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한 ‘동화’, 어른들의 인연을 만들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비롯해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까지, 지난 10년 간 총 150권이 넘는 동화를 출간한 고정욱 작가와 현재 MBC <희망나눔 무지개>의 작가로 활동하며 동화작가를 꿈꾸고 있는 유정혜 작가가 만났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동화’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선험’으로 등단한 18년차 고정욱 작가와 6년차 유정혜 작가의 첫 인연은 방송이었다. 유정혜 작가가 일하고 있는 MBC <희망나눔 무지개>의 개편 후 첫 출연자가 고정욱 작가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작가’라는 타이틀로 소개된 대한민국 1급 장애인 동화작가 고정욱의 다큐멘터리를 담당한 이가 바로 유정혜 작가였다.

 

유정혜: 뵙는 건 처음이지만 <가방 들어 주는 아이> <안내견 탄실이>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 등으로 이미 알고 있었고 좋아하는 작가였어요. 정치가 좋아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고, 조카들도 책을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동화를 쓰는 꿈을 꾸게 됐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동화를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정욱: 제 꿈은 전방위 작가예요. 다양한 계층을 위한 모든 종류의 글을 다 쓰겠다, 작가란 모름지기 그래야한다고 믿었거든요. 그 꿈을 실현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소설로 등단했고 장편소설 몇 권(<원균 그리고 원균> <세종로 1번지> 등)을 쓰기도 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괜찮은 동화의 필요성을 절감했어요. 누구나 쓰는, 그런 동화 말고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게 무엇일까 깊게 고민했죠. 그 결과 저 스스로의 모습이고, 가장 잘 아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영혼이 맑은 아이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자고 마음먹었어요.

 

유정혜: 제가 조카들을 주려고 작은 미니 동화책을 만들었어요. 한 장에 두 세줄 쓰는 거라서 금방 쓰겠거니 했는데 막상 써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방송가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 가장 어렵다는 말들이 있어요. 단어의 선택, 문장 등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작품을 보면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물론, 어른들도 동감할 수 있게 하거든요. 어떤 노하우가 있으신 건지 궁금해요.

 

고정욱: 정말 어렵죠. 노하우는 오직 하나예요. 결국 많이 읽고 써봐야 하는 거죠. 동화를 쓰게 된 계기는 1997년쯤, 진선출판사에서 제안이 있었어요. 이미 나와 있는 동화책을 읽고 좋은 것만 골라 전집을 내고 싶다면서 1톤 트럭에 동화책을 싣고 찾아왔어요. 1년 동안, 2천여 권이 넘는 동화책을 읽었어요.

 

유정혜: 읽으신 2천 권의 책 중에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으신가요? 작가들마다 플롯이나 기본 구성 등을 따르는 고전작품이 있잖아요. 따라 써보거나 참고할 만한 작품이요.

 

고정욱: 따라 쓰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자기만의 글체와 문장을 개발해야죠. 책을 많이 읽되, 비판적으로 읽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비판 의식이 새로운 작품을 쓰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 인종차별적 표현, 종교적 편견, 폭력 등 동화기 때문에 조심해야할 것들이 그대로 동화 속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특히, “때리지 맙시다” “차별하지 맙시다” 등 장애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 대한 섣부른 교훈은 “때려야 하는 아이들인가?” “차별해야 하는 아이들이었구나” 등 아이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어요. 수면제 먹을 시간이라며 잠자고 있는 환자를 흔들어 깨우는 것과 마찬가지죠. 동화는 그만큼 어렵고 조심스러운 장르예요.

 

유정혜: 동화는 항상 예쁘고 행복한 이야기만 다룬다고, 그리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선생님 작품에는 꼭 예쁘고 착하기 만한 아이들이 나오는 게 아니라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감동적인 것 같아요. <안내견 탄실이>를 읽으면서 안내견이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안내견이 되는지를 알았어요. 교훈 뿐 아니라 사실적인 정보까지 전달돼 유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정욱: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은 사람이에요. 어른들 생각처럼 아이들이 단순하지만은 않아요. 어렸을 때를 생각해봐요.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고, 음모도, 보복도, 배신도 있었잖아요. 아이들도 어른들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글은, 특히 올바른 교육과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한 동화는 머리가 아닌 발로 쓰는 거예요.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해도 100% 진실은 아니거든요. 일례로 <안내견 탄실이>를 쓰기 위해 수도 없이 만난 시각장애인에게 휠체어를 타는 나는 비장애인이에요. 유 작가가 평생 휠체어를 타야하는 나의 느낌을 모르는 것과 같죠.

 

유정혜: 올해만도 10권이 넘는 책을 내셨어요. 앞으로 쓰실 작품 리스트도 어마어마하시던데, 그렇게 계속 쓸 소재를 어디서 구하시는지 궁금해요. 전 소재 하나를 찾는 것도, 그에 대해 쓰는 것도 너무 어려웠거든요.

 

고정욱: 소재는 일상에 늘 널려 있어요. 사는 것 자체에 최고의 진리가 있죠. 동화를 쓰고 싶다면 가장 잘 알고 가까운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현재 몸담고 있는 방송국,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의 인연 속에 소재들이 있죠. 전공인 정치외교학을 살려도 좋아요. 아이들에게 올바른 정치외교 교육 역시 매우 중요하니까요. 자신이 몸담고 있고, 가장 자신 있는 영역에서 시작해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는 거죠. 아역 탤런트나 연예인이 주인공인 동화, 사랑만 받다가 그 관심이 끊겼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좌절하고 절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딛고 일어서고 다시 희망을 찾는지를 그리는 거죠.

 

유정혜: 사실 좀 신경이 쓰이긴 해요. 저희도 이슈가 되는 사람에게 연락하고 찾아가서 방송에 보여주려고 하니까요. 자칫 자극적이고 과장될 수 있거든요. <희망나눔 무지개>를 하면서 만난 장애인들, 그리고 예전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장애인들을 주인공으로 써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저는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같은 성장 동화를 쓰고 싶어요. 아이들이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고민을 함께 나누고, 그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아이들 안에서도 배울 것이 많아요. 그리고 근본적인 조언은 세대를 막론하고 통한다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아직 꿈만 꿀 뿐 준비도, 습작도 별로 못하고 있어요. 동화작가로서 갖춰야할 덕목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고정욱: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아이들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아이들과의 소통의 끈을 놓아서는 안되죠.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정확한 문장을 읽혀야하니 문장력은 기본이에요. 시간은 하늘이 준 최고의 선물이에요. 최고의 동화작가가 되게 해주는 것이 선물이 아니라 잘 활용하고 노력해 최고의 동화작가가 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죠. 제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벌써 청소년이 됐어요. 그래서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됐죠. 동화를 읽은 제 독자들을 위한 애프터서비스이자 책무예요.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성인 소설을 다시 쓸 겁니다. 그것이 동화책부터 성인소설까지 책임질 수 있는 전방위 작가가 되는 제 꿈을 이루는 길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