라하우스 공간을 방문하고, 연극 워크숍에 참여한다. 교사들을 위한 창의학습 연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또, 지금의 오페라하우스가 자리한 베넬롱 포인트(Bennelong Point, 영국의 탐험가 캡틴 쿡(James Cook)이 호주에 상륙했을 때 처음 만난 원주민 이름 ‘베넬롱’에서 기원한다.)가 원래 호주 원주민들의 연회와 잔치를 벌어지던 곳이었는데, 이러한 역사적 연결고리에 주목해 원주민 문화를 배우고 이들의 관점에서 오페라하우스와 베넬롱 포인트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도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된다. 원주민 출신 진행자가 화면 너머의 아이들과 직접 소통하여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

 

 

Q.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 현장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2010년 호주 연방정부가 IT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21세기의 학습환경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학교 현장에 도입하는 ‘교육 혁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각 주(州)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했고,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즈는 화상 회의 장비를 구입하는 것에 예산을 투여해 모든 학교가 이 장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 결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뉴사우스웨일즈의 모든 학교 공간과 실시간으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Q. 하드웨어가 갖추어진다고 해서 디지털 학습프로그램이 바로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오페라하우스나 예술가, 그리고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낯선 환경이었을 텐데 어떻게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나?

 

솔직히 디지털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나 자신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이 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서 해저 다이빙 투어를 진행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화상 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학생들은 다이버와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바다 속을 체험하였다.

 

‘저 뒤에 있는 것은 뭐에요?’ / ‘아 저건 상어야!’ / ‘자 그럼, 이번에는 그럼 이쪽으로 이동해보자!’

 

이 과정 자체가 굉장히 연극적인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페라하우스에는 참여자(관객)들과의 소통과 호흡에 익숙한 배우들이 있고, 공연예술을 이해하는 엔지니어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원래 공연예술 자체가 ‘실시간 교류(live interaction)’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오페라하우스 사람들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고,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의 종류와 방식도 다양해졌다. 우리와 작업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처음에는 다소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공연을 직접 다루는 디지털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페라하우스 투어로 시작해 점차적으로 공연을 실제로 전송하고 배우와 어린이 관객이 실시간으로 묻고 답하며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모든 국민들이 어느 곳에 거주하든지 오페라하우스를 만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 활용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또 사실상 학교 현장으로 찾아가는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은 교사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시작이 가능하다. 젊고 호기심 많은 교사들은 적극적이지만, 여전히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는 것을 낯설어 하는 경우가 있다. 더 많은 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디지털 환경을 활용한 다양한 창의학습 관련 연수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Q. 디지털 기반 프로그램이 물리적으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을 연결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는 한편 교감에 제한이 있지는 않은가? 앞으로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아이들은 단순히 진행자나 배우가 말하고 보여주는 화면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기술에 익숙하고 기술의 실재를 믿는다. 그래서 정말 진행자가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여기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소통한다.

 

최근 디지털 환경의 가능성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린 재미있는 시도가 있었다. 바로 호주 전역의 24가족이 동시에 접속해 인터렉티브 공연에 참여하는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이다.

 

‘국민을 위한 베넬롱 포인트(From Bennelong Point to the Nation)’ 프로젝트 <가족 프로그램>
_원거리에 있는 24 가족이 동시에 접속해 45분 간 진행된 인터렉티브 공연에 참여하였다.

 

원거리에 있는 24가족이 모두 각자의 집 안방에 앉아서 화상 회의 시스템을 통해 공연을 정말로 즐길 수 있으려면 처음부터 이 환경을 고려한 콘텐츠가 새로이 기획•제작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배우 출신 코미디언에게 직접 작업을 의뢰하여 디지털 환경을 최대로 활용하고, 그 어떤 것이든 시도해달라고 요청했다. 각 가정에는 동일한 노트북을 나누어주었고 약속된 시간에 모두 모여 앉았다. 혹시나 5분만에 지루함을 느끼고 노트북을 닫아버릴까 걱정했는데 가족들은 주어진 45분을 온전히 즐겼다!

 

가족 프로그램은 우리가 진행했던 다른 디지털 프로그램에 비해 작은 시도였지만, 또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프로젝트였다. 호주 언론의 관심도 대단했다. 언론에서 아이들을 인터뷰 했었는데 ‘오늘 오전에 뭐했니?’라는 질문에 한 아이는 ‘가뭄이 들어서 캥거루들이 너무 목이 말랐어요. 그래서 늪지로 갔다가 빠져서 죽었어요. 우리는 죽은 캥거루를 꺼내는 일을 했어요.’라고 답했다. 도심에 사는 아이들과는 굉장히 다른 삶을 경험하고 있는 이 아이들이 오후에는 안방에 앉아 오페라하우스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혁신이다.

 

Q. 디지털 환경을 고려해 공연이 설계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다. 앞으로 디지털 기반 학습 프로그램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계획인가?

 

2011년 호주에서는 고속 데이터 통신망(broadband)구축을 통해 전국을 무대로 하는 디지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정부는 이 통신망을 활용한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진행했고 오페라하우스도 이에 참여해 ‘국민을 위한 베넬롱 포인트(From Bennelong Point to the Nation)’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가 했던 디지털 학습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장해나가는 시도를 하였고, 앞서 언급한 가족 프로그램이 이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외에도 교사 역량강화 연수, 방학기간 교육프로그램 등 총 8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아쉽게도 4개월 후 2년간의 지원사업이 종료된다. 그리고 내년 1월에는 지원사업의 성과를 공유하는 포럼을 진행해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연구내용을 공유하려고 한다. 지원사업은 종료되었지만,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다양한 기술을 활용, 접목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적 교류 기회 또한 적극적으로 확장해 나가려고 한다.

 

브리짓은 어릴 때 춤을 굉장히 좋아하는 소녀였다. 한부모 가정의 자녀로 정부 보조 주택에 살았지만, 장학금을 받으며 발레를 배웠다. 학창시절을 보낸 1970년대 호주는 한창 무료 문화행사들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오페라하우스 주변은 늘 공연과 전시로 가득했다. 그녀는 뒷마당처럼 그곳을 드나들곤 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예술이 우리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문화예술자원을 더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서 만나고 삶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흔들림 없이 지속해가는 그녀의 진심과 열정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여전히 많은 어른들은 기술의 실재를 믿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각자의 일정에 맞추어 생활하기 바쁜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은 분명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모두가 연결 가능한 환경을 가능케 한다. 나아가 다양한 관점과 문화에 대한 경험을 매개하는 플랫폼이 되어 주기도 한다. 더군다나 디지털 시대에 나고 자라난 우리 아이들과의 소통을 생각할 때 하나의 좋은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페라하우스의 디지털 창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소감은 기대 이상으로 드라마틱하다.

 

“일생일대의 경험이었어요!”
“너무 좋은 아이디어에요. 왜냐하면 애들은 테크놀로지를 좋아하거든요.”

 

아이들의 대답이 그 가능성을 대신 말해주는 듯 하다.

브리짓 반 로이벤

브리짓 반 로이벤(Bridgette van Leuven)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아동·가족 및 창의학습 부서장
호주 월롱대학교(Wollongong University)를 졸업하고 런던 시티 대학교(City University) 예술경영 석사예비과정을 졸업했다. 시드니 축제와 시드니 씨어터 컴퍼니에서 예술분야 커리어를 쌓고, 뉴 사우스 웨일즈 문화예술정책 기관인 Arts NSW에서 공연예술 매니저와 청소년 예술 개발 담당관으로 근무했다. 2010년 부터 현재까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아동·가족 및 창의학습부서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다빈 _ 상상놀이터

권민영 _ 대외협력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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