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달인’을 생각한다


 

개그맨 김병만의 ‘달인’이 막을 내린다고 한다. ‘달인’은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기존의 최장수 코너 ‘봉숭아 학당’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식상함을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인기 절정의 순간에 스스로 퇴장하는 것이어서 더 박수를 받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달인’이 돋보인 점은 여타 코너와 매우 다른 경지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봉숭아 학당’이 코너의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다수 개그맨의 개인기 물량전과 교체 출연을 통한 후배 신인 개그맨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 냈음에도 리브랜딩(Re-branding)에 성공하지 못하고 막을 내린 점과 견주어 보면 ‘달인’의 독창적 궤적과 위상은 더 뚜렷해진다.

 

기존 개그의 프레임을 넘어서다

 

김병만을 중심으로 노우진, 류담 등 세 사람이 고정으로 등장, 250여 개가 넘는 아이템의 무한 변주를 통해 4년 여 쉼 없이 달려 온 ‘달인’은 시청자의 가려운 곳을 직접 공략해 ‘한 방에’ 폭소나 냉소를 자아내던 기존 개그의 프레임을 뛰어 넘었다. 이것은 ‘달인’이 애초 코너와 코너 사이를 잇는 브리지 개그로 기획되었다는 출생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달인’은 세 개그맨의 고정 캐릭터 그대로를 유지하며 동시대 시청자의 일상과도 깊은 공감대를 형성, 시청자와 공명하며 장수의 길을 걸었다. 마치 찰리 채플린이 특유의 과잉된 몸짓과 눈물을 머금은 미소로 당대 산업화 시대의 육체 노동자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깃든 희로애락을 풍자하고 위로했던 것처럼, 달인 역시 시청자와 함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일상을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달인’은 ‘(이루어질 수 없는)미션’을 설정한 후 ’1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해서 이루었다 주장하는’ 달인 선생의 이야기다. 관객 앞에서 ‘미션’을 재현하는 달인 선생은 점점 강도 높게, 점점 엉뚱한 미션을 선보이지만 결국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망신살로 끝난다. 사회자 역할을 맡은 개그맨 류담이 코너 시작과 함께 “16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무술을 연마해 오신 무술의 달인 ‘흰띠’ 김병만 선생”, “16년 동안 매일 격파를 연마, 세계 최고의 격파왕이 되신 격파의 달인 ‘골병’ 김병만 선생”이라고 소개를 할 때, 시청자의 웃음은 이미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시청자는 단 한 줄의 설명만으로 무엇을 보게 될지, 무엇에 공감할지를 감지한다. 지난 4년 여의 시간, 김병만의 ‘달인’은 매주 그것을 보여 주었고, 시청자들은 어김없이 그에 반응했다.

 

허당 달인이 진짜 달인이 되기까지

 

겉만 보면 ‘달인’의 핵심은 개그맨 김병만이 다리를 찢고 물 속에서 라면을 먹으며, 죽마를 타고 점프를 하는 것과 같은 ‘개인기’일 뿐이다. 그러나 시청자는 김병만이 매주 한 가지씩 개인기를 선보이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는지 알고 있다. 나아가 시청자는 반복되는 노력을 통해 김병만이 ‘진짜 달인’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서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에 함성과 박수를 보낸다. 김병만은 평발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딛고 피겨 스케이팅을 했으며, 작달막한 신체조건을 뛰어넘어 연예인 익스트림 스포츠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이러한 김병만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일상 속 달인인 SBS TV ‘생활의 달인’과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비교해 본다. ‘생활의 달인’은 오랜 세월 단순 동작을 반복하며 특정한 작업에 대해 숙련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근대 산업화 시대의 ‘달인’, 육체 노동자를 조명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자동화 되어 있는 지금, 시청자는 ‘생활의 달인’을 보면서 산업 역군 이미지에 찬탄하기보다는 그들의 엄청난 숙련 동작을 단지 신기한 볼 거리로 소비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동작에서 잠깐씩 떠오르는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상기할 뿐이다. 반면 김병만의 ‘달인’은 끝 없는 도전과 미션을 수행하며 오늘은 이것을 해치우고 내일은 저것을 해결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의 모습을 닮았다. 대체 어느 세월에 진짜 달인이 되려는지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개그 코너 ‘달인’은 끊임없이 노력하며 1등이 되고자 하는 이 시대의 보통 사람의 모습을 투영한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노력과 변신 도전의 본질은 허망한 ‘삽질’이다. 과거에는 어떤 일을 해도 성실하게 매진하면 소박한 성공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보통 사람의 노력을 좌절시키는 일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끊임없이 ‘잠재력 개발’, ‘창의성 향상’의 주문을 외우고, 보통 사람들은 헛된 꿈을 꾸며 삽질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16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는 그저 ‘흰띠’ 선생이며, ‘삽질’ 선생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 달인의 가장 문제적이며 핵심적인 반전이 있다. 수 많은 반복적 ‘삽질’을 통해 김병만은 점차 ‘진짜 달인’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네 보통 사람들처럼 헛수고만 거듭하던 개그 캐릭터가 평발로 피겨 스케이트를 타고,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을 하는 등 ‘생활의 달인’으로 서서히 변해 갔다는 것이다.

어느 새 ‘달인’은 김병만 자신의 리얼리티가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 속에 존재하는 극적이고 동화 같은 결말은 없다. 달인은 여전히 16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무관심으로만 일관해 온 무관심의 달인 ‘솔깃’ 김병만 선생이고 16년 동안 인간의 뇌를 연구해 오며 세계 최고의 기억력을 갖게 된 기억의 달인 ‘아차’ 김병만 선생이며, 16년 동안 뛰어난 사교성으로 쌓아 온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사교의 달인 ‘쓸쓸’ 김병만 선생이다. 한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또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일 수도 있다는 일상의 부조리. 시청자는 그 사실을 ‘달인’에서 발견하고, 공감한다.

 

 

100% 리얼 달인의 모습을 바라보라

 

이루기 난망해 보이는 목표에 매번 도전하여 ‘삽질’을 거듭하다 실패하고 우스꽝스러워지는 형상. 그러나 그 악전고투 속에서도 조금씩 ‘되기도 하는’ 성취의 모습을 보이는 것. 시청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삽질의 달인이 진짜 달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고, 대개는 성공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도전하는 것. 타인이 보기엔 쓸모 없는 ‘삽질’로 보이지만 그 자신에게는 ‘달인’으로 향하는 노력의 몸짓이라는 것. 그에게는 실패의 기억이 더 많다. 그러나 허다한 실패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노력하고, 그러다가 어느덧 존재의 본질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삽질의 규모에 비해 변화의 양은 미미하고, 개선의 방향은 거의 감지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분명 성취다.

 

리브랜딩(Re-branding)은 포장을 바꾸고, 라벨을 바꾸며, 슬로건을 바꾼다는 뜻이다. 그러나 때로 그것은 존재의 변화, 그리고 사명의 재발견을 내포하는 의미 있는 진화를 뜻하기도 한다. 예컨대 인터넷 유행어인 ‘잉여(쓸모 없는 존재)’는 당초 무력감과 자기비하를 뜻하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잉여력(力)’, ‘잉여의 힘을 보여주마’와 같은 변신을 통해 ‘쓸모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나’라는 자존감의 표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삽질’이라는 표현 역시 달인 김병만을 통해 본디 부정적 의미에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할지 모른다. 삽질의 달인 김병만이 현실의 달인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 본 시청자들이 나날이 반복하는 실수와 좌절, 그리고 실패를 리브랜딩하게 만드는 충분한 격려와 공명의 자기장을 느낀다면 말이다. 이런 자기장은 더 활성화 되어 애초 목표 대상을 이루기 전에 존재를 먼저 변화시키는 경험을 촉구한다.

아울러 김병만의 ‘달인’ 종영과 함께 우리 시대 문화기획과 예술의 달인들이 리브랜딩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SBS TV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올드한 영웅의 상은 아닐 것이다. 이 초상화는 지나간 이들의 것이다. 또한 개그콘서트 ‘헬스걸’이 보여 주는 변신 욕망의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재현과도 다를 것이다. 그런 변신은 광고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삽질의 과정을 낱낱이 편집하여 극대화된 감동과 함께 전하는 MBC <무한도전>을 학습해야 하는지, 아니면 과정은 개인의 영역인 채 서서히 진화하여 현실에 발 디딘 ‘달인’을 닮으면 좋을지. 많은 생각 속 분명한 점은 이것이다. 우리가 리브랜딩해야 할 것은 그간 실패해 온 과정과 ‘삽질’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그것이 사회적 공감과 통할 때 비로소 문화예술의 새로운 이야기 쓰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4년 간, 주말마다 우리에게 웃음을 전해 준 김병만 씨, 노우진 씨, 류담 씨,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글_사단법인 씨즈 상임이사 김종휘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