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는 어느 한 날 파리 시내의 광장입니다. 〈콩코드 광장〉은 마치 우연히 누른 셔터에 포착된 스냅 사진의 한 장면 같습니다.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이 없습니다. 머리와 팔의 일부, 심지어 아예 반쪽만 모습을 드러낸 행인도 있습니다. 드가의 〈르픽 자작과 어린 두 딸〉 혹은 〈콩코드 광장〉의 무대는 ‘거창한 변형’이라 불리는 개조 사업 후 19세기 파리입니다.

 



에드가 드가 Edgar De Gas 〈르픽 자작과 어린 두 딸〉 혹은 〈콩코드 광장〉, 1875년 작

 

파리가 중세의 분위기를 벗어나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입니다. 파리 개조 사업의 밑그림은 나폴레옹 3세가 그렸고, 센 지사 오스만이 그 위에 색을 입혔습니다. 1853년에서 1870년까지 대략 공사비 25조 프랑이 소요될 정도로 파리 개조 사업의 규모는 컸습니다. 1820년을 전후로 파리에는 직물, 중공업, 화학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로 도시는 몸살을 앓고 있었지요. 인구는 넘쳐났지만 불결한 위생 상태는 날로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했고, 폭동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파리 개조 사업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습니다.

 

1850년 나폴레옹 3세는 도심 재개발 사업에 대한 연설에서 “새 길과 유익한 햇빛”을 약속했습니다. 파리 개조 사업의 명분이 도시 미화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체계적인 교통망 구축을 핵심으로 한 파리 개조 사업은 쾌적한 도시 환경뿐 아니라 잦은 소요와 같은 불온한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진압할 수 있는 묘안이기도 했습니다.

 

파리 개조 사업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나폴레옹 3세의 정치적 야심이 빚어낸 합작품이었습니다. 도심 재개발 후 파리에 넓어지고, 많아진 것은 도로의 너비와 가스등의 숫자만이 아니었습니다. 구경할 수 있는 세상의 범위와 신기한 볼거리의 개수 또한 크게 증가했습니다. 도시의 구경꾼들은 철과 유리를 이용한 건축 구조물을 통해 쉽게 볼거리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거리의 행인들은 카페 실내의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불빛을 확인했습니다. 철제 발코니에 앉아 아파트의 거주자들은 바깥세상 풍경을 주시했습니다. 거리에서 실내를 들여다보고, 집안에서 실외를 내다볼 수 있는 파리를 벤야민은 ‘마술환등’의 세상이라 표현했습니다.

 

드가의 〈콩코드 광장〉처럼 사방이 트인 공간은 자극적인 볼거리를 구경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공간입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자극들이 시선을 빼앗습니다. 나이와 성별, 관심사와 눈높이가 다르니 당연히 응시의 방향도 제 각각일 수밖에요. 어린 두 딸 뿐 아니라 심지어 애완견조차 르픽 자작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시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세계의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라도 했던가요. 그러니 저마다 다른 곳을 응시하는 르픽 자작 일행은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다른 세계를 경험 중인 것이군요. 대체 이들의 시선 끝에는 무엇이 머물고 있을까요.

 

서너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인 옴니버스의 질주, 무리를 이룬 채 거리를 지나는 군중들의 물결, 인근 공원에서 울리는 군악대의 연주 등. 르픽 자작 일행 주변에는 다채로운 구경거리들이 펼쳐져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자신들 또한 도시의 볼거리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지요. 〈콩코드 광장〉 왼편에 자리한 키다리 신사의 시선이 이들 일행을 향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콩코드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구경거리에 대한 열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지난 4월 지방 한 도시에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체의 여성은 알 수 없는 내용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1킬로미터 대로를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거리의 시민들 중 다수는 도심 한 복판에 출현한 알몸의 여성에게 도움을 줄 여력이 미처 없었답니다. 신기한 볼거리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느라 바빴으니까요.

 

누군가의 아픔, 누군가의 절망까지도 일회용 구경거리로 소비한다면 나의 고통, 나의 실수 또한 결코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조차 쉽게 노동과 직업의 세계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찾을 기회를 상실해 버린 오늘날 우리가 사유해야 할 것은 〈콩코드 광장〉에서 르픽 자작 일행을 바라보는 키다리 신사의 시선일지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의 삶이 저잣거리에 진열된 채 불특정다수의 구경거리로 전락하기 원치 않는다면 말입니다.

 

글 | 미술평론가 공주형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수근론’으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고재 갤러리 큐레이터로 10년간 활동하였고, 2001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 『아이와 함께 한 그림』, 『색깔 없는 세상은 너무 심심해』, 『천재들의 미술노트』, 『착한 그림 선한 화가 박수근』 등이 있다. 현재는 세 아이를 키우며 미술과 사람 사이에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전시를 만들고 있다.