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으로서 문화예술교육 바라보기

글_이병곤(광명시평생학습원장)

나는 ‘평생교육’이라는 말을 고교 시절 사회 교과서를 통해 처음 들었다. 1980년에 집권한 신군부는 개정 헌법에 ‘국민을 위한 평생교육의 보장’ 조항을 포함시켰는데, 이런 배경 아래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이 용어가 교과서까지 실렸던 모양이다. 이처럼 ‘립 서비스’ 차원에서 거론된 한국의 평생교육 현황은 2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행정 서비스’ 또는 ‘교육 서비스’의 핵심으로 자리잡지 못한 채, 그 진정한 의미마저도 국민들의 가슴에 또렷하게 각인되지 못한 상태로 이어져 왔다.

여전히 ‘립 서비스’에 그치고 있는 평생학습

평생학습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하려면 이 용어가 연상시키는 통념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여러분은 평생학습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혹시 ‘여유 있는 중산층들을 대상으로 한 취미와 실용 분야’ 중심의 교육 형태, 또는 ‘수혜자 부담 형식’의 교육 형태가 아닌가. 하지만 바람직한 평생학습의 모습은 이러한 차원을 넘어선다.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학습 경험을 지원하는 모든 교육 제도, 방법, 인프라의 총체가 올바르게 구현된 평생학습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도서실 ‘청개구리’에서 실시한 짚풀공예 체험 행사

광명시평생학습원은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평생학습기관이다. 언뜻 보면 너무나 단순한 이 사실이 우리나라 평생학습의 역사에서 지닌 의미는 자못 심대하다. 지방자치단체가 평생학습의 주체로서 직접 나섰다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평생학습의 수혜대상과 개념의 폭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시 당국은 이 학습원을 설립한 2002년부터 연간 12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왔고, 그 운영을 성공회대학교에 위탁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4년간 광명시평생학습원은 광명시를 평생학습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 평생학습 인프라 구축, 소외계층 학습지원, 파트너십을 통한 강좌 개설, 특색 있는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을 꾸준히 실천하여 짧은 기간 동안의 교육 실천임에도 국내외의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
평생학습과 문화예술교육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를 하려는 이 마당에 글의 초입에서부터 다소 장황스럽게 이러한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평생학습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며, 이는 문화예술교육이 모든 국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도록 할 때에도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역을 매개로 하면 공공재로서의 평생학습을 모든 계층에게 전달되도록 할 수 있으며, 시민들은 접근성이 편리한 지역에서 교육을 통한 삶의 질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지역사회는 양질의 지역 인적 자원을 통해 지역 발전의 원동력을 얻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에서 이미 27년 전부터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라는 목표와 결합하여 150여개 지역에서 학습도시 사업을 꾸준히 전개해온 것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명확하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평생학습과 문화예술교육의 만남

우리 학습원에서는 개원 초기부터 ‘학습과 문화’를 구분지어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훌륭한 문학작품, 공연예술, 공예 프로그램들을 향수하거나 직접 참가하여 체험하는 일 자체가 이미 시민들에겐 중요한 교육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광명시처럼 별다른 특색 없이 수도 서울의 배후 도시로서 개발되고 성장해온 경우는 청, 장년 세대의 문화적 욕구가 대단히 높다. 

광명시민대학 표현예술심리치료학과의 수업 장면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서 즐길 수 있고, 교육적 메시지도 풍부한 그룹 ‘시ㆍ노래ㆍ나팔꽃’의 공연은 이런 면에서 학습원의 존재를 지역사회에 널리 알리고, 문화적 향유도 동시에 누릴 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2002년~2003년 사이에 학습원의 강당에서 7차례에 걸쳐 공연을 개최했고, 실내 체육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평생학습 축제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공연을 감상했다. 이밖에도 틈만 나면 대강당과 학습원 1층 로비, 지하 1층의 작은 광장 등을 활용해 가족인형극, 사진전, 도서전, 전통 연 전시, 연극공연 등을 실시했다. 2003년에는 지하철 7호선 광명역 로비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문화공연을 열어 퇴근길에 오가는 시민들에게 학습원의 프로그램도 홍보하고, 장인복지관이나 여성의전화와 같은 지역의 단체들도 함께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다.
광명시의 평생학습 사업 가운데 커다란 강점은 학습동아리가 상당한 수준으로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5년 11월 현재 91개 학습동아리에서 970명의 회원들이 스스로 학습 모임을 형성하고, 정기적인 모임과 발표, 전시, 공연을 갖고 있다. 이런 활동은 학습원의 동아리 지원 사업 아래 가능하게 되었는데, 학습동아리로 정식 등록되면 활동 공간 지원, 운영비와 발표 비용, 동아리 리더들을 위한 교육 지원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 동아리 가운데 15개는 미술이나 연극 관람을 통한 공동육아, 수필, 사군자, 영상제작, 국악이나 전통무용과 관련된 활동을 주요 테마로 하여 전개해 왔다.
지역에서 평생학습 홍보와 진흥을 위해 해마다 3일 동안 개최되는 평생학습축제 프로그램은 공연과 전시, 공예 체험 등을 위주로 구성하여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연인원 3만 명의 시민들이 참석하는데, 특히 축제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에 대한 인기와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광명시 안팎의 다른 기관과 파트너십을 통해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 가운데 문화예술교육의 비중도 높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협력했던 ‘외국인과 함께 하는 문화교육(CCAP: Cross Cultural Awareness Program)’이 그 가운데 하나다. 관내의 중학생들에게 인도, 네팔, 오스트레일리아 등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자국의 역사, 문화, 풍습에 대한 강의를 하고, 전통 의상 입어보기, 전통 차 끓여 마시기 등의 비교적 간단한 외국 문화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와 언어 능력에 대한 관심도 증가 등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교육적 자극을 주어 해마다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경기문화재단의 기전문화대학과 협력하여 2003년~2004년에는 각각 8개의 문화예술교육과정을 마련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고건축, 전통음악, 샤머니즘, 천연염색 등이 대표적인 강좌였는데, 학습원의 쾌적한 교육 환경과 각 분야별로 최고 수준의 강사들이 결합되어 매우 높은 참여율과 만족도를 나타냈다. 그밖에도 캐나다 대사관과 협조하여 진행된 어린이 책 전시, 원광디지털대학과 공동으로 지역 내 문화예술 실무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전문 강좌 시리즈 “예술교육철학 특강”, 지역통화(地域通貨) ‘광명그루’를 활용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주고받기,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문화예술 프로그램 운영 등 그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찾아가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무의탁 어르신 수용기관에서 이뤄진 미술치료 수업장면

지역을 교육과 문화, 복지의 구심점으로

이처럼 특정한 지역에서 바람직하게 구축된 평생학습 체제는 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훌륭한 틀을 마련해준다. 또한 평생학습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며, 더욱 풍성한 교육 결과물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어 지역 내 복지와 연계된 프로그램으로도 계속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예를 들어 ‘찾아가는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역의 정신지체 장애자를 돌보는 미인가 시설에 ‘미술치료’ 교육과정을 지원한다고 생각해보라. 문화예술이 일종의 장식이나 사치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반드시 누려야할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기능하려면 이와 같은 방식의 아름다운 화학적 결합이 좀 더 많은 지역에서 활발하고 빈번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광명시에서 비롯된 이러한 유의미한 실천이 다른 지역으로 빠른 시일 안에 확산되어 학습과 문화가 곳곳에 충만함으로써 개인의 행복과 국가적 차원의 발전이 매끄럽게 연결될 수 있는 미래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