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서울, 경기, 충청권 22개 초등학교(총 43학급)에서 색다른 문학교육이 진행되었다. 바로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된 문학분야 시범사업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각 분야 예술강사를 선발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사업은 이미 각 지역 학교 담당자들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홍보와 신청기간이 짧았음에도 많은 학교가 문학교육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앞서 진행된 국악, 연극, 사진, 영화 등의 분야에서 거둔 성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학교가 시도하지 못했던 예술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의 교육 참여가 불러일으키고 있는 효과는 단순히 해당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자신도 미처 몰랐던 재능을 자각하면서 학교 안에 창의적 활력이 움트고 있었다. 작년에 시행한 문학분야 시범사업은 이 학교문화예술교육의 본 사업으로 편입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문학수업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자체 평가는 물론이고 직접적 수혜자인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설문지 내용을 봐도 그러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문학수업을 좋아했고,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스스로 책을 읽거나 무엇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데에 놀랐다. 학생들의 반응을 확인한 많은 교장 선생님과 담당교사 또한 다음 학기에도 문학수업을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업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가장 주력한 것은 신나고 즐거운, 체험형 문학교육이었다. 예술교육의 특성상 강사에 따라 교육내용과 방법의 편차가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재편찬과 강사교육에도 특별히 공을 들였다. 준비과정에서 흘린 강사들의 눈물은 교실에서 아이들의 폭소를 이끌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평소 학교 수업시간에 소외되었던 아이들이 문학교육 시간에 보여준 집중성에 대해 학교 선생님이 매우 놀라워했다. 학생들이 놀이형 수업을 통해 쓴 작품에 담긴 기발한 상상력에는 우리도 놀랐다. 우리끼리 보고 말기가 아까워 엮어낸 작품집도 잔잔한 화제가 되어 뿌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째서 문학이 학교문화예술교육의 대상 분야로 이제야 거론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사실 문학이 스토리텔링 시대, 문화콘텐츠 시대와 만나 그 역할과 중요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교육체제를 봐도 그렇다. 문학은 미술 · 음악과 더불어 현 교육과정에서 실시하는 예술교육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을 보나, 문학은 변화하는 세계 안에서 조금씩 다른 특성이 더 부각되었을 뿐, 항상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러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서 제시한 문학의 현실, 그중에서도 특히 문학을 ‘교육’하는 과정에 함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학교육은 시험을 대비한 교과서 위주의 학습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문학을 통해 감정과 상상력, 창의력을 신장하겠다는 현 교육과정의 목표가 있지만, 제대로 실현되는 것 같지는 않다.
시험지에 지문으로 실린 문학작품을 쓴 작가가 그 시험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한때 문단의 화제가 되었다. 웃자고 하는 얘기였지만, 이것이 단지 웃긴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지금의 문학교육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문학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크게 언어, 창작, 감상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 문학의 언어는 말, 글자이다. 이 말과 글자는 어느 정도의 교육수준을 갖춘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자연히 말을 배우게 되고, 학습을 통해 글자를 익힌다. 그리고 이 글자를 이용해 무수히 많은 글쓰기를 한다. 초등학교 때의 받아쓰기, 일기쓰기부터 대입 논술, 그리고 리포트까지. 이 과정에서 글쓰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글쓰기의 필요성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감하지 못한다. 다만 해야만 하는 일일 뿐이다. 이러한 강요된 익숙함이야말로 문학을 멀어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소한 것을 익히려 할 때 제일 먼저 배우려는 것의 특성을 충실히 따르려 한다. 그렇게 배우면서 못 하던 것을 해냈다는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악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악기 다루는 법부터 음표 읽는 법 등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의 도구인 물감과 붓의 특성이 몸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이렇게 기본을 닦은 뒤, 아는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 밑바닥에는 ‘감동’이라는 커다란 원동력이 내재해 있다.
어떤 음악에 감동을 받아 그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기초부터라도 배우겠다는 마음, 영화를 보고 자신도 그처럼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시나리오 작법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거나,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나서 영향을 받아 자신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무작정 소설의 형태로 적어가 보는 시도, 이러한 마음과 시도를 기반으로 내 마음 속에 그려놓은 하나의 완성된 목표를 향해 다가가겠다는 각오야말로 무엇인가를 학습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과 시도, 각오 아래에 ‘감동’이 있다. 감동이 곧 내가 배우고 싶은 필요성이 되며, 이 필요성이 마음과 시도, 각오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지금 문학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시험을 위한 문학수업과 글쓰기는 학생들에게서 감동을 앗아갔다. 이는 문학이 단지 학습해야 할 교과목이 아니라, 체험이자 놀이 그 자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진행하던 문학수업 평가 차 충청지역의 어느 학교에 간 일이 있다. 학교 담당 선생님이 해당 학교에 파견된 예술강사 선생님을 가족처럼 쓰다듬으며 칭찬을 했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경제적 낙후지역이기도 한 그 지역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의 이혼 등 상처 하나씩을 마음에 지니고 있었다. 그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 것은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힘들었다. 정규교사가 아닌 예술강사가 그 아이들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음은 불 보듯 뻔했다.
실제로 학생들은 수업 초반에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신경질을 내거나 짜증을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예술강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문학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려 성심껏 준비해 충청 지역까지 내려간 강사는 아예 듣기조차 거부하는 아이들을 보며 순간 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학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매시간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안고, 달래며 완벽한 글쓰기가 아닌 두서없더라도 생각을 표현해보도록 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선은 무조건 쓰고 외우는 수업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며 생각하는 문학수업이라는 데에 관심을 보였다. 빈 종이를 무조건 채우기만 하던 아이들도 먼저 마음을 열기 시작한 친구들이 쓴 글을 보며 함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조차 드러내려 하지 않던 아이들이,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머릿속 상상들을 끄집어내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서툴렀지만 말이다. 담당교사는 예술강사 선생님이 말 그대로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었다며, 처음에는 안아주면 빠져나가려 안달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먼저 와서 선생님을 안는다며 흡족해했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문학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학은 어떤 사실을 외우고 학습하거나 무작정 쓰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중에 태어난다. 문학예술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발적으로 문학을 체험하는 방법을 알게 될 때에, 그리고 이러한 문학을 향유하게 될 때에 비로소 문학은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글_방현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방현석 Bang Hyun-seok|ROK
1961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88년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문단에 등장하지 않아 한동안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졌다.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인 1980년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 소설집으로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장편소설 『십 년간』, 『당신의 왼편』,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기금(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을 받았다. ‘아시아문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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