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마주하는 문화예술교육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문화예술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것!

 

# 영국 최고 권위의 미술상인 터너상후보에 오를 만큼 지명도 있는 아티스트 제이크채프먼(Jake Chapman)이 얼마전 “아이들을 미술 전시회에 데려가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예술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더구나 그 발언이 사석에서 이리저리 흘리듯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인디펜던트지 일요판에서 인터뷰해 활자화된 내용이라 빼도 박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그는 “자신의 자녀가 잭슨폴록과 마크 로스코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오만”이라고 단언하듯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앙리마티스 작품의 표면적인 단순성은 아이들의 그림에서 보이는 미숙한 기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라든지, “잭슨폴록 특유의 기법인 드리핑 방식으로 물감을 흩뿌린 작품 앞에 아이를 세워 놓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멍청한 짓이다”라고도 말했다. 이쯤 되면 대가의 단순성을 아이들의 미숙함과 혼동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이해하고 싶어도 그의 말들은 거칠다 못해 거의 망발 수준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해도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를 작품 앞에 세우는 것이 예술가에 대한 모독이라니!
당연히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 터너상 수상자이기도 한 앤서니곰리(Anthony Gormly)의 비판과 반박은 정곡을 찌른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작품의 복잡성이나 미술사적 위치에 대한 이해나 지식 없이도 작품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물들을 경험한다. 결국 예술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 그렇다. 예술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예술교육의 본령은 지식을 주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느낌의 세계를 열어주려는 노력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어쩌면 예술은 그 자체가 가르쳐서 되는 것만도 아니고, 안다고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특히 예술적 감각은 만지고, 어울리고, 느끼는 경험 속에서 조금씩 체득하는 것이지 지식으로 주입한다고 키워지는게 아니다. 물론,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은 제이크의 견해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예술을 함부로 안다고 말하지 마라!”는 뼈있는 경고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우리가 감히 손댈 수 없는 먼 곳에, 아주 어렵고 근엄하게만 존재하는 그 무엇일 수 없다. 예술은 우리 삶 속에 있는 것이고 삶이 잉태해서 키워낸 가장 진솔한 인간적 감흥의 산물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예술이란 삶 속에 좀더 친근하고 친밀하며 가까운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지는 한 도시가 있다. 일본 이시카와현에 있는 ‘가나자와(金沢)’라는 자그마한 도시다. 인구 45만명의 이 중소도시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도시이지만 남다른 그 뭔가를 지니고 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한 여름에도 마치 눈내린 것처럼 하얗게 빛나는 순백의 가나자와성(金沢城)이고, 다른 하나는 겐로쿠엔(兼六園)이란 이름의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하지만가나자와의 진면목은 다름아닌 ‘21세기미술관’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미술관은 개방형이다. 초록의 잔디밭에 내려앉은 우주선을 닮은 이 미술관의 외벽은 커다란 통유리로 둘러져 있어 밖에서 건물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게다가 낮에만 문을 여는 통상의 미술관들과 달리 이곳은 밤에도 열려있다. 물론 미술관 내 모든 공간은 아니지만 밤 10시까지 개방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 독특한 미술관은 낮과 밤에 따라 그 느낌과 정취가 사뭇 다르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미술관이 한 공간에 시차를 두고 따로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21세기미술관의 조형학적 의미와 건축학적 맥락이 아니다. 되레 그것이 담고 있는 개방성에 기초한, 살아있는 문화예술교육의 진면목이다.

 

# 무엇보다도 가나자와의 21세기미술관은 어렵지 않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노는 만큼’ 보인다. 전시된 작품들은 저마다 재미가 있다. 억지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전시된 작품들은 예외 없이 관람객의 시선을 끌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하!”하며 그 기발한 착상과 관람객을 속여먹은(?) 발칙한 트릭에 되레 웃음짓게 만든다.
일례로 미술관 중정에 있는 작은 수영장은 언뜻 보기엔 예사 수영장과 다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수영장 밑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수영복이 아닌 평상복차림으로 말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곧이 곧대로 설명하자면, 수영장의 중간부분에 강화 아크릴 투명판을 가로막으로 설치해 수영장 위쪽에만 물을 채우고, 그 아래는 사람들이 물 없는 텅 빈 풀장 바닥을 걸어서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지하통로를 통해 그 곳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수영장 밖의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신기해 하고, 반대로 밖에서는 안을 내려다 보며 마치 물속을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듯 즐거워하는 것이다. 때로는 서로 눈길이 마주쳐 웃기도 하고 말이다. 수영장의 가운데를 가로막으로 막아 윗부분에만 물을 채우고 아래는 텅 빈 공간으로 비워놓은 발상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수영장 밖의 사람이든 안의 사람이든 모두가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며 잠시나마 상식의 허를 찌른 그 발상에 감탄하고 또 공감하는 것이다. 21세기미술관은 이것을 예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곳에서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끼고, 때로는 어리둥절해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술적 행위에 동참하고 저마다의 예술적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수영장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는 상식을 허물면서 기발하고 발칙한 발상으로 전혀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 곳! 다름 아닌 21세기미술관이다.

 

가나자와의 21세기미술관

〈Swimming Pool〉, 레안드로 에를리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소장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는 다양한 설치작업을 통해 일상에서 접하는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작품들로 주목 받고 있는 아르헨티나 작가이다. 〈Swimming Pool〉은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하여 이슈가 되었으며 현재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사진출처_ 가자나와 21세기미술관

 

# 그래서인지 가나자와 시의 21세기미술관에서는 모두가 즐거워 보인다. 자칫 미술관에서 갖게 되는 딱딱함과 지루함, 그리고 근엄하게 침묵하도록 강요 당했던 이전의 경험과 기억들을 뒤로 한 채, 미술관을 둘러본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21세기미술관은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느끼게 해줬다. 이른바 문화예술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해 이해나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좀 더 쉽고, 좀 더 편하게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작품을 대하기도 전에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작품을 봐도 소용없다는 식으로 주눅부터 들게 만들 일이 아니다. 보다 친근하게 그것들에 접근하면서 스스로 보는 재미와 감동을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 어깨에 힘들어 간 미술관이 아니라 좀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 어렵고 젠 척하는 전시가 아니라 흥미를 유발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미적 경험을 할 수 있게 이끌어내는 전시를 만들어야 한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며,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비로소 우리 삶에 예술은 뿌리를 내리고 예술교육은 생활 속에서 호흡하듯 펼쳐지는 것 아니겠는가!*


정진홍 작가





글쓴이_정진홍

컨텐츠 크리에이터, GIST다산특훈교수,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소장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http://www.kanazawa21.jp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