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불렀다. ‘화분 연못’
대형 화분을 막고 수생식물을 키워 작은 연못을 만든 것이다.
또 다른 작은 우주가 탄생한 기분이었다.
-아르떼 2차 워크숍, ‘삶을 짜는 수업, 생활환경을 돌아보는 교실’ 발제문 중
학교에 작은 연못을 만드는 교사가 있다. 학교 귀퉁이 땅에, 낡은 고무통에, 버려진 욕조와 변기에 화분까지 무엇이든 연못으로 만들어낸다. 연못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다. 일단 물이 새지 않도록 조치를 한 후, 그 위에 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적당량의 흙을 깔고 물을 넣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흙을 넣는다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썩지만, 흙이 있고 식물이 호흡하는 물은 고인 물이 아니다. 생태계의 파괴는 다름 아닌 ‘순환’이 멈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연못 속에 살고 있는 흙과 식물과 작은 생물들이 호흡을 하며 그 속에 정교한 순환의 흐름을 만든다. 벼를 비롯한 식물들이 자라는 연못에 송사리 한 쌍을 넣어주면 장구벌레를 먹이삼아 살기 때문에 모기 걱정 또한 없다. 연못에는 송사리와 소금쟁이만 사는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이면 새들이 날아와 물을 먹고 가고, 가을이면 익은 벼를 쪼아 먹는다. 학교 안에는 작은 연못 안에서 송사리가 숨을 쉬는 ‘뻐끔뻐끔’ 소리와 새들이 물을 먹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삽을 들고 연못 구덩이를 팠고, 연못이 완성된 후에는 돋보기를 들고 스케치북에 연못의 변화를 스케치한다. 교문을 열고 들어가면 콘크리트 교사도 함께 어울려 있는 ‘생태계’를 만난다. 연못과 야생화 꽃밭과 교사와 아이들이 머물다 간 시선과 담아간 마음, 그것이 다시 학교를 푸르게 만드는 생태계를 이룬다. 생태계는 ‘순환’을 전제로 존재한다. 자연 생태계가 있다면, 연못을 만드는 일은 ‘문화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앞치마를 입고 손에는 붓 대신 삽을 들고, 스케치북과 돋보기를 들고 있는 수원 권선고등학교의 임종길 선생님. 임종길 선생님의 미술 시간에는 스케치북 대신에 커다란 천이 등장하고, 찰흙 대신 학교 화단의 흙을 만진다. 아이들은 학교에 보리밭을 만들었고, 도로변에 연못을 만들었고, 새만금, 천성산 도룡뇽이 주제가 된 걸개그림을 그렸다. 임종길 선생님의 미술시간에는 아파트촌에 사는 아이들도 뒷산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멀리 새만금의 짱뚱이를 만나게 된다.
임종길 선생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교사로 발령받은 곳은 섬이었다. 육지에서 실어 온 물건들이 섬에서 소비되고 난후, 쓰레기를 다시 육지로 실어나가는 배삯이 비싸서 섬은 그 자체로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병, 폐지, 고철 등의 재활용가능한 물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임종길 선생님은 이 당시를 ‘도덕적인 환경의식’에 눈뜬 시기라고 말한다. ‘환경반’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재활용품을 모아 서울의 ‘자원재생공사’에 연락하여 실어가도록 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임종길 선생님은 이때의 활동을 ‘자연을 보호하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는 구호가 어울리는 ‘경직된 환경교육’이라고 표현한다. 이 후 발령받은 도시의 아이들은 학교 건물도, 집도 시멘트 속에 갇혀 지내는 공부벌레의 모습이었다. 이때 선생님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 아이들을 가능하면 콘크리트 건물에서 자연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이었다. 수업시간에 짬을 내어, 특활시간에 짬을 내어 가능한 많은 시간 초록색을 눈에 담을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발령받은 학교는 공사가 마무리가 안된 신설학교였다. 입학식날 서너명의 아이들의 신발이 수렁에 빠져 찾아 헤맸던 웃지못할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학교에 야생초를 옮겨심었다. 적당한 물기를 흡수하고, 흙을 잡아주도록 야생화 꽃밭을 만들고, 보리밭을 만들었다. 이 신생학교의 교화(校花)는 ‘애기똥풀’이 되었다.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보면 저자가 교도소에서 어쩌다 밖으로 나가게 될 때 풀들을 캐옵니다. 흔해빠진 풀들인데 교도소 안에서는 소중한 것들이지요. ‘나는 땅이 한 평만 있다면 코를 박고 행복하겠다’라는 소원을 이야기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저랑 처지가 비슷했습니다. 도심 속의 학교에서는 잡초조차 소중한 것이죠.”
그 후 임종길 선생님이 근무했던 시화공단 옆 한 고등학교는 공해가 무척 심한 곳이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나면 눈이 시큰거리고, 얼굴을 쓱 닦으면 먼지 냄새가 풀풀 나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도 야생화 꽃밭을 만들었고, 한 쪽에 작은 연못을 처음 만들어 보았는데 그 연못이 임종길 선생님을 감동시켰다. 임종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연못이라는 것이 야생화 꽃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나를 감동시켰다’, 이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선생이란 남을 바꾸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남을 감동시키려면 스스로 감동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교육은 감동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임종길 선생님의 환경의식은 아이들과의 만남이 촉매가 되어 성장해갔다. 한번은 도로변에 만든 연못의 물이 썩어갔는데, 아마도 그 원인이 도로변의 흙을 연못의 흙으로 깔아준 탓이었던 모양이다. 오염된 흙에 뿌리를 내린 벼가 멍이 들어갔고, 급히 황토를 구해다 갈아서 뿌려주었다. 일주일 후, 연못은 놀랍게 회복되었다. 2002년, 현재 있는 권선고등학교로 부임해서 ‘꽃사모’라는 환경반을 만들었다. 일 년 넘게 열심히 활동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의 한계가 있어 동아리는 해체되었고, 특별활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아이들은 매주 화단과 연못 등을 돌보고 관찰한다. 가끔 연못의 벼 포기에 어린 메뚜기가 꿈틀대기도 한다. 근처에서 퍼온 흙에 묻어온 온갖 생물의 알들이 부화하기도 한다. 이런 경로로 학교에는 새로운 식구가 생기기도 한다.
임종길 선생님은 ‘환경 교육’과 ‘학교 현장’ 사이의 연계점을 찾아가기 위해 ‘수원환경교사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는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같은 큰 규모의 환경단체가 있고, 각 지방마다 지부가 설립되어있다. 하지만 수원에는 일찍이 자생적인 환경단체가 있었다. ‘수원환경운동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수원환경운동센터에서는 7, 8년 전부터 겨울방학을 이용해 교사를 위한 환경연수를 해왔고, 그 연수를 받은 선생님들의 자생적인 모임이 ‘수원환경교사모임’이다.
임종길 선생님의 ‘생태적인 학교 만들기’는 여전히 진행 중인 작업이고, 고민이다. 멀리는 ‘건강한 지구 생태계’를 위한 프로젝트를 위한 걸음마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한쪽에서는 잡초(야생화 외)를 캐와 심는데, 한쪽에서는 제초제를 뿌리는 ‘충돌’도 있다. 학교 안에 보리를 심는다고 싫어하는 선생님도 있고, 교화에 왠 ‘똥’자냐고 난색을 표하는 선생님도 있었을 것이다. 임종길 선생님의 이야기는 종길 선생님의 성장해가는 ‘환경의식’과 아이들의 ‘호기심과 감성’, 그리고 지역사회의 조건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중이다. 임종길 선생님은 이런 활동의 결과물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여 작은 책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중 ‘우리교육’이라는 잡지에서 2004년에 ‘함께 만드는 작은 연못 이야기’라는 포켓북을 부록으로 주고 있다. 이 작은 책은 쉽게 읽으면 10분이면 핵심을 알 수 있고, 20분이면 ‘나도 연못을 만들까?’하는 마음이 생긴다. 라면을 끓이는 것보다 쉽게 ‘연못을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학교 아이들과 연못을 만들던 이야기를 수필처럼 삽입하고, 자연도감처럼 그림과 설명을 넣었다.
임종길 선생님의 ‘생태적인 학교 만들기’는 ‘생태적인 마을 만들기’로 확장하는 중이다. 동네 아파트 주민들과 ‘칠보산 도토리 교실’을 만들어 지역주민 간의 생태적인 지역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도토리 교실’은 지역 어린이와 학생들의 환경교육과 문화센터 역할을 하며, 놀이공방/생태공방의 기능을 한다. ‘칠보산 도토리교실’ 사람들은 농약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한 두꺼비를 살리기 위해 논 몇마지기를 사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두꺼비 알을 보호하기도 하고, 일요일이면 ‘선데이 마켓’을 연다. ‘선데이 마켓’은 임종길 선생님이 뉴질랜드를 여행했을 때 본 물물교환 장터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그는 주말이면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쓸모있지만, 내게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들고 나와 물물 혹은 화폐로 교환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도토리 교실’의 사람들과 ‘선데이 마켓’을 열기 시작했고, 아르떼가 찾아간 10월 10일은 수원지역 공동육아가 참여하여 장터가 더 활기를 띠었다.
아이들에게 ‘학교-지역’에서 생태적인 자극을 많이 주는 그는 분명 인기있는 교사일 것이다.
“예전에는 정말 인기 많았는데(웃음), 선생은 종종 크든 작든 이런 ‘인기’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또 진정한 선생이겠죠?”
임종길 선생님은 ‘환경운동가인 미술교사’, ‘그림을 그리는 환경운동가’ 이 두 가지의 역할을 유연하게 즐기며, 이제 가능하다면 일을 조금씩 줄이려고 한단다.
“미술교사라고 불리는 것은 그냥 편한데, ‘환경운동가’라고 불리는 것은 참 부담스러워요. 기본적으로 전 게으르거든요. 적어도 환경운동가라는 말을 들으려면 부지런하고, 좀 더 인내심도 있어야 하고, 쾌락도 절제해야 하는데, 전 아니에요. 다만 이런 저런 곳에 나서는 것은 제가 좋다고 느끼고 감동받은 것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지요. 전 참 ‘개인주의자’입니다.(웃음)”
본인 스스로가 ‘좋다고 느낀 것, 감동받은 것’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련의 활동들은 분명 여유 속에서 더욱 꼼꼼하게 챙겨질 것이다. 임종길 선생님의 여유 속에서 촘촘한 ‘지역-생활-생태-교육’ 네트워크가 짜여질 것이다. 오늘도 임종길 선생님과 ‘꽃사모’ 아이들, 혹은 다른 ‘환경반’ 아이들이 함께 만든 연못에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새들이 다녀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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