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론]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으로 탈바꿈한 폐교들

전효관|아르떼 기획운영단장, 시민문화네트워크 대표

1. 폐교는 어디에나 있다

1982년 시작된 소규모 학교 통폐합 작업은 2000년까지만 추산해도 무려 2300여개에 달하는 학교가 폐교되는 결과를 낳았다. 도심공동화로 인해 서울 지역에도 폐교가 있기는 하지만, 폐교는 대부분 농어촌과 산간 오지 지역에 존재한다. 때로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한 운동이 존재하기도 했으며, 폐교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폐교는 임대 형식을 통해 작가들의 작업실, 박물관, 단체의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노인 요양시설, 농산물 가공공장, 최근에는 펜션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대부분 폐교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자연부락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학교는 소규모 마을과 마을을 연결시키는 중심 위치에 있어 주위의 여건과 비교하면 교통도 비교적 편하고 통신 등의 기능도 양호하다고 한다. 하지만 농어촌 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노령화는 취학연령의 학생 수의 감소를 야기했고 자연히 학교를 유지하는 비용을 상승시켰다. 정부는 작은 학교를 통폐합하면서 시설의 노후화, 학년통폐합 운영으로 인한 학력 저하, 교사들의 근무 기피 등의 교육적 이유를 내걸고 작은 학교들을 통폐합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오지 지역에는 어디에나 폐교가 존재하는 현재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2. 문화예술교육과 폐교

얼마 전 신문에서 <가을 밤, 벌레우는 밤>이라는 폐교를 순회하는 동요 음악회 소식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동요를 통한 마을축제의 복원이라는 기획 취지를 읽으면서 나는 농촌과 산간 지역에서 학교는 공부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일어나는 동네 축제의 장소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학교는 마을 사람들의 기억의 중심이면서 동네의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던 장소이다. 그래서 작은 학교들이 폐교가 되어 존재하는 상황의 의미는 결코 녹녹치 않다.

특히 작은 마을에서 학교는 선생님이 계시던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작은 마을에서 교사의 존재는 마을 일에 대한 상담자이기도 했고, 아이들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투사하는 이상형이기도 했다. 마을의 학교는 도시의 학교와는 달리 동네의 일부이며 동네 사람들의 삶과 구체적으로 얽혀있는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폐교는 동네가 활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징후이며, 폐교를 재활성화하는 것은 동네를 살려내는 지역문화운동의 발화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폐교를 문화기반시설화하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기획이 될 수 있다. 청소년수련시설, 문화의 집, 문예회관, 마을회관 등 하드웨어 중심의 지역 문화 살리기가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지역에 애정을 가진 주체가 없기 때문이고, 마을 주민들의 삶과 연관을 맺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이 그 곳에 거주하면서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 문화를 촉진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지역문화의 차원에서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질 수 있다. 문화기반시설을 짓는 데 투여하는 막대한 예산을 폐교를 활용한 지역문화 활성화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획으로 전환시킨다면 문화예술교육의 측면에서도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넘어서는 지역민의 삶을 재활성화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3. 참조할만한 모델들

문화예술인들이 폐교를 이용하여 개인 작업실로 사용한 사례는 적지 않다. 하지만 지역사회와의 불화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지역문화의 차원에서도 그 의미는 크지 않았다. 문화를 통한 소통이란 단순한 문화적 소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타자의 존재를 위치짓고 공동의 참여를 통해 상호변환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기획특집으로 소개된 <노뜰>의 사례는 함께 사는 데 중심을 두는 연극인들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촌스런’ 삶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들을 발견한 과정은 지역민을 막연한 수혜자의 입장으로 전제하지 않는 살아있는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사례를 보여준다.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과제 중의 하나는 지역민이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을 통해 세상에 대해 열린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일 수 있다. 농촌은 도시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아니다. 고향을 떠났고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 떠날 수 없어 그 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장을 긍정할 수는 없을까 라는 고민을 두 번째 특집 글인 밀머리 미술학교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공공미술 프로그램을 인근의 학생들과 진행하면서 욕망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는 밀머리 미술학교에 대한 취재기는 학생들과 진행하는 사회적 프로젝트를 통해 삶과 욕망에 주목하고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미술의 힘을 확인하려는 한 미술작가의 노력을 읽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자치단체의 지원과 정책적 공조가 중요한 촉진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인들의 시도에 공감하는 행정 조직의 존재는 지역문화를 저비용으로 활성화하고 나아가 지역을 특색화하는 관민 협동모델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강원도 평창군에서 시도하는 폐교를 활용한 문화예술 활성화 정책은 다른 지역자치단체에서도 시도해볼만한 모델을 제공한다. 평창의 한 폐교에서 <감자꽃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한 기획자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지역과 문화예술인이 협력을 통해 폐교를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으로 바꾸어 낸 경험을 듣는다.

4.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획이 필요하다

아마도 이번 특집에 소개하는 사례들은 폐교를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으로 탈바꿈시킨 지난한 과정을 읽기에는 불충분할 것이다. 폐교가 지역문화를 촉진하고 삶을 엮어가는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훨씬 더 주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소개된 사례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라는 과제에 대해 도식적인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에서 벗어나면 족할 것이다.

사례를 알아가고 참조할 수 있는 모델을 발견하면서 새롭고 능동적인 기획을 할 수 있는냐 여부는 향후 문화예술교육의 성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특집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은 ‘새끈한’ 성공사례는 아닐 수 있지만 그 시도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