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문화를 기억하기 위한 3년의 대장정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롱마치스페이스의 노력 베이징 798예술지역에 위치한 롱마치스페이스는 2002년도에 중국대륙을 횡단하며 장기적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 비영리 목적으로 설립된 공간이다. 공간의 이름을 대변하듯 몇 년이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는데, 대부분이 문화 교류와 계승에 관한 것들이다. 프로그램이 마무리 되면 798에 위치한 전시공간에서 보고전 형식의 전시를 하며 그 성과와 의미를 나눈다. 현재는 비영리 공간이 살아남기 힘든 중국의 문화적 상황 때문에 상업적인 활동도 병행하여 운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색이 짙은 798에서 보기 드문 전위적인 공간이다. 롱마치스페이스에서는 2006년 9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섬서성 연천현에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페이퍼커팅(전지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는데 그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페이퍼커팅, 그리고 연천마을
중국의 전통 공예 중 하나인 페이퍼커팅은 고대 여성들이 집을 꾸미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더 좋은 장식품들이 많아지자 점점 소실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시골마을의 집이나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점점 사라지고 있거나, 소수의 예술가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서 판매하는 정도로만 이어지고 있어 전통 미술 애호가들의 아쉬움을 자아낸다. 사실 페이퍼커팅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제각각 다른 스타일을 뽐내고 있다. 지방마다 마을마다 또 집집마다 종이를 자르는 기법이 달랐기 때문인데 이러한 다양한 양식이 중국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섬서성 연천현은 중국 중서부에 위치하며 서부 빈민촌으로 구분된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중국의 어느 지방보다도 페이퍼커팅의 특색이 뚜렷하며, 전통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천 역시 페이퍼커팅의 문화적 퇴보를 피하고 있지 못한데, 이는 롱마치스페이스가 교육 프로그램의 대상을 연천으로 설정한 중요한 이유이다. 롱마치스페이스에서는 이미 2004년에 <연천 페이퍼커팅 대조사활동>을 진행하며 실태 파악을 한 바 있고, 본 교육은 바로 그 조사로 인해 시작된 것이다.
전통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꾀하다
연천 페이퍼커팅 교육 프로그램의 목적은 전통적인 페이퍼커팅의 모양이나 도상을 전수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전설, 고사, 신화는 사실 각 민족이 생존해오면서 겪은 경험들이 외부로 표출된 것이며, 민간 예술은 민중의 세계관이 반영된 주요 표현법이다. 일반 사람들의 민간신앙, 숭배와 자연관, 도덕관념 등은 어떠한 예술형식을 통해서든 확산, 전승된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주요 목적은 민족 문화를 일종의 시각예술교육의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기획자들은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 문화 전승에 있어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되길 희망한다.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롱마치스페이스의 큐레이터 쏭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페이퍼커팅을 잘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아이가 얼마나 잘하게 되느냐가 아니고, 단지 선조, 조상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며, 그 이후 미래에 문화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한 사고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구 문화가 중국에 유입된 지도 오래다. 실제 많은 중국인들은 더 이상 전통문화를 중시하지 않게 된 한편, 그들 스스로도 이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사라져가는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3년의 활동들-준비과정
3년의 대장정 중 1년은 기본 조사에 착수하며 섬서성 문화국과 교류하고 교육을 위한 여러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그 다음 1년은 연천의 6개 학교의 미술 교사를 위한 페이퍼커팅 교육 활동을 펼쳤다. 교사들이 페이퍼커팅을 가르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체계적인 교재로 진행하는 수업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한편, 아이들을 위한 교육 자료-책, DVD, 영상물-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실정에 맞도록 수정하는 작업도 놓치지 않았다. 교사들을 위한 교육 과정이 끝난 후 마지막 1년은 아이들을 위한 교육활동으로 이루어졌다. 원래는 한 학기에 한 두 번 정도만 이루어졌던 페이퍼커팅 수업시간이 섬서성 문화국의 동의하에 학교 미술 수업의 절반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지역의 전통 문화를 존중하고 보전하려는 롱마치스페이스의 끊임없는 설득이 문화국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선생님을 위한 페이퍼커팅반
페이퍼커팅 전문가와 민간 예술가로 이루어진 팀이 교사들의 체계적인 교육을 돕기 위해 나섰다. 2007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약 1년간 진행된 수업에는 페이퍼커팅의 기초 이론, 역사를 포함한 이론 수업과 실기 수업이 병행되었다. 수업을 듣는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교육과정을 배우는 것에 집중하였으며, 서구적 문물이 아닌 전통 문화를 위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긍지를 가지고 임했다.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 후에는 작은 전시회를 열어 그 동안의 수업을 기념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교실: 미술수업의 반을 차지한 페이퍼커팅
2008년 3월. 약 2년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교재가 학생들의 손에 쥐어진 날, 많은 아이들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교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교재는 2학년부터 5학년까지 학년에 따라 난이도가 나뉘었는데, 공예에 관심이 없었거나 소질이 없던 아이들도 교재를 보면서 금방 손쉽게 따라 하게 되었고, 페이퍼커팅의 문화적인 뿌리를 인식하고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중학생을 위한 방과후 수업
중학생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되었다. 초등학교 과정에서 이미 기본기를 다진 아이들이 다양한 양식을 눈으로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큼직한 도판으로 구성된 교재를 통해 문화를 이해하며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중학교에서는 방과후 수업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아이들이 참여하며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3년의 노력, 그 후…
연천 페이퍼커팅 교육 프로그램은 3년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3년의 시간이 압축된 결과물인 ‘교재’를 완성하면서 그간의 장정을 마무리했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 교재는 섬서성 계획에 따라 수정본을 각 학교에 배포할 예정이며, 그 이후에는 원하는 개인이나 기관이 있을 때에만 공유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9월 26일 798의 본전시공간에서 보고전이 열렸고 이 전시를 끝으로 연천 프로그램은 완전한 대장정을 끝맺었다.수업기간 동안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연천마을에서 거주하며 학생들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도 문화적인 교류를 시도했다. 간단한 인터뷰 통계에 따르면 부모들은 스스로도 잊어가는 전통 공예를 자신들의 아이가 더욱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을 매우 뜻 깊게 여겼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잊혀지고, 소실되는 귀중한 문화자료를 독창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려는 기획자들의 의지에서 중국 문화에 대한 밝은 긍정의 힘을 느꼈다. 3년 동안 교육 외에도 진행된 많은 세미나와 기타 당국과의 교류는 프로그램이 종결된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겨, 전체 프로그램으로 인해 생성된 잔잔하면서도 강한 문화교육적 울림을 결코 멈추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 자료실]교사를 위한 프로그램초등학생 교육중학생 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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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라는 것은 마치 멸종위기 생물과도 같은거죠. 한번 사라지면 다시 되살릴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