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스스로 ‘문화텃밭’처럼 일궈낸 동네도서관의 서가들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의 한 건물 2층에 소재한 책문화공간 ‘봄’은 겉보기엔 여느 북카페와 다를바 없었다. 왜냐하면 아래층이 카페와 곧장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처음에는 북카페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래층의 카페와는 무관했다. 그저 카페 2층에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그 공간의 다른 한 켠은 찜질방 입구와 맞물려 있었다. 동네사람들이 찜질방을 들리려면 거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던 셈이다. 물론 본래는 건물주인이 카페공간으로 확장하려고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 공간은 결국 ‘의도치 않은 임자’를 만났다. 다름아닌 동네 아줌마들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본래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가 족히 80만원은 받을 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건물주는 한 아줌마의 집요한 공략에 두 손 들고 기꺼이 그 공간을 내놓았다.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 동네도서관이 전국에 적잖게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곳 광주의 동네도서관 책문화공간 ‘봄’은 정부는 물론 지자체에서도 한 푼의 지원을 받지 않은 채 오로지 동네 아줌마들의 자원봉사만으로 꾸려지는 도서관 아니 책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아울러 이용하는 주민과 책을 공급하고 내놓은 주민이 따로 없이 뒤섞인 묘한 공간이다. 실제로 동네주민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치 집근처 공터에 텃밭을 만들듯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들을 가져와 20여권씩 꽂아놓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만의 이름 혹은 제목을 딴 독립된 서가, 아니 ‘문화텃밭’을 일궈놓은 것이다. 실례로 어떤 중3학생은 고양이에 관한 책만으로 20여권을 책장 한 칸에 꼬박 채워 넣었다. 그 학생의 고양이에 대한 유별난 관심 덕분에 웬만한 전문도서관에서도 다 찾아보기 힘들만큼 고양이에 관해서라면 아마추어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 전문적인 서가가 마련된 셈이다. 고양이에 관한 독특한 서가를 자기 이름을 걸고 문화텃밭으로 만든 그 학생의 이름은 장미르! 이름도 범상치 않은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로 진학했다고 한다.
# 지난해인 2013년 4월 26일에 개관한 책문화공간 ‘봄’은 ‘아랫층은 카페, 옆집은 찜질방’인 동네 도서관이다. 그래서인지 이 곳은 동네사람 누구나 부담없이 찾는 동네사랑방이자 동네주민들의 갈등해소처다. 이 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독특한 별칭이 부여되는데 ‘북큐’와 ‘북어’가 그것이다. 북큐는 ‘북큐레이터’를 뜻하고 북어는 ‘북어드바이저’를 뜻한다. 책의 진열부터 무슨 책을 읽을 것인지에 대한 독서지도까지 북어드바이저 즉 북어로 일하는 동네 아줌마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는 곳이 책문화공간 ‘봄’이다. ‘봄’이란 의미도 단지 계절의 명칭이기 보다 “책을 보고, 사람을 보며,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라고 한다. 결국 이 작지만 의미있는 책문화공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돌아봄), 세계를 바라보며(바라봄), 주변과 이웃을 돌본다(돌봄)는 의미가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 비록 동네도서관일지라도 이 곳은 결코 동네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중국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훈춘으로 책나누기 운동을 펼치고 있음은 물론이고 티벳의 다람살라 록빠 어린이 도서관을 후원하는 일까지 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자체적으로 핸드메이드 문구와 소품을 만들어 팔아서 작지만 의미있는 후원금을 스스로 몹는 자립적이다못해 기특하기까지 한 도서관이다. 뿐만 아니라 ‘책과 콩나물’이라는 독서모임도 꾸리고 있는 착한 도서관이다. 이 곳에서 어떤 아이들은 부모가 모두 일하러 나간 사이에 혼자 오후 내내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쓴다. 숙제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렇게 책과 더불어 노는 것이다. 이것이 동네 도서관 책문화공간 ‘봄’에서 다반사로 펼쳐지는 우리 일상의 문화현상이요 우리 시대의 문화현장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너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너가 누구인지 말해주마”라고. 이제 이 말은 이렇게 고쳐 쓸 수 있을 것 같다. “너가 어디에서 무슨 책을 읽는지를 말해보라. 그러면 너가 누구이며 또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말해주마”라고! 생활 밀착형 문화공간으로서의 동네 도서관 책문화공간 ‘봄’은 이렇게 이 봄 속에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다.
꿈을 담은 ‘사나래 윈드 오케스트라’
# 이제는 다리가 생겨 육지와 이어진 압해도에서 쾌속행정선을 타고 30분도 채 안돼 닿은 곳은 전남 신안군 안좌도였다. 안좌도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다름 아니라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74) 화백이다.
“내 고향은 전남 기좌도(지금의 신안군 안좌도). 고향 우리 집 문간에 나서면 바다 건너 동쪽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목포항에서 100마력 똑딱선을 타고 호수 같은 바다를 건너서 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다.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고향이다.” (김환기산문집, <그림에 부치는 시>, 지식산업사)
# 수화 김환기 화백이 1962년 3월에 쓴 글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수화는 남도 끝자락의 섬에서 태어나 뭍으로, 다시 서울로 또 도쿄로, 파리로, 그리고 뉴욕에서 생을 마친 예술적 보헤미안이었다. 지난해는 그가 태어난 지 백 년 된 해였고, 아울러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그가 그리운 고향 땅으로의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는 해였다. 수화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김광섭의 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년)라는 작품에서 파란 바다 빛깔의 점들이 촘촘히 찍힌 전면점화(全面點畵) 시리즈를 통해 삶과 죽음,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어 정녕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인지를 때론 속삭이듯 또 때론 우레처럼 우리 앞에 펼쳐놓지 않았던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섬에서 바라본 호수 같은 바다의 그 순정한 푸른 빛깔이 때론 촘촘하게 또 때론 성기게 펼쳐지는 그의 화폭은 그 자체가 햇빛에 반사돼 더욱 영롱하게 일렁이는 푸르디 푸른 바다요, 별과 달마저 삼킨 검푸른 하늘 그 자체가 아닐는지! 바로 이것이 수화 특유의 ‘환기블루’ 아니겠는가.
# 1921년에 개교한 안좌초등학교는 수화 김환기 화백이 나온 학교다. 올초에 91회 졸업식이 치러져 지금까지 모두 8,802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현재는 6개 학급에 전교 학생수는 56명이고 교사수가 14명인 미니학교다. 하지만 이 학교에는 모두 43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사나래 윈드 오케스트라’가 편성돼 있다. 2009년 7월 1일 신안군으로부터 5천만원을 지원받아 편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외부강사 네 분이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클라스를 열고 예술인턴교사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각각 4시간씩 가르쳐 일궈낸 자생적 오케스트라다. ‘사나래’란 천사의 날개라는 뜻이다. 모두 1004(실제로는 1027)개의 섬으로 구성된 신안군에서 ‘미래를 향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오케스트라’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은 말끔하게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교복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복이었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이 낯선 이방인을 만나자 주저함없이 배꼽인사를 정중히 하며 뭐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말이 워낙 빨라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세워서 물어봐도 더 빠르게 뭐라 말하곤 이내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이 말하며 지나간 것은 다름 아니라 ‘꿈인사’였다. 자기만의 꿈을 인사말에 담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학생들이 모두 다른 말을 하며 인사를 했던 것이다.
# 김환기 화백 탄생 100주년을 기념했던 지난 해 가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김환기, 백년되어 고향에 돌아오다’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었다. 그리고 그 전시회가 있던 즈음 나는 전남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전남과학고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연어처럼 돌아온 김환기 화백을 이야기했다. “너희들 중에는 그분처럼 섬에서 이곳까지 온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여기 머물지 말고 더 크게 더 멀리 나아가라. 그러나 끝까지 잊지는 마라. 네가 태어난 고향을! 그리고 언젠가는 빛이 되어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이제 이 이야기를 수화 김환기의 어린 초등학교 후배들에게도 해줘야 할 것 같다. 그들의 ‘꿈인사’에 화답하듯이…
# 현(絃) 없이 관(管)악기만으로 구성된 사나래 윈드 오케스트라가 펼쳐낸 소리는 세련된 맛은 적었지만 아주 우렁찼다. 40여년전 ‘섬개구리 만세’라는 영화가 사람들을 울린 적이 있었다. 섬마을 아이들이 농구단을 만들어 서울로 상경해서 전국소년체전에서 마침내 준우승을 하기까지의 감동적인 실화가 스크린상에 고스란히 펼쳐졌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섬개구리 만세’란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이 다름아닌 안좌도 사치분교의 아이들이었다. 당시 전교생이래야 60여명에 불과했던 사치분교에 새로 부임해온 권갑윤, 김선희 부부교사는 섬 아이들에게 단결력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농구를 가르쳤고 마침내 아이들은 1972년 제1회 전국소년체전에서 준우승의 쾌거를 이뤄냈던 것이다. 이제 사치분교는 아예 없어졌고 본교였던 안좌초등학교가 예전 사치분교 학생수 보다도 더 작아졌지만 그들은 사나래 윈드 오케스트라를 통해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희망을 심는 문화, 꿈을 키우는 예술은 도처에 살아있다.
글쓴이_정진홍
광주과학기술원(GIST) 다산특훈교수 • 한국문화기술연구소(KCTI) 소장
*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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