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류정아 연구위원의 책임 연구 아래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국내외 사례 조사 및 활성화 방안>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의 증가 속도와 규모가 가파르다는 사실이 여러 통계나 체감으로 분명한 이때에 기본 정보에 충실한 이번 보고서를 만나니 반가웠다.

 

사회적기업의 현주소를 알려주다

 

사회적기업의 이론과 해외 사례, 정부 가이드는 있었지만 이번 보고서처럼 국내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 67개고용노동부 기준의 현황을 항목별로 취합하고 기본적인 분석을 기해 전체 풍경을 조망한 자료는 처음 접하는 것 같다.

 

막연한 환상이나 적대, 또는 정권이나 트렌드에 따라 변하는 지원제도의 방향 전환이나 초점 이동을 놓치지 말고 일단 하고 보자는 쫓아가기가 적잖은 시점에 이 보고서는 차분하게 현주소를 직시하도록 안내한다. 문화예술분야의 인증, 예비, 잠재적 사회적기업 등 어디 누구든 자신을 돌아보며 정비를 하려는 주체에게 유익한 쓰임새가 많지 싶다.

 

주관적 기대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국내•외 사례를 비교하며 본보기로 차용할 해외 사례와 국내 여건을 담담히 나열하는 미덕을 가진 이 보고서가 아무쪼록 많이 활용되길 바라면서 보고서의 결론에 나온 부분을 인용한다.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은 수익성제고와 사회적 목적 실현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는 본질적으로 어려운 형태인지, 아니면 현재의 획일적인 사회적기업 관련 규정에 의해서 문화예술분야의 특수성이 본격적으로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인지는 좀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가정책적 차원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기업 장려정책이 추진되고 있고, 해외에서도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그 실효성이 입증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이 가지는 본래 속성의 딜레마가 가지는 한계점은 정책적 대안과 효과적인 전략 수립으로 충분히 개선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한계점과 정책적 대안

 

이 보고서를 다 읽어갈 즈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유인즉 위 인용문에서 처음으로 잠정적 결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이 가지는 본래 속성의 딜레마가 가지는 한계점’이란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이 무슨 조합이고 조화냐 하는 현장의 볼멘 소리와 강단의 교과서적 결합론은 많았지만, 이처럼 ‘본래 속성’과 ‘딜레마’와 ‘한계점’을 한 문장에 담아서 끝 부분에 많은 물음표를 숨긴 채 이렇게 결론을 갈음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에 대해 말하길 착한 일도 하고 돈도 번다거나, 사회적 미션과 수익창출을 혼합하라거나, 영리와 비영리의 중간 조직이라거나 하는 표준 개념이나 평균값 정의만 반복하는 작금의 풍토에서는 차라리 처음부터 모순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편이 사회적기업을 하려는 이들에겐 훨씬 유익하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표준과 평균은 표상하기 위해 실재하는 여러 체험들을 추상화시킨 것이지 그 자체로 딱 그 모습대로 실존하지 않아서다. 그러니 이 표준과 평균을 쫓다 보면 몸을 옷에 맞추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런 우를 피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본격 시도, 정면 승부에 온 에너지를 다 쓰고 싶다면 ‘딜레마 ‘와 ‘한계점’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대단히 유리하다. 조직의 출발 단계나 새로운 사업을 할 때면 기대심과 목표의식에 흥분해서 자기 확신이 도를 넘거나 반대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실패했을 경우의 부담감에 압도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지 모르겠다. 이럴 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딜레마’와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나아가 그 일에 직면한 자신이란 사람이 갖는 ‘딜레마’와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직시함으로써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쪼개서 작게 만드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그런 다음에 뭐든 착수 하라고 말이다.

 

시행착오를 남기는 블랙박스처럼

 

사회적기업 개념은 필요와 방향과 목적지가 있어서 설계된 비행기 같은 것이다. 그것도 정부, 기업, 비영리 민간 영역에서 기존의 기차, 자가용, 버스 등의 교통수단으로 하지 못한 혹은 실패하는 과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공동 발명한 비행기다. 기장, 승무원, 탑승객의 조합은 제각각 일 것이고 실제 비행 노선도 임상이 자꾸 쌓여야 비로소 성공의 기준과 모델이 제시될 수 있는 꾸준한 실험의 반복이다. 이 모험적인 비행을 너무 잘 하면 그라민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처럼 노벨상 받을 것이다. 다수는 첫 비행에서 교과서에 나온 오차 범위를 벗어나는데, 그 체험들이 누적되어야 점점 더 많은 성공이 나오는 식이다.

 

결국 사회적기업 개념은 블랙박스로 실재한다. 각 비행기마다 비행을 해봐야 구체적인 정보와 시행착오의 기록이 블랙박스에 남는다. 그런 블랙박스들이 서로 참고하고 보완하면서 점점 더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것이고 그럴수록 후발 주자들은 처음부터 보다 낳은 성공 확률의 기반 위에서 첫 비행을 하게 된다. 이렇게 공동 기획된 사회적기업이라는 회식 지대gray area와 이자 창의 영역creative zone에서 사회적기업을 시도하는 개별 주체에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대로 사회적기업 실험의 ‘딜레마’와 ‘한계점’을 직시하고 여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딜레마’와 ‘한계점’을 투영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결과 직시한 ‘딜레마’의 여러 요소를 보완하거나 나아가 새로운 기회로 바꿔 줄 외부 요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주객관적인 ‘한계점’을 혼자 돌파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다른 비행 체험을 가진 주체와 이웃해 서로 도우면서 같이 더 강해지거나 나아가 어떤 생태계 안에 머물며 단기 성패가 아닌 중장기 전망을 향해 긴 호흡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문화예술의 특수성이고, 본디 사회적이며, 기업적이 되라는 말이 가능한 것이기는 하냐고 출발한다면 어쩌면 하나마나한 시도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인즉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의 어떤 공식이나 정답을 찾지 말고, 이 화두의 기획 목적과 용도가 원래 ‘난제에 대한 극에서 극의 온갖 도전을 권장하고 지원함’에 있음을 가급적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자는 뜻이다. 즉 얌전하고 모범적이고 균형 잡힌 시도에 집착하는 대신에 조금 극단적으로 치우친 시도들을 자꾸 해보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균형이나 조화란 극과 극을 오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체질 만들기이자 결과이다. 날마다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하는 독종의 예외적 사례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여기 극단을 가보고 다음엔 저기 극단을 가보는 일정 기간의 체험을 한 호흡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공하고 자신의 생각과 모습도 어느새 바뀌어 있는 것이다.

 

본래 목적에 대한 방향성을 잃지 말아야

 

2010년 12월 현재 인증 사회적기업이 501개라고 한다. 인증 사회적기업 중 고용노동부 기준의 문화•예술•관광•체육 분야 사회적기업은 총 67개로 전체의 13.4%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셈하는 문화예술분야 인증 사회적기업은 50개다. 사회적기업 당사자가 업종을 문화예술분야로 놓거나 빼는 여러 이유를 감안하면 이 수치는 매우 유동적이다.

 

‘본래 속성’상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이란 범주를 경계 짓는 일 자체가 가변적이다. 융복합 시대의 특성 때문이기도 문화예술의 확장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화예술의 특수성과 보편성의 문제도 기실 같은 이치를 갖는다.

 

그러나 어느 누구든 다 하나의 점에서 출발한다. 가까스로 점을 이어서 또 하나의 점을 만나면 선이 되고, 다시 또 한 점을 만나면 면적을 만든다. 그 면적을 일으키면 입체가 된다. 무게감으로도 표현되는 존재감은 이렇게 나온다. 첫술에 배부르냐는 말이 있지만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의 첫술에 무엇을 먼저 담을 것이며, 얼마나 꼭꼭 씹어먹을 것인지 하는 선택과 집중은 반드시 있다. 이를 애매하게 인식하는 것은 문화예술이든 사회적기업이든 ‘본래 속성’과 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글_ 사단법인 씨즈 상임이사 김종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